구약성서, 마소라사본         


 그리스도교 성전(聖典). 영어 바이블(Bible)의 어원은 고대에 종이 원료로 사용하였던 파피루스의 심(心)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한다.

이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에 글자를 기록한 것을 비블리온(biblion)이라고 하여 책이라는 뜻이 되었다.

그 복수형이 라틴어로 바뀌어서 비블리아(biblia)가 되었고, 특히 거룩한 책을 나타내게 되었다.

성서에는 《구약성서(舊約聖書;Old Testament)》와 《신약성서(新約聖書;New Testament)》가 있는데, <약>은 <계약>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 장면에는 십자가의 피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새 언약이 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누가복음 22:15∼20).


이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관한 책을 《신약성서》라 하며, 구세주에 대한 준비서로서 유대교의 경전이었던 것을 《구약성서》라고 하며,

이 2가지를 합하여 그리스도교의 정경(正經;카논)으로 삼았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이지만, 가톨릭에서는 외경(外經)을 포함하여 73권이다.

구약성서


<구약>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말이며, 유대교에서는 이것을 내용에 따라 <타나크(Tanach)>라고 한다.

<율법(Torah)> <예언서(Nabi'im)> <제서(諸書;Chethubim)>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구 약성서》각 책의 성립과정과 그 구성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헤브라이) 여러 민족은 BC 13세기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 이집트를 탈출하였다.


이 어려운 사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모세는 그들의 공통된 조상인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느님 여호와를 유일한 하느님으로서 경배할 것,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조상과 약속한 땅 가나안을 주신다는 것을 설파하여 민족 유일신교와 선민신앙(選民信仰)의 기초를 닦았다.


모세는 요단강(요르단강) 건너편에 있는 남부 최대의 오아시스 도시 여리고(예리코)를 눈앞에 두고 죽었지만, 그의 유지(遣志)는 여호수아에게 계승되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의 길로 향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각 지파의 지도자인 사사(士師;판관) 밑에서 협력하면서 원주민을 정복하여 가나안 전지역을 각 지파가 나누어 정착하여 갔다. 이것이 BC 12∼BC 11세기의 사사시대이다.


이때 블레셋(필리스티아)이 서쪽 해안에서 침입함으로써 가나안은 블레셋사람의 땅, 즉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모든 지파를 통솔해 나갈 왕의 출현이 요청되자, 12지파의 종교연합은 사울을 왕으로 삼아 국가를 형성하였다.


사울은 싸움에 패하여 재위 11년 만인 BC 1000년 무렵 자결하였고, 왕위는 다윗(다비드)에게 이어졌다. 다윗은 블레셋인을 무찌르고 전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곳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세웠다. 이 안정된 이스라엘왕국을 이어받아 BC 960년 무렵부터 40년간에 걸쳐 통치하고, 내정과 외교에 수완을 발휘한 사람이 솔로몬왕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성전과 왕궁을 짓고 전국에 견고한 요새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 2대에 이른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도 솔로몬이 죽은 뒤에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으로 인하여 남쪽의 유대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하여 국력은 점점 쇠퇴하였다.


BC 721년 앗수르(아시리아)는 이스라엘왕국을 점령하였다. 이 앗수르 다음에 나타난 바빌론(바빌로니아)은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켰다.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것을 가리켜서 <바빌론 유수>라고 하며, 이스라엘 종교사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BC 538년 바빌론에 이어 지중해세계에 영토를 확장한 페르시아는 포로인 유대인들을 해방, 귀국시켰다. BC 331년에 페르시아가 멸망한 뒤에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는 유대교를 보호하였다.


그러나 BC 202년 이후 수리아(시리아)의 셀레우고스왕조는 유대교를 박해하였으며, BC 160년 무렵 유대는 독립전쟁에 의하여 하스몬왕조를 일으켰다. 그러나 BC 63년 로마에게 점령되어 예수의 시대에까지 이른다.

