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서 이해



제1장 복음서의 시작


1. 초대교회와 그 설교
교회의 최초의 단계는 부활 후에 형성한 공동체로 유대교에 속한 하나의 분파였다. 따라서 처음 그리스도인들인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성경에서 대망하는 것과 그들의 경험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예언의 영이 그들 공동체 생활의 특성으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회복되었다고 확신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마지막 때의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활동하신다고 믿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실 새 창조에 참여하도록 선택된 것이었음을 믿었다. 따라서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왔으며 예수께서 마지막 때의 메시야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권을 재선언하고 계심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믿어 교회 설교의 방향도 그러했다.


초대교회는 설교의 청중인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바로 지금 무엇을 행하며,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 중 가장 설득력 있고 확신을 주는 것들을 택했고, 보존된 예수에 관한 전승을 선택하는 데에는 전도적인 동기가 작용했다. 바로 그들의 설교는 신앙을 고취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초대교회의 설교는 피조 세계 가운데에 재건될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한 예수의 메시지와,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교회 자체의 설교가 핵심이었다. 특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유대교 성경에 있는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함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드러내셨음을 의문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이 교회로 하여금 그 시대의 구체적인 사건과 문제들에 대처하도록 도와 주었다.

2. 설교와 가르침의 문화적 배경


교회의 시작으로부터 신약의 복음서들이 쓰여지기까지 35년 혹은 그 이상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초대교회 구성원들이 유대인었으나 35년 후에는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다. 설교하고 가르칠 때 사용된 언어가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바뀌었고, 문화적 배경도 셈적인 것에서 헬레니즘적으로 변화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더욱 강조했으며, 전통적인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들은 덜 강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의 팽창으로 인하여 전도자들은 유대인들의 경우와는 달리 비유대인들에게서 유대의 종교적 전승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언어로부터 다른 언어로, 한 문화로부터 다른 문화로, 한 청중으로부터 다른 청중으로의 변화가 모두 급속도로 발생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방대한 분야에 적응하는 데 성공한 것은 새로운 메시야 신앙이 생명력과 탄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중요한 사상들과 상징들 그리고 이방의 종교들이 그리스도교와 결합될 때 그것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적인 특징들을 왜곡시키는 부작용도 낳았다. 그리고 아람어 단어에 대한 헬라어의 부정확한 번역이 다시금 제3의 언어로 번역될 때 부정확의 가능성이 더욱 증가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1세기에는 구전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 역시 기억에 의존하는 유사한 방법으로 예수의 교훈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했다. 구전문화에서는 암기훈련 방법이 익숙했으며 암기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쇄 기계가 없었던 그 당시에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수작업은 물론 고비용이 들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곧 예수를 다시 보내셔서 세상의 종말이 오게 할 것이라고 믿었고, 잠시동안을 위하여 책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책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두진술이 이전과 같이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함과 이전처럼 예수님이 즉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게 됨에 따라 기록된 문서가 나오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구전문화에서 출발하고 존재했던 까닭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는 데 역시 이야기의 유형이나 양식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복음서들을 통하여 이를 발견할 수 있다. 복음서들은 목적에 따라 구두 전승으로부터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취하고 또는 변경하기도 하여 기록한 문서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들은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셈적 문화 배경으로부터 헬라적 문화 배경에 맞추어 해석 되었다.


교회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유익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그 이야기들은 형태가 결정되었다. 즉 초대 기독교에서는 어느 때에라도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처한 상황과 그것이 직면한 문제들에 의하여 예수님을 보는 시각과 예수님의 전승이 적용되는 상황이 결정되었다. 복음서들 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들은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회상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였던 공동체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발생한 영향과 함께 결합되어 있다. 그 결과는 회상과 증언, 그리고 이야기와 신앙고백이 독특한 혼합을 이루는 것이다.

3. 구전의 양식


복음서들에 대한 문학적 연구 방법인 양식비평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구별해 내고 그것들을 그 구전 양식에 따라 분류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양식비평은 초대 교회가 의미 있는 전승들을 전하는 데 사용한 형식들을 밝혀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정확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어떤 정보를 제공해 주지는 않지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양식에 관하여 더 잘 알게 될 때 그것은 그 전승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더 쉽게 알도록 도와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로인해 초대 교회가 그 이야기 가운데서 보았던 중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의 구전 양식의 범주에는 선포 이야기, 기적 이야기,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들, 주의 말씀을 들 수 있다.


