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에 나타난 기독론과 종말론 연구


1. 서 론


히브리서가 어려운 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래서 성경공부와 성경읽기에서 열외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형식이 특이하고, 어떤 배경에서 쓰여졌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있음을 발견한다. 신학적이거나 학술적인 논문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배교라는 긴급한 상황에 있는 자들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목적으로 기록한 설득을 위한 저작으로 보는 경향이 다분히 있다.


그래서 두가지 줄기로 나눌수 있는데 첫째가 기독론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우월성, 그리고 희생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우월성이라는 세가지 중심주제가 나타나고 있다(히1:1-10:18). 둘째는 종말론의 입장인데 하늘의 은사와 내세의 능력을 현세에 맛본다는 실현된 종말론과 그 완성은 재림때에 이루어진다는 미래 종말론 등 종말론에 대한 교훈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는 기독론을 통해서 어떻게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또한 종말론이 히브리서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연구하고 또한 기독론 입장의 구절정리와 종말론적 입장의 구절들을 정리하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2. 기독론 입장


히브리서는 1장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우월성, 그리고 희생제물로서의 그리스도의 우월성이라는 세 가지의 중심주제가 전개되고 있다(히1:1-10:18) 즉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성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던 유대교에 대하여 ‘기독교의 우월성’이라는 주제를 전개시킴에 있어서 그 주안점을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에 두어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좀더 세분화하면 선지자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1:1-3),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3:1-4:13), 그리고 아론보다 우월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4:14-10:18)로 나눌수 있다.


10장 19절부터는 ‘새롭고 산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특징과 그 중심개념이 ‘기독론’, 특히 ‘대제사장 기독론’이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결론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전통적인 견해로 자리잡고 있다. 히브리서의 기독론에 있어서 중심되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신분을 아들로 규정해 놓고 그를 천사와 모세와 비교 논증해 가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저자가 예수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직’과 비교하면서 본서의 기독론을 그리스도의 사역문제와 밀도있게 접목시키고 있다. 이점에서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다른 서신의 기독론보다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의 다른 어떤 책에서도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분명히 논증하지는 않는다. 바울조차도 대제사장, 제사장, 혹은 대제사장직에 대해 다룬 적이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반복적으로 예수를 ‘제사장’, 혹은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는 독자들에게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고하고 있다.(3:1)


그렇다면 이렇게 기독론 즉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에 물을 끼얹을 수 있는 두가지 유혹을 당하고 있다. 하나는 그들은 여전히 유대민족으로서의 신분과 종교적인 전통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 그들은 의식에 관한 율법과 절기, 음식에 관한 율법, 기타 등등을 계속 지키고 싶어 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방인 신자들보다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하나는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는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들을 핍박했다. 그들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유대교를 배반한 자들이요, 신성 모독죄를 저지른 사람의 추종자들로 여기면서 핍박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쫓겨나고, 자녀들을 회당 학교에 보낼수 없었고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직장까지 잃기도 했다. 이런 스트레스로 인해 유대인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계속 충성하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찰나이다.


또 한가지는 주후 60년경 로마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유대교는 합법적인 종교이나 전자는 단지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면 합법적이지 않은 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짐에 따라 유대인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할 것인지, 아니면 유대이교인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유대교인으로 남으면 안전했으나 그리스도를 따르면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했다.


사실 이들은 신앙적 삶의 실천을 경험했었다. 그들은 성도들을 섬김으로써 형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해 보였던 자들이었다.(6:9-10) 이뿐 아니라 이들 공동체는 그 태동단계부터 고난에 직면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고난을 잘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동정하였고 또한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기는 것까지도 기꺼이 감수했었다.(10:32-35)


하지만 영광스런 신앙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특히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탐구해 나가는데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 복음의 진수를 깨닫는데 있어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5:11) 그들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정도의 상당히 긴 신앙경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적 유아기를 넘어서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 상태로 되돌아갔던 것이다.(5:12) 특히 5장 13절의 ‘의의 말씀에 숙달되지 못한’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복음의 원리에 따른 신앙적 삶의 실천에 있어서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6:1-2)


