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예배관



1. 메타처치(Meta-Church) : 예배에 대한 의식구조의 변화  

 

열린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열린예배를 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메타 교회(Meta-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타 교회란 무엇인가? 메타 교회란 지금까지 지켜 온 전통적 예배 의식에 대한 개념․사고방식․의식구조를 열린예배의 개념․

사고방식․의식구조 등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어원적․신학적 의미 왜곡(Distortion)

 

칼 조지(Carl F. George)는 “메타 교회는 전향하고 있는 교회, …이 되어 가고 있는 교회를 뜻한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는 바뀌어져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옛 방법들을 붙잡지 않아야 한다.

… 끝으로 메타 교회는 교회의 조직적 구조 변경도 동반한다”라고 말했다.

 

비평:

 

열린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회개라는 이 단어의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 의미를 오용하고 왜곡하여, 메타 교회란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적 예배의식에 대한 사고방식, 의식구조, 예배 형태를 완전히 전환(뜯어 고치는 것)하는 교회를 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교회를 말한다. 메타 교회는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강조한다.

 

 

2. 외형적 구조의 변경(A Change of External Structures) 

 

열린예배를 보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외형적 구조의 변경도 강조한다. 너무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교회의 십자가를 내리고, 교회를 일반 건물(building)처럼 개조한다. 그리고 교회 내부도 극장식으로 개조하고, 강단․강대상․의자 등을 모두 개조하며, 대형 전광판․조명장치․음향장비 등을 설치하고 강대상 뒷벽을 그림이나 또는 화단으로 장식한다.

 

1) 강단(Pulpit area)  

강단은 낮게 그리고 넓게 극장형 무대처럼 개조한다. 그리고 의자들을 다 치워 버린다. 저들이 강단을 낮게 그리고 넓게 개조하는 이유는 강단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을 필요에 따라 각종 연주회, 현대복음송, 기독교 록음악, 춤, 연극, 오페라 등을 위한 무대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2) 강대상(Pulpit) 

강대상을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성도들이 땀 흘려 수고하여 바친 그 귀한 헌금으로 구입한 그 좋고 값비싼 큰 강대상을 치워 버리고 작은 이동식 탁자로 대치한다. 그것을 플라스틱, 유리 또는 나무로 만들고 밑에는 바퀴를 달아서 목적에 따라 수시로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비평:

 

그들은 강단, 강대상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단과 교회를 목적에 따라 어떤 축제의 장소나 또는 기타 집회의 장소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교회와 강단을 우상시하지 말라고 비판한다.


물론 우리는 강단이나 교회를 우상시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강단이나 교회를 세상의 다른 것들과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요,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 쓰임받는 가구는 세상 것과는 구별되는 성구(聖具)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고 하셨고, 주님도 그 말씀을 마태복음 21장 13절(막 11:17; 눅 19:46)에서 인용하셨다. 토기장이가 똑같은 진흙으로 하나는 귀한 그릇을, 하나는 천한 그릇을 만들어 각기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하듯이(롬 9: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는 것과 같이(딤후 2:20), 똑같은 재료로 강단 또는 강대상 같은 성구들을 만들어 귀히 쓰기도 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만들어 천히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교회에서 사용하는 기구(도구)들은 거룩히 구별된 것들이기 때문에 성물들(holy things) 또는 성구들(holy furnitures)이라고 부른다. 구약시대 성전의 성구들은 큰 제단, 놋대야, 진설병을 놓는 상, 촛대, 분 향단, 언약궤 등이었다(출 25-40장). 이 경우에는 다른 기물들과 구별․성별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별한다.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대상을 세상 가요나 춤이나 연극의 무대 등에서 사용하는 기구들과 동일시할 수 없다. 우리는 강단이나 강대상을 세상의 것들과 구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3) 의자(Chairs) 

강단의 의자는 등받침이 없는 술집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다리가 긴 의자(stool) 같은 것을 놓고 청바지에 가벼운 상의를 입고 걸터앉는다.

