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15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라”고 하면 전도자와 선교사들 그리고 전도에 특별한 열정과 은사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길에서 팻말을 들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을 본 탓인지 성격이 좀 외향적이고 말도 잘하면서 대중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성격이 내성적이며 조용한 사람은 전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수원의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마을의 어느 우물가에서 불쌍한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여러 번 결혼을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속되지 못하고 계속 실패하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상처로 가득했고 어느 누구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행복한 삶을 포기한 상태였으나 예수님을 만나면서 삶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늘 목이 마르고 양심은 늘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녀에게 평생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고 양심을 짓누르는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자 어둔 마음에 빛이 들어왔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잘못된 신앙과 부끄러운 생활이 변하여 새 삶이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율법 선생이며 전형적인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꼭 기도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선전에 바치고 매일 성경을 읽고 율법을 준수하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천국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보다 더 종교적인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그에게는 남모르는 깊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부족함 없는 삶과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면 가장 위대하고 경건한 자의 모습이지만 그의 양심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밤마다 고민했습니다.

“정말 나사렛 예수라는 청년이 메시아일까? 그는 목수 요셉의 아들일 뿐인데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그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는 못 갈 텐데…!”

끊임없는 의심이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심정으로 잠이 들면 그는 짓눌리는 듯한 꿈을 꾸며 뒤척이다 잠을 깨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고개 속여 인사하며 “예수여,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님이 틀림없습니다. 가르치시는 것을 보니 굉장하십니다!”

그는 자기가 최고의 예의를 표하면서 인사를 하면 그에 상응한 답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유대인의 유명한 율법 선생이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라는 충격적인 도전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니고데모에게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셨고 니고데모는 참된 믿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복음을 듣고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빌립 집사는 성경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개교회에서 선택된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지금 한 사람이 복음을 꼭 들어야 하는데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라. 내가 인도하는 곳으로 가서 만나는 그 외국인에게도 전도해라.”

빌립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달려갔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순례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관원이었습니다.

빌립은 그를 전도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빌립의 가르침에 그는 주님을 영접하였고 아프리카 지역의 첫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성경에 익숙했으며 복음의 핵심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빌립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서 어디로 이끌어 가야할 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빌립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도자였습니다.

찰스 스펄전이나 빌리 그래함은 대중을 상대로 하여 전도를 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전도합니다.

길에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복음을 설명하는 노방전도, 집을 방문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방문전도,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전도하는 사람, 방송전도, TV전도, 인터넷전도, 그 외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복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불변하지만 전도의 방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1. 전도해야 하는 이유

 

“꼭 전도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가끔 듣게 됩니다.

성경에 보니 천국 갈사람, 지옥 갈사람이 미리 다 정해져 있다는데 만일 내가 천국에 가도록 예정되어 있으면 전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예정이 안 된 사람은 전도를 받으나마나 지옥에 갈 테니 그런 사람에게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등등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예정이 되었는지, 예정이 안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정되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판단하라고 구분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은 것에 있어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정된 사람만 구분해서 전도할까 말까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정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 13:48을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어떤 정해진 특정한 사람만 믿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우리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믿으려고 준비된 사람은 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영생을 얻기로 작정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면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결단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반대하거나 혹은 받아들이는 것은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좋은 것을 선물로 주고자 해도 받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구원의 선물도 받는 사람의 몫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전도하여 복음을 들으면 죄를 용서받고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잔인한 살인자 중에도 복음을 듣고 변화하여 남의 생명을 살리는 인생으로 바뀌지 않겠습니까!

자신밖에 몰라서 남의 것을 빼앗던 자가 복음으로 변화되어 자시 것을 나눠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양심의 자유를 얻어서 묵음 후에 있을 심판이 두렵지 않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무엇보다 전도해야 할 이유에는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엄하고 절실한 명령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군대생활을 했던 사람은 상관의 명령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아무리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라도 상관이 명령하면 이유없이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도 영적 전쟁터에 나선 사람입니다.

빛과 어두움의 싸움이요 생명과 죽음이라는 두 갈래에 선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깨지고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이라면 어떤 악이라도 범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에서 십자가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개인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빛과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전도인 것입니다.

전도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전도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불순종입니다.