《구약성서》의 구성과 각 책의 성립


《구 약성서》는 율법·예언서·제서(諸書)로 이루어져 있다. 율법이란 《구약성서》 최초의 5권 <창세기><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 이야기,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12족장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번째의 <출애굽기>에서 다섯번째의 <신명기>까지는 모세의 출생에서부터 죽기까지의 시내(시나이)산과 그 밖의 지역에서 하느님이 모세를 통하여 내린 율법으로 엮어져 있다. 따라서 이 5권의 책은 <모세오경> 또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여 BC 400년 무렵 유대교 최초의 경전이 되었다.


<창세기> <출애굽기>의 전승(傳承)은 대부분이 하느님의 호칭을 <여호와>라고 하는 <야위스트(Jahwist;약칭 J)>, <엘로힘>이라고 하는 <엘로히스트(Elohist;약칭 E)>라는 이름이 붙여진 자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앞의 것은 BC 10세기 중엽, 뒤의 것은 BC 8세기 중엽에 성립하였다.


J는 민족신앙으로 일관되어 있고, E는 여기에 윤리적 종교관이 더하여 있다. <출애굽기> 20∼23장에 있는 <모세의 십계명> <계약의 글>은 E의 지은이가 쓴 것이다. BC 621년에는 요시아왕에 의하여 <신명기법(Deuteronomium;약칭 D)>이 정해져서 <신명기> 5∼25장과 28장에 놓이게 되었다.


<레위기> <민수기>는 BC 500년 무렵 제사장들에 의하여 정리된 <제사법전(Priester Kodex;약칭 P)>인데, 이것의 지은이가 율법 전체의 편찬자이며 5권 각 부분에 가필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은 J·E·D·P의 4가지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예언서는 BC 300년 무렵에 이르러 편집되었으며, 유대교 제2의 경전이 되었다.


<이사야><예레미야> <에스겔>의 3편의 대예언서, <호세아> 이하 12편의 소예언서와 이것들을 편찬할 때 그 앞에 놓인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등 4권을 전예언서(前豫言書)라 하며, 모두 선지자(예언자)의 이름으로 제목을 삼았다. 선지자란,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지도자로서 모세와 사무엘 등을 선지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지자 15명이 전한 말이 기록되어 성서에 수록되었고, 이들을 <기술적 선지자(記述的先知者;Canonical Prophets)>라고 한다. 아모스의 출현은 BC 760년 무렵인데, 이스라엘과 유대사회의 혼란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하느님의 징벌을 경고하였다. 민족신앙이 단순히 여호와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한 데 반하여, 하느님은 의(義)의 하느님이기 때문에 백성도 의로운 백성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을 경배하는 길은 의식이 아니라 공의(公義)를 세상에 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와 같이 종교에 명확한 윤리적 성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아모스를 비롯한 호세아·미가·이사야·스바냐·예레미야 등 바빌론 유수 이전의 선지자들인데 유대교 제2의 특색이 되었다. 나훔·하박국 두 사람만은 민족신앙을 고취하였으며 국제적 위기에 여호와의 도우심을 예언하였다. 에스겔은 유수 이전부터 유수 때에 걸쳐서 예언하였으며, 아모스 계열에 서면서도 유수중에는 유대인을 격려하였다.


<이사야> 40∼55장에 기록되어 있는 제2이사야의 예언은 위로와 격려의 예언이며 의로운 생활을 하여야만 이 여호와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하였다. 그 속에 <고난을 당하는 종의 노래>라는 것이 있는데, 백성들의 고난을 속죄의 고뇌라고 보는 사상에 의해서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수 이후의 선지자 학개·스가랴·말라기는 유수 이후의 신생 유대의 사회악을 비판하면서도 예루살렘의 부흥을 격려하였다. 전예언서들 가운데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고대의 영웅이야기를 맞춘 것이므로, 이 사사시대의 역사는 각 지파의 사사를 중심으로 한 기록을 편집한 <사사기>에 의거하는 편이 정확하다.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BC 1150년 무렵 실제로 전투를 목격한 사람이 지은 노래로서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사무엘>은 12지파의 정신적인 지도자 사무엘의 인정을 받아 왕이 된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이고, <열왕기>는 솔로몬 이후의 열왕들의 기록이다.


