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후손들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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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멜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소아시아지역의 고대 원형극장 고대 지명과 민족들 속에 남아있는 성경 속 노아 후손(16)의 흔적들 


1.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인의 조상이 된 야벳(Japheth)의 큰 아들 고멜(Gomer)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10: 1-2)

 

고멜족은 누구인가

고멜(Gomer)은 노아의 손자들 중 처음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고멜은 일반적으로 완성또는 완전함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는 노아의 자손(子孫)이요 야벳의 아들이었다(10: 2,3; 대상 1:5-6). 일반적으로 악카드어로는 김미라이(Kimmirai)라 부르고, 고대 호머(Homer) 시대 헬라의 자료들에는 기메리아(Cimmeria)라고 부르던 사람들과 같은 족속으로 알려져 있다.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그나스(Ashkenaz)와 리밧(Riphath)과 도갈마(Togarmah)’였다 (10:3). 에스겔서에 보면 고멜의 초기 자손들은 도갈마와 함께 북쪽 지역(극한 북방)에 살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에스겔 38:6). 이곳은 현재 신약 성경에 나오는 터어키(Turkey)의 갈라디아(Galatia)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유태인 역사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던 시대인 AD 93년경에는 갈라디아인(Galatians) 또는 고올(Gauls)은 이전에는 고멜릿(Gomerites)으로 불려졌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고멜족은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에 살던 스키티안(Scythians, 일명 스키타이족)에 의해 러시아 남부에서 추방 당했다고 알려진다. 과거 천산 산맥을 넘어 동서양의 실크로드(비단길)를 개척한 민족은 소그드(Sugd)인이었다. 아무나 비단길 상인이 될 수 없었다. 천산산맥 양편의 언어와 지리와 역사와 사회와 문화에 익숙해야 한다. 그리고 용감하고 개척 정신을 가진 상인들이어야 했다. 그들이 바로 비단길의 주인공 수구디아인이었다. 수그디아나 또는 수구디아(Σογδιαν?)는 현재 이란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기도 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속주를 말하기도 한다. 수구디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로 흘러드는 아무다리아와 사르다리아 강 사이의 사마르칸트, 부하라, 후잔트와 케시 등과 타지키스탄의 수그드 주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 소그드인과 스키타이족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언어적 유사성으로나 실크로드의 길목을 넘나든 족속이라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결국은 같은 족속임이 분명하다.

 

수구디아는 역사적으로 비록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우즈벡 지역을 관통하는 아무다리아 강과 시르다리아 강 사이(고대 폴리티메투스)의 비옥한 계곡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이들 수구디아인이 개척한 비단길에 동서양의 문화적 고속도로를 놓은 것은 놀랍게도 중앙아시아 지역 정벌에 나선 멸망한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였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었다. 천산과 파미르고원을 넘나든 고선지 장군이 개척한 길들은 전쟁의 루트이기도 하였으나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중국의 한지 등이 전파되면서 동서 문명의 고속도로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고멜족의 창대

고멜족은 기원전 8세기 말 경 마대(스키타이)족에게 밀려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소아시아의 갑바도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루디아(Lydia) 왕국과의 전쟁에서 루디아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인 기게스(Gyges, B.C. 685-652)를 죽이고 왕국을 멸망시켰다. 이 루디아 왕국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지역이었다. 따라서 많은 고멜의 후손들이 훗날 이들 교회의 성도들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 고멜족들은 앗수르와 싸워 앗수르의 북쪽 지경인 우라르투(Urartu)를 점령하였으며 소아시아 동쪽인 브루기아(Phrygia)와 루디아(Lydia)지방에 안착하고 다시 서쪽 해안 지대 헬라 여러 성읍들과 대치 상태에서 공존하였다. 이들의 일부는 오늘날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쪽까지 이주하였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에 정착한 고멜의 자손들은 이후, 고올(Gaul)이라 불려 졌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 자손들(Gomerites) 일부는 바다 건너 오늘날 잉글랜드 웨일즈(Wales)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웨일즈 사람들은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의 섬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로부터 약 3백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의 기록에 의하면, 웨일즈의 언어도 Gomeraeg (그들의 조상인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라 불려졌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가 된 고멜족 후손 아르메니아 이들 고멜 족의 또 다른 무리는 아르메니아(Armenia) 땅에 정착하였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도갈마와 아스그나스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 지금도 아르메니아는 터어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고대 아르메니아는 지금의 터어키 내륙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선교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가다. 이 나라는 12제자중 하나였던 유다 다대오가 선교한 나라였다. 아르메니아는 A.D. 301년 로마보다도 먼저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인류의 새역사가 시작된 아라랏산 주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는 것은 우연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르메니아는 작지만 대단히 독특한 국가이다. 구 소련 연방 구루지아와 함께 범기독교권 국가 가운데 이슬람권 국가(이란, 터키, 아제르바이잔)에 둘러쌓여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 외에도 아르메니아인은 핵자기공명영상법(MRI)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으며, 근대적 성형 수술법을 개발한 나라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손잡이가 하나인 냉온수 겸용 수도꼭지도 아르메니아인이 발명하였다. 유명한 구 소련의 미그기 개발자도 아르메니아인이요 유대인이나 우리나라처럼 외국에 자국인이 많이 사는 독특한 민족(총 인구 700여 만 명 가운데 400여 만 명이 외국에서 거주)이다. 노아 가족이 도착한 곳이요 수도 예레반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신앙의 명산이다오늘날 아라랏산 주변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어키(Turkey)의 지명은 도갈마와 언어적 유사성을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독일로도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게르마니(독일)