또는 강단 뒤에 의자들을 강단 밑으로 옮겨 놓는다. 권위의식을 없애고 섬기는 종의 자세를 취한다는 궤변이다. 참으로 그러한가?

 

‣ 워렌은 “사람들은 개별적인 의자에 앉기를 좋아한다.”라고 권장한다.

 

비평:

 

교회를 타락시키는 열린예배 보는 교회들 상당수는 그 좋은 고급 긴 의자들을 극장식 의자들로 대치한다.

이것은 회중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보다는 편안하게 앉아서 쇼(Show)를 구경하기에 알맞은 것이다.

 

‣ “좌석, 좌석의 편안함과 배치 구도가 예배의 분위기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다 … 사람들은 개별적인 의자에 앉을 것을 기대한다.”

 

 

4) 마이크(Microphone) 

‣ 워렌은 “만일 당신이 목사라면 당신의 교회로 하여금 옷에 달 수 있는 작은 마이크를 구입하도록 해서 당신이 강대상에 묶여 있지 않도록 하라.”

 

비평:

 

마이크를 강대상 위 중앙에 고정시키지 않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 잡고 강대상 전후좌우로 돌아다니면서 소위 복음송을 부르거나 설교를 한다.

 

그러므로 무릎 꿇고 기도할 만한 장소가 되지 못하여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이 없다. 또한 마이크를 손에 잡고 강단을 돌아다니며, 즉흥적으로 또한 재미를 부추기는 말 등으로만 제멋대로 떠드는 설교가 되어서, 말씀 준비에 전심전력하지 않고, 타인들의 설교집이나 또는 인터넷 등으로 얻은 것을 강단에 가지고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5) 화단(Plants) 

조화 또는 생화로 강대상 좌우를 꽉 채운다.

식물이나 원예수(plants)로 강대상 주변을 재단장해서 교회 강대상처럼 보이지 않게 한다.

 

‣ 워렌은 “나는 여러분이(화단용) 식물들, 원예(정원)수들, 그리고(온실용) 나무들을 여러분의 시설들에 장식으로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비평:

 

그러나 기독교 역사상 특히 종교개혁 이래 강대상 주변을 생화, 조화, 원예수 등으로 꽉 채운 일이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물론 참 주의 종들은 강대상 주변 장식을 엄히 금했다. 예배를 드릴 때 마음과 정신을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야 할 텐데, 강단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으면 시각적으로 정신이 산만해지고 마음이 흐트러져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6) 대형 전광판(Overhead screen) 

과거에는 O.H.P.를 사용하였고 근래에 와서는 빔 프로젝트(beam project) 또는 대형 전광판 ʻ대형 멀티비전ʼ까지 설치한다.

그리고 영상설교, 영상음악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궤변을 토한다.

 

비평:

 

복음송이나 성경도 전광판에 자막으로 나오게 하므로 온 회중이 그것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고 주위가 산만하여 예배에 집중하기 어렵다. 영상문화의 발달은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변화를 가져왔다. 책을 읽는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참여해서 찾아 읽어야 하지만, 멀티미디어를 통하여 보는 시대에는 보여주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내가 참여할 것이 없으니 나의 성경, 나의 찬송가(my Bible, my Hymn)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예배에서 찬송과 성경 말씀은(설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성경적이고 전통적이고 예배 모범에 합당한 경배찬송․교리찬송․복음찬송․송영찬송 등은 부르지 않고, 자기 성경은 보지도 못하게 되니 따라서 열린예배를 보는 교회에 참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 찬송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더군다나 찬송에 있어서 복음송이나 현대복음송(C.C.M.)에 밀려서 전통 찬송은 아예 부르지도 않는다.

  

7) 조명장치(Lighting) 

강단을 무대로 전환하여 노래나 춤이나 연극 등을 할 수 있도록 전용 조명세트를 장치한다. 그 휘황찬란하고 사치스러움이 홍등가의 네온사인이나 댄스홀의 조명, 술집이나 룸살롱, 또는 텔레비전 방송국 스튜디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므로 더욱 흥분하게 하고 더욱 발광하게 해,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육신의 말초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감정만 고조시키는 것이다.

