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강의가 아니다 

 

조 기 연 교수(서울신학대학교 예배학)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시고 또 당신의 백성을 당신 안으로 받아들이신다.

그렇다면 온전히 영이신 하나님과 육신을 가진 인간의 만남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한국교회의 예배는 지나치게 구어(口語)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배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설교와 긴 예배기도, 그리고 역시 긴 목회기도 등은 예배를, 한 사람은 말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앉아서 듣는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는 강연시간이 아니다. 물론 회의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에 거기에는 인간의 다양한 언어와 그 이상의 표현수단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대략 다음의 요소들에 의해 표현된다.


첫째로, 예배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언어는 한 주체와 또 다른 주체 사이의 의사전달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성경봉독이나 설교 등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선포되어야 한다. 기도나 찬송 또는 신앙고백 등도 언어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언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매개물 중의 하나이다. 언어란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논리적이다. 이 논리적 법칙에 따라 일방이 의사를 표현할 때 상대방이 이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언어는 물론 음성을 포함한다. 예배에서 인간은 말을 한다. 기도를 말하거나 기도문을 읽는 것, 복음을 선포하고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 등은 모두 음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음성들은 공동체로 하여금 그 말을 알아듣도록 하며, 그 공동체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배에서 우리는 또한 노래를 한다. 노래는 공동체적 표현의 정상적이고 대치될 수 없는 형식이다. 물론 예배에서 행해지는 노래들은 기독교 역사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다양한 스타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들 모두 노래라는 사실이다. 물론 노래에는 회중들이 하는 노래도 있고 성직자가 하는 노래도 있다. 이들 모두는 공동체의 마음과 의사를 표현한다.


노래는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노랫말이고 또 하나는 가락 즉 음악이다. 물론 공동체의 마음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음악도 중요하나 예배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가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교회로부터 최고의 예배음악은 본문 그대로의 시편이나 찬가들로 인식되어 왔다. 노래가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에 옛부터 기독교 예배의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노래로 불려져온 것이 전통이다. 노래로 표현된 것이 말로 행해진 것보다 훨씬 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로 행해지든 말로 행해지든 어느 한쪽이 배타적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예배에서 행해지는 음성적 표현의 또 다른 하나는 침묵이다. 침묵이란 마음을 가라앉히는 태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등을 뜻하는 것으로서, 예전적 침묵은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분명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나님의 평화 안에서의 묵상 등이 그 예이다.

둘째로, 시각적 표현이다.

언어적 표현과 음성적 표현에 비교해 볼 때에 시각적 표현은 부차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것은 근본적으로 ‘듣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보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실 뿐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시기도 하다. 주님께서 이 땅위에 계실 때에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각적 요소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의 예배는 훨씬 더 잘 표현되고 더 풍부하게 표현될 것이다.

셋째로는 움직임과 동작이다.

여러 가지 자세와 동작과 운동도 예배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배에 있어서 신앙은 동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1671년 율리히(Julich)와 베르그(Berg)의 교회법령은 “공중기도는 매우 특별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무릎을 꿇든지 똑바로 서든지 혹은 겸손을 밖으로 내보이는 다른 행위들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학자 부르너가 “사람의 몸은 사람이 계시의 사건에 의해 행하는 영적 응답 속에 맡겨져 있다”라고 엎드림에 대해 말한 것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므로 자세와 동작과 움직임이 없는 교회의 예배의식은 그 내용을 상실할 위험이 있으며, 영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신앙, 회개, 감사, 경배 등의 예배의 행위를 동작으로 표현하는 일은 예배의식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동적(動的)표현의 범위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세이다.

자세는 일어서거나 앉거나 무릎을 꿇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간구하고, 복음을 듣고, 신앙을 고백하고, 부활의 기쁨에 동참하여 찬송을 부르기 위해 일어선다. 또한 복음서 봉독을 제외한 나머지 성경을 들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에는 앉는다. 참회의 고백을 할 때에는 무릎을 꿇기도 한다. 이러한 자세들은 그때 그때에 행하는 예배의 행위들을 좀더 잘 표현해 주고 내용을 풍부하게 해 준다. 예배 집례자의 자세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죄를 선언하고, 복음서를 읽고, 설교하고, 성만찬을 거행하고, 축복을 베풀 때에 집례자들이 취하는 자세는 매우 상징성이 강하며, 의미하는 바가 크다.

둘째, 예전적 동작이다.

동작은 매우 다양하게 행해진다. 기도를 위해 손을 한데 모으거나, 팔을 벌려 위로 쳐들거나, 떡을 들고 떼며, 잔을 들어 축사하는 동작, 그리고 겸손하게 받아 마시는 동작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행하지 않지만 십자성호를 그리는 동작도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운동 즉 움직임이다.

집례자를 포함한 예배위원들의 입장과 퇴장 행렬, 성찬상에서 성서 봉독대나 강단으로 걸어가는 움직임, 헌금을 걷기 위한 행렬, 성찬의 떡과 잔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행렬, 예배가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의 묵상 등도 모두 이에 해당된다.


이 모든 것들은 형식적인 것이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 자체가 예배의 일부이며,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모쪼록 한국교회의 예배가 이러한 상징적 요소들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여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평화!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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