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상과 효 문화

□ 효는 윤리의 기본

효라함은 보통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말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늘이 내린 인연이기에 인간윤리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즉 효는 부모와 자식간에 형성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 관계를 원만하고 올바르게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질서인 것이다. 효는 부모자식간의 윤리에서 가족윤리로, 사회윤리로, 국가윤리로 확대되어 감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간사회에 기본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있다.

□ 효 사상의 유래

한국의 효 사상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각별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로 중요시한 것이 효다. 일찍부터 우리사회에 그러한 효 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오랜 농경문화에서 오는 가족 단위의 생활풍습과 고려 이후부터 생활화된 유교사상의 영향이 크다.
한 민족이라는 끈끈한 결합력 속에서 우리 민족은 조상과 자신을 일체화시켜 왔으며, 그러한 마음은 조상숭배문화로, 부모를 극진히 섬기는 효 문화로 발전되어 왔다. 효(孝)자는 노(老)자의 생략형과 자(子)자가 합성된 글자로 아들이 노인을 업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즉 아들이 노인(부모)를 공양한다는 뜻이다.

□ 시대적으로 본 효 문화

우리나라의 효는 중국으로부터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부터 민족의 고유 정신이었다. 부모를 섬기고 조상을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일종의 민족 신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후 불교와 유교정신이 접합되면서 효 사상은 더욱 체계화되고 우리민족의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삶의 정신문화를 이루어 왔다. 근대에 들어와서 서양으로부터 유래된 기독교도 또한 부모공경을 성경에서 특히 강조해오고 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長壽)하리라"는 성경말씀이 있고 십계명중에 인간관계의 첫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젠 동양적 효 사상과 서양적 효 사상 그리고 우리의 전통적 효 사상이 접목되어 형성된 우리민족만의 독특한 효 문화속에서 우린 살고 있다.
우리의 효 문화에 대하여 시대적으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삼국시대의 효

「증보문헌비고」를 보면 신라시대에 경덕왕은 효행이 두드러진 사람에게 조곡 삼 백석을 내리고 집과 전답을 하사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표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효를 권장하였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보면 효행자로 향덕, 성각, 지은, 설씨녀 등이 소개되어 있고 삼국유사에도 진정사, 대성, 향덕, 손순, 빈녀 등이 효행사례가 실려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사서에 다 소개되고 있는 향덕 효자의 행적을 소개한다.

* 예화 1) 효자 향덕

향덕은 지금의 공주시 신기동인 신라시대의 웅천주 판적향(板積鄕)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선이고, 자는 반길인데, 천성이 온순하고 선량하여 온 고을이 그 행실을 추앙하였고 어머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향덕 또한 효순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경덕왕 14년(755년)에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유행병마저 더하여 부모가 주리고 또 병든데다 어머니는 또 옹질이 발생하여 모두 죽게 되니, 향덕은 밤낮으로 입은 옷을 벗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하여 위안하며, 봉양할 것이 없어 자기 볼기살을 베어 먹이기도 하고, 또 어머니의 옹질을 입을 빨아서 낫게 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에서는 주로 보고하고 주에서는 왕께 보고하니 왕은 명령을 내려 벼 3백 가마, 집 한 채, 식구 수에 따라 전 얼마씩을 주게 하고 관원을 시켜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여 표본으로 삼게 하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땅을 효가리(孝家里)라고 부른다.

2. 고려시대의 효

고려는 유교교육을 강화하고 효행자들을 적극 표창하는 등 효 윤리의 실천을 권장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 일에 충실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는 등 건국초기부터 효를 정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고려사」사에 보면 고려의 성종 임금은"무릇 나라를 다스림에는 반드시 먼저 근본이 되는 것으로 힘써야 하나니, 그 근본이란 효도보다 더함이 없다. 효는 삼황오제의 본무(本務)이며 모든일의 기강이요, 백선(百善)의 근원이다"라고 하며 80세 이상 노인을 전국적으로 조사하여 그들에게 많은 물품을 하사하는 등 경로사상을 온 백성들에게 시범으로 보여드렸다.
고려의 효 문화를 보면 효행자에게 술과 비단 약식 등 푸짐한 상품하사, 조세감면, 부역면제, 정표 및 정려, 신분해방, 승진, 관리로 특별채용, 효자효부열녀표창,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등 다양하다. 반대로 불효자에게는 나라에서 엄중하게 다스리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성종임금은 12목에 경학박사를 두어 "재능과 인격을 겸비하여 임금을 섬김은 충(忠)의 시작이요,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냄은 효의 종(終)"이라고 하며 효를 가르쳤슴을 볼 수 있다. 「삼강행실도」에 보면 고려시대의 효자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 예화 2) 범을 잡은 효자 누백