솔로몬시대 이후는 왕조에 서기국(書記局)이 설치되어 전해오는 다윗의 말과 함께 역사적 신빙도가 높다. 이 4편의 역사서는 선지자의 윤리성을 받아들인 역사관에 서 있다. <제서>라고 하는 나머지 책들은 유수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서 성전과 회당 등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나, 유대교의 정경으로 된 것은 기원 후의 일이다.


한국어판성서의 배열은 <율법> <예언서> <제서>의 순서와는 다르다. 이것은 BC 3세기의 헬레니즘세계에서 헤브라이어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순서에 유래한다. 이 번역은 72명의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전해지며 《셉투아긴타(Septuaginta;70인역 성서)》라고 일컬어졌다.


여기에는 뒤에 정경에서 제외된 <구약외경(舊約外經)>과 <위경(僞經)>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회에서는 이 《셉투아긴타》를 토대로 하여 라틴어역 《불가타역성서(Vulgata譯聖書)》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교회의 《구약성서》의 배열을 결정한 것이다.


유수 이후의 유대는 페르시아, 그리스 초기의 유대교보호정책 아래 종교국가가 되어 제사장을 수장으로 하면서 발전하였다. 앞서 말한 <율법> <예언서>의 편찬에 따른 정경의 결정과 여러 종류에 걸친 종교문서의 성립에서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예언서>라고 하는 것 가운데에서도 <요엘> <오바댜> <요나> <스가랴> 등은 문학적 성격이 강하다. <룻기>는 문학적인 이야기이다. <역대 상·하> <에스라> <느헤미야>는 역대기 편자라고 하는 BC 4세기 역사가들의 일련의 편저이다. <역대 상·하>는 유수 이전의 역사를 고쳐서 새로운 역사관으로 재편집한 것인데, 유수시대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역대 왕들의 사적이 하느님에게 충실하였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배반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참회사적(懺悔史的)으로 회고, 반성하고 있다. 또한 유수 이후의 평화주의적·반전주의적(反戰主義的) 입장은 다윗에 대한 평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스라엘 최대의 왕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며, 성전은 <평안과 안정>의 시대의 왕 솔로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역대상 22:6∼10).


에스라·느헤미야는 BC 5세기 중엽에 페르시아에서 귀국한 학자와 총독인데 이 두 사람의 손에 의하여 조직교단으로서의 유대교가 성립하였다(BC 444년). 이 두 사람의 수기(手記)가 <에스라> <느헤미야>에 자료로서 사용되었다.


