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족의 후예인 이집트 문명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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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교통수단으로 이집트 문명 꽃피워”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Platon, 427-347 BC)이 전해주는 철학자 솔론(Solon)과 이집트의 신관과의 대화의 내용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덴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당신네 그리스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요. 그리스(헬라)에는 노인들이 없소.”

“그 말이 무슨 말이요?” 그들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영혼이 젊은 철없는 사람들이요.” 이집트 신관이 말하였다. “왜냐하면 당신들에게는 정말로 오래된 전통, 시간에 대한 정확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이요 … 당신네 나라는 그 무엇이건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 탁월한 것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고 우리 이집트에서처럼 오래 전 문자로 기록되어 신전에 보존된 것이 없단 말이오.”

 

이 말은 솔론이 이집트에 체류할 당시의 일화이다. 이 내용 속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의 문명에 대하여 지녔던 존경심이 드러나 있다. 그리스의 현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지식은 이집트의 현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os, 484-425 BC)가 ‘나일강은 이집트의 선물’이라고 하였듯이 그리스인들의 숭상을 받았던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없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다.

 

이집트는 전국토의 97%가 사막지대이다. 나일강을 낀 서편에는 광대한 리비아 사막이 있다. 동편에는 좁은 아라비아 사막이 있으며, 홍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시나이 반도에는 전 지역에 걸쳐 시나이 사막이 펼쳐져 있다. 이 사막의 강우량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지역이다. 남쪽으로는 빅토리아만이 가로막고 있다.

 

이처럼 이집트는 천혜의 요세와 같은 지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외부와의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집트 문명의 태동은 먹을 것이 풍부한 나일강으로부터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새나 물고기 혹은 파충류들을 잡아먹었으며 사자와 표범을 비롯해 초원에 사는 짐승들을 사냥하기도 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인종의 분포를 살펴보면 이들은 바벨탑 사건이후 흩어진 함의 후손들로 북부 아프리카 지역으로 이동해 온 종족들이었다(창 11:1-9; 시 78:51-52). 나일강을 중심으로 정착한 함의 후손들은 정착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형성된 습지를 이용하여 곡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점차 정착 농경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나일강의 홍수는 시리우스(Sirius) 별이 솟아오르는 7-8월의 새벽녘에 시작되었으며 9월이 되면 어김없이 물이 빠져 지중해로 흘러내려 갔다. 이때 물 속에 잠겼던 나일 강변에는 개천의 비옥한 침전물이 쌓이게 되었다. 거기에 겨울과 봄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일강의 범람이 정기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이집트인들은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타지역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중 16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여도 수확할 수 없었던 곡물 생산을 이집트인들은 비교적 쉽게 심고 수확하였으므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외부의 적으로부터 거주지를 보호받을 수 있었던 지형 구조와 나일강이라는 풍부한 수량, 주기적인 범람으로 인한 농경 생활로 말미암은 안정적 식량 확보는 찬란한 왕조 문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기적인 나일강의 범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치수 사업의 발달로 인하여 천문학, 기하학, 역법(曆法) 등과 같은 과학적 지식을 획득함으로써 잉여 생산물까지 양산할 수 있는 문명권도 형성시켜 나갔다.

 

이렇게 여유 있는 생활 패턴은 생필품 외에도 삶의 여유를 갖고 장식품도 만들었으며 신비로운 자연 현상과 우주의 신비를 향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비로운 우주 질서를 신격화시키며 국가적 종교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죽음과 질병, 사후의 세계, 희노애락에 대한 사고를 함으로써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의식하고 서로가 협력하는 조직 사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별들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여 1년 동안 태양이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 그 남쪽에 있는 별들을 36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1년을 대략 360일로 계산하였고 10일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별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었는데 이를 데칸(Decan)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인류 최초로 태음력을 사용하는 지혜도 있었다. 한 달을 30일,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이집트의 국토는 동서로는 1,200km이며 남북으로는 1,300km이고 넓이는 약 100만㎢에 이른다. 사막에 둘러 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매우 덥고 건조한 전형적인 사막기후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무더운 여름이며 11월부터 그 이듬해 3월까지는 온난한 기후로 겨울에 해당한다. 겨울의 평균 온도는 섭씨 14도이며 여름의 평균 기온은 섭씨 30도이다. 그러나 사막지역과 남부내륙지역은 지열로 인하여 5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강우량은 카이로가 평균 24mm이며 남부 이스완은 1mm밖에 되지 안는다.

 

동북 아프리카의 광대한 사막을 지나가는 나일강은 그 길이가 6,695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나일강을 이테루(Iteru)라고 불렀다. 이 말은 ‘큰 강’이라는 고대 이집트말이다. 나일강의 원류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White Nile)과 에디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Blue Nile)이 수단의 하르툼(Khartoum) 부근에서 만나고 아트바라(Atbara)강이 합류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지중해를 향해 흘러 들어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강물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하여 나일 강변의 90군데에 범람의 집이라고 불리는 나일로미터(Nilometer)를 설치하였다. 또한 나일강은 교통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만일 나일강을 이용한 교통의 수로를 이용하는 지혜가 없었다면 그 찬란했던 이집트 문명은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광대한 땅을 바로가 다스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제4왕조시대(2613-2500 BC)의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석조 기념물도 건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근대 달력의 기원을 제공한 이집트의 태양력은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er)과 그레고리 13세가 이를 개량하여 만든 오늘날의 달력을 탄생시키는 기원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러 신들을 섬겼다. 아몬족의 신 아몬-라(Amun, Amun-Ra)를 비롯해 이집트 최고의 신중 하나였으며 달의 신인 토트(Thoth), 나일신 하피(Hapy), 사랑을 받은 오시리스(Osris), 사후 세계의 신 아누비스(Anubis), 태양신의 부활을 알리는 쇠똥구리 신의 케프리(Khepri), 오시리스의 아네 이시스(Isis),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Horus) 등등의 신들을 섬겼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신들을 섬기는 일들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으니라”(고전 8:5-6).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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