최누백은 고려 때 수원의 아전 상자의 아들이다. 어느 날 상자는 사냥을 나갔다가 범에게 물려 죽었다. 이때 누백의 나이는 15세였는데 산으로 올라가 그 범을 잡으려고 하자 어머니가 말리므로 누백이 말하였다.
"어머니! 어떻게 아버지 원수를 갚지 않고 이대로 견딘단 말씀입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즉시 도끼를 메고 범의 발자국을 따르니, 이때 범은 사람 하나를 다 먹은 뒤라, 배가 불러 누워 잠이 들었다. 누백은 그 앞으로 달려들어 범을 꾸짖는다. "이 놈! 네가 우리 아버지를 해쳤으니 나는 이제 네 고기를 씹어 먹어야겠다." 이 말에 범은 겨우 눈을 떴으나, 꼬리를 치면서 그대로 넓죽 배를 깔고 엎드렸다. 누백은 힘껏 도끼를 내리쳤다. 그리고 범을 깔고 앉아 그 배를 갈라서 아버지의 뼈와 살을 가지고 돌아와 깨끗한 그릇에 담았다. 또 범의 몸뚱이는 큰 항아리에 넣어 냇가에 묻어 두었다. 누백은 아버지를 홍법산 서쪽에 장례를 지내고는 무덤곁에 여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더니 글 한 수를 읊는 것이었다.
'가시 덩굴 헤치고 효자 사는 집 당도하니 마음에 감동됨이 많아 눈물 흘려 그치지 않네. 흙 져다가 날마다 무덤 위에 얹으니 이 뜻 아는 건 오직 밝은 달과 맑은 바람뿐. 살아서 봉양하고 죽어서는 잘 지켜주니 그 누가 효도의 시종이 없다 하겠는가.' 읊기를 마치자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상을 마치고는 묻어두었던 범의 고기를 꺼내어 모두 먹었다.

3. 조선시대의 효

고려말에 들어온 성리학이 불교적 효행을 부정하고 유교적 효행을 강조하여 유교적 효행담을 편찬하고 「주자가례」를 보급했다. 고려말에 편찬된 「명심보감」이 조선시대에 널리 애독되어 효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명심보감 실린 명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경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으니, 아아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아 기르시노라고 애쓰고 수고 하셨도다. 그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저 넓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도다."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기거하심에는 그 공경함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그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시면 그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다하고, 제사지냄에는 그 엄숙함을 다한다."
"공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명하여 부르시거든 머뭇거리지 말고 곧 '예'하고 대답하고, 밥이 입안에 있으면 토해야 한다."
"태공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 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가 먼저 효도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리오?"
"효순하는 사람은 다시 효순하는 아들을 낳고, 逆하는 사람은 다시 오역하는 아들을 낳는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단지 저 추녀 끝의 낙숫물의 보라. 방울방울 떨어져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효행에 관한 내용은 비단 효행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존심편에도 효행을 강조하는 글이 보인다.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부모를 섬기면 그 효성이 극진할 것이요, 부귀를 보전하려는 마음으로써 임금을 받들면 충성 아닌 것이 없을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꾸짖는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한다면 사귐은 온전히 할 수 있다."
또 훈자편과 성심편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엄격한 아버지는 효자를 낳고 엄격한 어머니는 효녀를 낳는다."
"아버지가 근심하지 않는 것은 아들이 효성스럽기 때문이고, 남편이 번뇌가 없는 것은 아내가 어질기 때문이다. - - - "
아래 예화를 보면 조선시대에 효행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 수 있다

* 예화 3) 법보다 앞선 효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 어느 지방에 강도살인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치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알아내지 못해 관가에서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집 딸이 자기 아버지가 범인인 것을 알고 관가에 밀고하였다. 아버지를 잡아들여 조사해보니 그가 바로 범인이었다. 범인을 잡았다는 보고와 함께 아버지의 범죄사실을 밀고하여 사건해결에 공헌한 딸에 대한 표창을 임금께 진언하였다. 그런데 이 보고를 받은 임금은 그 딸을 표창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당장 잡아 올리라 명하여 중벌을 내렸다.
선조 임금은 딸이 아버지의 범죄사실을 밀고하여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도록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아버지를 밀고하는 일은 효에 기초한 사회규범을 근본부터 허물어뜨리는 더 큰 악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는 아버지를 고발한 딸을 극형에 처함으로써 국가 전체 질서의 핵심인 효가 어느 윤리에도 우선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4. 현대의 효