 

8) 음향장비(Musical equipments) 

교회의 음향 효과를 매우 중요시한다. 앰프, 서라운드 스피커 시스템․믹서(mixer)․비디오․카메라․컴퓨터․방송실용 모니터 등 다양한 음향장비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음향장비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전문인을 고용한다.

 

음향장비들 자체는 중립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교육자재로 올바로 사용하면 유익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해가 된다. 예배를 드릴 때 좋은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전문인을 고용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열린예배에서의 음향 시스템은 설교하고 찬송하는 전통 예배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마치 유흥 장소에 적합하고 대중가요 콘서트장에 합당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렇게 남용하고 오용하므로, 영적․신앙적․정신적․심리적․육체적 전반에 걸쳐서 막대한 해를 입히고 있다. 열린예배에서 음향 효과를 중요시하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보다 현대 대중음악에 맞춘 복음송을 부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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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상 음악(Background music) 

찬송이나 복음송을 부를 때 배경으로 전광판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예배드리는 장면, 산수경계, 고대 유적지들, 건축물들, 사람이나 동물들의 활동 등 온갖 종류의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마치 오늘날의 가라오케나 노래방의 시설과 다를 바가 없다. 화면에 나타나는 그 모든 영상은 신령한 예배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분산시키고 뜻과 정성을 모으지 못하게 한다.

 

 

3. 정통적·전통적 예배의식의 포기(Give up)를 권장한다 

 

릭 워렌(Rick Warren)은 개척교회를 시작하기 위한 안내 편지 서두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전통적 교회 예배를 포기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교회가!”

 

워렌은 말하기를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배의식에 대한 사고방식, 의식구조 등을 포기하고 예배를 기꺼이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바울이 말하고 있는 요점은 불신자들이 참석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예배(의식)를 기꺼이 재조정해야 한다.

… 그는 고린도 교회에게 ʻ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ʼ(고전 10:32)고 말했다.”

 

비평:

 

워렌은 불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할 때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성숙한 신자의 자세며, 그러기 위해서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전통이란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경건한 예배를 가리킨다. 교회의 거룩성을 파괴하고 불신자 또는 새 신자가 회개하지 않고 세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성숙한 신자가 할 일인가?

 

성경적․전통적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이방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는가?

 

신자들에게 신앙은 생명과 같다. 신앙문제, 진리문제, 교리문제, 양심문제 등에 대해서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타협이나 양보는 신앙적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리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유 3).

 

 

‣ “열린예배를 위해서는 이기적이지 않고 성숙한 신자들이 필요하다.

… 신자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이나 전통 그리고 편안을 희생하여 불신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을 기꺼이 조성하도록 요구한다”.

 

비평:

 

열린예배를 반대하고 비판하면 이기적이고 성숙한 신자들이 아니란 말인가?

전통적 교회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예배에 대한 의식, 사고방식 그리고 예배행위는 성경적 예배원리에 입각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였다. 그런데 불신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전통적 예배의식을 포기하라는 타락한 목사! 그런 타락한 목사들을 추종하는 사람들! 그러니 교회들이 타락될 수밖에!

 

 

4. “당신의 교인들을 재구성하라”(Reinventing)?    

 

‣ “당신의 교인들을 재구성하라. 교인들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목표에 맞추기 위해서는 당신은 의도적으로 교회의 구성원들을 바꿔야 한다.

모든 낡은 프로그램, 구조, 그리고 예배형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비평:

 

워렌은 지금까지의 성경적 예배원리, 전통적 예배형식, 교회의 조직(예를 들면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그리고 각 부서들) 등을 모두 소위 ʻ『목적이 이끄는 교회』ʼ에 일치하도록 뜯어 고치고 또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성도들을 의도적으로 내쫓고 자신의 추종자들로 물갈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런 타락한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성도들은 바른 목사를, 학생들은 바른 스승을, 백성은 바른 대통령을 만나야 복을 받는다.

