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문제

 

그리스도인이 "(내가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사. . . ", 그리고 "(나는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오며). . . "라는 사도신경의 두 구절과 관련된 주제들을 말할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독특성과 초자연성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신 특별한 소망을 고백한 것이다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이와 같은 구절의 고백이 담겨 있는 것이 없다어떤 종교에는 불멸성에 대한 신앙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는데정통적인 유대교에는 몸의 부활에 대한 개념이 표현되어 있는 것 같다그러나 그 어떤 종교에도 부활을 제정하신 이가 일정한 시점에 이 세상에서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데 대한언급은 전혀 없다.


만일 나사렛 예수께서 자신이 예언한 대로 삼일만에 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실제로 부활하셨다면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을 포함한 기독교의 다른 모든 교회는 다 굳게 서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바울이 선언한대로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며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이 사실은 모든 시대의 신자와 불신자들이 인정해온 것이며 사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반복되어 온 부활에 대한 부인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1> 부활이라는 용어

 

부활이라는 개념으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헬라어 명사는 ajnavstasi" 아나스타시스, resurrection”로서 ajnivsthmi 아니스테미, he shall ris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이다동사 ejgeivrw 에게이로, be raised again”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이란 개념을 지닌 단어로서 신약성경에서 위의 단어와 똑같은 빈도수로서 사용되고 있다신약성경 기자들의 용법에서 이 두 낱말의 어떤 차이점을 찾아내기란 어렵다복음서에서 이 두 낱말은 서로 병행해서 사용되었다예컨대 마태복음 16:21과 그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9:22에는 에게이로가 사용되었으나 그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9:31에는 아니스케미가 사용되었다나사로의 부활을 설명하는 데에는 오직 아니스테미만이 사용되었다심지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과 같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곳에서도 두 단어가 모두 사용되었다예컨대 사도행전 2:24과 3:26에는 아니스테미가 사용되었고사도행전 3:15과 4:10, 5:30 등에는 에게이로가 사용되었다.

 

 

<2> 고대 종교에 있어서의 부활

 

어떠한 위대한 사상가들의 풍부한 유산들과 고대 세계의 수많은 문헌들도 '몸의 부활'에 관한 교리에 공헌을 끼친 것은 없다. Oxford English dictionary와 같이 공정한 저서에는 오리스겐(Osiris)의 의식들헬라 신화들조로아스터(Zoroaster)의 공상 등은 전적으로 무시되고, '부활'이란 단어의 처음 정의가 이렇게 주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 후에 그가 다시 살아난 것". 이것을 볼 때에 이 부활 사건이 세계 역사에 있어서 독특한 사건이었음이 증명된다토인비(toynbee)는 [역사 연구](Study of History)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Christus Patiens'라는 장에 예수의 이야기와 타임 머신(Time Machine)을 가진 어떤 헬라인 구주들 이야기 사이의 상응점들이라는 주제가 다루어졌다이 두 자료의 대조표에서토인비는 그리스도의 생애 중에서 87개 사건의 목록을 나열했는데그는 말하기를 이 사건들은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에도 병행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하며 '왕의 계통을 따라 난 영웅'으로 시작되어 '처형자의 회심'으로 마쳐졌다그러나 고대 세계의 이야기들에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부활 기사와 같은 것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토인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그는 이 초자연적인 부활 사건의 병행 기사를 다른 데서는 전혀 찾아 볼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3> 구약성경의 부활

 