세상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화로 가족관계가 바뀌어졌다. 그리고 이젠 핵가족화에서 더 나아가 개인화 현상 즉 가족해체의 위기로까지 가고 있다. 가족간의 끈끈한 정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공주시에 2002년도 인구통계를 보면 상반기 중에 결혼과 이혼비율이 10대 4로 나타나고 있다. 10쌍이 결혼하면 그 중에 4쌍이 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전에 신문에 난 기사이다. 한 노모가 광주에 사는 장남집에 갔는데 며느리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지쳐 쓰러졌는데,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후 겨우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더구나 이 노모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였다고 한다. 몇 일전에는 아들이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불을 지른 사건이 또 발생했다. 경남 양산에서는 한 노모가 세 아들집을 전전하다가 둘째아들이 자신을 데리고 장남집 앞에 버린 사실을 알고 비관을 해서 살기 어려운 장남과 동반자살한 일도 있었다. 부모에게 용돈 않 준다고 구타를 일삼고, 귀찮다고 부모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이 아닐지라도 요즘 젊은이들,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함부로 부모에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우리사회가 효하면 구 시대적인 정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효를 교육하기보다는 대학입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패륜아들에게 어떠한 사회적인 제재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효 정신은 우리들 가슴속에 면면히 살아 있다.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문화라고 역사가 토인비가 말한다 있다. 현대사회에도 타에 모범이 되는 효자효녀 효부들이 많이 있다.

* 예화 4) 정재수의 효행

경북 상주군에 있는 사산 초등학교 2학년에 다녔던 고 정해수 어린이 이야기 이다. 정재수 어린이는 아버지를 따라 멀리 떨어진 큰아버지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버지가 휘청거리더니 비탈길에 굴러 쓰러지고 말았다. 때는 추운 겨울이라 날씨는 차갑고 눈까지 펑펑 쏟아졌다. 너무 어리기 때문에 몸집이 큰 아버지를 일으키거나 부축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는 집도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얼어갔다.
정재수 어린이는 자기의 웃옷을 벗어 아버지의 몸을 덮어 주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점점 의식을 잃고 있었다. 정재수 어린이는 다시 어버지를 꼭 안았다. 자기의 체온으로 아버지의 몸을 녹여 드리려고 밤새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추위를 이기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아버지와 아들은 꽁꽁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정재수 어린이의 시체는 아버지의 시신을 덮고 있었다. 겨우 아홉 살밖에 안되는 어린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이다.

* 예화5) 유상철의 효

지난 4일날 월드컵 폴란드 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유상철선수가 얼마전 있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 경기도중 부러진 코뼈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한바탕 ‘효도 반지’소동을 벌였다. 유선수는 5일 오전 서울중앙병원수술실 앞에서 금속물질을 지니고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목걸이와 결혼반지를 뺐지만 유독 오른손 약지에 낀 금반지만 옴짝달싹 안 해 의료진과 실랑이 끝에 결국 반지를 착용한 채 수술을 받았다. 이 반지는 1997년 어머니 이명희씨가 마련해 준 것으로 한번도 뺀적이 없다 보니 아예 손가락에 고정돼 버린 것. 이씨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보물처럼 끼고 다녔는데 오늘은 속을 썩이네요”라며 겸연쩍어했던 효자다.

* 예화 6) 공주시의 효실천운동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효실천헌장선포, 효도마을 육성, 효실천시범학교 운영, 효심을 담은 공중전화카드 제작, 효행록 발간, 효심의 광장 발간, 효 장학회 설립, 경로이동목욕사업, 내고장알기 효나들이, 춘추서당효도교실, 효행일기쓰기, 효행자 특별우대 건의,효행이벤트 행사,