군대에 가서 직속상관의 명령을 어기면 기합을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서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이 성숙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려고 하니 대답할 말도 준비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합니다.

말재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전도는 논리나 토론 이상의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전도한 일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신앙이 성숙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해 보지 않고 신앙이 잘 자랐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 하다보면 자신의 믿음이 성장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수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더 많이 준비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학생 숫자와 상관없이 가르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또 학생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생보다 선생이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기 마련입니다.

목사들도 설교자로서 성경을 일고 묵상하며 연구하는 것을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려면 많이 준비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더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전도하려면 긴장하여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kg고 훈련을 받기도 해야 하므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주일예배에 잘 참석해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게으르면 신앙의 현상유지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복음에 대해서 묻는 사람을 위하여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15에서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를 쓸 당시의 상황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많은 고난을 받을 때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일부 사람들이 고난 중에서도 기쁘게 사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기쁩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대답할 말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성격이 원래 낙천적이예요!”라거나, “될 대로 되라는 거죠.”라는 식의 답변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회에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전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전도를 소홀히 하면서 교회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선교사나 사역자들에게만 전도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자기 혼자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했을 때 쇠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고 예수 믿자고 하면 마지못해 한두 번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 때뿐입니다.

갈등하는 교회들을 보면 대개 전도하는 것보다 직분이나 세력 다툼 때문입니다.

전도에 힘쓰다 보면 다란 갈등에 엉킬 겨를이 없습니다.

분제가 많은 교회들이 새 힘을 찾으려면 자시 복음에 대한 여정을 회복하고 성도들이 전도에 새로운 열심을 되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도를 하면 자신에게 기쁨이 생겨납니다.

예전 어느 집회에서 그곳의 참석자들이 한 분씩 돌아가면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중에는 병들어 고생하다가 믿은 분도 계셨습니다.

그 중 한 평범한 회사원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과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인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해 특별한 염려가 없었지만 그 사람의 삶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를 통해 교회에 나가 가만히 들어보니 목사님의 설교가 그럴 듯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렇게 기쁘게 살고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병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실패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모든 것이 순탄할 때 예수님을 믿으라고 간증했던 것이 참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불안이 평안으로 변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허무감이 변하여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몰래 고민하여 한숨짓던 날들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할 이유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 동안 할 일이 생긴 것에 대한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2. 전도대상 찾기

 

가족은 가장 어렵고 절실하며 평생 포기할 수 없는 사랑하는 전도대상자입니다.

늘 함께 지내던 가족에게 그리스도인의 밝고 긍정적이며 좋은 면들을 많이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반면에 전도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나의 변화에 대해서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가족들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그 사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렵게 생각되지만 가장 쉬운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왜 예수를 안 믿을까요?

일상에서의 하나하나가 전도의 길을 열어 놓을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습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직장 동료는 가족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며 전도의 중요한 대상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와 행동, 생활을 직장 동료가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경은 읽지 않지만 우리를 통해서 기독교가 뭔지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이며 항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부용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군인 같은 몸짓과 노래와 행동을 보면서 북한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나 군인이나 기계처럼 훈련받은 것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떤지 또 교회에서 무얼 배우는지 짐작합니다.

그들에게 주님과 교회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전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잘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 끝나고 밖에 나가서 차를 운전하면서 직장에서 학교에서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진짜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중하고 진실하고 밝은 생활 속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참된 신앙의 힘과 의미를 알게 됩니다.

 

3. 개인 전도

 

개인 전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500개쯤 되는 물병에 바가지로 물을 확 끼얹습니다.

그러면 모든 병의 겉면에 물이 묻을 수도 있어도 물이 병 속으로 들어가 꽉 차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개인전도는 500개의 물병 가운데서 하나를 꺼내 그 병에 물을 붙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물이 안 묻지만 이 병 하나는 꽉 채울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효과적인 개인전도입니다.

일생에 한두 명이라도 끈기 있게 전도하여 그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시게만 하면 천국 백성으로 인도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불신자들이 있는 한 우리는 모두 삶의 형장으로 파송된 선교사와 같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잘 담겨 있는 설교 테입이나 CD, 신앙 도서를 선물해 보십시오.