부활의 개념이 이스라엘에서는 철저하게 발전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과 문자적인 '몸의 부활'은 구약성경의 문헌에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부활에 관한 진리는 거기에도 있었고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틀림없이 족장 시대에서조차도 부활의 가능성에 관한 어떤 개념이 있었다그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그를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으니비유컨대 이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도롤 받은 것이었다"(11:19). 고대 시대에 부활의 개념은 "열조와 함께 자니라"(47:39; 31:16; 왕상1:29)와 같은 구절에 나타나 있었다여기서 잠이라는 것은 잠으로부터 깰 것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며도한 그러한 매장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다시 받은 여인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이것은 틀림없이 열왕 시대에 일어났던 세 가지의 부활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왕상17:17-24; 왕하4:18-37; 13:20-25). 욥기 19:26, 27의 정확한 번역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여기에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었다(14:13-15 참조). 구약성경에 있어서 부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이사야 26:16-19의 결론 구절이다이와 관련하여 부활 진리가 선포된 두 곳의 성경은 호세아 6:1, 2과 해골 골찌기 기사로 유명한 에스겔 37:1-14이다이러한 구절들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이스라엘 회복 이전의 이스라엘인들이 미래의 국가 회복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예언들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따라서 만일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미래의 국가 회복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일한 교훈이 다니엘 12:2에도 적용되었는데이는 분명히 그 시대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다이 구절의 상징적 의미나 전형적인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것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육신들이 부활하는 신앙을 강조하여 나타내 주고 있다이러한 기본적인 구절들에 덧붙여서 초대 교회는 즉 예레미야 18:3-6과 시편88:10과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전형적인 예표가 되는 구절들이나 예언서들과 같은 다른 구약 성경 본문들을 사용했다.


부활 신앙이 구약성경에 있는데 이것은 구약성경에 그처럼 결정적으로 지적되어 있는 메시야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이다이 메시야는 참으로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실 것이다(딤후1:10).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그리고 비록 죄의 결과로서 사망에 이르렀지만 만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써 죄와 사망이 완전히 극복되었다면 결국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수 있는 확실한 소망이 있는 것이다.


부활 신앙은 점점 일반화되고 포로 귀환 후와 마카베오 시대에는 더 자주 나타났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부활 신앙은 "팔레스틴에서는 거의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교리로서 인정받게 되었으며 정통 신앙의 시금석이 되었다". 부활을 부인했던 사두개인들은 하나의 예외였고 1세기 유대교의 일반적인 견해를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니었다.

 

<4> 신약 성경상의 부활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사건이 내포된 '몸의 부활'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다른 어떤 기본적 진리에 대해서보다는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다(아마도 주 예수의 죽음은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3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곁들여서 예언하시지 않고는 거의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세 번 죽었던 사람들을 살리셨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주셨다모든 복음서 기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그 기록의 절정과 결론으로 삼고 있다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맨 처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의 대화와 행동의 모든 강조점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사도들은 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에 선택을 받았던 것이다사도행전을 볼 때 이 부활은 사도들의 설교의 기본적인 주제(主題)였다초대교회는 이 기적에 대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당시에 지중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고대 종교들의 기초들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신약성경의 서신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려고 재림하신다는 확실성그리고 우리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모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적인 부활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옰긴 모든 신자들의 영적인 부활에 대한 위대한 전형(典型)이다그리고 신자들은 현세의 삼을 부활의 권능 가운데서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다사도 바울은 이 부활의 진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어떤 서신 중에서도 가장 긴 장을 이 부활 진리에 할애했다이 시대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의 부활사건으로서 끝이 날 것이다부활이 성육신 하신 우리 주님의 지상 생활의 놀라운 결론이었던 것처럼그것은 우리의 지상 생활의 결론도 될 것이다그 때에 우리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적합한 몸을 갖게 될 것이다신약성경에서 부활 진리를 제거하면 신약성경의 모든 교리 체계가 무너져 버리고 소망도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1.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


요한 복음 5:21-29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네 가지의 견해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구절들에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부활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마지막 육체의 부활도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거룩한 주간'의 화요일에 예수님을 시험하는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이었다(22:24-43과 병행구절들). 모세 오경을 받아들였던 사두개인들은 주장하기를 그들이 부활이 없다고 하는 한 가지 이유는 오경에 부활에 대한 교훈이 없다는 것이었다그에 대해서 예수님은 창세기에 나오는 위대한 족장들의 예를 들어서 대답하셨다당시에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했는데그들의 이러한 고백 속에는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이족장들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50:24; 2:24과 6:8; 3:6과 15:16; 6:3; 26:42)

 

2.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세 가지 부활의 기적

 

우리는 예수님 자신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세 사람의 경우를 순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그 첫째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다(7:11-18). 모든 공관복음서들에는 가버나움에 있는 야이로의 딸의 부활이 기록되어 있다(9:18, 19, 23-26; 5:22-24, 35-43; 8:40-42, 49-56). 마지막으로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기사인데 나사로는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시기 4일전에 죽었었다예수님은 이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다(11:43). 이 기적 사건들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된 요소가 있다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고', 죽은 자는 '그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이는 마치 그리스도 자신은 저 세상에까지 관여하신는 분이시고그는 죽음저편의 세계도 접하실 수 있으며그것을 지배하시는 분이신 것 같다.

