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설교를 듣고 감동받을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설교가 성경의 진리를 밝히고, 죄인을 구원하는데 가장 유용하고 결정적인 도구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배 안에서의 설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설교의 기능과 역할이 그렇다는데 저도 확신하고, 동의합니다. 제가 회심하는데 설교의 영향이 가장 컸음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설교를 그렇게 마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설교자들은 회중이 설교를 그렇게 대하게 하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듣고 인상평을 나누길 좋아합니다. 그들은 설교를 듣고나서 지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오늘은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다.” 그리고 다른 날은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했다"며 진한 아쉬움을 나눕니다. 기뻐한 날은 “역시 우리 목사님 설교는 최고”라며 손가락을 추켜올리고, 기뻐하지 못한 날은 “왜 설교를 그렇게밖에 못했”는지 설교자를 탓합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말한 의도는 설교자를 탓하려는 것 자체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혜받고, 삶이 변화 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입니다. 어쨌든 설교를 평가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오늘 우리에게 편만한 QT 방식과 같이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는 설교에서 감동과 메시지를 얻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오늘 설교가 내 마음에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았다면, 설교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무런 메시지도 얻지 못합니다. 반대로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면 내 마음에 깊게 박히는 메시지도 발견합니다.

 

설교를 통해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을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과 깨달음을 느끼려는 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거기서 멈춘다면 설교를 올바르게 마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통해 최우선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감동과 깨달음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를 자극하고,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설교는 대중의 마음을 읽고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줘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지를 얻는 대중 연설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감추어진 진리를 캐내어 회중 앞에 높이 들어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회중들은 그것을 바라봄으로 자신의 수치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꼭 같지는 않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설교는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높이 든 장대에 달린 놋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설교가 그렇다면, 설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마땅합니다.

 

물론 회중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자들의 자세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달하려하기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진리를 분명히 밝히려하기보다 회중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내용에 대한 그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회중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를 회개하게 하는데 무게의 중심을 두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는 교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쫓겨나지 않고 살아남을 수 한국 교회의 서글픈 풍토를 반영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이는 설교자로서 직무유기를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설교를 올바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에서 바른 설교를 듣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바른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교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 전체가, 교회마다 다방면에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설교만 가지고 왈가왈부 할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당장, 빠르게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설교 뿐입니다. 그리고 설교보다 변화의 폭을 크고 빠르게 체감하고, 영향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설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상황에 안타까움이 크지만, 아무튼 그 설교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했다면, 우리는 평가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설교를 마주할 때 '감동 포인트'를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반응은 그 설교를 통해 드러난, 한 주 간 저지른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와 동시에 곧장 그리스도께 달려가야 합니다. 비록 그 말씀에 동의하기 힘들고 마음이 거부하더라도 그 마음을 거두고, 즉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 밝히 드러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는 더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 결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비로소 은혜의 단비가 우리 위에 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단비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만끽하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과 인생을 어떻게 살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긋났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바로잡힐 것입니다. 우리는 그제야 서로 설교에 대한 인상평이 아니라, 진정한 은혜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될 것입니다.

 

(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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