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어원적으로도 고멜과 게르마니가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하다고멜의 세 아들 중 또 다른 아들인 리밧에 대해 요세푸스는 파플라고니안(Paphlagonians, 아나톨리아의 북쪽 흑해 연안 지역에 살던 고대 민족의 이름)의 선조임을 밝히고 있다. 헨리 모리스는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조차 리밧(Riphath)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않고 있다이렇게 고멜의 후손들은 오늘날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를 구성하는 주요 민족이 되었다. 야벳의 장자임이 분명한 고멜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야벳의 장막을 창대케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9: 27).

 

고멜족의 미래

종말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고멜족은 야벳의 다른 아들들(마곡, 메섹, 두발)과 함의 아들들(구스와 붓)의 후손들과 함께 메섹과 두발의 왕으로 불린 곡(Gog)의 군대를 구성하게 된다(38). 이들 연합세력은 미래의 언젠가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되며, 하나님은 북방에서 쳐들어 온 이들 군대로부터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고 북방 군대는 파멸될 것이다(39:3). 이들 침략자들의 시체를 매장하는 데만 7개월이 소요되고(39: 11-15)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는 자그마치 7년 동안의 연료로 사용될 것이다(39: 9,10). 도대체 이 전쟁의 때는 언제이고 7년 동안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과거 해석자들은 이 전쟁을 구() 소련과의 핵전쟁으로 보았다. 그럼 지금은 이란과의 핵전쟁을 말할까? 섣불리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전쟁의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종말의 때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의 아마겟돈 전쟁을 연상케 하는 것은 사실이다(39: 17-20; 19:17,18).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묘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에스겔서에 묘사된 전쟁 계시를 통해 우리는 성경이 고멜족의 후손들의 미래 모습을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 고멜족을 구성하는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의 모습은 영적으로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은 이 전쟁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과 능력을 목격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 생활과 고난도 죄 때문임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39: 21-23). 이스라엘이든 고멜족이든 죄에 대한 심판은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들은 이스라엘사람이든 헬라인이든 어떤 이방인일지라도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누릴 것이다. 고멜 자손들이 살던 지역은 대부분 초대교회 복음의 진출로와 일치한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지금은 복음의 열정이 많이 식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멜의 후손인 아르메니아인들은 최초의 기독교국가를 세웠고 지금도 그 어느 민족보다도 경건한 신앙의 삶을 유지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멜의 후손들이 다시금 복음의 은총을 누리고, 하나님이 야벳의 후손들에게 셈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하실 거라는 노아의 예언(9:27)이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북방 유목민의 전형적 취사도구였던 김해 대성동 출토 동복銅?(아래)/ 헝가리 농장의 할머니(헝가리 민족의 조상인 마자르족은 기원전 10세기 경 동쪽 우랄 지역에서 살던 부족이었다. 이후 터키계 여러 민족과 접촉하다가 기원전 895년 헝가리 남동부 카르파티아 분지에 7부족이 정착하여 연합부족국가를 세워 지금의 헝가리를 이룬 동양계 민족이다. 본래 유목과 기마생활을 하던 이 민족은 헝가리 동쪽에 살던 지금의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곧, 마곡의 후손인 스키타이족의 피가 섞였음이 분명하다사진:E. S. Cho 노아의 후손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대 지명과 민족들 속에 남아있는 성경 속 노아 후손(16)

