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을 따르는 예배


Ⅰ. 들어가는 말


한국 개신교회 예배에서 개선해야 될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배신학의 결여로 무원칙하게 구성되는 예배형태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주일대예배' '주일밤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등으로 구분되는 예배의 남용 문제,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복주의적 예배의 문제, 모든 예배가 오직 한 편의 설교를 듣기 위한 보조 수단인 것처럼 생각하는 설교 중심예배의 문제, 따라서 예배에서의 성만찬과 상징성을 약화시킨 문제, 일본의 신도문화 또는 한국의 불교문화에서 도입된 듯한 묵도부터 시작하는 문제, 장로가 드리는 목회기도의 문제, 평신도 참여가 미약하거나 수동적인 문제, 심지어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복음성가를 부르고 통성기도를 하고 안수기도를 하는 문제, 1년 52주의 예배가설교만 다를 뿐 예배내용은 거의가 똑같은 문제, 예배의 내용과 형태에서 한국 문화적 표현이 거의 없는 문제, 교회력의 사용이 지극히 형식적이거나 거의 교회력과 무관한 예배를 드리는 문제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할 수 있는 교회력과 예배의 문제만을 다루고자 한다. 교회력과 거의 상관없이 예배를 드리는 문제가 모든 예배문제의 근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Ⅱ. 예배와 교회력의 상관관계

한국교회 예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부활절과 성탄절을 제외하고는 1년 52주의 예배가 그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특별한 절기를 빼고는 교회력과 거의 무관한 예배를 드려왔다는 증거가 된다. 다행히 요즈음에는 1960년대의 제2 바티칸공의회 이후 세계교회에 교회력 복고운동이 확산되어왔고, 한국교회도 그 영향을 입어 예배에서 교회력을 반영시키려는 시도들이 있는 것은 퍽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지금 50대 이상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외국에 나가 공부한 소수의 목사들을 제외하고는-신학교에서 예배학이나 교회력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력에 대한 기본적 고찰이 없이 1년 내내 거의 동일한 내용의 예배를 드려온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회의 교회력의 형성된 배경에는 유대교의 축제력과 로마의 세속력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유대교회는 안식일을 비롯해서 새해, 속죄일, 장막절,광명절, 유월절 등의 절기를 지켰으며, 당시로마제국은 여러 가지 이방종교의 절기를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종교적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그 나름의 축제와 절기를 형성해 나갔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가장 중요한 절기였고, 매주일의 예배는 곧 작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 다음에 생긴 절기는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Pentecost)이었고, 2세기 이후 점차 주현절, 성탄절, 사순절, 승천일 등을 교회력에 포함시켰으며, 나아가서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자들과 순교자들의 기념일까지 교회력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보수적인 루터계열을 제외하고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제외한 것의 모든 절기를 교회력에서 삭제하였는데, 특히 17세기의 청교도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욱 극심하였다.

 

초대교회 이후 전통적으로 지켜온 교회력은 그리스도론적 교회력이다. 이 교회력은 1년을 주님의 생애로 구분하여 대림절(대강절, 강림절)부터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까지를 축제기간으로, 성령강림절 이후 대림절까지를 비축제기간으로 구분하였다. 이 교회력 전통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대림절부터 교회력이 시작되는데, 대림절 기간은 성탄절 이전의 4주간으로 흔히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된다. 삼위일체주일을 제정한 것은 14세기에 요한 22세가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을 삼위일체주일로 제정한 것이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주일이 성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별도의 삼위일체주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성령강림 후 몇째 주일'로 표현하지만 성공회와 루터교에서는 '삼위일체 후 몇째 주일'로 표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개신교는 전자와 후자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론적 교회력을 따를 경우,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대림절), 인간이 되신 하나님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주현절), 하나님의 고난받는 어린양(사순절), 부활과 영생(부활절), 성령과 교회의 탄생 (성령강림절), 그리스도인의 삶(삼위일체 후 주일)등을 예배의 큰 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전통의 교회력이 있는데 그것은 1년을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적 사역에 맞춰 균분하는 삼위일체력이다. 이 교회력은 삼위일체주일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그리스도론적 교회력에서 결여된 성부 하나님의 계절을 보충 또는 추가하는데 특징이 있다. 이 교회력은 특히 1960년대 이후 북미교회에서 더욱 발전되었으며, 최근 세계교회협의회의J-PIC(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신학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교회력이다. 이 교회력은9월부터 시작되는데, 9월부터 3개월을 성부하나님의 계절(창조절)로 설정하며, 하나님의 창조과업, 인류구원사역, 창조세계에 대한섭리와 사랑 등이 창조절에 합당한 예배의 주제로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력에 따라 예배를 진행할 경우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닐 수 있다.