 

3. 그리스도의 부활 시에 무덤이 열림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에 관한 마태의 기사에는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는 한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니라"(27:52, 53). 이 사건이 우리 주님의 부활 ''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의하라그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에 앞서지 않았다여기서 복음서의 다른 부활 사건들에서와 같이 이 사람들도 참된 부활의 몸을 갖지 못했던 것임에 틀림없다우리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이시다. (1:18)

 

4. 자신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언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 가장 담대한 말씀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이었다이 예언은 그의 사역의 초기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예언하셨다(2:19, 21). 한번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부활을 밤낮 사흘 동안을 큰 물고기의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경험과 동일시 하셨다(12:40). 그의 다가오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 여러 가지 자세한 말로 예언한 그 중요한 언급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와(16:21; 8:31; 9:22) 변형되셨던 때에(17:9, 23; 9:9, 10, 31) 하셨던 것이다마가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물으니라". 이 예언은 그가 예루살렘이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도 반복되었다. (20:19과 그 병행구절들)


'제 삼일'이라는 시간적 요소는 구약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24:46). 사도 바울은 후에 이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사흘만에살아나셨다고 했다(고전15:4.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삼상30:12; 왕하20:5, 8; 7:17, 18과 특히 호6:2과 요1:17과 같은 성경구절들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이로써 제자들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빈 것을 보고 놀란 것이 설명된다그들은 놀랐던 것은 "저희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했기때문이었다(20:9). 만일 그리스도의 예언이 실제로 성취되지 않았다든지 그가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그의 다른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도 완전히 무너져 버리지는 않았을지라도 흔들렸을 것이다그리고 분명히 우리는 오늘날 신약성경을 읽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지 않을 것이다.

 

<5> 그리스도의 부활

 

1. 그의 죽음의 실제성


이것은 거의 자명(自明)한 사실 같으나 부활이란 그 이전의 죽음을 가정한다는 의미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우리 주님께서는 자주 자신이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의 부활에 대한 예언'난을 참조하라). 군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몇 시간 후에 그의 다리를 꺽으려고 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말했었다(19:33, 34).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만일 그들이(군인들이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했던 유대인들이었다면 그의 죽음의 실제성에 있어서 어떤 속임수나 대응책을 엿보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도행전에 일곱 개의 헬라어 동사들로써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있다십자가에 못박다(2:26), 못박아 죽이다(2:23 ), 죽이다(3:15), 잔인하게 다루다(5:30; 한글 개역에 없음=역자 주), 나무에 달아 죽이다(5:30),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참여하는 자는 살인한 자로 불리웠다(7:52). 서신들의 온전한 신학적인 체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사도신경은 다음과 같은 연속적인 세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실제성을 확증하고 있다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실제성을 가정함에 있어서 문제점은 그의 확실한 죽음 뒤에 마찬가지로 확실한 부활 사건이 뒤따랐는가 하는 점이다이 엄청난 사건의 실제성에 대한 증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이다빈 무덤과 천사들의 증언부활 후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변화된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것그리고 주일(주의 날)이 제정된 것.

 

2. 빈 무덤


빈 무덤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 보려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시도들이 있다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는 것아리마대 요셉이 시체를 치웠다는 것졸도설예수님의 무덤을 다른 빈 무덤과 혼동했다는 것시체를 다른 곳에 치웠다는 것그러나 그 중의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고 신임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오직 사실로서 제시되고하나의 논증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다. . . . 빈 무덤은 천진난만한 변증법 정신의 산물이 아니다이러한 변증적인 정신과는 달리 그들은 주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그들에게 새로운 승리의 삶을 살게 하셨다는 사실로써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그것은 무의식적으로나 자의적으로나 부활의 증거를 명백하게 만들려하고할 수 있는 한 이미 우리가 언급한 도덕적 자질과는 상관없이 만들려고 하는 순서에 있어서 첫 번째 단계가 아니다그것은 사도들의 증거의 본질적이고독자적이고움직일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그 시체가 그 무덤에서 옮겨져 가 버린 사실을 설명하려는 어떠한 이론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그 자신의 몸을 가지시고 나타나셨다는 기록과 접하게 된다.