<욥기> <잠언> <전도서>는 <지혜문학>이라고 한다. 유수 이후의 유대교의 중심은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계급이 되어 민중들로부터는 멀어져 갔다. 이때 일반신도의 지식계급에서 <지혜의 교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 성전과는 별도로 회당을 전국 각지에 세워서 유대교 일반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유대교는 한편에서는 점령자의 보호정책 아래서 성숙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중해세계의 끊임없이 동요하는 국제정세 아래서 유대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국의 점령 아래 있었고 더구나 유대를 사이에 둔 페르시아·이집트·그리스의 대립으로 인한 군대의 왕래 등으로 민중의 생활은 압박당하였고, 신앙을 버리고 세속화한 사람들이 증가하는 한편, 경건한 유대교도들은 고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찌하여 하느님은 의로운 신자들이 고통받도록 내버려두는가 하는 의문이 유대교도들의 마음을 뒤덮고 있었다. <욥기>는 <완전하고 진실한> 욥이 당하는 고뇌를 주제로 한 대화시극(對話詩劇)이다. 이 회의주의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는 말로 시작되는 <전도서>에서 극에 달한다.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성서와는 이질적이라고 생각되는 염세주의·허무주의가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한 한 사람의 <지혜의 교사> 손에 의해 글로 씌어졌다. <잠언>은 올바르고 경건한 자가 행복을 소유하려면, 세상의 지혜와 처세의 길을 알아야만 한다 하여 동서고금의 격언을 모아 지혜·근신·소양 등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잠언>과 <전도서>에 솔로몬의 이름을 붙인 것은,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여겨 사람들의 지혜는 하느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주었다고 하는 신앙에 따른 것이다. <시편>은 <아가(雅歌)> <애가(哀歌)>와 함께 시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유수 이후의 다양한 문학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시편 150편은 페르시아시대에서부터 그리스시대에 이르는 유수 이전의 시와 새로 지은 노래를 합하여 3차례에 걸쳐서 편집되었으며, 그리스시대 후기에 <모세오경>을 모방하여 5부로 정리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다윗이 지었다는 것이 많은데, 이는 다윗을 노래와 음악의 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편>은 성전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로서, 특히 초기에 회당 안에서 부르던 것이 성전예배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많다. 제1차편집(3∼41편)에는 <탄식의 노래>라고 하는 것이 많은데, 이것은 <욥기>로 집약되는 의롭고 경건한 유대교 서민들의 고통을 하느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제2차(42∼89편)·제3차(90∼150편)로 편집이 진행됨에 따라 신뢰·감사의 노래, 선지자적·지혜문학적인 노래의 수가 늘어났다.


이것은 신도들의 신앙의 동요를 타일러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하려고 하는 유대교의 정신사의 흐름과 일치한다. <지혜의 교사>는 율법학자 그룹을 낳았고, 그들에 의해서 율법을 찬양하는 율법주의적인 노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후의 편집자는 맨 앞에 율법주의의 노래를 넣고, 맨 뒤의 5편을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의 시구로 마무리하였다.


<다니엘>은 전형적인 묵시문학이다. 구약의 선지자에게는 종말에 있을 하느님의 심판을 논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내세관과는 결부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사상은 본래 종교사에서는 보기 드문 현세주의이다. 그러나 그리스시대 후기에 셀레우코스왕조의 유대교 박해로 인하여 유대교도들은 평화주의를 버리게 되었고, 동시에 종교사상에도 페르시아적인 종말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이 세상을 악이 지배한다고 보고, 이것이 끝나고 새롭게 하느님이 지배하는 날이 온다고 보는 사상이다. <다니엘>은 《구약성서》 중 최후에 성립된 문서로, BC 165년 경 셀레우코스왕조의 핍박 아래 있던 유대의 구원을 종말관에 기초해 묵시문학 형태로 나타낸 것이다.


묵시란 하느님의 감추어진 계시라는 뜻으로서, 시대를 바빌론 및 페르시아시대에 두고, 의인이며 현자인 다니엘에게 내린 묵시 가운데에 꿈의 해명이라는 형식으로 지배자의 눈을 피하면서 유대교도들의 기대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며 <다니엘>에 처음으로 장차 올 나라의 왕 메시아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 《구약성서》 가운데에서 묵시문학적 표현은 <스가랴> 후반의 가필 부분과 <요엘>의 가필 부분에서 볼 수 있다.

구약 이후 신약에 이르기까지의 <구약외경>과 <위경>에는 많은 묵시문학이 있다.

신약성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신약>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이다.

이러한 뜻에서 《신약성서》란 그리스도(구세주)에 의한 인간의 구원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역사상 인물인 예수의 말이나 행적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구세주 또는 구원이라고 하는 사항에 관한 신앙상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


예수의 언행을 전하는 책은 《신약성서》 가운데에서 맨 앞의 4편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구세주인 예수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천국의 복된 소식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복음서>라고 한다.

이 가운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Synoptic Gospels)>라고 한다.


그 이유는 공통된 자료를 사용하여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전도에서부터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이라고 하는 예수의 일생을 공통된 관점에서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복음서는 전기(傳記)가 아니고, 예수의 언행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교할 목적으로 저술한 것으로서 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료를 다루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자료 <원(原)마가(Urmarkus)>가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의 바탕이 되며, 이것이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도 도입되었다.