 

1) 성서의 전체 복음이 선포된다.

설교는 결코 예배와 동떨어진 것일 수 없고, 언제나 예배의 일부분으로서 전체 예배의 맥락 가운데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교회력에 따른 예배의 맥락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설교자는 자연히 정해진 성서일과(Lectionary)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성서일과에 따른 설교는 성서사용의 편협성을 극복하고 복음의 전체성을 선포하게되는 장점을 지니게 된다.

 

2) 그리스도교의 전체 교리의 내용이 교회력주기에 따라 제시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교교리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는 사도신조의 내용이 교회력에 따라 예배에서 재해석되고 선포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창조절),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주현절),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성탄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시고"(사순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고난주간),"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부활절),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승천절),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대림절), "성령을 믿사오며"(성령강림절).

 

3)교회일치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로마가톨릭, 동방정교회, 영국성공회, 개신교 등 세계 모든 교회가 따르고 있는 교회력의 리듬에 맞춰 예배드릴 때 세계교회의 일원으로서 힘께 호흡하게 될 것이다.

 

4)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의 질서 안에서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삶을 지배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속의 캘린더에 의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교회력에 따라 삶으로써 세속의 삶과 교회생활이 분화되지 않고 하나로 통전되도록 역사관과 가치관이 바뀌어야할 것이다.

 

Ⅲ. 교회력 해설


1. 창조절(Creation Season, 녹색)

창조절이란 그리스도론적 교회력과는 달리 사도신경의 내용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적 활동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삼위일체력에서 성부 하나님께 속한 계절이다. 특히JPIC(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 신학이 발전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와 환경의 문제가 신학의 주제로 등장하면서, 그 동안 그리스도교가 앞장서온 자연생태계를 향한 정복주의적 사고뿐만 아니라 인간중심, 기독론 중심의 구속사 신학까지도 반성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조절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즉 인간과 함께 총체적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피조된 환경 생태계의 문제가 예배와 설교의 큰 흐름을 장식해야 할 것이다.

 

2. 대림절(Advent Season, 보라색)

'Advent'는 라틴어의 '온다' 또는 '도착'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대강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하는데,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된다. 대림절은 5세기에 프랑스의 고올(Gaul ) 지방에서부터 지키기 시작했는데, 사순절을 모방하여 처음에는 성탄절 이전의 6주간을 지켰고, 7∼8세기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5주간으로 지켰으나, 결국 로마교회는 성탄절 4주간으로 정착시켰다. 대림절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약속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계절이다. 이 기간에는 이미 오셨고 오늘 우리에게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현존에 예배와 설교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3. 성탄절(Christmas Season, 흰색)

우리가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은 원래 로마 이교도들의 태양신 축제일이었는데, 336년경에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였다. 예수님의 탄생일이 늦가을이었거나 겨울이었다는 역사적 고증이 있었고, 이 시기가 태양이 지평선의 가장 낮은 지점으로부터 올라와 우주에 빛을 주는 날이라는 해석으로 인해 당시의 동지(작로)였던 12월 25일을 택한 것이다. 중세까지는 12월 25일부터 1월 6일(주현절)까지 계속되는 축제기간으로 성탄절을 지켰다. 이 기간에는 구속사의 절정으로 우리 가운데 화육하신 그리스도,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기 위해 오신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고 그 분이 주시는 기쁨과 희망과 평화를 전하는 예배와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주현절 (현현절, Epiphany,Theophany, 흰색)

주현절은 동방교회의 성탄절이다. 5세기에 이르러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주현절로 지켰는데, 이 날은 당시 이집트의 신인 오리시스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로 지켜져 온 전통을 그리스도인들이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현절은 주님께서 이방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화육절의 의미로 지켜왔으며, 1월 6일부터 시작하여 성회(聖灰)수요일 전날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에는 주님의 화육, 세례받으심, 생애, 가르침 등을 회상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찾는 예배와 설교가 바람직하다.

 

5. 사순절(Lent, 보라색)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회상하는 기간으로서, 니케야총회(325년) 이후 전승되어 왔다.325년 이전에는 부활주일 전2∼3일 정도를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지키던 전통도 있었으나 니케야회의에서 40일간으로 확정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을 성회수요일(Ash Wednesday)로 지키는데, 성회란 가톨릭교회 전통에서 직전 해의 종려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가지를 태운 재에 소금을 섞어만든 물을 뜻한다. 이 물을 가지고 예배자들의 머리에 뿌리는 회개와 정결 예식을 거쳐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할 준비를 한다. 사순절은 부활주일부터 역순으로 주일을 뺀 40일간이다. 주일은 언제나 작은 부활절에 세례 받을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왔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 회개, 자기부정, 화해, 죄의 용서, 메시야의 사명, 십자가의 의미 등이 예배와 설교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6. 고난주간(Passion Week, 보라색)

주님께서 잡히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 주간을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4세기 중엽부터 거룩한 주간(Holy Week) 또는 고난주간으로 지켜왔다. 사순절의 절정을 이루는 이 마지막 주간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부터 시작하여, 성전을 숙청하신 월요일, 감람산에서 가르치신 화요일, 가롯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신 수요일,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성만찬을 베푸신 목요일,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 무덤 속에 갇혀 계신 토요일까지 이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에 금식, 밤샘기도, 고행 등을 수행해 온 전통이 있으며, 흔히 세족례와 성만찬예배를 행한다.