 

3. 부활 후에 나타나심


부활 후에 나타나신 회수는 일반적으로 10회로 간주된다그 중의 5회는 부활 주일에 나타나신 것이다이른 아침에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심무덤에서 여인들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 번 나타나심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심저녁에 다락방에서 열 제자들과 만나심그 다음 주일에 예수님은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과 만나셨다야고보에게도 한 번 나타나셨는데(고전15:4),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또한 갈릴리 바닷가에서 몇몇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21:1-23),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제자들과 오백 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28:16-20).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실 때 나타나셨다(24:50-52; 1:3-8). 그 후에 바울은 주님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얻었었다(고전15:8). 이러한 나타나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들을 주의해야 한다우리 주님은 단지 신자들에게만 나타나셨다그다지 자주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부활 주일 후 승천하시기까지 약 40일 동안 4번 밖에 나타나시지 않았다), 나타나신 사건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을 볼 때 괴상한 점은 전혀 없다나타나신 사건들은 그 성격이 각각 다름을 뚜렷이 알 수 있다그 장소에 있어서나그 시간의 길이에 있어서나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있어서나사도들의 분위기에 있어서 다 다르다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로나타나셨고 그는 제자들이 이 사실을 확신하기를 바라셨다(24:39, 40; 20:27을 보라).


이 모든 기록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공상적인 주장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이와는 별도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흔히 제안되는 두 가지 이론은 환상설(幻想說)과 전신설(電信說, telegraph theory)이다그것이 환상적인 체험이라는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러한 상태를 이룩하기 위한 심리적인 조건이 있어야 한다즉 이 경우에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그들의 주님을 다시 뵈올 수 있다는 불타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사도들은 그러한 기대를 갖게 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부활절 아침에 무덤에 갔었던 그 여인들은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였고 마치 영을 보는 것 같이 생각했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을 즉시 단호하게 깨뜨리셨다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걸어온 분이 주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침울해 있었다더구나 주님의 나타나심은 엄숙했었고거기에는 흔히 비정상적인 환상 체험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부가물들이 없었다주님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각 다른 무리들에게 나타나셨다그럴지라도 환상적 가설에 의하면 이 모든 것들 가운데는 각각 환상적 체험이 있었다고 주장될 것이다그러나 당시 교회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고 행동적인 것이었다성경에는 제자들이 신비적 체험을 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마침내 주님의 나타니심은 갑자기 중단되었다주님은 그렇게 자주 나타나시지 않았고 그것은 단지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바로 그 날까지"(1:21)만 있었던 일이다.


전신이론(電信理論; Keim, Streeter와 기타 사람들의 주장)이란 승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형체의 그림을 그 제자들에게 전신으로 보내셨는데이것을 제자들은 실제 부활하신 주님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하는 이론이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엠마오 도상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 때 주님은 하늘에서 걸어 다니시면서 자신의 육체적 임재를 전신으로 내려보냈고 그 때 제자들은 그 전신적 임재를 따라서 꾸준히 움직였다고 할 수 있는가그리고 그 후에 식사할 때도 주님은(하늘에서식탁에 앉아 떡을 떼셨다는데 그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할 수 있는가또한 예수님은 그 대화(對話)도 하늘에서 땅으로 전신으로 보내셨다는 말인가아니다주님이 그 제자들 가운데 함께 계셨다는 사실은 모든 기록이 나타내 주고 있다그러나 만일 이것들이 다만 그의 영상(影像)에 불과한 것이었다면주님은 고의적으로 사도들을 속였다는 것 밖에 안된다.


