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예배들 


글 / 조기연 교수(서울신대 겸임, 예배학) 


들어가는 말

예배는 끊임없이 변한다. 예배는 영원하시고 불가시적인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배자들의 생각과 정서와 문화라는 가시적인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그에 따라 예배도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2천년 예배의 역사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금세기의 예배를 회고하고 다가오는 21세기의 예배를 전망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1. 예배운동(Liturgical Movement)


20세기는 예배학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시기였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럽과 북미의 예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예배운동'(Liturgical Movement)이 금세기 후반에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스퍼 게랑제(Prosper Gueranger, 1805-75)와 같은 19세기의 선구자가 있기는 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운동의 아버지는 람베르트 보댕(Lambert Beauduin, 1873-1960)이다.


예배운동은 벨기에의 베네딕트 수도사였던 보댕이 1914년 {예배, 교회의 생활}(La Piete' de l'Eglise)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촉발되었으며, 그 후 유럽과 북미에서 예배에 대한 인식의 제고를 가져왔다. 예배운동의 영향은 초교파적인 것이었으며 20세기 후반에 각 교단들이 예배예식서를 개정하게 된 것은 이 운동의 결실이다.


예배운동이 현대 예배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러므로 20세기 예배를 논함에 있어서 먼저 예배운동이 가져온 신학적 강조점과 예배학적 의미의 변화, 그리고 실천적 지침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첫째, 예배운동은 교회로 하여금 초대교회의 예배적 삶을 발견하고 그 정신을 현대 교회의 예배에 회복하도록 촉구하였다. 초대교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기 이전이었고, 더욱이 로마카톨릭교회와 개신교회도 아직 생겨나지 이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의 예배는 현대 교회의 예배가 상실한 많은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부활의 기쁨과 감격, 하느님 나라의 경험, 주님과의 교제, 말씀과 성례전의 균형 등이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예배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로의 회복은 주로 금세기에 활발히 진행된 초대교회의 집중적인 연구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으며,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현대 에큐메니칼적인 관심에 의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실례를 든다면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이라는 예배문서는 처음 발굴된 것은 16세기였지만, 1916년 코놀리(R. H. Connollly)에 의해 비로소 3세기초에 작성된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저작임이 확인되었다.


이 문서에 나타난 "성만찬 기도"(Eucharistic Prayer)는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정된 현대 로마카톨릭 교회의 성만찬 기도 II와 미국 장로교회의 성만찬 기도 D, 그리고 미국 연합 감리교회의 성만찬 기도에서 부분적으로 부활되었다. 또한 4세기 성 바질(St. Basil)의 성만찬 기도는 현대 로마카톨릭 교회의 {성례서}에서 성만찬 기도 IV로, 그리고 1979년에 개정된 성공회의 {공동기도서}에서 성만찬 기도 D로 부활되었다.


둘째, 현대 예배는 성직자중심주의를 탈피하고 회중 참여의 확대를 제고하게 되었다. 예배에서 회중은 더 이상 관중의 입장이 아니라 참여자의 입장에 서야 하며, 예배는 목사 혹은 사제만의 행위가 아니라 전 공동체적 행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예배의 역동성을 가져왔으며, 이는 예배당 건축이나 실내구조 그리고 성구의 배치 등 예배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예컨대 기존의 예배당 형태는 설교자의 강단이 높고 먼 곳에 우뚝 서 있으며 회중은 움직일 수 없는 긴 장의자 속에 앉아 있었는데 비해서 현대에는 설교대와 성찬대를 회중과 좀더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며 회중석의 공간을 넉넉히 확보함으로써 회중의 활발한 참여를 제고하는 방식으로 예배당 환경의 변화가 이루어 진 것이다.


