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시작된 역사적 기록
항간에 주일에 대한 오해들이 많이 있으므로 일요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어 졌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일요일이 주일이 된 것이 아니고 주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한 날을 기념하여서 초대교회에 예배일로 정해져서 성도들이 박해 속에도 모이기를 힘썼다.
그리하던 중에 로마에서 제국의 모든 나라에 일요일의 휴일 선포를 함으로 자유를 얻게되었다.
딤후 2:15“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잘못알아도 안되고 알지 못하여도 안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울사도의 글과 같이 옳게 분별하여 진리의 말씀을 드 높이는 성도되길 바람.
일요일 준수의 기원
1. 제1차 유대전쟁 발발로 AD67-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됨.(마24장에 예언따라)
2. 그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때 양국 평화를 위해 유대인들은 황제에게 성전건축을 간청하였고 허가를 받아내고 건축모금 운동을 함.
3. 132년에 황제의 칙령으로 로마식 도시 형태로 예루살렘 성전이 구축되자 유대인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이러한 유대인들이 잦은 반란으로 황제는 유대를 로마의 확고한 영구적인 식민지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곳에 태양신 쥬피터를 위한 신전을 건축하여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유대를 로마화 하려했다. 이것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로마제국을 향한 민족적 증오심을 갖게했다.
4. 이 일로 제 2차 유대전쟁이 일어나게되고 성전건축 기금이 독림운동 자금으로 둔갑 유대인들은
“바르코 훼바”라는 청년을 메시야로 세워 엥겔리라는 골짜기로 로마군대를 유인 “세베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대 22군단을 완전 섬멸 약3만5천명의 로마군대를 전멸시켰다.
5. 이 일로 인해 황제를 노발대발 하였으며 그의 체면은 말이 아니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후 로마 원로원에서 통상하는 보고처럼 보고할 때 황제와 그 군대는 건재하다라는 말을 할수 없었다.
그 후 다시 유대인들을 치러가서 약985개의 마을을 초토화하고 약100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 하였다.
6. 이 일로 황제는 로마시민의 여론을 등에업고 유대인 박멸정책을 행하게된다.
①할례금지 ②안식일 금지 ③예배와 성경금지 / 이렇게 하자 이 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유대인들보다 그리스도인들이였다.
7.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핍박에서 제하여 달라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대답은 유대인이 아니라면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였다.
8. 이 박해로 생겨난 것이 카타콤이였다.
9.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한사람을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게할 때 100여명의 개심자가 생기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게 되자
로마 정부에서는 유대인들을 잡으려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로마인들을 다 잡겠다는 여론이 일어남.
그래서 핍박의 철회할 움직임이 보여짐.
예수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이 계속 유지하게 하려 하였으면 역사를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주일을 지키게 하신 분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0. 때와 같이하여 헬라의 학문을 가진 일부그리스도인들이 대 타협의 정신이 일어남. 그들의 주장과 타협점.
①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②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대신 일요일날 예배일로 모인다.
③그리스도인들은 제8일을 기쁨으로 지키라.
이상의 타협안을 내어놓았음.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날자를 바꾸고
ⓑ로마는 태양신을 예수그리스도로 바꾸고
ⓒ즉 그리스도인들은 원하던 일요일(주일)을 받고 안식일을 내어놓고.
ⓓ로마는 태양신(국교)를 내어놓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임.
11. 이것이 협상 타결되어 AD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됨.
밀라노 칙령이란/ A.D 313년 6월 밀라노에서 로마의 두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의논하여 공표된 명령서임.