"선포 이야기" 양식의 목적은 예수님의 중요한 말씀을 위하여 간략한 설화적 배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 양식의 기능은 중요한 말씀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하는 일화적 구성을 마련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그들의 선교적 설교와 그들의 공동체적 생활 가운데서 그리고 개인의 영적 투쟁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였던 문제들을 설명하고 밝혀 주기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들을 선포 이야기 속에 넣었다. 선포 이야기들은 주로 선교적 설교를 돕기 위한 것이었으나 교리적 교육을 위하여서도 사용되었다. 또한 논쟁 설화들은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자들과의 논쟁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기적 이야기"의 관심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위에 있다. 그것은 중요한 행위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구두 전승이다. 그 행위는 예수께서 가지신 초자연적 힘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능력적 행동이다. 기적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의 현존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하였던 분으로 예수님을 나타냄으로써 기독교 설교와 가르침을 극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까닭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기적 이야기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들"은 강한 기독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양식비평에서 예수님의 신분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 범주의 전승들이 발전한 목적은 교회의 예배의식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것들은 교회의 의식과 예전들을 풍부하게 했다. 분명히 그것들은 설교와 가르침의 목적을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주의 말씀"의 범주는 설화적 배경이나 구조를 가지지 않는 독립적인 예수님의 담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범주를 다섯 개의 세부 사항으로 구분하면 지혜의 말씀, 예언적 말씀, 율례적 말씀과 공동체 규율, 기독론적 담화, 비유이다.

4. 전승의 역사


구전 전승 과정에서 복음서 저자들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받아들인 전승들을 적용하는 방법에서 유사한 과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전승들을 확대하고, 해석하고, 재적용하고, 개작하였을 때 아무도 혼동시키거나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들이 그 이야기들을 변경시키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 전승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구체적인 필요와 문제들에 대하여 작용하였는지를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인식하게 되었다고 여기는 바에 충실하였다. 그들이 영감에 의한 새로운 주의 말씀들을 형성할 때 에라도 그것은 속임수적인 것으로 의도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의 살아계신 주님에 대한 그들의 계속적인 표현으로서 정당한 것이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구전으로 보존되어 온 예수님에 대한 일화들을 중요한 자료의 공급원으로 삼았다. 기록으로 작성되는 과정 속에서 변화들이 도입된 것도 사실이다. 기록된 형태에 의한 구전의 안정화는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가 초대 교회에 의하여 신뢰할 만하고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을 때에 이루어졌다. 첫 번째 복음서 저자로서 마가가 직면한 주요 과제는 유포되어 있는 많은 단편적 이야기들과 간략한 예수님의 전승의 묶음들로부터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5. 복음과 복음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요약하기 위하여 "복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것은 매우 깊고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그 정당함을 입증하시고 그를 통하여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시는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새로운 시대의 침입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었다. 초대 교회의 복음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선포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사성이 뚜렷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서라 부르며 세 권의 공관복음서는 모두 무명의 저자들이 쓴 문서이며, 편의를 위한 방편에서 전통적인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6. 기독교 문서들의 출현


복음서를 저술하도록 자극하는 영향들이 있게 되었는데 몇 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그와 동행했던 사도들과 목격자들의 무리가 줄어들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아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기대가 상실되어 가고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 전승들을 보존하는 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육의 자료로, 교리적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공동체들의 예배를 위한 요구가 기록을 촉진했다. 더욱이 기독교의 성장과 확대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받아들인 만한 기독교 신앙과 행실을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기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시간이 지남으로써 예수의 전승들이 변질되기 시작함으로 인하여 기록이 필요하게 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이야기들을 문서로 기록함으로써 초대 교회는 비로소 다른 대중적인 경건한 이야기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부류로 그것들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왜곡되고 첨가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편을 마련했던 것이다. 또한 각 복음서 저자들은 그 자신의 독특한 신학적 관심과 견해를 지니고 자신의 공동체를 동요시키는 특별한 필요들과 난처한 문제들에 대하여 도움으로써 그의 공동체의 영적 복리를 증진시키고자 복음서를 기록하게 되었다.

