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가나안의 해안지방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이나 부락을 이루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BC 7,000년경~4,000년경)에 이르러서부터였습니다.

그 다음 청동기시대(BC 4,000년경~2,000년경)에 이르러서는 채색된 도자기와 청동을 사용하였고, 진흙으로 담을 쌓았으며 다듬지 않은 돌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셈(Shem)족인 히브리인들이 처음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오면서 나타났으며, 청동기시대(BC 2,000년경~1,550년경) 중기에 이르면서 히브리 민족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동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들어 온 셈족 계통의 아모리 족속은 마침내 이 지역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실질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약속의 땅으로 옮겨 왔던 곳이 가나안 지방이었지만, 그곳이 아브라함의 땅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아브라함의 식구들)은 양과 염소를 치던 유목민들이었으며 숫자적으로도 민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적은 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가나안 지방을 비롯한 중동의 모든 지역에 있었던 가뭄으로 인하여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얻기 위하여 이집트로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였던 열한 번째의 아들인 요셉을 만나 이집트로 모든 식구들이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때 야곱의 식구들의 수는 약 70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약 430년 동안, 야곱의 자손들은 번창하게 되어 이집트의 왕(파라오)도 두려워할 만큼 커다란 무리를 이루고 있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민족을 이루게 되면서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경계하면서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노예로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히브리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집트 땅을 출발하였던 히브리 민족의 무리들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마침내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요단강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튼튼한 성벽을 쌓고 살아오고 있었던 힘이 센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노아의 아들인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예인 가나안 족속, 그리고 둘째 아들 “헷”의 후손인 헷 족속, 히위 족속, 아모리 족속들과 여부스 사람들, 브리스 족속,

그리고 기르가스 족속 등은 가나안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가나안의 7 족속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블레셋 족속들도 가나안에서 살고 있었던 민족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들은 원래 해양 민족으로써 에게 해에 있는 그레데 섬과 그 부근에 있는 작은 섬으로부터 가나안 땅의 해안 지방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고 살았던 해양민족입니다.

그런가하면 가나안 땅의 북쪽 지중해 연안의 오른테스 강 아랫부분에 살고 있었던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도 계보와 문화적으로 본다면 가나안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BC 1250년경의 후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바뀌는 무렵, 이집트로부터 이주하여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고지대와 남쪽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의 왕국이 세워지고 다윗 왕의 통치 아래에서 마침내 팔레스타인 물리치거나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게 되었는데 그 후로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BC 15 세기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한 문서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블레셋 민족이 살고 있었던 지중해 해안지역으로부터 요단강의 서쪽까지의 지역을 가나안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의 견해가 많이 있지만, 이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붉은 자주색” 염료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진한 자주 빛 염료나 또는 그 염료로 염색된 모직을 뜻하는 고대 셈족의 언어에서 “가나안”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민족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 온 농경문화를 이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과 무역으로도 부를 누리고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상업과 무역에 뛰어났기 때문에 상인(장사꾼)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케나아니(Kenani)”라고 하는데 가나안 사람(상인)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호 12:7) (습 1:11) 가나안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신(神)들인 바알(Ba‘al) 신, 아세라(A serah), 아스다롯(Ashtoreth), 다곤(Dagon) 신 등을 섬겼습니다. 특히 바알 신과 아세라 신과 같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종교들은, 모든 우상을 섬기는 종교가 그러하듯이, 풍요를 상징하는 신을 섬기는 특징이 있습니다.

 

페니키아의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BC 14~BC 12세기의 청동제 바알 신상 점토로 만든 아세라 신상 아세라 신상 이와 같이 풍요로움을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종교들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하게 타락해 있는 양상을 보여 왔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하나님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써 그들처럼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죄에 물들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어린아이에서부터 늙은이들까지라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죽여 씨를 말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지 못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처럼 풍요함을 따라가면서 점차적으로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이방 족속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려움을 주면서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가나안은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기록된 역사와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가나안의 예술과 문학에는 이집트 문명, 미케네 문명, 크레타의 해양문명,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리아 북부 해안에 있는 고대 우가리트(Ugarit) 지역인 라스 샴라(Ras Shamra,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일련의 점토판으로부터 가나안 종교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나안의 주된 신은 “엘”이었으나 비와 풍요는 “바알” 또는 “하다드” 신이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이외에 다른 신들로는 재앙과 지옥을 주관하는 “레셰프”, 기술의 신 “코타르”, 엘의 아내 “아세라”, 그리고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아스타르테” 등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나안족은 알파벳을 사용한 최초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후기 청동기시대 지층에서 페니키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알파벳의 모어(母言)로 인정하고 있는 문자의 원형을 발견하였습니다.

또한 주요 언어의 모어(母言)가 되었던 설형문자 알파벳이 라스 샴라(Ras Shamra, 우가리트)에서 사용되었음도 발굴에 의해서 증명되었습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