 

7. 부활절(lasterseason, 흰색)

부활절이란 용어는 본래 히브리인들의 유월절을 뜻하는 파스카(Pascha)에서 유래되었고, 그리스도교 초창기에는 유월절과 부활절이 거의 동일시되었다. 유월절이 노예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새 나라를 건설한 히브리인들의 축제라면 부활절은 죽음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새 왕국을 건설한 축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기간은 부활주일로부터 시작하여 일곱 주간을 포함하는 50일간이다. 부활절의 날짜는 봄이 시작되는 춘분(3월 21일)이 지난 후 만월이후에 오는 첫 주일인데, 325년의 니케야회의에서 확정하였다. 따라서 부활주일은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에 오게되며 매년 부활절의 시기에 따라 사순절과 승천일과 성령강림절의 시기가 정해진다. 부활 후40일째 되는날은 승천일로 지키며,50일째 되는 날은 성령강림절(오순절)이 된다.

 

8. 승천일 (Ascension day, 횐색)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로서 사도행전 1장 1-11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님의 승천으로 제자들은 약속된 성령강림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게 되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하늘과 땅을,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하나되게 하셨다. 승천주일에는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사명, 즉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 중보자그리스도, 또는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역사의 완성을 내용으로 담는 예배와 설교가 바람직할 것이다.

 

9. 성령강림절 (Pentecost, 붉은색)

성령강림절은 유대교의 오순절과 유래를 같이 한다. 오순절이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을 의미하는데, 유대교의 율법 선포일이며 건국기념일이었다. 이 뜻깊은 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음으로 새로운 왕국의 시작을 선포했다. 성령강림절은 부활절의 절정으로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주심으로 교회가 탄생한 날이며, 이 날을 기점으로 복음은 온 세계로 전파된다. 성령강림절부터 시작되는 성령의 절기는 전통적인 교회력에서는 대림절 직전(11월말)까지 계속되지만 삼위 일체력에서는 8월말까지 계속된다. 성령강림주일에 세례와 견신례를 행하는 전통이 있으며,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에 관한 예배와 설교가 바람직할 것이다.

 

IV. 예배와 성서일


교회력을 말할 때 성서일과를 빼놓을 수 없다. 예배에서(특히 개신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말씀의 예배가 교회력과 전혀 상관없이, 설교자의 자의적 편의주의에 따라서 이질적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한국교회에서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서일과(Lecoonary)란 교회력에 맞춰 예배에서 성서를 봉독하기 위해 선정된 성서본문을 뜻한다. 본래 Lectionary의 어원은 유대교 회당에서 정규 안식일 예배시에 읽기 위해 선정된 구약성서(Lectiocontinua)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초대그리스도교회가 유대교의 전통을 이어받아Itectionary를 채택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초대교회에서는 유월절(Passa, Pascha), 오순절, 성탄절, 부활절, 순교자기념일 등의 교회절기를 지키면서 이러 한 절기에 사용하도록Lectionary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요 절기를 위해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Lectionary는 니케야시대 (4세기초)에 어느 정도 발전되었다.

 

4세기에서 6세기까지는 Lectionary를 사용하는 전통이 어느 정도 확립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약, 신약, 시편을 읽었던 시기도 있었으며, 아르메니아, 프랑스, 이탈리아등지의 교회에서는 이 시기에 구약, 사도서신,복음서, 세가지 본문을 읽는 전통이 정착되었다. 예언자의 말씀, 사도의 말씀, 그리스도의말씀이 예배에서 함께 선포되는 이 전통이 세계교회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한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부터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부터 두 가지 본문만을 사용하는 전통도 점차 확산되었다. 두 가지 본문만을 사용할 경우에는 사도서신과 복음서, 구약과 복음서(특히 사순절 기간에), 또는 구약과 신약이 읽혀졌다.