 


2. 야벳의 아들 마곡 (Magog)


상을 호령하던 세계 최초 유목정권 스키타이족의 조상이 되다(한민족은 과연 셈족인가? 함족인가? 야벳족인가?)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10: 1-2)

 

마곡 후손들은 누구인가

마곡은 곡의 장소란 뜻이다. 즉 마곡은 문자적으로는 곡(Gog)이 최고 통치자로 다스리던 땅(혹은 백성)을 말한다(38:2; 39:6). 야벳의 둘째 아들이었던 마곡(Magog, 10:2; 대상 1:5)은 성경 안에서 정확한 혈통 계보가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에스겔서를 참조할 때 마곡은 분명 곡(Gog)과 연관(39: 6; 20:8)되며, 한 통치자(주된 왕, 38: 2, 미국 표준역 ASV) 밑에서 메섹과 두발(지금의 터키 북동쪽 앗수르인의 영토였던 무쉬쿠와 타발)과 연합했다는 사실(27: 13)은 마곡이 북방의 야만 민족이 되었음을 말해준다(에스겔 38:15, 39:2). 전통적으로 마곡족은 요세푸스의 기록(요세푸스, Ant . 6. 1, 123)에 따라 스키타이족이 되었고 일부 후손은 에티오피아족이 된듯하다. 결국 많은 학자들은 성경의 마곡과 곡을 동일한 민족으로 간주한다. 요세푸스는 북방(38:15, 39:2)에 살던 사람들은 Magogites라고 불려 졌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을 스키티안(Scythians)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한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루마니아(Romania)와 우크라이나(Ukraine)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도 스키티아(수구디아, Scythia)였다.

 

 

찬란한 헬라문화의 주인공인 된 야완

 

야완의 후손과 땅(사진: E. S. Cho)

찬란한 헬라 문화의 주인공이 된 야완(Javan)(역사 속에 남아 있는 노아 후손의 흔적 4)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10: 1-2) 헬라 문화를 일군 야완의 후손들은 누구인가

야벳의 넷째 아들 야완(Javan, ?ωυαν)은 그리스(Greece)의 히브리 단어이다. 그 뜻은 분명치 않으나 어원상으로 이오니아(Ionia, 고대 헬라어 이알론?αλον)와 일치한다. 따라서 그 이름은 예언서들에서 이오니아 본토(소아시아 서부 연안)와 헬라 마게도냐에 거하는 야완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헬라(Greece, KJVGrecia로 표현) 또는 헬라 족속(Grecians)은 구약에 다섯 번 나타나며(8:21, 10:20, 11:2, 3:6, 9:13 ), 그 때마다 항상 히브리어로는 야완이라 쓰여졌다. 다니엘은 헬라 왕(다니엘 8:21)’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문자 그대로 야완의 왕이었다. 그리스와 앗수르, 애굽 문서들이 헬라 사람들과 그들의 거주 지역을 가리킬 때 늘 야완이라 불렀듯이 구약 성경도 정확히 일치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야완을 노예와 놋그릇 무역상으로 묘사한다(27:13). 맞는 말이다. 과거 헬라는 온갖 노예를 사고팔며 해양 무역을 주도하던 민족이었다. 요엘서 3:6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 민족에게 노예로 팔려갔었다.

 