셋째, 공동체성의 회복 역시 현대 예배의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이다. 르네상스 이후 사회가 산업화와 분업화의 길을 걷게 된 결과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사회가 개인주의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배의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신자 개인의 영적 온도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회중 개개인이 영적으로 뜨거운 사람인가 차가운 사람인가 하는 것만이 관심사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예배당의 풍경은 한마디로 '어학실습실'처럼 각자의 영혼이 하느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일 뿐 옆에 앉은 사람은 전혀 인식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첨단 전자매체 시대인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T.V.나 또는 가상공간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구태여 교회에 나갈 필요 없이 집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공동체의 행위'라는 개념을 확립하여야 한다. 예배운동은 신약에 나타난 교회의 형상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개념을 확인하였고, 이를 구체화시켜서 개교회의 예배형식에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예배는 개인적 차원의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넷째, 금세기 예배학의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성만찬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시대 이후 성공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부정기적으로 성만찬을 거행해 왔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정규 예배가 아니라 고작해야 1년에 서너 번 하는 행사로 여겨졌다. 이에 반하여 예배운동은 '주님의 날'에 '주님의 식탁'에 둘러앉은 '주님의 백성들'의 개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폭넓은 지지를 얻었으며, 그 결과 기존의 동방교회들과 로마카톨릭 교회는 물론, 루터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미국 장로교회나 미국 연합감리교회 등의 주류 개신교회들도 주일 정규 예배에서 매주일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금세기에 들어서 각 교단들은 서로 다른 예배전통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독교에 속한 각각의 예배전통들은 그 동안 무관심하여 왔던 서로 다른 예배전통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이게 되었다. 이는 일차적으로 예배학자들이 고대교회의 기원(source)과 자료를 연구하다 보니까 서로 공통적인 자료를 다루게 된 데에서 비롯되었고, 그 다음으로 예배와 관련된 단체나 개인이 새로운 예배의식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전통들이 지닌 좋은 요소들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외에도 예배운동으로 말미암은 현대예배의 특징은 다음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주제설교 보다는 성서일과에 기초한 설교; 교회 목회사역에서 세례예식의 중요성 발견; 예배와 내용이 일치하는 교회음악의 선택과 사용; 예배당 공간에 있어서 성찬대를 중심으로 한 회중석의 배열; 회중들로 하여금 그때 그때마다 교회력 상의 시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색깔과 상징을 포함하는 장식 및 제의와 배너 등을 사용하는 것 등이다.


20세기에 일어났던 예배운동이 현대 예배에 끼친 영향은 매우 중차대하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중세기 이후 종교개혁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전통마다 나름대로 형성되고 전승되어 온 예배의 흐름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예배운동은 학문적 연구는 물론 예배집의 개정 등을 통한 예배현장의 결실을 수반하였으며 그럼으로써 광범위하게 현대 예배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다음 세기에는 또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2. 구도자 예배


20세기의 예배를 조망할 때 언급되어야 할 또 하나의 흐름은 바로 "구도자 예배"(Seeker Service)이다. 구도자 예배는 빌 하이블스(Bill Hybels) 목사가 1992년 미국 일리노이주의 남부 배링톤(South Barrington) 지역에 윌로우크릭 교회(Willow Creek Church)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기존의 예배형태가 용어, 분위기, 동작 등에 있어서 모두 불신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그들을 교회로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시도하였다.


하이블스와 그의 동료들은 먼저 지역의 거주자들 중에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였고, 다음의 다섯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교회는 언제나 돈(헌금)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둘째, 예배가 지루하고 생명력이 없다.

셋째, 예배가 매우 단조롭고 똑같은 것을 매번 반복한다.

넷째, 설교가 일상생활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다섯째, 예배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무지하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결국 집에 돌아갈 때에는 교회에 들어올 때보다 더 참담한 심정이 되게 한다.


이러한 장애요소들을 파악한 후에, 하이블스는 교회가 위치해 있는 지역 주민들 중에서도 특히 25세에서 50세까지의 연령층으로서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비 기독교인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예배를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불신자들이 과거에 교회에서 얻은 부정적인 경험과 그들이 가진 교회에 대한 선입관등을 제거할 수 있으며, 또 기독교 메세지를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연구 끝에 다음과 같이 구도자 예배의 요소들을 결정하였다:


첫째, 세계 복음화에 대한 성서의 명령을 현재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서부터 이루어 나간다는 믿음.

둘째,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나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열정. 그러므로 현대적이고도 창의적이 되려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셋째, 구도자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넷째, 구도자들이 신자가 되기로 결단하는데는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너무 조급하게 결과를 강요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한다.

다섯째, 모든 예배의 진행을 뛰어나게 하기 위한 필요성을 인식하며, 특히 하느님의 성품과 본성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점에 유의한다.

