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와 예수실종


한국에 모 교회에 장로로 봉직하고 있는 한분이 이멜을 공개한 것을 보았다. 그분은 장로로 교회에서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분인데 당신 스스로가 제대로 예수를 믿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의 가장 큰 오류는 십자가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며 성령은 강조되고 있으나 예수와 하나님은 잘 보이지 않고 복음의 능력은 방언과 신유는 소위 성공지상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맘몬을 믿는 것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믿음의 본질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솔직히 표현하면, 부자 되고 출세하며 건강해지고 풍요롭게 살 수만 있게 해 준다면 막대기라도 열광적으로 믿는 것이 교회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날로 더 심해지고 노골화되어지고 만연해 지고 복음의 진리 대신에, 성공하고 돈 많이 버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원으로 추락한 것이 대세이다. 

물론 순수 복음적인 교회들도 많습니다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제목과 본문만 성경에서 가져왔지, 내용은 하나같이 돈 잘 벌고 건강히 제 식구와 오순도순 살면서 오직 주일 출석과 헌금만 잘하면 하나님의 복받은 신자라니, 참으로 듣기가 민망할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느낄 때도 허다하다”라고 썼다. 

 이민교회 역시 자유스러울수 없다. 한국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실종되고 위로설교와 미국에서 성공하는 비결, 자녀를 유명대학에 보내는 것과 행복한 가정 만들기 등.. 알수 없다. 물론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민자의 삶이 언어와 문화장벽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오죽하면 당회나 제직회에서 한맺힌 한을 푼다고 하지 않는가?그럼에도 이민교회의 끊이지 않는 분쟁과 심각한 갈등은 말로 표현할수 없다. 어떤 교회는 분쟁한번 없이 아주 건강한 교회라고 인터뷰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직 철이 더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구동성으로 설교의 위기라고 한다.이는 ‘진정한 설교의 부재’를 말해 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설교의 위기가 오늘의 기독교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홍수에는 마실물이 없다고 하듯이 이렇게 설교가 홍수시대인데 설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근원적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는 갈수록 침체되고 MB 정권들어 <고소영>이라는 딱지 때문인지, 그를 지지하는 몇몇 목사들과 <목회세습>이라는 파장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은 교회에 대하여 화살을 던지고 있다.  
  
어떤이는 설교의 문제점을 ‘비신학적 설교의 유행’으로 주장한다. 즉 ‘설교가 철저히 성경적이 되려면 신학적이어야 하는데 설교가 비신학적이기 때문에 강단위기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할수 없다. 왜냐하면 신학도 나름이고 설교자도 나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가 하면 어느 설교학 교수는 “과다한 설교횟수, 물량주의와 기복사상, 남의 설교도용, 본문을 벗어난 설교범람’을  설교위기로 꼽았는데 여기에 약간의 요소들은 찬성할수 있어도 핵심을 잃어버린 지적이 아닐수 없다. 지난 20세기는 산업사회 가치관과 패러다임이 지배했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정보사회, 학습사회, 지식사회, 디지털사회라는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구조도 수직적인 패러다임에서 수평적인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적인 양극화와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은 세대간 단절과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오늘  우리는 목숨 걸고 붙들어야 할 성경적인 가치, 참된 설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66권이지만 전반적으로 한 주제를 가진 통일성을 지닌다. 설교자는 강단에서 예수증인으로 서야만 한다. 사도들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했고 바울은 ‘십자가외에 다른 것은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좋아하고 더 큰 상급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고 고백한다. 
 
이처럼 최고의 설교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최종 계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예수를 증거하고 있고(요 5:39) 사도들 역시 사도행전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럼 꼭 해야할 설교를 말하기 전에 변질된 설교부터 생각해 본다. 변질된 설교란 서두에서 어느 장로님이 지적한 성공과 출세를 가르치는 설교이다. 

그리고 물질과 축복, 부자만들기 모델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차라리 삼성이나 애플사 회장에게 물어보면 잘 알텐데 말이다. 그리고 잘못된 치유와 영성운동이다. 치유와 영성사역이 잘못된 것이라 할수 없다. 한때 토론토 블레싱이나 일부 교회에서 진행중인 뜨레스띠아스 같은 것은 뒤틀린 기독교의 단면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 근원적인 뿌리가 기독교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귀족교회, ‘행복한 가정만들기’ 등을 들 수 있다.가정이 행복한 것은 누구나 바램이지만 예수가 중심에 없는 인위적이고 심리학적 ‘행복만들기’는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행복은 타락한 인간에서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으로 이루어지는 축복과 은혜의 산물이 아닌가?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나를 살리는 생명의 구주로 가정을 이끌어 가실때 행복이 오는 것 아닌가?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가정 사역을 한다고 다니면서 딸은 이혼을 반복해서 살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물론 아버지 인생과 딸의 인생은 다르다 할수 있지만..
 
 그렇다면 설교자가 꼭 해야할 설교란 무엇인가?  예언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거기에는 십자가와 부활, 회개와 심판, 구원과 전도, 천국과 지옥이 항상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설교자가 바로 빌리그래함 일 것이다. 최근 소리없이 뜨고 있는 S 교회 M목사의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감추인 보화처럼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벌써 교회당을 확장하고 복음에 목말라하고 있는 양들이 모여들고 있고 행해진 설교들을 책으로 몇권째 출판되고 있다. 오늘의 교회는 회개의 눈물이 없고  십자가가 없다.  천국과 지옥을 전하면 현대인들은 듣기 싫어하고 교회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는 정신나간 목사들도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경고한대로 ‘다른복음’이 따로 없다. 이것이 예수가 실종된 설교, 타락한 설교자의 현주소이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설교자를 최종적으로 받아 주실지 의문이다.
 

자료출처:현대 설교 연구소 koreanpas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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