우리 민족도 고조선, 백제,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등의 시대에 당나라, 원나라, 몽골, 일본, 러시아 등에 너무나 많은 동포들이 팔려나갔다. 오죽하면 저 멀리 태국 북쪽 산악 지대 소수민족들에게서 옛 우리(고구려 등) 언어와 풍습의 원형을 찾아낸 선교사나 학자들이 있지 않았는가. 이들 소수 민족 중 일부는 당나라에 잡혀간 패망한 고구려, 백제의 유민 중 정치적 이유로 남으로 남으로 이동한 무리와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야완은 엘리사(Elishah)와 달시스(Tarshish)와 깃딤(Kittim)과 도다님(Dodanim)이라는 4아들이 있었다(10:2, 4; 대상 1:5,7). 이들은 모두 헬라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고대 헬라인들의 명칭인 Elysians는 엘리사(Elishah)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27:7에 보면 두로가 엘리사 섬과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오니아와 헬라 지역에 분포하며 해양을 지배한 야완의 후손 가운데 엘리사 후손들이 살았던 섬이 분명하다. 달시스(Tarshish) 또는 타르수스(Tarsus)는 실리시아(Cilicia, 현재의 터어키) 근방에 위치했었다. 깃딤(Kittim)은 구브로(키프로스, Cyprus)의 히브리식 명칭인 키티온(Kition)과 연관된다. 또한 키티온은 키프로스섬 남동 해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였다. 헬라 사람들은 쥬피터 도다네우스(Jupiter Dodanaeus)라는 이름으로 쥬피터 신을 숭배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야완의 네 번째 아들인 도다님(Dodanim)에서 파생된 말로 여겨진다. 그 성소(oracle)는 도데나(Dodena)에 있었다. 맛소라 사본은 도다님을 로다님(Rodanim)으로 표기하고 있다(대상 1:7). '로다님'도 에게해 지역에 분포한 섬주민들과 관련된 이름이었다. 결국 이들 야완의 네 후손들은 헬라와 이오니아를 중심으로 부근 에게해 주변 섬 지역에 까지 널리 흩어져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인구가 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히 지중해 쪽 섬들로도 진출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와 터키는 여러 모로 정치적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감정과 신경을 자주 건드리는 독도 문제처럼 키프로스섬도 바로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긴장관계에 있는 섬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실은 혈통적으로 그리 먼 사이가 아니다. 특히 터키의 이오니아 지방과 지금의 그리스는 같은 야완의 땅이었다. 마치 일본과 우리 민족이 사사건건 늘 팽팽한 라이벌 관계이나 실은 혈통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민족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신앙적으로는 우리 민족은 애증(愛憎)의 관계인 일본을 전도해야 할 신앙적 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슬람화 되어버린 터키의 영적 변화는 언젠가 그리스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야완의 후손 알렉산더 대왕 성경에 이 민족은 다시 등장한다.

바로 헬라 왕의 모습으로다. 징기스칸, 나폴레옹과 견줄 수 있는 또 한명의 유명한 역사상 인물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더 3)이 그 사람이다. 야완(헬라)의 후손 알렉산더 대왕은 같은 야벳의 후손인 마대(페르시아) 제국의 종말을 가져 왔다. 마게도니아 왕 빌립 2세와 에피루스(Epirus) 여인 올림피아(Olympias) 사이에 태어나 헬라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두었던 알렉산더(B.C. 356-323)는 헬라 문화야 말로 천하 대통일 제국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기원전 333년 마게도냐에서 소아시아로 진군한 그는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한다. 이후 그는 팔레스틴 땅으로 들어온다. 두로와 가사가 완고하게 저항하였으나 파죽지세로 밀어붙여 시리아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하고 애굽까지 진격한다. 대제사장 얏두아(Jaddua) 시대에 헬라 군대가 승리하리라는 다니엘서의 예언이 적중(8)한 것이다. 이후 애굽에서 팔레스틴을 거쳐 다시 바벨론, 페르시아로 들어간 알렉산더는 박트리아(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우즈벡, 카자흐스탄 지역을 통치한 국가)를 진압하고 인더스계곡으로 달려가 지금의 인도 펀잡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과거 헬라,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땅뿐 아니라 지중해, 에게해, 흑해, 카스피해, 인도양, 페르시아만, 홍해가 모두 그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야벳을 창대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시대로 였다.

 

알렉산더 대왕과 유대인


그럼 알렉산더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 유대 민족을 어떻게 여겼을까? 놀랍게도 알렉산더는 유대 땅의 이전 다른 정복자와는 조금 달랐다. 알렉산더는 유대인들 고유의 율법을 보호하였으며 안식년에는 조공을 면제하였다. 요세푸스는 이런 배경에 대해 알렉산더의 꿈에 나타나 그의 승리를 약속한 하나님의 경고로 인함이라고 기록(Antiq. ?. 314)하고 있으나 역사적 신빙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애굽에 알렉산드리아 신도시를 건설할 때에도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장려 정책을 폈다. 훗날 70인 역 성경이 애굽 땅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렇게 그가 정복한 땅에 건설된 자기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 신도시는 무려 70개 이상이나 되었다.

