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기획 로니 美 예비역 중장, 한국 오자마자 하모니카로 '아리랑' 연주

- 앞 못 보지만… 의사 진단받고 방한
흥남철수 때 끝까지 남아 지휘, 한·미1군단 초대 사령관 지내
"다시 찾아온 한국, 원더풀! 한국 위해 싸운 일 자랑스러워"

 

앞을 볼 수 없는 노병(老兵)은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리자 주머니에 넣어둔 하모니카를 만져봤다.

휠체어에 탄 채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셔츠 주머니 속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아리랑'을 연주했다.

"1950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함께 일했던 한국군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뒤로 아리랑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6·25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의 참모로 인천상륙작전, 흥남철수작전 등에 직접 참여했던 에드워드 로니(96) 미 예비역 중장이 23일 한국을 찾았다. 국가보훈처가 실시하고 있는 '참전 용사 재(再)방한 프로그램'의 초청을 받은 그는 역대 이 프로그램 대상자 중 최고령이다.


	하모니카 손에 들고… 6·25 참전 용사인 에드워드 로니(96·가운데) 미 예비역 중장이 23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이동할 때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고 시력도 거의 잃었지만 63년 전 배운 '아리랑'을 하모니카로 음정 한 번 틀리지 않고 연주했다
하모니카 손에 들고… 6·25 참전 용사인 에드워드 로니(96·가운데) 미 예비역 중장이 23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이동할 때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고 시력도 거의 잃었지만 63년 전 배운 '아리랑'을 하모니카로 음정 한 번 틀리지 않고 연주했다. /이명원 기자

국가보훈처는 올해 미국 참전군인과 가족 75명, 교포 참전용사와 가족 48명, 6·25에 참전했던 20개국 대표 38명 등 총 161명을 한국에 초청했다. 방한단은 25일 6·25 63주년 기념행사, 26일 UN참전용사 감사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20대 한국 대학생과 대화의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현재 워싱턴의 군 은퇴자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로니 장군은 고령이라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안경을 쓰긴 하지만 시력이 떨어져 앞을 거의 못 본다. 가족들은 비행기로 14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은 너무 힘들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로니 장군은 "죽기 전에 한국에 꼭 다시 가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함께 한국에 온 그의 아들은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로니 장군은 1992년 한국을 다녀간 후 이번이 21년 만의 방문이다. 공병 출신인 그는 "6·25 기간 중에 한강의 첫 다리를 내가 세웠는데, 마지막으로 왔을 때(1992년) 22개나 된다고 해서 놀랐다"며 "지금은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인생에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외국 여행을 한국으로 가게 돼 감회가 새롭다. 앞은 안 보이지만 몸으로 다시 한국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1950년 중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그는 1969~1971년 다시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한·미 최초 연합군인 한·미 1군단 초대 사령관을 지냈다. 닉슨 대통령부터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까지 5대에 걸쳐 미·소 군축 협상을 이끌었다.

로니 장군은 방한 소감을 묻자 "원더풀! 나를 비롯한 참전 군인들을 잊지 않고 초대해줘서 고마울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최근 한국 젊은이들에게 반미(反美) 분위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한·미는 피로 맺어진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함께 나가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을 지킬 것"이라며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한국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만나고 싶은 한국인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한·미 1군단 부사령관을 지낸 고(故) 이재전 장군의 부인, 1950~52년까지 내 부관으로 일했던 한국군 대위, 제게 명예학위를 줬던 이화여대 총장님까지 모두 그립습니다."

고령 탓에 전우들의 이름은 희미해졌지만 인천상륙작전부터 흥남철수작전까지 날짜까지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던 로니 장군은 6·25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잠시 말을 멈췄다.

"전쟁을 이겨낸 한국인, 한국 군인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될 사람들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한국을 돕기 위해 왔지만 지금은 한국인과 함께 근무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세 곳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상륙작전을 했던 인천 앞바다, 한·미 1군단 사령부가 있었던 의정부, 그리고 전쟁기념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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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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