생일이나 기념일을 기억하여 선물한다면 더 효과적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말미암는다는 성경 말씀처럼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건강한 교회와 집회에 초청하십시오.

가정으로 초청하여 그리스도인이 생활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복음에 관심을 갖게 하십시오.

아프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심방을 통해 진실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간절히 기도해 주십시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건강한 사람도 아프면 누군가가 위로해 주기를 원합니다.

위로할 말이 없으면 그의 말을 들어주거나 조용히 곁에 있어주면서 손을 꼭 잡아주십시오.

진실이 담긴 행동은 돌 같은 마음도 녹입니다.

우리의 유창한 말이나 논리적인 설득으로 예수님을 믿게 할 수도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의 더 설득력 있는 논리에 질 수도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수양했던 사도 바울도 한 사람이 죄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4~5을 보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려면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얼마 동안 기도했습니까?

죠지 뮬러는 평생 동안 다섯 명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죠지 뮬러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었지만 남은 한 명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뮬러의 장례식 후 남은 친구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뮬러가 죽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말라 하는 망을 물가로 이끌어 올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회개와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4. 다양한 전도 대상자를 만날 때

 

첫째, 복음에 대한 무관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 이야기만 하면 고개를 돌릴 정도로 관심이 없는 사람, 귀와 마음을 꼭 닫아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 목이 마르지 않은 것입니다.

목이 마르지 않은데 물을 주면 마시지 않습니다. 우선 그의 목이 타게 하십시오.

목이 타게 하려면 소금을 먹이면 됩니다.

즉 소금과 빛처럼 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도전 받고 복음에 관심을 갖게 하십시오.

불신자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볼 때 이런 질문이 나오게 하십니다.

“뭐가 그렇게 기쁘고 신나죠? 나라가 이 모양이고 가정도 이 모양인데!”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것이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세대에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부족해도 삶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소금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목이 탈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찾습니다. 그때 생수의 복음이 전해지면 훨씬 쉽게 받아들입니다.

 

둘째, 복음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착하게 살면 되는 거지, 모두 다 쓸데없는 소리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도 별로 나을 게 없더라.”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착한 행위, 종교 예식, 주일 성수를 하는 등 인간의 노력으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우리 주면에 아주 많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고 사기 치거나 강도짓도 한 적이 없으니 자신은 괜찮다난 식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도 문제는 마음 속에 버릴 수 없는 깊은 죄책감과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평강의 주인이시며 진정한 영혼의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평안을 모르며 그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몸은 쉴 수 있어도 여전히 영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이며 의식적인 종교와 생명의 복음을 혼돈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에게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을 가르치십시오.

 

셋째,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런 변화도 없고 미지근한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교회는 왔다갔다 하면서도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은 죄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회개가 함께 믿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에 대해서 냉철하게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과정이 빠져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게 하면 끈의 매듭처럼 결단이 분명해집니다. 성령이 오시면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삼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넷째, 신앙에 의심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믿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릴 때는 바로 죽어도 천국 갈 것 같다가 주중에는 전혀 확신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신앙이 견고한 것 같은데 문제에 휩싸이다 보면 또 의심이 밀려옵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교회를 나설 때는 자신도 좋은 그리스도인처럼 느껴지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의심과 혼돈에 빠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느낌이나 상태에 따라서 자꾸 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분이 고조되고 있을 때는 기뻐하다가 조금 실망하거나 실수하면 금방 불신자처럼 변합니다.

이런 때는 변함없는 성경말씀이 우리의 구원을 확인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영수증인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왜 자꾸 의심이 생길까요? 그동안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영수증을 분명히 잡게 해주면 다음부터는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전도해야할 대상자는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이런 이들을 구체적으로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십시오.

 

5. 전도의 장애물 제거하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운 때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죄라는 사슬로 사람을 얽어 맨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싸움은 전신갑주를 입은 십자가의 군사들이 대장되신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싸울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전도할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전도의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우선 전도는 특별한 열정이나 은사를 가진 사람만 하는 것이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몰론 남보다 전도에 불같은 열심을 가진데다가 훈련도 잘 된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믿은 이들보다 갓 믿은 사람들이 더 전도를 잘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교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주변에 믿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근래에 믿은 이들은 불신자 친구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많습니다.