 

애굽에서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압제에서 해방자로 보였기에 환영을 받았다. 알렉산더가 정복한 것은 땅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복한 북동아프리카와 중동 지방에 엄청난 헬라 문화를 뿌려놓게 된다. 헬라식 웅장한 건물, 체육관, 야외극장들이 건설되었고, 의복과 생활 방식에도 대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새로운 상인 계급과 중산층이 등장하였고 무엇보다도 활발한 유형적, 무형적 교류 가운데 언어의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헬라어는 국제어가 되었고 다양한 타 민족 간 소통이 원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배경 가운데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다(4:4). 이런 격동기를 거치며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대처 하였을까? 알렉산더 시대는 유대인들에게 도전과 응전의 시대였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보내셨다. 유대인들에게는 시련과 고난과 유혹이 교차하였다. 헬라식 문명과 문화에 대한 압박과 동경은 문화적 동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곧 신앙의 세속화를 가져왔다. 반면 이같은 헬레니즘문화의 영적 위험성을 직감한 일부 유대인들의 헬라 문화에 대한 종교적 저항은 더 깊은 신실한 신앙인들을 배출하게 되었고 그들은 유대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신앙적 안간힘을 다했을 것이다.

 

이 기간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 민족에게는 신앙적 연단의 시절이었다. 하나님은 계시의 점진성에 따라 유대 민족 신앙을 세계 신앙으로 바꿀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계사적 흐름 가운데 이렇게 헬라는 그리스도가 오실 준비를 위한 배경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유대 민족에게 새로운 신앙적 도전과 연단을 만들어주었던 야완의 후손 알렉산더 대왕은 그만 바벨론에서 33세에 요절하고 만다. 이것도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였다. 그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표범(7:6) 같은 인물이요 수염소(8:5,21) 같은 인물이었다. 외경 마카비 1(1:1-8)에도 그의 치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대제국은 그의 수하 4장군이 분할 통치를 하며 흐름을 이어갔다. 그렇게 세상은 300여년 후 인류의 구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의 세계 정복은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를 가져왔고 놀랍게도 이러한 분산은 후에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파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마치 일제 치하 36년을 전후하여 우리 민족의 유랑이 일본, 중국, 원동,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의 복음 전파에 강력한 배경이 된 것과 많이 닮아있다

 

야완의 후손 헬라의 미래 헬라 지역은 과거 헬라 문화와 철학의 꽃을 피웠을 뿐 아니라 기독교 문화와 강력한 융합을 통해 유럽 문화를 탄생 시켰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사도 바울이 타고간 배에 유럽이 담겨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이사야 선지자는 야완을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해양 민족으로 소개하고 있다(66:19). 야완은 다시스, , (Put) 그리고 두발 등 여호와의 영광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전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사자들이 파송될 아득히 먼 나라들 중 한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서 27:13절은 야완이 두로의 부()에 기여한 자들 중 한 사람으로 암시되어 있다. 스가랴 선지자는 야완의 자식들을 치기 위해 시온과 유다와 에브라임의 자식들을 격동 시킬 것이라고 했다(9:13). 이 예언은 분명 다중적이다.


성경은 늘 헬라를 아주 강한 민족으로 묘사한다. 헬라는 스가랴 선지자 시대도 강했고 알렉산더가 그랬고 마카비 시대(기원전 2세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에도 그랬다. 하지만 강하면 쉽게 꺾여버리는 것이 인생의 진리이다. 그들 모두가 무너졌다. 성경의 예언대로였다. 신앙을 대적하는 세상의 견고한 진도 언젠가 육적 헬라처럼 무너질 것이다. 인간이 느끼기에 느린듯하나 결코 느리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그날은 도적처럼 올 것이다. 그렇다면 야완의 후손 헬라의 앞으로의 미래에는 어떤 길이 열려 있을까? 너무 과거의 찬란한 영화에 사로 잡혀서 일까? 오늘날 그리스 지역은 세계를 주도한 문명과 문화를 뒤로 하고 극심한 경제 침체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신앙은 때로 역설적이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한다. 문화적 자존심이 남달리 강하고 유럽의 관문에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 된 소식을 맨 먼저 받아들였던 영적 자존심도 강한 이 민족이 경제적 불황으로 인해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신앙의 빛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특별히 하나님은 사람을 주목한다. 남유럽 라틴 민족의 경제 위기는 신앙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소망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때 사람이 필요하다. 야완의 땅 남유럽에 제 2의 사도 바울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야벳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영적, 육적으로 야완에게서 리바이벌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성지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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