이 나타내심에 관련된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체(復活體)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그리스도의 부활체는 보통 사람의 몸과 너무나 흡사해서 한 번은 제자들이 그를 보았을 때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24:16). 그리고 호수가에서도 그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 알지 못했다(20:14). 사실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주님이 자기를 부르시기까지는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착각했었다주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손과 발을 내보이셨다(24:20; 20:20, 27). 한번은 주님이 음식을 잡수시기도 했는데물론 부활하신 주님으로서는 반드시 식사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24:43). 다음과 같은 밀리간(Milligan)의 말은 지혜롭다. "부활하신 주님이 식사하셨던 일에 대해서 나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할 수도 없고그 해답을 알지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한편 그리스도의 몸은 물질의 장벽을 '뚫고통과하실 수 있었다무덤 속에서 수의를 뚫고 통과하셨으며돌을 굴리지 않고도 무덤을 빠져 나올 수 있었으며부활 주일 밤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의 벽도 그냥 통과하실 수 있었다주님은 또한 제자들 가운데서 즉시로 사라지실 수도 있었다(24:31, 36). 우리 주님은 이러한 몸으로 승천하셨고교회는 항상 승천하신 주님을 인간의 형체를 가지신 분즉 영광의 주님이실 뿐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로 여겨 왔다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그 몸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있던 그 몸(시체)과 동일한 것이다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그 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었다물론 그 변화의 정확한 성격은 나타나 있지 않다아마도 우리는 복음서 자체에서보다도 우리의 미래 부활체에 대한 바울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부활체에 대해 더욱 더 알 수 있다.

 

4. 천사의 나타남


모든 복음서에는 주일 날 이른 아침에 주님이 부활하신 후 어느 특정한 시간에 천사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28:1-8; 16:5-8; 24:3, 9, 22, 23; 20:11-13). 여기서 천사가 나타나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예고할 때 천사들이 나타난 것이나 예수님이 시험받으실 때 마귀나 나타난 것 등의 사실처럼 별 문제될 것이 없다.

 

5. 변화된 사도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네 번째의 기본적인 증거는 사도들이 돌연히철저히 그리고 영구히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부활절 아침 이후 얼마 동안 지나는 동안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과연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케 되었던 것이다십자가 사건 직전에만 해도 겁쟁이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다 사라져버리고 이후로는 결코 다시 겁장이가 되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용기가 가득 차서 해가 지나 순교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들이 다니면서 도처에 그리스도와 부활을 전파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그러자 그들은 박해와 압제와 투옥됨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순교하기까지 했다어떠한 것도 그들과 그 후계자들을 세상 끝으로 쫓아내지 못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견디었던 것이다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가 정말로 하나님에 의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였던 것이다성령님께서 그들의 확신을 확증해 주셨으며 그들이 이 진리를 전파하는 것은 "큰 권능으로"(4:33) 되어졌다이러한 확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되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도 다 같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그리하여 교회는 급속도로 번창하여 지중해 전지역에 확장되었다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들이었기 때문에 그 세대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파할 수 있었다. (24:48; 1:8)

 

6. 주의 날(주일)을 지킴


부활에 대한 또 하나의 훨씬 더 중요한 결과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그리고 이것은 그 이후 기독교권 내에서는 전 세기를 통해서 증거 되는 것인데), 이것은 예배드리는 날이 유대인이 고대로부터 지켜 왔던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 주일의 첫 날'(안식후 첫날 -한글 개역 성경)이라는 어구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다가 부활절 새벽으로부터 나타난다공관복음의 기자들이나 사도 요한도 부활절 사건의 기사에 이 어구를 기입해 놓았다. (28:1; 16:2, 9; 24:1; 20:1, 19; 20:7; 고전16:2도 보라)

 

7. 초대 교회에서 부활을 전파함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함으로써 세계가 뒤엎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오순절 날에 행해진 첫 번째 설교는 단지 선지서들과 비어 있는 무덤과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로부터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라는 사람을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대의 사도들은 자기들이 "이 일의 증인들"로 위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진지하게 여겼다(24:46, 47; 부활을 전파한데 대한 다른 참고 성경 구절은 행2:32; 3; 15; 5; 32; 10:39; 13:31, 32; 26; 16을 보라). 바울이 팔레스틴과 수리아의 통치자들 앞에서 하게 된 여러 가지 변론에서 계속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 사실에 대한 것이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심문을 받는다"(23:6; 24:25; 25:9; 26:8, 23)

