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 하서 전반의 교차 대구 구조의 이해와 열왕기서의 독립성 논증

열왕기서는 성경의 분류상 역사서에 속하지만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나 이스라엘 열왕들의 행적만을 기록한 책은 아니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의 왕정사와 이스라엘 열왕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을 통하여 본서의 독자들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열왕기서는 B.C. 561-537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때이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하더니 남북 왕조가 점점 쇠락(哀落)의 길을 걷다가 급기야는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 의하여 B.C. 722년에 멸망하고, B.C. 586년에는 남유다마저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여 그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것은 ‘왜 여호와의 선택된 백성이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해야 하는가?’였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램이 멸망하고 성전마저도 파괴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까지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열왕기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러한 의문에 답을 주어 그들에게 믿음과 정체성을 다시 심어주기 위해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열왕기서에서 기자가 답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민족의 몰락의 원인은 한 마디로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역사의 주권자이시고 사랑의 주이신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왕정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되 신정 왕국의 대리 통치자로서 선민의 대표자였던 여러 왕들의 행적, 곧 다윗 사후 솔로몬의 행적으로부터 시작하여 분열 왕국 시대 여러 왕들의 행적을 가감 없이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물론 그 사이사이에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사역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왕들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아사나 여호사밧과 같이 남유다 왕들 가운데 선한 왕들의 행적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인 논조는 남북 왕들의 악한 행적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참 신이 아니거나 또는 언약에 신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의 타락과 범죄 때문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열왕기서 기자가 이처럼 이스라엘의 몰락의 원인이 그들의 타락과 범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멸망의 원인을 밝혀 그들의 멸망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본서 저자가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그들의 범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비록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자신들이 몰락하게 된 원인인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절대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열왕기서 기자는 이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독특한 하나의 구성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열왕기서 47장 전체의 내용을 하나의 완벽한 교차 대구 구조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 기법은 사무옐서나 역대기서 등 다른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열왕기서만의 독특한 기록 기법이다

물론 사무엘서에도 어느 특정 부분에서는 교차 대구 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무엘서 전체가 교차 대구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교차 대구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열왕기서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열왕기서의 교차 대구 구조는 열왕기서의 독립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열왕기서의 교차 대구 구조를 살펴보고 그에 근거하여 열왕기서의 독립성도 함께 논증하기로 한다.

1. 열왕기상 · 하서 전47장의 교차 대구 구조 분석

왕상 1-11장      A   솔로몬의 통일 왕국
왕상 12-14장        B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왕상 15,16장            C    남북 왕국의 열왕들
왕상 17-왕하 13장         M    엘리야와 엘리사
왕하 14-16장            C’    남북 왕국의 열왕들
왕하 17장             B’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8-25장     A'     잔존 남유다의 역사 및 멸망

A. 왕상 1-11장 : 솔로몬의 통일 왕국

먼저 A는 솔로몬의 즉위와 왕권 강화 및 솔로몬 치하의 신정 왕국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솔로몬의 타락으로 인한 신정 왕국의 변질을 다룬다. 그런데 이처럼 열왕기가 통일 왕국 제3대 왕 솔로몬의 즉위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앞선 역사서인 사무엘서가 통일 왕국 제2대 왕 다윗의 노쇠 함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열왕기서가 사무옐서의 연속된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내용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만 열왕기서의 저자가 사무엘서의 기록을 전제한 상태에서 열왕기서를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사무엘서가 열왕기서가 기록될 당시에 이미 그 정경적 권위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A에서 솔로몬의 사적이 무려 11장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 전역사에 있어서 최고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솔로몬 시대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열왕기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장차 회복할 나라의 전형을 제시하고자 이처럼 자세한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특히 솔로몬의 사적 가운데서도 성전 건축과 관계된 내용이 네 장(왕상 5-8장)에 이르며, 이 밖에 솔로몬의 일천 번제(왕상 3:1-15)와 다윗 언약의 갱신(왕상 9:1-9) 등의 내용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취하여야 할 행동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 다.

그러나 A의 말미인 왕상 11장에는 이방인과의 정략 결혼으로 인한 솔로몬의 타락이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도 예언되고 있다. 이것은 A에 이어질 열왕기 전체가 암울한 내용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더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신정 왕국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의 포로가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만든다.

B. 왕상 12-14장 : 이스라옐 왕국의 분열

여기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의 원인이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강압 정치에 있다는 사실과(왕상 12:1-15) 남유다 초대 왕 르호보암의 행적이(왕상 14:21-31) 소개되어 나오기도 하나 대부분의 지면은 북왕국 초대 왕 여로보암의 사적을 소개하는 데 할애된다.