전도해야 하겠다고 하는 결심만 확고하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하고 싶지만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에게도 그런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전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의 성공률이 희박합니다. 모르면 배우고 실습하십시오.

전도는 어디에서 배웁니까? 교실에서 아무리 배워도 소용없습니다.

나가서 경험해야 합니다. 창피도 당해보고 두려움도 당해보고 대답을 못해서 쩔절매다가 전화로

“목사님, 이럴 때 어떻게 대답할까요?”라고 질문도 몇 번 해봐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요령이 생깁니다. 그것이 훈련입니다.

그것이 싫어서 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 전도하지 못합니다.

신앙의 기쁨도 없을 것이고 성장도 오지 않습니다.

 

6. 믿음의 결신을 미루는 많은 핑계들

 

“너무 죄가 많아서 교회에 나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죄인인 것을 아는 자를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등 후보자인 셈입니다.

그 사람은 교회에 일등으로 나올 사람인 것입니다.

죄가 많아서 교회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몸에 때가 많아서 공중 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우스운 핑계와도 같습니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이나 양심에 비추면 부그럽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양심을 속이지 마십시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죄없는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나는 예수 믿기에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너무 늦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임종을 몇 시간 앞둔 사람에게 여러 번 전도한 것이 있습니다.

이상한 우상을 믿던 이에게 숨이 넘어가기 몇 시간 전에 예수님을 전했더니 기쁨으로 영접하고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두 명의 강도 둥 한 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죽기 전 이 한마디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들어간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늦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못 맡고 맥박이 다 끊어진 사람에게도 저는 귀에 대고 전도했습니다.

그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믿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아직 너무 젊어서 종교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젊음은 잠깐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항상 자신은 아직 젊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교와 복음을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면 그건 고역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양심에 진정한 자유가 오는 것입니다.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얻으십시오. 젊을수록 좋습니다.

청년의 때에 바른 길을 찾으면 이후의 삶이 훨씬 멋지고 값질 것입니다.

 

“죄를 버리려고 해도 안 됩니다.”

그것은 핑계입니다. 정말 죄를 떠나기를 원한다면 피흘리기까지 싸우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종종 죄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죄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끊어야할 것이 있으면 힘들다고 한탄하지 말고 당장 손을 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다른 종교를 믿는 우리 집안에서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것도 또한 주님은 미리 알고 게십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온 가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투거나 충돌하지 말고 오래 참으면서 참된 신앙인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희미하면 오히려 입장이 곤란해지고 전도가 더 어려워집니다.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이 오더라도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전에 믿어봤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신앙을 잘못 배웠거나 기초가 약하거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았거나 거듭나지 못했거나 그냥 교회에 들락날락했을 가능성이 많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 교회를 다니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실망하기도 하고 마음속에 새로운 변화가 없기 때문에 쉽게 지루해집니다.

어느 기간 동안 열실을 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지속성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실한 회개와 거듭남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고 재미있는 곳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신앙인에게 금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예수를 믿지 않아도 버려야할 것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얼마나 멋있게 살 수 있는지를 우리가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으면 근엄해서 웃지도 않고 항상 거룩한 모습으로 이상하게만 산다는 그런 편견을 갖지 마십시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더 가치 있고 귀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사회에 나가서 신앙을 지속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제 주위에는 전부 안 믿는 사람이라서 나 혼자 예수를 믿었다가는 회사에 가서도 아마 직장생활을 못할 걸요. 힘들 겁니다. 술자리도 그렇고 여러 모임들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도 아니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빌립보서 4:13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유혹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교역자와 성도들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인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통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신앙은 느낌과 감정 이상의 것입니다.

확실한 결단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지속됩니다.

기쁨과 감동은 그 후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눈물, 환상, 신유나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불변합니다.

감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합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나 이해되는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박사들만이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가 아는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깨닫는 것이 성경입니다.

한글과 영어를 하나도 모르거나 글씨만 간신히 아는 사람도 성경을 읽고 감동을 받는데 석사 박사가 성경을 읽고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영에 속한 사람이 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공부하면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순종해보십시오.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경험되면서 성경과 더욱 가까워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불신자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거짓말 하고 똑같이 사기 치고 그러던데요?”