또한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공통된 원자료(Quelle;복음서학에서는 약칭 Q)라고 이름붙여진 예수의 어록이 있으며,

이 밖에 각각 특유한 M·L이라 이름붙여진 자료가 있어 4자료설 이라고 한다.


이들 자료가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적 입장에서, <누가복음>에서는 헬레니즘적 해석에 따라 편찬되었다.

또한 위의 4자료에 앞서 예수의 수제자로부터 전해진 구전자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저마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기초한 설화의 양식에서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양식사적(樣式史的) 연구가 20세기에 복음서연구를 한걸음 전진시켰다.


공관복음서가 60∼70년에 저술된 데 반하여,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교가 유럽에도 뿌리를 내리고 교회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한 2세기 초에 저술되었다.

초대교회의 장로였던 요한은 공관복음과 스승인 예수의 수제자 요한의 말을 기초로 하여 예수의 활동을 엮었는데

그 기초에는 하느님의 도성인신(道成人身), 곧 성육신(成肉身)으로서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신앙이 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의 신학을 설파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도행전


<누 가복음>의 지은이가 사도들의 전도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누가는 바울(바울로)과 전도여행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이 책 뒤의 절반은 그가 직접 목격하였거나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울의 사적이 생생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

앞의 절반은 베드로·요한·야고보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교단의 전도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간접적으로 전하여 들은 것에 의한 이 부분에는 <성령의 감화>라고 하는 신앙적 색채가 강하다.


서신(書信)


바울서신


바 울은 소아시아의 다소(타르수스)에서 태어났고,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며, 헬레니즘적인 교양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도로서 바리새파에 속하였으며, 율법을 모독한다고 여겨졌던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는 예수를 환상 중에 만나고 나서 회심(回心)하였고,

그 뒤 소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이방인 전도에 헌신하였으며 3차에 이르는 박해하의 전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지중해세계의 세계종교로 발전시켰다.

그가 전도한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교도에게 보낸 편지인 13통의 서신이 그의 이름으로 《신약성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4대서신이라고 하는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와 그 밖에 <데살로니카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의 서신임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에베소서>와 <데살로니카후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히브리서>는 명확하게 바울과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이 쓴 것이다.

이상의 것 가운데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옥중서신>이라고 한다.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인데, 복음서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바울의 전도 초기인 50년 무렵에 쓴 것이다.

목회서신(牧會書信)


<디 모데전·후서> <디도서>의 3서신은 18세기 이후부터는 <목회서신(Pastoral Epistles)>이라고 하였다.

집회 질서에 관한 훈계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신들은 디모데와 디도라고 하는 바울과 전도를 같이 한 개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서신들이 진정 바울이 보낸 편지인가 하는 데는 많은 의문점이 있으나,

그 밖의 바울의 서신보다 뒤에 씌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동서신(共同書信)


4세기 무렵부터 <공동서신(Catholic Epistoes)>이라고 일컬어졌으며 개개 교회로 보낸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 앞으로 보낸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Ⅰ·Ⅱ·Ⅲ서> <유다서> 등 7통의 서신을 말한다.


이 서신들은 예수의 수제자와 야고보의 형제 유다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신빙성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서신들을 통해서 1세기말부터 2세기에 걸친 초대 그리스도교 교단의 전개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발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이다.

<요한 Ⅰ·Ⅱ·Ⅲ서>는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장로 요한이나, 또는 그와 함께 사도 요한의 형제·제자였던 사람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서신들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나타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 결부되어 있어서,

이후의 그리스도교 중심사상이 이미 이 시대에 움트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묵 시문학은 《구약성서》의 <다니엘> 이후, <구약외경>과 <위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국의 압박 밑에서 비유적이고 환상적인 표현으로 유대교도의 구원의 소망을 담아서 저술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1세기 말부터 로마의 박해를 받았을 때, 이러한 형식을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계시 형태로 <요한계시록>이 저술되었다.