여섯째, 사람들은 교회가 자기들의 동기를 정직하고 성실하고 훌륭하게 다루어 줄 때 비로소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들여서 헌신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를 구도자들의 일상생활과 연결시켜서 복음을 제시하려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들은 구체적이고도 세심하게 예배현장에 적용되었다. 윌로우크릭 교회의 예배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이러한 전략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는 구도자들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느낄 수 있는 낯선 감정을 최대한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예컨대 교회당에 있는 일체의 기독교적 상징을 제거하고, 기독교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성례전도 실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구도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체의 예배행위가 인도자들에 의해서만 진행된다. 구도자들은 말하거나 행동할 필요가 없으며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


윌로우크릭 교회가 예배의 전략을 현장에 적용하려는 또 하나의 노력은 예배를 구도자들의 문화에 맞추려는 시도이다. 심지어는 예배당 건물의 외관이나 또는 내부를 구도자들의 취향에 맞게 설정하고 예배 중에 사용되는 음악도 구도자들의 취향에 맞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매번 예배에서 드라마를 보여준다든지 또는 멀티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설교는 당연히 구도자들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주제를 설정하여 접근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구도자 예배는 그 형식에 있어서 매우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예배의 기본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밴드의 전주-환영의 인사-보컬 듀엣- 드라마-보컬 그룹의 연주-드라마-성경봉독-밴드가 곁들여진 노래-헌금(이때에 구도자들은 헌금을 하지 말도록 광고한다)-메시지(설교)-토론 및 교제.


예배학적 관점에서, 그리고 예배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에 구도자 예배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구도자 예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예배"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배란 그 대상과 목적과 지향하는 바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행위인데 반해서, 구도자 예배는 모든 점에서 "구도자들"에게 최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통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구도자들에게 다가갔으며, 메시지가 전달되었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기 때문에 구도자들이야말로 예배의 모든 기준과 가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도자 예배에서는 예배가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도자 예배는 인본주의적인 예배라고 할 수 있다. 구도자 예배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점은 "회중 참여의 결여"이다.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구도자들을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주최측은 최대한의 배려를 다한다. 그 결과 회중은 그저 의자에 깊숙히 앉아서 들려주는 음악을 듣고,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며, 예배를 "즐기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배가 "회중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중을 위해" 되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구도자 예배는 엄밀히 말해서 "예배"라기 보다는 "전도집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도자 예배는 기존의 예배와 교회생활에 식상한 불신자들과 젊은 층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빌 하이블스가 1992년에 최초로 구도자 예배를 시작한 이래 1996년까지 불과 4년만에 북미 대륙에서 약 700여 교회가 구도자 예배를 도입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교회로는 본산지인 윌로우크릭 교회 외에도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갈보리 교회(Calvary Church in Grand Rapid, Michigan)와 인디아나주에 위치한 "그랜져 커뮤니티 교회"(Granger Community Church in South Bend, Indiana), 그리고 아리조나주에 위치한 "기쁨의 공동체 교회" (Community Church of Joy, Phoenix, Arizona)와 미시간 주에 위치한 "삼위일체 감리교회" (Trinity United Methodist Church, Lansing, Michigan)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에도 "열린 예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3. 은사운동


20세기는 다원화의 시대답게 예배의 흐름 또한 다양하다. 비록 예배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취약하기는 하지만 주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을 모체로 하는 또 다른 예배의 흐름이 있다. 은사운동 역시 20세기에 일어난 운동으로서 그 발전 과정에는 두 단계의 국면을 보이고 있다: 첫째 국면은 금세기 초에 시작하여 세계 도처에서 오순절 교단으로 발전한 단계이고, 둘째 국면은 1950년대에 들어서 이러한 "오순절적" 경험을 기존의 교회들이 수용하기 시작한 단계이다.


원래 은사운동이 처음 촉발된 것은 1906년 4월 9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보니브레 거리(Bonnie Brae Street)에서 개최된 한 기도회에서였다. 당시 기도회는 흑인 설교자 세이모어(W.J. Seymour)가 인도하였는데, 이때에 "불이 내려오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소위 '성령세례'를 경험하였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 일은 결국 "아주사 거리 전도집회"(Azusa Street Mission)로 발전되었는데, 후일에 사람들은 이곳을 세계 오순절 운동의 발원지로 여기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 은사운동은 죤 윔버(John Wimber)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또는 "토론토 블레싱"(Tronto Blessing)과 같은 특정 현상과 결부되어 진행되고 있다.


은사운동이 예배에 끼친 공헌은 쉽게 간과될 수 없다. 은사운동의 예배는 하느님의 임재와 실재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공예배가 형식적이고 메마르게 되며,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챤의 삶이 무미건조하게 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 운동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신도 지도력이다.