7. 처음 세 복음서들의 상호 관련성과 "Q"자료


세 복음서들을 비교하여 읽으면 거기에는 놀랄 정도의 유사성들과 뚜렷한 차이점들이 함께 드러난다. 마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연관짓는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마가의 서술적 윤곽이 다른 두 공관복음서에 의하여 완전히 재생되고 있음을 주목할 때 동일한 순서로 그 이야기가 말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태, 누가의 공동체가 마가복음을 극히 높이 평가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복음에는 그들이 마가복음과 공통적으로 가진 것들과 유사하게 서로간의 차이점들을 함께 보여 주는 공통된 전승들이 나타나고 있는 데 이는 마가 외에 또 다른 기록된 문서나 문서들을 함께 사용하였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도 있다. 마가를 보완하기 위하여 마태와 누가에 의하여 사용되었다고 학자들이 추정한 가설적인 자료를 Q라고 부른다. Q가 하나나 그 이상의 기록된 문서들과 더불어 여러 층의 구전들로 전달되는 예수님의 전승들을 포함하였다고 생각함이 좋다. Q는 그 말씀의 주변 상황에 대한 어떠한 서술적 묘사가 없는 예수님의 말씀들의 모음이다.


여기에 포함된 말씀의 종류로는 종말론적 교훈들, 예언들, 그리고 지혜 전승들이다. Q가 이루어진 공동체는 비록 수난설화는 없지만 부활의 메시지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메시지에 대한 하나님의 옹호로 믿는 신앙을 전제한다. Q 공동체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설교할 때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신 데 대해 결정적으로 응답해야 할 긴박한 필요성의 의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설교를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 끝 날에 심판자이신 인자로서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전심으로 준비해야 했다.

[서평]
이 장을 읽으면서 복음서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형성과정과 그 설교에 관하여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전승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 기록된 문서로 이어져 내려 오기 까지 초대교회의 구전문화와 그 구전문화를 통하여 복음서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받아 들여 졌다. 강의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구전문화를 신뢰할 수 없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에 관한 내용을 암기하여 수 십년을 오류없이 전해내려 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젠 그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와 졌다. 비록 이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무명의 저자라던지 하는 내용은 나에게 거부감이 되었고, 이 책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하였지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읽게 되어 내가 보지 못하였던 부분을 보게 하였다는 점에서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복음서의 형성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해소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기억하는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을 선택적으로 재진술 하였고, 그들의 신앙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복음서가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즉 복음서가 목적에 따라 구두 전승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취하고 또는 변경하기도 하여 기록한 문서라는 사실이 앞으로 복음서를 읽을 때에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복음서 마다 여러 양식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양식이 갖는 특별한 목적이 있음도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복음서를 읽을 때 무작정 읽었는 데 앞으로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읽고 연구함으로 복음서에 담겨져 있는 풍성한 내용들을 캐낼 수 있도록 하겠다.


세 복음서들의 연관성을 읽으면서 동감과 더불어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접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Q"가설에 대하여 접하면서 이런 점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 신빙성이 있다면 앞으로 목회를 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받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십자가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문화가 대체적으로 엄숙하고 어두운 측면이 많다. 십자가를 유난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음서에 예수님의 수난기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Q 공동체가 부활신앙으로 선교적 메시지의 초점을 둔 공동체로써 그 시대에 한 흐름을 갖고 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개혁되는 데 있어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여겨진다. 이젠 수난기사의 비중만큼 부활기사가 자리잡아야 된다. 따라서 기독교 문화가 장례문화 스타일에서 축제 문화로 변혁되어야 한다. 그 당시 공관복음의 공동체가 십자가 신앙이 강조되어야 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무엇이 강조되어야 할 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교회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이런 시점에 비록 가설이지만 "Q" 공동체가 가진 신앙속에서 우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제2장 마가복음


마가는 단순하면서 대중적인 문화 형식으로 기록했다. 마가는 그의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모은 예수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연속적이고 확대된 저술로 묶었다. 마가복음의 전반부의 특징은 예수님의 기적들에 있고, 후반부는 그의 수난과 그것이 제자직을 위하여 가지는 의미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이방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썼으며 그는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그의 독자들이 예수의 이야기들과 교훈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전승들을 기록할 때 그의 공동체의 필요에 맞도록 개작하고 적용하여 기록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다양한 형태의 예수님의 전승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설교에 접합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서에 나오는 각 사건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규정적인 관점에서 해석되기까지 모호하다.