종말의 날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훗날의 그리스도교의 재림신앙의 근거가 되었다.

《신약성서》의 성립


현재 형태의 《신약성서》가 정경으로서 성립된 것은 4세기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이미 2세기 말에는 4편의 복음서의 권위가 확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교부(敎父)들의 저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Canon)》에는 200년 무렵 로마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성서의 목록이 있다.

이 속에는 4복음서, <사도행전> <13통의 바울의 서신> <유다서> <요한 Ⅰ·Ⅱ서> <요한계시록>이 들어 있다.

성서의 사본·번역


《구약성서》는 일부 아람어로 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헤브라이어가 원문이다. 원문은 자음만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헤브라이어가 사어(死語)가 된 뒤에는 그 본문을 전승에 따라 정확히 전하려고 한 마소라(전승)학자들에 의해서 모음기호가 붙여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마소라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9세기의 것이지만, 1947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해(死海)의 서해안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에는 BC 3세기 중엽부터 1세기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로마교회에서 그리스어 번역 《셉투아긴타》를 기본으로 하여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나 405년 헤브라이어 사본에 기초한 개정번역본이 완성되었다.


《신약성서》 각권의 원문은 그리스어이지만 원문은 남아 있지 않다. 전해진 많은 사본을 바탕으로 고대번역본과 교부들의 인용을 참고하면서 원본 복원작업이 오랜 교회역사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일반에게 보급되어 있는 것은 네스틀레알란트판(25판, 1963)·타스카판(1964) 등이다. 그리스어사본은 단편을 포함하여 5000편 이상이 있으며, 파피루스사본·대문자사본·소문자사본으로 나누어진다.


파피루스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125년의 <라일런스파피루스 457>이다. 파피루스사본의 대부분은 단편이지만 <체스터 비티 파피리> <보드머 파피리> 등 장문(長文)으로 된 것도 있다. 대문자사본은 4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가운데 중요한 <시나이사본> <바티칸사본> <에프라임사본> <베자사본> 등이 있다.


《신약성서》는 4세기 말 그리스어사본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구약과 합해져서 <불가타>라고 일컬어졌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각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M. 루터가 구약·신약의 원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이래, 프로테스탄트 각국에서는 자국어로 번역하여 신도들이 직접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맨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성서는 1790년대에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생활에 필요한 일부분을 번역한 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본격적인 성서의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개신교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188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J. 로스(羅約翰) 목사와 평신도 이응찬(李應贊)·백홍준(白鴻俊) 등이 <누가복음>을 번역, 간행하였다. 1883년 이수정(李樹廷)이 한문으로 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와서 토를 달아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간행하였으며, 1884년 미국 선교사가 입국할 때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가지고 들어왔다. 1887년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900년 5월 《신약성서》, 1911년에는 《구약성서》가 완역되어 《성경전서》로 합본, 간행되었다.


천주교에서는 1910년에 4복음서를 《셩 경(四史聖經)》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라틴어성서를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었다. 1922년에는 <사도행전>이 《종도행전(宗徒行傳)》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고, 1941년에 나머지 부분이 모두 번역되었다. 그 뒤 1959∼1963년 헤브라이어 《구약성서》가 13권으로 나뉘어 번역되어 1971년까지 천주교의 공인역본으로 사용되었다.


번역된 성서의 개역과정은 번역완료 직후부터 계속 이루어져 개신교측 성서공회에서는 1912년 개역위원회를 조직하여 구약의 번역부터 개정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1937년에 《개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이 번역판은 1956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수정을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광복 후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서 보급의 필요성이 대두하여 1960년 9월부터 새 번역 작업을 시작, 1967년 12월 《새 번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성서의 자국어 번역 및 신구교 공동번역사업 장려정책이 결정되자 한국에서도 천주교·개신교 합동으로 1968년에 신·구약성서 공동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1971년 《공동번역신약성서》, 1978년에는 신약·구약 및 외경의 번역까지 포함된 《공동번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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