그 동안 안수 받은 목사들의 전유물이었던 치유, 전도, 가르침, 그리고 설교 등의 사역에 있어서 평신도들이 그런 일들을 담당할 수 있도록 은사를 실천하는 것에 있어서 자유로웠다. 심지어 '죄의 용서'에 있어서조차 평신도들이 활용된다. 모든 신자들의 사역자화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이는 하느님의 사람들을 구성하고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둘째, 은사운동의 특징은 몸(body)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몸과 자연 세계를 긍정하고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따라서 예배에서 손을 높이 들거나 춤(worship dancing)을 추는 등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셋째, 은사운동의 특징은 예배의 분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배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축제적 분위기를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예배운동과 은사운동이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예배운동과 은사운동은 공히 초대교회에 관심을 갖는다. 예배운동은 예배의 형태에 관한 자료로서 초대교회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은사운동은 성령론적인 전거로서, 그리고 사고방식 및 신앙경험들에 대한 원천으로서 초대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두번째 공통점은 예배운동과 은사운동이 공히 공동체 정신과 참여를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예배운동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 구성원 모두의 참여로서의 예배를 강조하는 한편, 은사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역동성과 개인 및 교회에 공히 임하시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강조한다. 또한 양자는 공히 예배와 삶에 있어서 성서의 권위를 회복하며, 성만찬을 강조하는 것, 예배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함, 친밀감이나 비공식적 측면을 중시함, 그리고 예배가 참여자 개개인에게까지 다가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점 등에 있어서 공통점을 지닌다. 은사운동의 예배는 매우 국지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갈 전망이다. 왜냐하면 은사운동은 초대교회적 전거라고 하는 장점을 지닌 동시에 "성령체험" 혹은 "신앙경험"이라고 하는 빼놓을 수 없는 종교적 요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세례


20세기에 있었던 세례에 관한 논의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것은 바로 "누구에게 세례를 줄 것인가?" 하는 것으로서, 유아세례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것이다. 신약성서적 전거가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4세기 이후부터 지배적인 세례관습이 되었던 유아세례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16세기에 한차례 논란이 있었으나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 개혁자들의 다수가 유아세례를 지지함으로써 재세례파를 누르고 대세를 이루게 되었었다.


금세기에 들어서 유아세례의 논쟁이 다시 촉발된 것은 1940년대이다.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 쿠르트 알란트와 요아킴 예레미아스 그리고 오스카 쿨만과 린하르트 등 대륙의 신학자들이 이 논쟁에 참여하였는데, 칼 바르트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진영의 대표주자로서 신약에는 오직 하나의 "세례"만 있을 뿐 "유아세례"는 없으므로 유아는 세례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그런가 하면 예레미아스는 신약이 "온 집안"(households)의 세례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유아도 당연히 이에 포함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유럽대륙과 영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는데, 영국 국교회가 저 유명한 "세례의 위기"(Crisis of Baptism, Swanwick Ecumenical Conference, 1965)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었으며, 장로교회가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의 총회에서 유아세례 문제를 집중적으로 토의하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이 강했던 불란서 역시 로기에(A.M.Roguet)와 마티몽(A.G.Martimont)같은 카톨릭 학자들의 논쟁이 치열하였다.


성만찬에 관해서는 20세기에 비교적 많은 공감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의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통(교단)마다 다양한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전통들이 금세기에 들어서 세례의식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일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삼위일체론적인 세례문구에 있어서는 서방교회들이 전통적으로 일치를 보여 왔다. 특기할 만한 점은 금세기의 세례 경향이 예루살렘의 씨릴이나 밀란의 암브로스, 그리고 요한 크리소스톰 등 초대교부들의 세례 예비자 교육용 강의에 나타난 세례의식의 구도를 지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도는 유아보다는 성년 세례를 이상적 형태로 보고 있으며, 물세례와 견진, 그리고 (첫 번째)성만찬을 합쳐서 하나의 통합적인 세례의식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1972년에 로마 카톨릭 교회가 공표한 "기독교 성인 세례의식"(Rite of Christian Initiation of Adult)이나 1982년 세계 교회 협의회의 제네바 선언 {세례, 성만찬, 직제}(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는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5. 예배의 언어


언어는 예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요소이다. 언어에는 사회 정치적인 구조가 반영되어 있으며, 심지어 권력(power)의 문제까지도 내포되어 있다고 인식된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성서의 언어는 가부장제도라는 구조와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배언어의 문제는 주로 두 가지 요소에 기인하였다. 첫째는, 현대어 사용에 관한 문제로서, 하느님을 2인칭 단수로 호칭함에 있어서 종래에는 "그대"(Thou, The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에 들어서 찬송가와 기도문, 그리고 예배집 등에서 이 말은 "당신"(you)이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이는 초교파적 기구인 "국제 영어본문 협의회"(International Consultation on English Texts)가 1970년에 출판한 "우리의 공동 기도들"(Prayers We Have in Common)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났으며, 이후 여러 교단들이 신조나 의식을 이에 따라 개정함으로써 확산되었다.