 

<6>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신학적인 사항들

 

1. 부활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진실을 확증하는 것임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하고 자세하게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에 족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는데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그렇다면 그밖에 그가 말씀하신 모든 것도 역시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그의 피는 속죄하기 위해 흘린 것이라는 사실그는 위에 계신 아버지(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과 누구든지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정죄받을 것이라는 사실빈 무덤과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영원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셔서 우리가 자기에게로 영접하시며죽은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무덤으로부터 살아나 올 것과그는 온 인류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라는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이면서 그의 입술로부터 나온 어떤 말씀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과 부활의 관련성


바울은 우리 주님의 지상 생활 직후의 세대에서조차도 믿어졌던 교회의 보편적인 신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언급하고 있다즉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존재로서는 다윗의 아들로신적인 존재로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사실을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선포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살아나셨다"(4:25)고 주장한다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의롭게 여기신 신적인 행위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자의 부활에 의해서 보증되고 확증되었다.

 

3.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의 부활과의 관련성


베드로전서는 세상의 어떤 다른 종교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송영(頌榮)으로 시작된다. "칭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 . "(1:3,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빼 보라그러면 이 구절이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우리에게 이러한 산 소망이 있게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데그는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셨으며 이제는 부활의 영광 가운데 살아 계신 분이시다그러나 이것도 만일 그를 믿는 우리가 그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연결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죽음과 생명그리고 그의 부활과 연합되어진다우리는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함께 또 우리도 살리실 것을 확신하다(고후4:14). 바울 사도는 주장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그 안에서 자는 자들도 모두 망할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그는 긍정적으로 확언하기를,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느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는 자요"(고전15:20-23). 그리스도인은 다시 그리스도의 생명을 향유한다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난다그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그는 이 세상 사람의 반대와 미움을 사기도 한다그는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그와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있다.

 

4. 예수님의 부활이 신자의 현재 생활에 끼치는 영향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나타난 능력 안에서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부활하신 주님과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성은 로마서 6장의 기본적인 주제이며 그 핵심은 4, 5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결론을 짓는다. "이와 같이 너희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 .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 (11, 13또한 롬7:4; 8:11; 1:18-20; 3:10, 11; 2:13도 보라)

 

<7> 신자의 부활

 

1. 부활한 몸의 성격


그리스도인 신자는 자기가 장차 부활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그 이유는 이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회의 많은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의문을 종종 가질 수 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고전15:35).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의 계시를 떠나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그 중에 가장 정교한 대답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린도전서 15장의 첫 부분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것으로서 그 확실성과 중요성을 기술한 것이다중간 부분은 부활의 순서에 대한 문제이고 그 마지막 부분은 우리의 부활한 몸에 관한 것이다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영광 중에 갖게 될 그 몸에 관한 네 가지의 기본적인 진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그 몸은 지상의 몸과 동일한 것이지만 '동일하다'는 말을 정의하는 데는 주의할 점이 있다그 몸은 썩지 않고아름다우며능력이 있는 몸일 것이다그 몸은 오늘날 우리의 자연적인 몸과는 대조적으로 신령한 몸일 것이며주 예수님의 몸과 같을 것이다지금 우리가 가지고있는 몸과 부활의 몸과는 서로 모습이 닮을 것이다우리는 부활의 몸 안에서 편안하게 거할 것이며서로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죄 때문에 죽음을 당한 그 몸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다여기서 하나의 신비가 일어난다이 부활의 몸은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이룩될 것인가예를 들어 밑의 줄기가 땅에 묻힌 밀의 싹으로부터 나온다면우리 안에 감추어진 어떤 싹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부활의 몸을 이루어 주실 것이 아닌가이것은 위리엄 밀리간(William Milligan)의 견해였다.

 

2. 부활의 시기


고린도전서 15특히 20-28절에는 신약성경의 다른 어떤 구절에보다도 부활 시기에 관한 더 많은 자료들이 나타나 있다바울은 다음과 같은 사건들의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그리스도 자신은 첫 열매이고우리는 그의 강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통치하시다가 마침내 모든 원수들을 그의 발아래 둘 것인데최후의 원수는 사망이다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셨을 때 그는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 드릴 것이며그 자신도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셨던 하나님께 복종하실 것이다.