그들이 이와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 이유는 히브리서의 전반적인 논점 전개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지적인 능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난에 대한 두려움(10:32-34)과 유대교에 대한 미련(4:14-10:39; 13:9-10)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금 순교를 당하기까지 고난을 당하지 않았다.(12:4) 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그러한 위협이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인내와 헌신이 약화되어 가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10:35-36; 12:3; 13:13) 또한 그들은 그들이 속하였던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전하여 주었던 교훈과 상충되는 유대교 전통들에 미혹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충족성과 영원성을 위협하는 유대교 율법들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이러한 경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 지도자들과 긴장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13:1,17) 이와같은 복합적인 상황하에서 그들은 중앙 공동체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가정교회 모임까지도 그만두고자하는 경향이 생겨나는 위기에 봉착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0:25; 13:24) 이러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던 그들에게 저자는 여러 가지 경고(2:1-4; 3:7-4:12; 6:1-8; 10:26-31; 12:15-17; 12:25-29)와 격려(6:9-12; 10:35-36,39; 12:3, 13:13)의 말로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도 그 서신을 읽을 사람이 아직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피를 흘려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아님은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그들이 갈등하는 요소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자 이 서신을 쓴 것이다.


이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님을 섬기려면 큰 댓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은 과연 그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 분인가?’ 그리고 나서는 그 대답이 ‘그렇다’라는 것을 전제로 자세히 설명해 가는 내용이 히브리서이다.



3. 종말론적 입장


1)실현된 종말론

히브리서의 종말론의 구조는 여타의 신약성소와 마찬가지로 ‘이미 실현된 종말론’과 ‘실현되지 않은 미래적 종말론’ 사이의 긴장 가운데 전개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서 결정적인 시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현재에 성취를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중대한 사건들은 분명히 미래와 관련된다.


히브리서 저자는 현재에 임한 실현된 종말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유는 서신의 초두를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라는 말로 출발한다. 현재의 종말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이미 실현되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확증하려 했던 것이다. 히1:2절의 “이 마지막 때에는”이라는 표현은 1절의 “옛적에”라는 표현과 비교된다. 여기서 말하는 “옛적에”와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시간적인 선후를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종말론적인 시대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들로 말씀하셨다”는 표현이 이를 증명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라는 표현에서 “이”라는 말은 모든 날 마지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종말론 차원을 함축한다고 볼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같이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실현된 종말론을 전개하고 있다. 다라서 히브리서 저자에게 있어서 예수는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분이요(2:9), 예레미야에게 약속한 새로운 종말론적 언약을 가져오신 분(7:22,8:6ff, 10:16ff)이며, 자신을 내어줌으로 죽음의 권세를 파괴하였고(2:14), 그리고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신 분이었다(9:15).


기독론에만 제한되어진 종말론이 아니라 교회론적에서도 찿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집이다(3:6),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가 되었다”(3:14),

그들은 자신들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4:2). ‘우리는 안식에 들어간다’(4:3). 그들은 자기들이 ‘거룩함을 얻은 자(10:10)’로 휴즈는 말하고 있다.


공동체에 권면한 구절에서도 찾아보게 되면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라고 성도들에게 말하면서(12:2), 참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22)고 권고한다. 바렛트는 이 인용구의 “들어갈”이라는 말을 주로 길 자체를 표현하고 들어가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히브리서는 새롭고 산 길로 나아간 자들은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3:1)이라고 부리기도 하며,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성도들이라고 한다(6:4,5) 여기서 성도는 실현된 종말론적 축복을 맛본 존재로 규정된다.


가장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세상의 종말의 시작을 선언하는 표현이 히9:26절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여기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시기를 언제로 잡고 있나? ‘세상 끝“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의 성육신의 개념이 명확하게 나타나며 또한 예수의 성육신 사건이 세상 끝에 실현되었다는 의미도 분명한 것이다. 이런면에서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공관복음이나 바울서신에 나타난 종말론적 구원의 구조로서 예수의 초림으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주장과 외견상으로 동일한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종말론은 “오늘”을 강조하여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3:7,15절과 4:7등에서 나타나는 “오늘”이라는 것의 앞에 관사가 있어 저자 당시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재림하기 전까지의 기간, 즉 현재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기간에 공동체는 사랑과 선행을 힘쓰며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달려 나아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2) 미래적 종말론