  

 

5. 예배에 대한 잘못된 개념(Wrong Concept of Worship) 

 

‣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예배라고 부른다.”

 

비평:

 

워렌(Rick Warren)은 예배의 개념부터 잘못되었다.

참된 예배는 중생한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 신앙고백,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 감사의 예물을 통하여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며 섬기며 봉사하는 행위이다. 참된 예배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예배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예배의 개념이 잘못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나아갈 때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성경·찬송도 지참하지 않고, 준비 없이 나아가서 손뼉치고 기타치고 북치고 심벌즈 때리면서 현대복음송만 열광적으로 부르고, 참회기도와 신앙고백도 없고, 세상 말이나 하고, 축도도 없이 그저 놀다 헤어지는 그런 예배! 어떻게 그런 열린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열린예배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예배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예배이다.

 

 

예배의 다양성

 

‣ “당신의 종교적인 배경에 따라서 당신은 예배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교회 예배를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의식들 촛불 그리고 성찬식이 있는 예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당신은 치유․이적․ 그리고 황홀한 경험들이 있는 예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배는 이 모든 요소들을 포함할 수 있으나 예배는 이 모든 표현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예배는 삶의 방식 그 자체이다.”

 

비평:

 

① “당신의 종교적 배경에 따라서 당신은 예배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포용주의․에큐메니칼 사상이다.


②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교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예배 형식은 일반적으로 개신 교회들(Protestant Churches)의 예배형식이다. 현대 개신교회들은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회중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그리스도교, 하나님의 성회, 형제교, 복음교회, 모라비안교회, 메노나잇교회, 구세군, 호모섹스교회(U.F.C.C.)등 수 없이 많으며 각 교파마다 역사적 배경, 예배형식, 교리 등에 차이가 있다.


③ “당신은 의식들, 촛불, 그리고 성찬식이 있는 예배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예배 형식은 일반적으로 동방정교, 천주교, 루터교 등의 예배형식이다. 이 교회들은 개신교회들이나 신오순절교회들과는 교리와 예배형식이 또 상이하다. 루터교는 이신득구․이신칭의의 교리를 비롯한 교리적 발전은 있으나 예배형식은 천주교로부터 완전히 개혁된 것은 아니다.


④ “당신은 치유․이적․그리고 황홀한 경험들이 있는 예배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예배 형식은 일반적으로 신오순절주의 교회들(은사주의 교회들)의 예배형식이다. 신오순절주의 교회들은 신유의 은사(병 고침, healing), 현대방언(계속적이고도 반복적인,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언부언의 내용이 없는 말, 이성과 양심의 지배를 받지 않는 말) 기복신앙을 추구한다.


⑤ “예배는 이 모든 요소들을 다 포함할 수도 있다”

예배에서 각기 상이한 교파들, 상이한 교리들, 상이한 예배형식들을 다 포함할 수 있다는 말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지향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에 기초한 에큐메니칼사상(ecumenical thoughts)이다.

 

 

6. 예배를 축제(페스티벌, Festival), 여흥(Entertainment)으로 대치한다.

 

예배는 존엄하신 하나님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헌신하는 것이요, 축

제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여흥이다.

 

열린예배 보는 사람들은 예배를 하나의 축제 개념으로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축제 분위기로 바꾸었다.

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2)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면서 예배를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궤변을 토한다.

 

조지는 그의 책『다가오는 교회 혁명』(The Coming Church Revolution) 제1부에서와『당신의 교회는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라』(Prepare Your Church for the Future) 제4부에서 그리고 로버트 로간(Robert Logan)은 그의 책『교회 성장 저편에』(Beyond Church Growth)에서 예배를 하나의 축제 개념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어로는 이벤트(Event), 페스티벌(Festival) 또는 축제(Celebration)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전도축제, 찬양과 경배의 밤, 열린예배, 토요일 밤 등의 현수막들을 크게 내걸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모여서 기분 내면서 육신의 쾌락을 도모한다. 그들은 변명하기를 페스티벌은 전도 축제를 의미하는 말로 젊은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1) “교회 행사는 오늘날의 오락에 몰두된 문화 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경쟁해야 한다.