부활이란 인간의 역사를 당연하게 귀결짓는 그러한 어떤 것이 아니다그것은 초자연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다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그리스도께서 '바로부활이시다우리의 몸은 그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다죽은 자들이 인자(人子)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이 모든 것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가 되시는 그 분의 인격 및 사역과 관련되어 있다인간의 역사철학그리고 과학으로써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고그리스도와 상관없이는 아무도 이러한 영원한 것을 소망할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다.

 

<8>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관한 진리를 반대하는 주장들

 

1. 신약성경에서


신약성경에서 세 종류의 무리들이 부활을 부인했었다그 첫째는 사두개인들 이었다(22:23; 23:6-8). 두 번째는 고린도 교회에서 있는 몇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이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이것은 사두개인들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초기 영지주의(靈知主義)적 신앙으로부터 비롯된 것(고전15:12)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마지막으로 바울은 특별히 두 사람 후메내오와 빌레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부활이란 과거에 지나가 버린 사건일 뿐이라고 가르쳤다(딤후2:17, 18).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다른 어떤 사람들도 성경에 약속된 바로 그 부활이란 영적인 부활이거나 중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미 그리스도인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이고 기대되는 바 몸의 부활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2. 고대 기독교 이단들


영지주의적 이단들에서 부활을 부인한 것 때문에 교회는 오랫동안 괴로움을 겪었다그래서 이러한 이단들에 대한 언급들이 고대 교회 교부들의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이러한 언급에 대해서는 이레니우스(Irenaeus)의 [이단 논박]; 바실리데스(Basilides);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의 [대화], 터툴리안(Tertullian)의 [취득시효](取得時效)를 보라교회가 이러한 이단적 가르침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3. 자연신론자(自然神論者)들 중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기사에 대해서 근세에 이루어진 최초의 공격은 자연신론자들의 공격이었다그것은 특히 죤 놀란드(John Toland, 1670-1722), 안토니 코린즈(Anthony Collins, 1676-1729), 토마스 울스톤(Thomas Woolston, 1669-1731), 그리고 매튜틴탈(Matthew Tindal, 1656-1733)의 작품들 속에서 이루어졌다이 사람들은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는 신앙이 내포된 성경 계시의 모든 주요한 사항들을 공격하였다그리고 그들은 소위 에언의 성취와 우리 주님의 육체적 부활을 포함한 주님의 기적들에 대해서 주로 공격해 왔다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신론도 수많은 변증적 문헌들에 의해서 질식되어졌다이 변증 문헌들 중에 어떤 것들은 어떤 자연신론자들만큼이나 논증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졌다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가 바로 Gilbert West의 [부활의 역사와 증거에 대한 고찰]이다.

 

4. 불란서와 독일의 합리주의적 문헌에서


자연신론이 완전히 종식되지 아니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기본적인 진리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복음 비평'으로 알려져 있다이것은 독일 학자 라이마루스(H. S. Reimarus, 1694-1768)와 기원을 같이 했는데 그는 복음서의 역사성주로 부활의 역사성을 공격하는 많은 책들을 남겼다이것을 독일의 작가 레씽(G. E. Lessing)과 그 후의 볼펜뷰텔(Wolfenbuettel, 1774-1778)의 도서관원들이 출판했다.

 

5. 19세기와 20세기의 성경 비평


라이마루스의 영향은 아직도 사라지지 아니해서 19세기의 가장 강력한 공격을 시도한 스트라우스(David F. Strauss, 1808-1874)를 낳았다스트라우스는 그의 작품인 [예수의 생애]에서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1세기에 유행하던 신화적 주제로부터 구성된 동양의 전설이나 신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이러한 견해는 일부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작품들에서는 아직도 발견되고 있다. 20세기 중엽에 또 다른 형태의 공격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가해졌다이것은 신약성경을 비신화화(非神話化)하려는 루돌프 볼트만(Rudolf Bultmann)에 의해서 아주 강력하게 추진되어 왔다그는 육체적인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부인했다물론 그는 빈 무덤에 대해서는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다만 솔직하게 "부활이란 과거 역사상의 사건은 아니다"라고 했다그러나 교회는 부활이라는 주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설교(전도)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만일 부활절 날의 사건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십자가 사건에 부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이다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신앙이 사도적 설교에로 이끌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불트만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닌 사건들을 제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말하기를 그 이유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란 역사상 발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그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대치되었다그것들은 상징들이다상징의 배후에 역사적 실재가 있다고 믿어졌던 것이 무너졌지만 20세기에도 상징적인 진리를 견지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신앙은 있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실재적인 부활은 없다.

