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은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이다.

에덴동산은 성막의 모형이자 성경 전체를 뚫는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열매이다. 금지의 계명은 계명을 주신 하나님과 계명을 지켜야 하는 사람의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성전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단 한 번만 들어가는 거룩한 장소이고, 성소는 순번을 따라 제사장이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들어간다. 그에 비해 성전 뜰은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흠있는 사람이나 부정한 사람, 이방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개념은 솔로몬의 성전에도 계속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성전이시다. 또한 하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의 성막이 보이면서 마지막에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임을 드러낸다.(계 21:22)

성전은 하나님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드러낸다.

동시에 죄인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회막)이다. 성전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들을 만남으로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영접하신다. 그러한 만남은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가른 죄를 없이한다. 그러므로 성전의 핵심은 죄사함이며, 죄사함은 제물을 드리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성전이 가진 제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20)고 되묻는다. 요한은 즉각적으로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요 2:21)이라고 선언한다.

성전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는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하나님과 족장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등을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제 이곳에서 성막 또는 성전이 가진 역사적 의미들을 파악하고, 광야 시대 이스라엘이 지은 성막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성전 상징

종교 없는 민족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들은 신을 섬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곧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수천 년 전에도 했다. 그러나 종교가 사라진 시대는 단 한 번도 없다. 종교는 언제나 인간과 함께 했다. 인간이 신을 섬길 때는 언제나 신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 인간들은 특정한 장소에서 신을 만났다. 거대한 반석이나 나무, 강, 특이하게 생긴 구조물들이 그렇다.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신을 잘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신과 만날 수 있는 신전을 지었다. 불교가 처음 신라에 들어왔을 때 깊은 깨달음이나 꿈을 통해 부처를 만났던 곳에 절이 세워진다. 이슬람과 기독교 등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신의 현시(顯示)가 일어난 곳은 종교적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자신에게 나타난 신의 집, 즉 신전(神殿)을 지었다.

인간은 창조될 때 종교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즉 신과의 교제를 갖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갖지 못한다. 부와 명예, 관계와 그 어떤 것으로 채우지 못한 깊은 갈망이 인간 안에 내재한다.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의 조상들은 언제나 에덴동산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에덴동산에 대한 기억은 생득적이라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왜곡되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자신이 만든 새로운 에덴동산과 신을 경배한다.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하며, 종교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 속에 담긴 종교성이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보라.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와 인도도 마찬가지다.

인간들은 신들을 만나기 위해 신전을 지었다. 신전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사제를 필요로 하고, 사제들은 신들의 ‘말’을 전한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성막과 성전,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러한 임무를 맡고 있다. 신전은 섬기는 신에 합당하게 지어져야 한다. 마르둑 신을 섬기는 신전과 다곤 신을 섬기는 신전은 다르다. 제의법과 사제도 다르다. 복장과 언어, 제사하는 방법도 다르다. 상당히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신전은 신을 섬기는 방식에 맞게 움직이며, 그 신을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신전은 그 신이 창조한 세계의 중심이다. 신전은 세계의 배꼽인 것이다. 신전은 가장 거룩한 곳이고, 신이 가장 강하게 임하는 곳이다. 신전을 중심으로 세상은 확장된다. 이러한 개념은 이방종교나 이스라엘의 성전이나 동일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방민족은 많은 신을 섬기지만 이스라엘은 유일신만을 섬긴다.

이방신과 여호와의 극명한 차이는 계시의 특별성이다. 이방신들도 계시한다. 물론 엉터리겠지만. 이방신들의 계시는 모호하고, 탐욕적이다. 제물을 바침으로 신의 마음을 달래기도하고 바꿀 수도 있다. 많은 재물은 신을 기분 좋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하고 제사도 드려야 한다. 제사보다 순종이 먼저다. 이방신은 자기만족적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철저히 계시적이다. 또한 이방신들은 극히 지엽적이고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다.

성전은 중심이기에 그곳은 하나님의 보좌이다. 에덴동산이 성전이 이유가 바로 그곳으로부터 강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에스겔 성전에서도 동일하게 강이 흘러나와 세상을 치유한다. 이러한 개념은 다시 요한계시록에서 재현된다.


2. 성막의 기본 구조

이제 성막의 기본 구조를 알아보자. 성막은 성막의 뜰과 성막으로 구분된다.

성막은 다시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된다. 성막을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입구도 동쪽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동쪽은 앞쪽이다. 오른쪽은 남편이며, 왼쪽은

북쪽이다. 서쪽은 뒤편이며 망각의 장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동쪽은 죽음의 땅이며, 서쪽은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동쪽은 저주받은

곳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장소이다.[이 부분에서 대해서는 필자의 <성경의 동서남북>을 참고 바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막뜰의 앞 자리에는 번제단이 자리한다.

번제단 뒤로는 물두멍이 있고, 그 뒤로 성막이 자리한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지성소는 촛대, 떡상, 향단이 있다.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고, 지성소는 법궤가 있다.

지성소는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들어간다.

그 외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성막의 외곽은 천으로 둘러 싸여있고, 성막의 천장 역시 천이다. 천장 천은 네 종류이다.

가장 안쪽은 케루빔을 수놓은 베실 10장이 겹쳐 있다. 두 번째는 염소털로 짠 천이 11장 겹쳐 있다.

숫양 가죽이 있고, 가장 바깥쪽은 해달 가죽이다.


지성소는 정방형이다. 10규빗 × 10규빗이다. 1규빗을 45cm로 계산하면 4.5m의 정사각형이다.

성소는 너비는 10규빗이고 길이는 20규빗(9m)이다.

지성소와 성소를 합한 성막의 총 길이는 너비 4.5m 길이 13.5m이다.

성막 외곽벽은 직사각형이다. 너비는 50규빗(22.5m)이고, 길이는 100규빗(45m)이다.

동쪽에 자리한 문은 20규빗(9m)로 성소의 길이와 동일하다. 성막문은 동쪽에 오직 하나이다.

지성소의 북쪽 길이는 성막 울타리 외곽의 정확의 1/10이다. 또한 성막 울타리 동과 서는 지성소의 5배이다.

성막뜰에 있는 기구들
성막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자리한다.

번제단은 정방향으로 가로 세로 모두 5규빗(2.25m)이다.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북쪽에 진설병이 있고, 남쪽(왼쪽)으로 촛대가 있다.

앞에는 향단이 자리한다. 떡은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양식을 뜻한다.

열두 지파를 뜻하는 열두 개의 떡이 매일 진열된다.

촛대는 진리의 말씀을 뜻하며, 일곱개의 가지를 가지고 있다.

향은 기도를 의미한다.

지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
지성소에는 일 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들어간다.

들어갈 때는 향을 가지고 들어가 향으로 지성소를 어둡게 한 다음 피를 뿌려 정결케 한다.

법궤는 뚜껑에 케루빔이 서로 마주보며 있고, 날개 아래를 시은소가 말한다.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만나 항하리, 십계명의 두 돌판,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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