밀라노 칙령전문
전부터 우리(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 두 사람은 신앙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뿐만 아니라 신앙은 각자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이 통치하는 제국 서방에서는 이미 기독교도에 대해서도 신앙을 인정하고 신앙을 깊게 하는 데 필요한 제의를 거행하는 자유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 묵인 상태가 실제로 법률을 집행하는 자들 사이에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따라서 우리의 이런 생각도 실제로는 사문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제 콘스탄티누스와 정제 리키니우스는 제국이 안고 있는 수많은 과제를 의논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만난 이 기회에 모든 백성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것은 기독교도만이 아니라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자에게도 각자가 원하는 신을 믿을 권리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 신이 무엇이든, 통치자인 황제와 그 신하인 백성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면 인정해야 마땅하다. 우리 두 사람은 모든 신하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최선의 정책이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오늘부터 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거기에 수반되는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정히 인정받는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지령-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결단을 내린 이상, 지금까지 발령된 기독교 관계 법령은 오늘부터 모두 무효가 된다. 앞으로 기독교 신앙을 관철하고 싶은 자는 아무 조건 없이 신앙을 완전히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도에게 인정된 이 완전한 신앙의 자유는 다른 신을 믿는 자에게도 동등하게 인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떤 신이나 어떤 종교도 명예와 존엄성이 훼손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훼손당하는 일이 많았던 그리스도교도에 대해서는 특히 몰수당한 기도처의 즉각 반환을 명하는 것으로 보상하고자 한다.
몰수된 기도처를 경매에서 사들여서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것을 반환할 때 국가로부터 정당한 값으로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여기에 명기한다.
12. 그후 AD321년 “콘스탄틴”황제에 의해 로마가 통치하는 모든 제국에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졌고
그리고 392년에는 “대오도시우스1세”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격하면서 교회는 급격히 부패됨.
「교회사(초대편)」 사단법인 대한기독교서회, p.192-193
콘스탄틴은 교회를 애호하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틀림 없으나 비록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이교도를 잘 달래는 일도 필요하였다.
따라서 밀란(Milan)에서 합의를 본 그 정책은 모든 종교는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p.192)
그러나 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p.193)
13. 이렇게 태양신을 믿는 것이 예수그리스도교가 되니까 태양신을 숭배하는 모든의식과 교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의식과 교리로 바꿔졌음.
바꿔진교리와 의식들.
①태양의 날인 일요일이 안식일이 되고.
②태양탄생 축제일인 12월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되고.
③태양의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절이 되고. 네이버검색
“오늘날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AD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제1회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춘분(春分:3월 21일경) 후의 최초의 만월(滿月)
다음에 오는 첫째 일요일이다. 그러므로 보통 3월 22일부터 4월 26일까지 지켜진다”
계란 먹는 풍습“네이버검색”
부활절이면 전세계적으로 달걀을 먹는 풍습이 있다. 갖가지 채색한 삶은 달걀을 나누어주고 ‘달걀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기념한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채색한 달걀을 교환하는 풍습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부터 있었던 고대 이방 종교의 풍습이었다.
많은 이방 종교에서 알은 생명의 시작과 부활을 의미했다. 로마 속담에는 ‘모든 생명은 알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고, 고대 바빌론 신화에는 여신 아스타르테(이스터)가 하늘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진 큰 달걀을 깨고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바빌론 지역에서 달걀은 아스타르테 여신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4월에 농업의 여신 케레스의 축복을 구하며 빵과 계란을 바쳤고, 고대 이집트인과 그리스인들도 그들의 종교 의식에 달걀을 이용했다. 그밖에도 많은 고대 국가에서는 봄이 시작하는 춘분 무렵에 달걀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었다.
카톨릭 교회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골고다까지 옮기는 것을 도운 시몬이라는 사람이 달걀장수였는데 그가 그리스도를 도운 후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갓 낳은 달걀들이 모두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고대 이방 종교로부터 유입된 부활절 달걀 풍습은 이러한 전설로 인해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합리화된 것으로 보인다.
④여신 이시스는 신의 어머니 마리아로 변경되고,(AD425년 에베소 교회회의에서)
⑤태양 예배 의식은(미사) 예수님 예배의 의식이 되었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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