 

이처럼 지방마다 제 각각 특징적으로 발전되어온 성서일과를 예배용(미사용)으로 표준화하는데 공헌한 사람은 영국의 신학자요 저술가요 샤를레망 대제의 궁정학교 교장이기도 했던 알쿠인(Alcuin,735∼8044.D.)이었다. 그 후에 서방교회는 성서일과만을 전담하여 작성하는 특별기구를 만들었고 그 기구(office)에서는 주일예배용 뿐만 아니라 매일 읽을 수 있는 성서일과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도하였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 성서일과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그 사용을 회복시키려 했던 사람은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크랜머(Thomas Cranker, 1498∼1556)였다. 그는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는 캘린더에 맞춰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 성서일과를 사용했는데, 오늘날 성공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일과는 크랜머의 것을 수정, 보완, 또는 축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보수적인 루터계열을 제외하고는 서방교회의 개교회는 교회력과 성서일과의 중요성을 새삼 재발견하게 되었고, 미국장로교회는 1932년에, 스코틀란드 교회는 1940년에 성서일과를 발행하였다. 이러한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 복고운동은 1960년대의 제2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행한 교회력 및 성서일과와 합류되면서 세계교회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6세기 개혁자들에 의해 배척당한 교회력과 성서일과의 중요성이 20세기에 이르러 회복된 것이다.

 

전통적 성서일과는 2년 주기 또는3년 주기로 성서 전체의 메시지와 접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독일 루터교회 예배서는 1896년에, 영국교회예배서 (Church of England Alterative Service Book)는 1980년에, 로마 가톨릭의 성무일과(Ordo Lectionum Missae)는 1981년에 재판이 출간되었는데, 이 모두가2∼3년주 기로 작성되었으며, 성공회와 북미주의 수많은 교회들이 가톨릭의 것을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일과를 사용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점을 극복하는데 우선적으로 도움이 된다.

첫째로, 흔히 한국교회의 예배와 설교에서 구약성서의 사용에 인색한 점,

둘째로, 설교자의 즉흥적 착상에 의해 편협되게 성서를 사용하는 점.

셋째로, 성서의 많은 중요한 부분이 예배에서 읽혀지지 않는 점.

넷째로, 특별한 교회절기(성탄절, 부활절 등) 외에는 교회력 과거의 관계없는 성서가 읽혀지고 메시지가 선포되는 점.

다섯째로, 성서사용의 연속성이 결여되는 점 등이다.

 

V. 한국교회 예배갱신의 과제


예배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구체적인 자기표현이며, 그리스도교는 예배를 통해서만 다른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구별할 수 있는 예배공동체다. 예배는, 마치 컴퓨터가몸체(Hardware)와 프로그램(Soflware)으로 구분되듯이, 그 형태와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예배형태는 그 내용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 형태와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가 처한 시대상황의 변천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변화를 겪어왔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니케야회의(325년),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 칼케돈회의(451년)등의 종교회의를 거치면서 기독론 논쟁 또는 삼위일체 논쟁이 활발했던 시절에 그리스도교 예배는 기독론적 예배 또는 삼위일체적 예배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동방교회 예배는 기독론적 입장을 고수하였고, 서방교회는 기독론적 예배와 삼위일체론적 예배를 함께 발전시켰으며, 종교개혁자들은 삼위일체론의 틀을 고수하면서 말씀의 비중을 드높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전된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역의 요약이며, 그 구원사역에 대한 인간들의 응답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은 예배에서의 복음선포로서, 또한 성만찬으로서 반복되고, 이러한 구원사건에 인간들은 감사와찬양, 회개와 결단, 성령 안에서의 친교와 봉사로서 응답한다.

 

이러한 예배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관점과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발전되어온 예배신학은 인간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고난과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즉, 기독론 중심, 인간구원 중심의 구속사신학의 맥락에서 발전된 예배였다. 이러한 예배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참 좋다'고 긍정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지금도 화해의 영으로, 해방의 영으로, 종말론적 선교의 영으로 일하시는 성령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더불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미 앞에서 제시한 교회력 성서일과는 그리스도교 예배와 결코 뗄 수 없는 예배의 중요한 형태와 내용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한국교회에 만연된 비역사적 종교행위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해방의 기쁜 소식으로서의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하나님나라의 구현을 위한 메시야 잔치로서의 축제적 예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신의 축복을 받는 기복주의적 수단으로서의 예배행위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훈련으로서의 예배, 나아가서 모이는 예배공동체 보다는 흩어져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예배공동체에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이 창조하신 세계와 인류와 자연생태계의 구원까지를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믿는 환경신학, 제1세계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서구신학의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제3세계신학, 남성지배문화를 크게 탈피하지 못한 그리스도의 신학과 교회구조의 반성에서 출발하는 여성신학, 서구의 문화와 역사전통 속에서 발전되어 왔고 여전히 서구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한국교회예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토착화예배론 등이 우리의 예배내용으로 보완 또는 수정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 강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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