히브리서의 종말론에서 미래적 차원이 상당히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논증없이 죽은 자의 부활(6:2,11:35), 장차 올 심판(6:2,10:27,12:23) 등의 미래적 사건들을 말하기도 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종말의 완성이 예수의 재림으로 성취될 것을 명확히 하면서 인간이 죽은 후에 심판이 분명히 있듯이 그리스도의 초림 후에 재림이 분명히 있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9:27). 즉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이란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저버릴 수 어 없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벌카우어가 히브리서 9:28절을 해석할 때에 ‘미래에 대한 약속은 과거의 사건들과 불가분리의 관련성을 맺고 있다’고 한 것은 히브리서에서의 종말론의 미래적 측면을 더 강조한 것이라 볼수 있다.


구약의 이사야 26장 20절을 인용한 히 10:37절의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에 함축된 뜻은 이사야서의 내용이 구약시대의 성도들에게 메시야의 초림에 대해 예언한 것처럼 히브리서에 인용된 같은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실이는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메시야의 명칭인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 재림의 확실성을 초림의 확실성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실 이”는 두 단계를 통하여 강림하게 된다. 첫단계가 그의 백성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희생제물로 드리기위해 오신 초림이요, 둘째 단계는 모든 사람의 주와 심판자로 세상 끝에 오실 재림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히브리서 저자는 미래의 종말을 더욱 구체화 시키고 있다. 성서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바라는 것들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때요(히11:1),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때이다(히4:3-11). 히브리서 4장으로부터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안식의 모형임을 알수 있다. 그래서 이때는 성도들이 본향에 도달하는 때요(히11:35), 더 좋은 것의 완성을 받는 때이다(히11:39,40). “여기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고 있다(히13:14)”.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 재림의 때를 축복의 시기로 죄와 상관없는 때 즉 미래적 종말론으로 표현한 것이다.


1:2, 아들, 만유의 후사, 모든 세계를 지으신 분

7:24, 영원히 계신 분

1:3,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본체의 형상,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 분, 죄를 정결케 하시는 분

7:25,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분,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

1:4, 천사보다 뛰어난 분, 천사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신 분

7:26, 거룩하신 분,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

1:5, 아들 하나님이 낳으신 분

7:27,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신 분

1:6,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분, 천사가 경배

8:1, 하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

1:9, 의 사랑, 불법 미워함, 동류들보다 승하신 분

8:2, 성소와 참 장막을 부리는 자

2:9,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분

8:6, 언약의 중보

2:10,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신 분

9:11,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분

2:11, 주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시는 분

9:12,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이루심, 단번에 성소들어감

2:17,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신 분, 백성의 죄를 구속

9:14,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분

2:18, 시험받아 고난당하심, 시험받는 자 도와주심

9:15, 새언약의 중보, 첫언약때 범한 죄를 속하려 죽으신 분,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는 분

3:3, 모세보다 더욱 영광 받을만한 분

9:24, 참 하늘에 들어가신 분,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분

3:6, 하나님의 집맡은 아들로 충성하신 분

9:26, 단번에 제사를 드려 죄없게 하시고, 세상끝에 나타나실 분

4:14, 큰 대제사장

9:29, 단번에 드리신바 되신분,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 분

4:15, 모든 일에 시험받은 자로되 죄없으신 분

10:10,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분

5:5,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시는 분

10:12, 한영원한 제사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

5:6,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10:13, 원수들이 자기 발등상이 될 때까지 기다리심

5:8, 받을 고난으로 인해 순종함을 배우신 분

10:14, 한제물로 거룩하게 된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심

5:9,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분

10:37, 잠시 잠깐후면 오실 이

5:10,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 칭함 받음

12:24, 새언약의 중보

6:20, 멜게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신 분

13:8,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

7:16, 무궁한 생명의 능력 좇아된 분

13:12,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며 고난받으심

7:17,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13:20, 양의 큰 목자

7: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분



4. 기독론 구절 정리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기독교인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서 이 서신을 쓴 것으로 발견할수 있다. 복음을 직접들어 믿음에 이르렀는데 여러 가지 제약조건으로 인해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복음에 대한 헌신이 약화되어 가는 위험에 빠져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었다. 힘겹고 고통스런 삶으로 인해 마음에 배교를 생각하고 있는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강력하게 언급을 해서 저들의 신앙을 고수하면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13:12-14),”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삶으로 돌아설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5. 종말론 구절정리


1:1-2, 현재의 종말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실현되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확증하고 있다.