즉 B는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우고 백성들로 그것을 여호와로 섬기게 하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는 등의 악한 종교 정책을 시행한 여로보암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왕국의 열왕들의 사적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B 이하의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병행 기사가 기록된 역대기서와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역대기서는 솔로몬 이후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무시한 채 남유다 왕들만을 집중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서도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성전 예배를 중시한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 등의 사적을 보다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처럼 역대기서가 다윗의 후계자인 남유다의 왕들만을 소개할 뿐 아니라 선한 왕들의 사적을 소개하는 데 치중한 것은 하나님은 한번 당신이 택한 백성에 대해서는 그들이 잘못을 범하면 징계는 하시되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임을 확신시켜 선민 역사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투철한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여 선민의 새 역사를 창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반면 열왕기서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악을 자행한 데 있음을 밝힘으로써 신학적 반성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므로 역대기서와는 달리 북이스라엘의 암울한 범죄의 역사를 보다 부각시킨 것이다.

이러한 열왕기서 내용 전체의 기본 방향이 B에서부터 잘 드러나고 있다.

C. 왕상 15,16장 : 남북 왕국의 열왕들

이 부분은 남북 왕국 여덟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다. 여기에서 남왕국의 왕은 아비얌(왕상 15:1-8)과 아사(왕상 15: 9-24)만 등장한다. 반면 대부분의 지면은 반란과 심판 경고 등으로 얼룩진 북왕국의 여섯 왕의 통치 역사에 할애된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의 영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망국의 한을 품고 이방의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M. 왕상 17-왕하 13장 : 옐리야와 엘리사

교차 대구 구조의 중앙에 위치한 M에는 선지자 엘리야와 그 후계자 엘리사의 활약상이 집중 소개된다. 물론 이 부분 역시 북이스라엘의 아합, 아하시야, 요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와 남유다의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요아스 등의 통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그 중심은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분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중심한 분열 왕국 시대 중반기의 역사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이 부분이 교차 대구 구조의 중앙에 위치할 뿐 아니라 분량이 열왕기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지면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비롯하여 몇 사람의 사적을 소개하는 데에만 할당된다.

먼저 북이스라엘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악한 왕이라 할 수 있는 아합과 그 왕비 이세벨에 대한 기록이 길게 등장한다. 또 아합 왕가를 몰살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연 예후에 대한 기록 역시 길게 등장한다

이러한 지면 할당은 먼저 북왕국 멸망의 주요 원인인 우상 숭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합 왕실의 후원을 받은 바알 숭배자들은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 및 북이스라엘 제10대 왕 예후와 남유다 제8대 왕 요아스에 의하여 직결된다 이는 악이 득세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며,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악에 대 하여 공의로써 심판하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부분에는 선지자들의 수많은 이적이 기록됨은 물론 아람과의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승리와 예후의 혁명의 배후에 선지자 엘리사가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어 소개된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세속 권력자인 왕보다 그 권위에 있어서 더 우위에 있음을 독자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속 권력의 통치자보다 영적으로 더 권위가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게 M에 나오는 남유다의 요아스의 즉위와 종교 개혁의 배후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음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M에서는 우상 숭배자들의 멸망을 통하여 우상 숭배가 결국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 멸망의 근본 원인이 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사람들의 활약상을 통하여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암울한 상황도 반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바벨론에 끌려간 열왕기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때 나라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C’. 왕하 14-16장 : 남북 왕국의 열왕들

C’는 남북 열왕들의 사적을 다룬다는 점에서 C와 대응된다.

M이 무려 19장을 차지하는 반면, C와 C’를 합하여도 5장에 불과하다는 것은 열왕기서 기자가 남북 왕조의 열왕들의 사적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세속적 업적이 아니라 종교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기록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열왕기서 기자가 일반 세속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솔로몬의 행장’(왕상 11:4)을 소개할 뿐 아니라 ‘유다 왕 역대 지략'을 15회,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을 17회나 소개하여 세속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료를 참고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 난다. 즉 열왕기서 기자는 신정 왕국의 멸망이 정치적 · 군사적 이유가 아니라 종교적 타락 때문 이었으며, 나라의 회복 역시 여호와 신앙의 회복에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종교적 측면으로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열왕들의 사적은 C와 C'에서 간략하게 다룬 것이다.

B’. 왕하 17장 : 북이스라엘의 멸망

B에서는 남북 왕국의 분열 과정이 기록되었으나 이에 대응되는 B’에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소개된다. 이미 앞서 밝혔듯이 B에는 여로보암의 잘못된 종교 정책이 중점적으로 기록되었다. 즉 B단락의 핵심은 금송아지를 만들며 산당 제사를 활성화시킨 여로보암의 배도였다. 그리고 본서 저자는 B에 대응되는 B'에 북이스라엘의 멸망 기사를 배치함으로써 북이스라엘 멸망의 근본 원인은 B에 나오는 바 바로 이와 같이 북왕국 초대 왕 여로보암에 의하여 잘못 세워진 종교 전통에 의한 것임을 드러낸다.

한편 B'에 있어서도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자체는 17:1-6에서 북이스라엘의 제19대 왕 호세아의 통치 개요를 소개하는 과정 가운데 간단히 언급된다.