이는 마가복음을 전체로서 읽을 때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마가복음에서의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들로는 부분적이다. 십자가 사건의 관점에서 이야기되고 해석될 때에만 그것들은 그의 메시야 되심을 올바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마가가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함이다. 바로 예수님을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그의 공동체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야만 하는가를 말하고 있으며, 시련과 박해속에서 살고있는 그의 공동체에게 격려와 힘을 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가는 그의 공동체가 직면한 어떤 문제들과 필요들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복음서를 구성했다. 대중적인 헬레니즘 세계의 문화차이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들이 바르게 전달되지 못하고 혼동을 가져다 줌으로 인하여 마가는 그의 공동체가 전하는 것을 청중에게 적응시키도록 도와 주었던 것이다.

[서평]
마가복음의 저술동기와 그 특징을 살펴 보면서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목적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다음 문장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마가는, 자신을 부인하고 봉사의 삶을 살며, 필요하다면 고난과 순교의 삶을 살기 위해 겸손히 스스로를 준비한 자가 십자가의 신학적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마가복음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번역상의 매끄럽지 못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리낌이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일종의 합성된 예수"를 만들어냈다는 부분은 그 의도가 선한 것일지라도 나에게는 시험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가복음 전체를 읽지 않는다면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중요한 제자들에게 마가가 부여한 역할의 움직임을 놓칠 것이 라는 지적은 나로 하여금 마가복음을 어떻게 읽고 설교할 것인가에 있어서 큰 지침이 되었다.



제3장 마태복음


마태가 속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마가복음은 알려졌고 예배와 교리적 가르침과 선교적 설교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의 공동체가 도전과 기회 및 감당해 나가야 할 공격들에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기에는 부적합 하였다. 따라서 마태는 마가복음을 비롯하여 Q자료와 M자료들로부터 모은 전승들을 중심 주제들 주위에 결합하고 조직화 하였다. 그리하여 마태는 그의 공동체가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며, 이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다는 확신을 설명하고 방어하는 것을 돕고자 했다. 그의 복음서는 자신의 공동체가 비기독교적 유대주의와 논쟁할 때 도움이 되도록 하였으며, 또한 그의 공동체의 내적인 생활을 향하여 기독교의 윤리적 의미들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하여 마태는 복음서를 저술한 것이다.


마태복음의 특징으로는 구약성경을 "약속과 성취"의 형식속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다는 점과 예수님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로 묘사하기 위하여 기적 이야기들 중 많은 것을 한 부분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대관습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어 기록되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고, 교회라는 용어를 명확하게 사용한 유일한 복음서라는 점이다. 이는 마태가 예수께서 구원하신 자들이 이제는 참된 이스라엘을 이룬다는 그의 확신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마태는 탁월한 방법으로 다섯 개의 주요 강화를 서술자료와 결합하고 교차대구법적 구조를 통하여 그 자신에게 긴요한 중심개념을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몇가지 주요 개념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시작하신 것을 완성하러 오신 것이며,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메시야임과 참 이스라엘에 속하는 것은 출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이신 예수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태는 생동감 있는 종말의 기대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 반면에 예수께서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에 대한 염려로부터 관심을 돌려서 중간기에 공동체의 생활과 개인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을 규정할 조언과 규칙들로 우리에 주의를 향하게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서평]
"마태는 다리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가운데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코프(Lamar Cope)의 말을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태복음의 저술 목적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마태복음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태복음을 읽고 설교하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마태가 마가의 서술적 골격을 자신의 복음서의 틀로 채택하였고, 마가의 서술에 마태가 예수님의 다른 전승들을 상당히 많이 첨가하고 있음을 보면서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마태가 단순히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자료들을 결합하지 아니하고 주의 깊게 구성하고 있음을 교수님의 강의와 더불어 내게 강화가 되었다. 이를 통하여 마태복음의 특징과 마태 공동체의 성격을 고찰할 수 있게 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제4장 누가복음


누가 저술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사도행전을 그의 복음서의 속편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역사적 관점이 더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사도적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주목케 하면서 누가는 예수의 생애가 인류 역사에 독특한 과거의 한 시대에 속한 사건이라는 인상을 강화한 것이다. 누가도 마가복음의 구조를 그 자신의 복음서를 위한 기본적 형태로 채택했으며 서술적 확대를 하였다. 가장 뚜렷한 점이 여행설화이며 이는 마가복음에 없는 많은 양의 추가적인 교훈 자료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는 누가가 마가와 달리 그의 공동체가 더 선호하는 내용에 그의 서술을 긴밀하게 맞추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십자가와 부활에 의하여 완전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해석의 열쇠가 된다.