2:9, 예수는 영광과 존귀로 관쓰신 분.

2:14, 자신을 내어 줌으로 죽음의 권세를 파괴하신 분.

3:1,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

3:6,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집이다.

3:7, 오늘날 성령의 음성을 듣는 자.

3:14,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가 되었다.

4:2, 복음 전함을 받은자가 되었다.

4:3, 우리는 안식에 들어간 자가 되었다.

6:4,5,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성도들.

7:22,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8:6, 더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

9:15, 새언약의 중보로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신 예수.

9:26, 자기를 단번에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신 분.

10:22,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실현된 종말론 구절

히브리서 기자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하는 구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도는 이미 종말론적 축복을 맛본 존재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공관복음이나 바울서신에 나타난 종말론적 구원의 구조로서 예수의 초림으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주장과 외견상으로 동일한 측면을 보이고 있을 확인할수 있다.



2)미래적 종말론 구절정리

4:3,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때이다.

6:2,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9:27,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9:28,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는 그리스도.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

10: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11:1,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는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때다.

11:35, 부활을 기대하면서 악형을 받는 것(본향에 도달하는 때).

11:39,40, 더 좋은 것의 완성을 얻는 때.

12:23,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13:14, 여기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가 쓴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리스도 재림의 때를 축복의 시기로, 죄와 상관없는 때로 보고 있는 것이다.



6. 결론


본 연구에서 히브리서가 보여주는 기독론과 종말론의 입장에서 연구를 해 보았다. 그 결과 기독론을 통해서 당시 기독교에 대해서 시대적 절망감에 빠져서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갈려는 자들의 마음을 잡고자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해서 저들을 다시 권유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시대적 종말론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해서 한번 확인해 봄을 통해서 당시의 분위기를 확인할수 있었다. 우리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의 몇가지를 결론 내릴수 있게 되었다.


첫째, 히브리서는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기독교 신앙탈선을 방지하고자 쓰여진 서신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둘째, 히브리서는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확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그러면서 히브리서는 종말론에 대해서도 강하게 강조하면서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래적 종말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지금 현실이 힘들고 어려워도 메시야를 고대하면서 나아가면 바라는 것을 이루고 완전한 승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기독론적 사고방식은 현재 믿고 있는 그리스도의 우월성 강조를 통해서 자신감있는 신앙생활 할 것을 강조하고 종말론적 내용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축복의 시기로, 죄와 상관없는 때로서 살게 될 것을 주장하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고싶은 메시지를 지금 현실에서 적용해서 우리의 헤이해진 신앙자세를 점검하고, 또한 종말론적 사고를 가지고 오실 그 이를 기대하면서 그 때에는 축복을 받고 그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 살수 있음을 고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본 연구를 마칠까 한다.



(참고문헌)


1. 윌리엄 L. 레인, “히브리서가 어려운 3가지 요인.”그말씀2000년1월, 서울:두란노, 2000.

2. 김필수, “히브리서에 나타난 기독론 특징연구.”석사학위논문, 감신대 선교대학원, 1990.

3. 양용의, "히브리서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그말씀 200년 1월, 서울:두란노, 2000.

4. F.F 부르스, 히브리서, p188-190

5. 김정준, 히브리서(대한기독교서회, 1964), 247, 256-276

6. 한천설, “히브리서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 그말씀 2000년 1월, 서울:두란노, 2000.

7. 캐런 C. 힝클리, 이야기로 엮은 성경, 네비게이토 출판사, 1998

8. 아가페성경사전 편찬위원회편, 아가페 성경사전, (아가페, 2001.4)

9. 박창영, “히브리서에 나타난 종말론과 윤리.” 성결신학연구, no.4 (1999): 143-155.

10. Barrett, "Eschatology of the Epistle to the Hebrews,"

11. P.E.Hughes, A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Hebrews(Grand Papics:Eerdmans,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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