반면 북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원인 분석은 17:7-23에 걸쳐 길게 기술된다. 이는 열왕기서 기자의 주된 관심이 단순히 북이스라엘 멸망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이 갖는 신학적 의미를 독자들에게 알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신앙관과 역사관을 갖도록 하는 데 있었음을 시사한다.

A’. 왕하 18-25장 : 잔존 남유다의 역사 및 멸망

A가 솔로몬 시대의 통일 왕국의 역사를 다루는 반면 대응되는 A'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잔존 남유다의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A가 번영의 역사인 반면 A'는 몰락의 역사란 점에서 양자는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특히 A에는 솔로몬이 정적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왕위를 차지하는 내용이 기록된 반면, A'에는 타국의 강압에 의하여 보위에서 쫓겨나는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치욕이 기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뚜렷이 대조되는 것은 A에는 성전 건축 기사가 기록된 반면, A’에는 성전의 파괴 기사가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큰 틀에서 보자면 열왕기는 성전 건축에서 성전 파괴로 나아가는 역사이며, 영광스러웠던 통일 왕국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분열되었다가 우상 숭배로 인하여 각각의 왕국이 멸망에 이르는 역사이다.

본서 저자는 동심원 구조로 구성한 열왕기서의 가장 외곽에 있는 A와 이에 대응되는 A'에 바로 이러한 내용을 배치하여 열왕기서 전체의 핵심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 열왕기서 전반의 교차 대구 구조가 보여주는 열왕기서의 독립성

구약 히브리 성경의 역사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의 묶음이고, 다른 하나는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의 묶음이다. 학자들은 전자를 ‘신명기 역사서’라 부르고, 후자를 ‘역대기 역사서’라 부른다. 그리고 전자를 소위 선지자적 관점(prophetic point of view)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고, 후자를 소위 제사장적 관점(priest point of view)에서 기록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신명기 역사서’로 분류되는 역사서 가운데 사무엘서와 그에 이어져 나오는 열왕기서는 내용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연결되고 있다. 즉 사무옐서가 사사 시대 말기부터 다윗 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면, 열왕기서는 다윗을 이은 솔로몬 시대로부터 남북 이스라엘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내용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 구약 성경 역사서의 분류 상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하나의 분류에 속한다는 점, 기록의 관점이 같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열왕기서를 하나의 독립된 책으로 보지 않고 사무엘서에 연속되는 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열 왕기서가 하나의 독립된 책임을 거부하는 가장 대표적인 실례를 들자면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LXX)을 들 수 있다. 히브리 원전에 따르면 구약 역사서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정사를 중심으로 기록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는 각각 상 · 하의 두 권으로 기록되지 않고 모두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즉 구약 히브리 성경은 단순히 각각 ‘사무엘(사무옐서)’, ‘왕국들(열왕기서)’, ‘그 때의 사건들(역대기서)’로만 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가진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세 권의 역사서가 각각 상 · 하로 구분된 것은 70인역(LXX)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70인역 성경은 히브리 원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사무옐서에 대해서는 각각 왕국기 1과 왕국기 II 로 명명하고, 열왕기서에 대해서는 각각 왕국기 m과 왕국기 N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70인역의 이러한 구분은 내용의 연결성과 기록 관점의 유사성에 따른 임의적인 분류일 뿐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완전히 구분되는 두 권의 독립된 책이다. 비록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내용적으로 연결되고, 또 기록 관점이 같다고 해도 두 책은 약 400년 간의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즉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직후인 B.C. 930년경에 기록된 반면, 열왕기서는 남북 이스라엘 왕국 가운데 북이스라엘이 B.C. 722 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잔존 남유다마저도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인 B.C. 537년경에 기록된 것이다.

특히 열왕기서가 독립된 책이라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열왕기서가 사무옐서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확증된다. 즉 열왕기서는 47장 전체가 하나의 완벽한 교차 대구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열왕기서가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지닌 한 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열왕기서는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바벨론에 거주하였던 한 익명의 저자가 사무엘서에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정사를 기록함에 있어 B.C. 970년에서 B.C. 586년에 이르는 긴 역사를 통일성을 지닌 치밀한 구성으로 저술한 책인 것이다.

특별히 열왕기서 기자는 열왕기서 전체를 다른 성경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교차 대구 구조로 제시하는 방법으로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열왕들의 죄악상을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이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동시에 요소 요소에서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선민의 역사 가운데 부단히 당신의 백성들을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각시켜 이방 나라의 포로된 암울한 상황에 있었던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 그들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하였다.

즉 열왕기서는 북이스라엘에 이어 남유다까지 멸망한 상황에서 솔로몬의 행적으로부터 분열 왕국 시대의 여러 왕들의 행적을 조망하여 과거의 죄악상을 통렬하게 비판함은 물론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선민의 역사를 이끌어온 하나님의 은혜를 각성시킴으로써 뼈저린 회개를 촉구하며, 이러한 회개를 경유하여 회복의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왕기서를 대함에 있어서 사무엘서와 구별되는 그 독립성과 저작 목적을 깨닫고 그것이 주는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옥스포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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