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신발 


글 / 유 병성

 

본 소고는 신발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를 살피고자 함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발과 관련되어서 잘못 이해되거나 혹은 애매하게 번역된 몇 구절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다른 성경의 문화적 배경속에서는 언제 신발을 벗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신발을 신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현대히브리어의 신발이라는 단어도 성경에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신었던 신발을 가르키는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 마사다에서 발굴된 1세기때의 가죽 샌달>

 

현대히브리어로 신발을 ‘나알라임'이라고 합니다. 이는 문법적으로 쌍수형태입니다.

신체와 관련해서 쌍을 이루는 것을 나타낼땐 이와같은 쌍수를 사용하는데,(눈 : 아이나임 , 귀 : 오즈나임 등등)

신발을 신체의 일부로 여길만큼 필수적인 물건이기에 이렇게 쌍수로 표현한듯합니다.

성경에는 쌍수형태뿐만 아니라 ‘나알’이라는 단수형태도 나타나는데, 총 20여곳에 신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답니다.

 

 

 

1. 신발과 관련된 잘 못된 이해와 번역

 

(1) 광야 40년동안 신발이 헤어지지 않았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8:4에 의하면, 발이 부릍지 않았다고만 되어있습니다. 이는 신발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는 다르죠.

오히려 더 큰 기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광야는 신발없이는 걸을수가 없는 곳입니다.

낮에는 뜨거워서라도 신발이 반드시 있어야하고,

날카로운 돌뿌리, 날이선 작은 돌들의 모서리등도 맨발로는 걸을수 없게 만들죠,

, 광야에는 온갖 종류의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기에 이 나무들의 가지들과 가시때문에도 반드시 신발이 있어야만

통과할수 있는 곳이 광야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신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실 광야를 통과하면서는 발이 상처를 입거나 부르틀수밖에 없답니다.

현대의 좋은 신발들도 그러할진대, 고대의 신발들은 더더욱 발을 광야로 부터 완벽하게 지켜줄수는 없는 것이죠.

이런 광야를 그토록 오랫동안 여행했어도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히 신발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큰 기적임이 틀림없습니다.

 

(2) 겔 16: 10  가죽신

한글 성경 겔 16:10 에는 아주 특별하게도 ‘가죽신’이 등장합니다.

실제 히브리어 본문에는 가죽신이라는 단어는 없고, ‘신을 신기다’라는 동사와 함께 ‘타하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타하쉬는 돌핀, 돌고래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성경에 총8번 나옵니다.

그중 민수기 4장에 6번이나 나오는데 한글성경에서는 모두 ‘해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창22:24에는 사람 이름으로 한번 나오는데 ‘다하스’라고 음역되어 있답니다.

타하쉬는 좋은 가죽을 주는 동물이기에, 위 본문을 단순히 ‘가죽신’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좋은 가죽으로(혹은 해달 가죽으로) 신을 신기고’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의 뜻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3) 사 9: 5   갑옷 

이 구절도 사실은 신발과 관련된 구절이랍니다.

본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사9:4입니다.  ‘갑옷’에 해당하는 단어에 ‘세온' 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단 한번 사용되었는데, 사실은 앗수르 군인들의 군화를 가르키는 단어랍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전투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신발이죠.

본 구절을 히브리어에 따라 직역을 하자면,

‘군화들이 시끄럽게 짖밟고, 겉옷이 피속에서 흔들릴지라도, 불의 땔감으로 태울것이다’

현재 한글성경의 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의 뜻과는 거리가 있는듯 합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신발을 벗을 때

 

예나 지금이나 일상생활중에서는 당연히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데, 성경에는 특별히 신발을 벗어야 될때가 있습니다.

이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다음의 몇가지 경우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1) 거룩한 곳에 설때

- 출 3:5 모세가 떨기나무앞에서 하나님을 만날때

- 수 5:15 여호수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날때    

 

(2) 큰 슬픔을 표현할때

- 삼하15:30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피신할때, 감람산을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면서 올라갔습니다.

- 이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달아날때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황급하게 도망가서 맨발이 된것이 아니라,

   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맨발을 한 것입니다.

      - 감람산을 넘어 광야로 접어들면, 맨발로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아니 감람산조차도 맨발로 올라가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죠…

         혹, 왕이 신발을 못신었다면, 신하들이라도 챙겨와서 반드시 신발을 신게 했을 것입니다.

 

(3) 전쟁에서 포로가 될때

- 사20:2~3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왕 사르곤에게 패배해서 사로잡혀갈 것을 예표로 보여주기 위해

   벗은몸과 맨발로 3년을 다녔습니다.

- 산헤립의 니느웨 궁전에 라기스를 점령하는 장면을 묘사해놓은 부조에도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맨발입니다.

 - 맨발은 사로잡힌자가 당하는 수치중의 하나입니다. 맨발로는 도망갈수가 없기 때문이죠.

 

 

성경에서는 이와같이 ‘신발’이 여러가지 메세지와 상황과 연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위에서 살펴본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신발을 사용했습니다.

2:6, 8:6에 신 한 켤레의 값으로 궁핍한 자를 파는 것에 대해 외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이 모두 북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메세지속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여로보암2세의 치하에서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흥했지만, 저울을 속이고, 부당한 가격, 불의한

거래로 의인과 궁핍한 자를 파는 극도로 타락했음이 선지자의 외침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다시피한 오늘날,

우리의 귓전에도 선지자 아모스의 뜨거운 외침이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암2:6) “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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