누가는 그의 자료들을 하나의 문학적 통일체로 형성하는 데 마가나 마태보다 훨씬 더 철저했다. 누가의 문체에 하나의 매혹적인 면은 그의 목적에 부합될 때 칠십인역의 어조를 채택하는 그의 능력이다. 실제로 그는 그의 저술을 의식적으로 "성경의 언어"로 구성했음을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훨씬 더 과감하게 마가복음서를 개정했으나 예수님의 말씀들은 거의 변경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누가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가졌던 큰 경외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누가의 표현은 마가의 문법적 스타일을 개선했다. 미완료 시제를 단순과거 시제로 자주 고쳤으며, 마가가 사용한 구어체적 낱말들과 어구들을 더 품위있는 헬라어로 변경했다. 또한 중복과 불필요한 사항들을 제외함으로써 많은 서술적 내용들을 꽉 짜이게 했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큰 경외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발견되면 빼 버렸다. 즉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반응했음을 언급하는 것들은 축소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Q자료 이외에 누가복음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전승을 모두 L자료라 부르는데 누가복음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이 특별한 자료들은 초대 교회에 의하여 간직된 오랜 예수님의 전승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매우 풍부하게 해 준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를 저술한 이유는 그가 아는 어떤 것보다 더 훌륭한 복음서를 쓰기로 결심하고, 그의 저술이 다른 저술들과 함께 사용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대신하기를 바랐다는 것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더 정확한 것으로 만들기 원했으며 마가에게 없는 중요한 예수님의 전승들을 보강함으로써 마가의 서술을 완성하려 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선포하는 내용에 대한 확신을 이끌어내기를 기대했고 그의 저술이 그의 공동체가 기독교를 전파할 때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의 저술 속에는 몇 가지 주요 개념들이 나타나는 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의 저술이 이방인을 향한 복음으로 드러나고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받고, 기름부음 받은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누가에 의하면 구원사건은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이었고, 하나님은 부활로 예수님의 메시야적 신분을 확증하셨으며 그의 적들에 대하여 그를 변호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데 성령은 거룩한 역사에 대하여 즉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는 역사에 대하여 연속성을 제공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그의 저술에서는 예수님의 조속한 재림에 대한 강조가 수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좌절된 기대가 야기한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재림 이전의 시간을 교회가 세상에서 일하고 증거하는 시간으로써 설명하므로 신학적 사고를 유발시켰다. 누가의 저술에서는 기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 여자들, 소외된 자들과 죄인들에 대한 것이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서평]
누가복음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많은 주옥같은 비유가 많이 나온 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이러한 자료들을 접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 사실이나 그 이면의 배경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구분해서 읽게 되므로 누가 저술에 대한 하나의 연속선에서 바라보지 못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게 되므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하나의 연장선에서 접근해야 함을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가의 저술이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어떻게 선포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고, 선교적 관점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써 그의 저술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사건들의 서술에 나타나는 병행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들이 궁극적으로는 선교에 열매로 나타나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의 책으로 보고 다가갈 때 이러한 중요한 점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내게 큰 배움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선교는 물론 누가의 저술에서 강조되고 있는 멸시 당하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 보면서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선교하는 데 있어서 인색한 면이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의 저술속에 드러나고 있는 이 강렬한 선교의 열망이 한국교회와 내 가슴속에 부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누가가 제자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오는 마가의 서술부분을 개선했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제자들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라는 이 책의 설명이 나로 하여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였다. 그 이유는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증거하지 못하고 변명을 덧붙이거나, 비난의 문구를 제외시켰다는 점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제5장 보충적 고찰 서평


이 장을 읽으면서 신약성경의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다른 많은 저술들이 존재하였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의 일치를 이루어 정경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 정경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도성과 그 문서들이 내포하고 있는 기독교 교리의 건전성, 그리고 교회의 예배와 신앙, 그리고 삶을 지도해 주는 것으로 인정되어졌다는 사실이 복음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권위를 가 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에서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복음서 저자에 대한 것을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강조하므로 약간은 나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하였지만 복음서를 앞으로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예비서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복음서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어서 대단히 유익하였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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