□ 변해 가는 효 문화

요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예전과 많이 변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노인들이 등장하는 광고들이다. 소비사회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라고 할 수 있는 광고의 속성상, 광고의 변화는 드라마나 다른 방송프로그램의 변화보다 한발 앞서간다. 우리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서 변해 가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몇 년 전 만해도 노인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보면 "시골집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자식들의 선처에 의지하는 피동적이면 소극적인 노인들의 모습들이었다. 요즘 보면 그게 확 달라지고 있다. 최근 텔레비전 광고의 히트작중에 하나는 야후코리아 쇼핑물 광고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DDR을 하는 광고다. 이 광고는 인터넷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사회적 통념의 허를 찌르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몫을 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자 야후는 할머니의 드럼반주에 맞춰 할아버지가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며 춤을 추는 2편을 내 놓았다. 이것은 노인들도 얼마든지 밝고 경쾌한 모습으로 소비자들을 매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SK제약에서는 전속모델인 강부자씨와 여운계씨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가다가 옆을 스쳐 가는 차의 두 남성 노인들과 눈이 맞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다. 카토톱에서는 볼링을 즐기는 노인들을 담은 광고를 선보이면서 노인들의 활동성에 광고의 초점을 맟추고 있다. 일찌감치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주 소비자인 약품광고 뿐 아니라 식품이나 여행 등 다양한 광고에 노인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만큼 노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문화를 보려면 광고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960년대에 남자 51.1세, 여자 53.7세이던 것이 2001년에는 남자 70.9세, 여자78.4세까지 늘어나고 있다. 20년 이상 수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노령화사회로 가는 한편으로는 출산율이 날로 줄어들면서 우리사회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부양할 노인들은 많아지고 부양해줄 연령층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효 문화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대가족 제도하의 효 문화, 그리고 핵가족화 시대의 효 문화에서 이젠 고령화시대의 효 문화로 변해야 하는 기로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의 꽃인 효 문화를 계승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다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렇게 효도하자>

1. 부모님께 소일거리를 만들어 드리자

삼육대 사회복지학과 천성수 교수가 발표한 "직업별 수명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직업을 가진 경제활동남성의 평균수명이 75.1세로 남성전체 평균수명보다 4∼5년 길은 걸로 나왔다. 옛날에는 부모를 편안히 모시는 것이 효라고 생각해서 늙으신 부모님께 일을 시키는 것을 불효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젠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인 것 같다. 부모님들이 거동이 가능 하시다면 일거리를 적극 마련해드려 일을 통한 보람, 성취감, 삶의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2. 부모님이 원하시는 곳에 살게 해 드리자

예전에는 부모님의 뜻이 어떠하든지 간에 자식들은 부모님을 함께 모시면서 조석으로 따뜻한 밥을 해 드리고 따뜻한 방에서 편하게 모시는게 효도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젠 어디서 어떻게 사실지에 대해 부모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시도록 해드리는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 자식들하고 함께 살기를 진정 원하시면 모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당연하겠지만, 함께 사시는 것보다 따로 사시는게 편안하다고 하시면 그렇게 사시도록 도와 드려야 한다. 그 대신 사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거쳐를 늘 살펴보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도록 도와 드려야한다.

3. 노년의 삶을 즐기실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도와 드리자

예전의 부모님들은 "너희들만 잘 살면 나는 굶어도 괜찮다"라는 말씀들을 하셨다. 그러나 이젠 "너희도 잘 살고 나도 잘 살아야지"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요즘 "나 잘 사는게 효도하는 거지 뭐"라고 착각에 빠져서 부모님의 노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불효자식들이 많은 것 같다. 노후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부모님들도 있지만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느라 노후대책을 준비 못한 부모님들도 많이 있다. 그러한 부모님들이 노후를 빈곤속에서 후진국 사람처럼 살아가지 않으시도록 경제적으로 도와드려야 할 의무가 자식들에게 있다. 내가 누리는 삶의 풍요로움만큼은 부모님들로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 자식들이 누리는 경제적, 문화적인 혜택의 뿌리는 부모님이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힘을 모아서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드려서 노후에 경제적인 문제로 걱정하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4. 부모님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지켜드리자

요즘은 먹을 것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이가 부실해서 먹지 못하는 것은,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것보다도 더 불행한일인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의 치아를 보살펴드리자. 그리고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자. 또한 게이트볼, 건강체조, 수영, 등산 등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 그래서 노년에 치매로 고생하지 않도록 해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또한 치매가 왔을 경우 체면 때문에 집에다 방치해서 병을 키우며 함께 고생하지 말고 치매전문병원에 입원시켜서 적극 치료 해드려야 한다.
부모님들이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5. 홀로된 부모님들이 이성과 사귀는 것을 인정해 드리자

요즘은 홀로된 노인어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노인들에게도 젊은이와 똑 같은 감정이 있다. 홀로 사시는게 외롭다는 것을 자식들은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자식들이 잘 해드려도 채워주지 못할 것들이 있다. 그 빈자리를 매워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말년을 외롭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사실 수 있도록 건전한 이성교제의 장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성간에 사귀는 것을 반대하지는 말아야한다. 부모님입장에서 생각하며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드리는게 효도이다.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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