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의견에 대해. 
1. 햇빛이 보이지 않는 것은 햇빛이 비추지 않기 때문이 아니요 구름이 가리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죄라는 구름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2. 눈이 나빠 글씨가 안 보이는 것은 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눈이 병들어 그렇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안경을 쓰면 보인다. 

◈ "왜 하나님은 안 나타나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구원하길 원하신다면 구원하기 위해서 직접 나타나면 다들 믿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안 나타나시는 것은 안 계시기 때문이 아니냐?"하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직접 구원하기 위해서 나타나시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기에 심판이 이루어져야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고로 구원하기 위해 나타나셨다가 다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못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안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길 기뻐하신다고 하셨다. 

◈ "하나님은 불공평합니다."라는 의견에 대해. 
"예수는 불공평하다. 죄 많이 지은 사람도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죄를 조금 지은 사람도 예수 믿으면 천당엘 가니 예수처럼 불공평한 게 어디 있냐?" 
"집에 세탁기 있지요? 그 세탁기에 아주 더러운 빨래를 넣으면 깨끗해진다. 조금 더러운 빨래를 넣어도 깨끗해진다. 그 세탁기 불공평한 것이냐?

  예수는 영혼의 세탁기와 같다. 어떤 죄인이든지 그 안에 들어가면 그의 죄가 흰눈보다 더 희게 씻김을 받는 것이다." 

◈ "갓 태어난 아이를 죄인 취급하는 이유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죄 된 존재인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기라도 역시 죄된 존재이다. 비록 악에 물들지 않았어도 '이기적인' 존재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어린아이는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범죄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선악과는 왜 만들어 놓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었다면 인간이 그것을 따먹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인간이 타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인간에게 불행도 오지 않았을 텐데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을 타락시켰는냐? 


어떤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눈 끝에 결혼을 하기로 하고 약혼반지를 주고받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약혼반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다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미 깨진 것이다. 또 상대방의 말을 사사건건 거스르며 그 반대로만 행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사랑의 약정(約定)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사랑의 관계에는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저절로 얽매이는 선이 있고 규칙이 생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배반한 인간은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지 않았다 해도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아니라 유혹을 받아 죄를 짓는 인간의 마음이다. 


만약 어떤 부모가 절대로 불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맘대로만 움직여주기를 원하는 자식을 원한다면 자녀를 나을 것이 아니라 로보트를 만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적인 관계이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보트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사랑하라고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지, 죄를 짓고 고달픈 인생을 살라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아니다. 자녀들을 학대하고 자녀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가장(家長)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그 에게 자녀를 주실 때는 사랑하고 가르쳐서 훌륭한 자녀로 키우라고 주신 것이지, 학대하고 때리고 죽이라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동반자살한 가장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자신의 죄된 마음으로는 자녀를 자녀답게 기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자녀는 왜 주어서 죽이게 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하자. 만약 죽은 그가 말을 할 수 있어서 "누가 거기다가 농약을 두어서 그걸 보고 먹고 죽었으니 내가 자살한 것은 농약을 거기 놓아 둔 사람의 잘못이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게 뻔한 일이다. 사람을 자동차로 치어 다치게 한 사람이 "왜, 그 곳에서 있어서 내 차로 당신을 부딪히게 했느냐?"라고 한다면 만인에게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식으로 인간이 범한 죄를 하나님에게 전가(轉嫁)시키려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나의 중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스르고 거역한 죄를 회개하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사하여 주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다. 

◈ "죄를 줄여 나가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늘 열 개 죄를 짓던 사람이 내일 다섯 가지 죄를 지으면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죄는 열 다섯 개로 늘었다. 착한 일을 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부산가야 하는 사람이 광주행 버스에서 착한 일을 한다고 차가 부산으로 가지 않는다. 갈아타야 한다. 지옥행에서 착한 일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갈아타야 한다. 

◈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 다른 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도덕적인, 윤리적인 삶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좋은 가르침이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다. 죽어 가는 환자에게 좋은 말을

    해 준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수술해서 살려내야 한다. 사람은 죄 때문에 죽어있다. 죄를 없애야 살려낼 수 있다. 기독교의 복음은 죄를 도려내서

    살려내는 수술이다. 즉 죄사함은 예수에게만 있다. 
2.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θ(신)에게 이르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먼저 찾아오신 것이다. 

◈ "구원받으려면 노력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정성을 드리거나 노력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 믿음으로 받는다.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 "예수 믿는 사람 때문에 못 믿겠다."라는 의견에 대해. 
1.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다. 
2. 생선 가게에는 썩은 생선과 싱싱한 생선이 다 있다. 당신은 가게에 가서 썩은 생선을 구하는가? 싱싱한 생선을 구하지 않는가? 싱싱한 교인과 교회가

     많이 있다. 

◈ "나는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라는 의견에 대해. 
알아야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천국 간다. 고속버스 타면 부산가는 것을 알지만 타지 않으면 못 가듯 믿어야 간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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