 

6. 소련 백과사전에서


러시아 공산당 선전지에는 부활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소련의 [대백과 사전]에는 그리스도의 역사성조차도 부인되어 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라는 항목(1929년에 벤손(D. V. Benson)이 번역한 소련 대백과 사전)에는 니케아 신조의 부활교리가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이 교리는 과학적인 정당한 지식과 아주 결정적으로 모순이 됨을 발견할 수 있다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죽음이란 불가피한 것으로서 개인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파멸되는 것이다". 그 기자는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리"를 "모든 미개한 사람들에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원시적 신앙"이라고 언급하고 있다이러한 언급에 대한 근거는 주어져 있지 않으나 이 항목은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지어지고 있다. "실제적으로 말해서 오늘날의 교회는 영혼의 불멸성만을 설교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 신학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철학적 정신주의(精神主義)를 육체적 생명의 재생 가능성을 믿는 원시 신앙과 일치시키는 데 입장을 완전히 같이 하지는 않는다".

 

7. 현대 과학의 불신앙


현대과학이란 미명 아래 부활이 부인되는 것은 비단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지배를 받는 국가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미국의 저명 인사 명부에 올라 있는 생물학자와 물리학자들 가운데서 정선된 521명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228명이 응답을 했는데그 중에 36명은 부활 신앙을 믿는다고 확언했고, 142명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부인했으며, 28명은 의견을 말하지 않았고, 23명은 모르겠다고 했다이것은 오늘날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들 가운데서 5분의 1만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의미이다신교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 88명 중에서 41명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7명은 모른다고 했으며, 12명은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만일 우리세대에서 기독교 교리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재생되지 않는다면부정적인 답변의 비율은 점점 더 증가될 것이다.


비신화화(非神話化)라는 새로운 학파의 맹공격과 러시아의 무신론적 교육의 맹공격과 서양의 자연과학이 점점 지배적인 추세임을 볼 때 기독교회는 육체의 부활을 믿는 신앙에 대한 이유를 완전히 재검토하거나 아주 부인되고 있는 이 두 가지 위대한 진리(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를 알아보는 일을 착수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부활의 진리들이 제외된다면 그와 관련된 많은 중요한 진리들도 헛된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확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은 "내가. . .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 . 이는. . .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그리고 "몸이 다시 사는 것을. . . 믿사옵나이다"라는 신앙을 고백치 못할논쟁의 여지가 없는 어떤 기본적인 이유가 현대 사상에 의해서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9> 부활전 논쟁

 

성 금요일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초대 교회에 있어서 당연 지사였는데그 날짜를 결정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주로 4가지가 논쟁점이었다첫재로어떤 사람들이 주장하기로는 '개략적인 날자들'(day)을 지키려고 했다('4분 십진법' (Quarto-decimanism)을 보라). 둘째로안디옥과 알렉산드라아 간에는 날짜 계산법에 차이가 났다안디옥은 유대인의 계산법을 따랐고반면에 알렉산드리아는 독자작인 계산법을 고안해 냈다세 째로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간의 상위점(相違點)이 발생했는데이것은 니케아 회의(A. D. 325)에서 알렉산드리아의 계산법을 따르기로 통일했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계산법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네째로불란서와 영국교회들은 옛날 로마의 역법을 고수했는데로마는 A. D. 525년에 알렉산드리아 역법을 따르기로 공식적으로 채택했으며영국에서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기는 바로 휘트비(Whitby)에서였다부활절 논쟁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점은 첫 번째 사항이었고 나중 것들은 단지 계산법과 접속의 문제에 불과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