교회가 오늘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의 주의를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비평:

 

“교회의 행사는 오락에 몰두된 문화에서 다른 모든 것과 경쟁하여야 한다.” ?

 

저들은 교회의 예배를 하나의 축제행사로 생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시행한다.

“이 세상 오락에 몰두된 문화”는 이 세상의 타락된 문화인데 그런 문화들에 대항하여(against)가 아니라, 그것들과 경쟁하여야 한다(must compete)고 주장하며,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하여는 이 세상 다른 어떤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제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크리스챤 록음악을 위시하여 현대복음송들만 부르며, 춤을 추며, 연극을 하며··· 교회는 타락될 수 밖에 없다.

 

 

2) “새들백교회의 열린예배에서 우리가 원하는 분위기는 축제(Celebration)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새들백교회에서는 매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비평:

 

예배는 축제가 아니다. 축제란 사람을 기쁘게 하는 하나의 경축행사요, 예배는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행위이다. 예배는 구약에서 사하(th'v') 아바드(db;[') 세가드(dg:P), 신약에서 유세베오(εύσεβέω), 세보마이(σέβομαι), 프로스퀴네오(προσχυνέω), 라트류오(λατρεύω) 등의 단어들인데 이 단어들의 원 의미는 하나님을 향하여 경외하다(to revere piously towards), 숭배하다(to venerate), 예배드리다(to worship), 두렵고 떨리다(to fear), 헌신하다(to devote), 섬기다, 봉사하다(to serve)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경건할 수밖에 없다.

 

3) “축제: 시편 100편 2절, ʻ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ʼ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축제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비평:

 

물론 구약시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무교절 등 절기들을 지킬 때 축제 개념이 들어 있었다(출 12:1-28, 23:14-17, 33-44; 민 28:26-31; 신 16:16, 17). 그러나 이런 축제 개념은 예배의 개념 전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신약시대에도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감사절 같은 절기들을 지킬 때 감사와 기쁨의 축제적 의미가 들어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회개의 기도에서도, 찬송을 부를 때에도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예배의 개념을 경시하거나 축제와 대치시킬 수 없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축제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경축 행사이다. 그런데 최근 타락한 교회 중에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심지어는 금요예배, 주일학교 예배까지도 전부 축제예배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예배는 수평적이 아니라(not horizontal) 수직적(vertical)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대상은 영원자존, 전지전능, 거룩하신 하나님이니 예배하는 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밖에 없다. 구약시대 회막에서의 제사, 솔로몬의 성전에서의 성전 제사,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 회당 예배, 초대교회의 예배,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교파를 막론하고 예배는 경건하고 엄숙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서는 소위 현대복음송,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소위 열린예배의 형태를 취하면서 전적으로 타락되었다. 그래서 수직적이고 또 수직적이어야 마땅할 예배가 수평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예배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축제로 전환된 것이다. 많은 전통적 교회가 변질되고 세속화된 증거이다. 저들은 전도 축제는 교회 안에 기독교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궤변을 토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저들의 전도 축제는 기독교 문화를 교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타락한 문화를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세속화(타락)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세속적 문화를 교회에 받아들여 교회 문화로 대치시킬 수 없다.

 

오늘날의 예배는 더 이상 경건 된 예배가 아니라 한갓 장터, 연극장, 코메디쇼(Comedy show), 열린 음악회 같은 것으로 전락되었다. 그 책임은 열린예배로 교회를 타락시키는 신학교 교수들과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회음악 담당자들에게 있으니 그들부터 각성하고 철저히 회개하여야 마땅하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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