그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믿는 사람들의 잘못입니다. 그런 성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초점을 사람에게 두지 말고 예수님께 두십시오.

돌팔이 의사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습니다.

그렇다고 “난 가짜 의사가 많으니까 아파도 병원에 안 갈 거야.”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실력 있는 의사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환자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가짜 교인뿐만 아니라 엉터리 교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이 더 많습니다.

 

“교회에 가면 설교가 지루하고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교인이 잠을 잔다면 그건 일단 설교자의 책임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기상나팔과 같은 말씀을 자장가로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설교 중에 졸고 있어서 목사가 그 옆에 앉은 권사님에게 좀 깨우라고 했더니

“목사님이 재워놓고 왜 저한테 깨우라고 하세요?” 그러더랍니다.

설교가 즐거운 코미디언의 말처럼 전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양심을 찌르는 말도 경청하십시오.

아무리 필요한 말씀이라도 내가 아니라 남에게 하는 성교로만 생각하면 그냥 귀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신체적으로 너무 고단하지 않아야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집중이 안 됩니다.

 

“나중에 믿고 싶습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밖에는 우리에게 확실한 날이 없습니다.

이제 그만 미루십시오. 사단의 음성에 속지 마십시오.

나중에 믿고 싶을 때 그렇게 마음대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신에는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이 구원 받을 만한 때요 오늘이 구원 받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교회 생활에 아무런 감격도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확인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 요한복음 1:13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생명이 있으면 속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드시 변하고 자라납니다.

생명의 말씀이 마음 밭에 떨어진 후 관리만 제대로 하면 반드시 싹이 나고 꽃이 필 것입니다.

 

7. 불신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들에 대한 준비

 

1)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왜 지옥을 없애지 않습니까?

원래 지옥과 사단은 그의 추종자들을 위해서 분비된 영원한 불과 같습니다.

법을 준수하기 위해 범죄자를 다루는 교도소가 있는 것처럼 죄와 악에 대한 영원한 심판을 위해서 지옥이 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며 결국 사단과 그 추종자들이 들어 갈 것입니다.

 

2) 세상에는 종교가 많은데 꼭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성경 요한복음 14:6에는 분명히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며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 종교나 잘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교가 많은지 모릅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기 전가지 천국에는 절대로 갈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지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거는 더욱 없습니다.

온 세상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쉬워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자연과 생명의 신비와 우리 삶의 변화가 하나님을 증명합니다.

모스크바에 안 가본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러시아에 모스크바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지식의 95%가 남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은 하나님을 경험한 이들이 말해 주면 됩니다.

저의 인생이 변화된 것을 보면 반드시 하나님은 계십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나무나 많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정말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기적이 정말 가능할까요?

과거에는 천리를 떨어진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이 기적처럼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됩니다.

영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같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과거에는 하나님께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상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지기 집 안방에서 인터넷으로 봅니다.

우리에게 기적인 것이 하나님께는 평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 기적은 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과 생각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기적을 반대하지 마십시오. 무식만 드러날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상식적인 것이 우리에게는 기적입니다.

 

5) 성경이 정말 믿을 만합니까?

성경을 믿고 인생이 변하고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성경을 믿는 사람은 풍요한 인생을 삽니다.

1500년에 걸쳐 40여 명이 집필했는데 다 모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한 스토리의 성경책이 되었습니다.

집필한 사람들을 다르지만 원 저자는 하나님, 한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작은 지식과 경험으로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시작하면 알게 됩니다.

불신자들이 하는 질문 중에는 답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아는 부분만을 말하십시오.

성경에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며 또 꼭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벗어나면 오류가 생기고 이단적인 요소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좋습니다. 제 마음이 기쁩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노래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8. 전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

 

집을 나갔던 아들이 다시 돌아오자 아버지는 잔치를 열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기쁜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어느 날, 우리는 우리가 전도한 사람들과 영광스런 상급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는 의의 면류관을 받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받을 놀라운 사랑과 상급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장난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다른 사람은 하게 하고 자신은 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도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십시오!

시편 126:5~6 말씀처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는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할렐루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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