둘째는, 포괄적 언어(inclusive language)의 사용에 관한 문제로서 주로 영어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사람을 호칭함에 있어서 남성형 명사나 대명사가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예컨대 사람(man) 혹은 인류(mankind)같은 단어들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으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현대에는 문제시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가 당신과 우리의 친구(fellow men)에게 범죄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신앙고백문은 이제 "우리가 당신과 우리의 이웃(neighbour)에게 범죄하였습니다"로 바뀌게 되었고, "그(h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라고 되어있는 예배집의 지침(rubric)은 "목사(minist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라는 중립적인 언어로 대치되었다.


최근에는 포괄적 언어사용에 대한 보다 강도 높은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민감한 것은 하느님의 호칭에 있어서 남성형 대명사를 사용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영어권에서는 하느님을 대명사로 받을 때에 남성형 3인칭 단수(He, Him, Himself)로 받았는데, 이것이 남성중심의 언어라 하여, 최근에는 중립적 언어인 '하느님'(God, Godself)으로 대치되었다. 또 삼위일체 중에서 제 1위를 '성부'(Father)로, 제 2위를 '성자'(Son)로 부르는 것에 관해서 까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왜 하필 남성형인 '아버지'이고 '아들'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적당한 대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례예식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하는 문구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 볼 만하다. 이외에도 하느님을 '왕'(King)으로 부르는 것, 천국을 하느님의 '왕국'(Kingdom)이라고 부르는 것 등 많은 언어들이 남성 중심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남성 중심적 용어들도 앞으로는 포괄적인 언어로 대치되어 나갈 것이다.


남녀 차별적 언어 이외에도 특정인을 비하하거나 소외시키는 차별적 언어가 현행 성서에 나타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을 고쳐나가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예를 들면 "절름발이"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등 해당자를 비하하는 용어는 "신체 장애자" "시각 장애자" "청각장애자" "언어 장애자" 등으로 정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작업은 다음 세기에는 보다 더 활발하고도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다.
 
6. 토착화


토착화의 문제는 기독교가 다른 지역이나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는 신학적 문제만이 아니라 동시에 예배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17세기의 영어로 진행되는 예배가 한국이나 아프리카에서 무슨 가치를 가지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면 대답은 자명해진다. 각각의 회중은 자기들 나름의 고유한 언어와 표현방식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토착화에 관한 금세기의 진전은 로마 카톨릭의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명백하게 이루어 졌다.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은 "공동체의 신앙과 유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 교회는 엄격한 통일성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배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교회는 사람들의 관습 중에서 미신이나 또는 잘못된 것과 직결되지 않는 것을 우호적으로 살펴서 가능한 한 온전하게 보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해에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몬트리올에서 발표한 "예배보고서" (Report on Worship) 역시 예배와 토착화에 관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 예배의 토착화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요구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변형되고 거룩하게 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예배의 토착화는 전 분야에 걸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예배의식이나 예배당 건물 그리고 예배음악과 예전 색깔 등은 물론, 결혼예식이나 장례예식 등의 통과예식이 모두 토착화를 필요로 한다. 물론 토착화에 있어서 단순히 한 문화에 속하는 요소만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가 속한 종교까지 가져오는 것에 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토착화가 가능한가 하는 질문은 반드시 제기되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 세기에는 한국교회에서도 예배의 토착화가 좀더 심도 있게 논의되리라 본다.


 
나오는 말


현대는 우주성과 개체성, 통일성과 다양성이 공히 강조되는 시대이다. 예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계 교회들과 함께 하는 예배의 영성, 특히 초대교회라고 하는 기독교 공통 유산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각 전통의 특징을 살리는 예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 나라와 문화에 속한 회중의 신앙과 영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예배를 이룩하는 것이 현대 예배의 주된 흐름이다.


지난 20세기에는 이러한 작업이 획기적으로 진척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예배와 예식, 건축과 음악, 복식과 색깔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러한 작업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과연 다음 세기의 예배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올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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