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대 역사 탐방을 시작하면서

 

장인수 박사(D.Min, Ph.D)

성서역사배경연구학회 소장

 

583j.jpg

기자의 피라밋 _ 쿠푸 멜카우레 카프레왕의 무덤<이집트 제4왕조, 2600B.C.>

 

“역사 탐방은 학문적 탐구 지속할 수 있는 계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회가 주어질 때 성경에 등장하는 지역들인 이집트를 비롯한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란, 터키 등으로 탐방 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지역들을 향해 출발하면서 기대 이상의 상상을 하기 쉽다. 필자는 이러한 사고의 틀을 깨고 출발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곳은 새하늘과 새땅과 같이 우리를 맞이하는 거룩한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죄로 오염된 세속인들이 살고 있는 땅이며, 그로 인한 실망도 크다고 하는 사실이다.

 

나아가 대부분 탐방자들은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일행들이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 자매들이기에 아름다운 교제 속에서 은혜로운 탐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출발하는 데 이 또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동행하는 탐방자들이 나로 인하여 도움을 받고 기뻐할 수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하는 것이 실망을 줄이며 은혜 가운데 탐방을 마치고 귀국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편 주의해야 할 것은 현지 안내자에게 너무 무리한 안내를 바라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주의할 점도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성서시대와 관련된 내용들만 요구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성서시대를 지나 20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 아니라 근동지역 대부분이 이슬람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는 단성론 계열인 꼽틱 정교회(Coptic Church)가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요르단과 시리아, 레바논 등에는 동방교회 계열의 기독교가 소수의 기독교 계열로서의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종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독교라 할 수 없다.

 

특별히 시리아, 레바논, 이란 지역은 이스라엘의 국가 자체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여권에 이스라엘 스탬프가 찍혀 있는 경우 즉시 추방을 당하게 된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은 보이지 않는 반(Anti) 기독교적 정서가 그들 민족 감정으로 깔려 있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이스라엘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경과 관련된 지역들이 대부분 무속적 요소가 가미된 가설들로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특정 지역의 장소는 성역화(聖域化)되었거나 인위적이며 상업적인 요소들로 오염되어 있음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성서시대의 지역을 탐방하고자 하려면 장소적 개념보다는 지리적 개념에서 성서가 기록되었던 계시 시대를 탐방한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 세월은 흘러 2000년의 시간이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들 국가에는 삼대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두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의 신앙고백과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효과적인 성서시대 탐방을 하기 위해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우르는 시대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재확인하는 시간 여행(Time Trip)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을 놓쳐버린다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망하고 돌아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뿐이다.

 

이러한 시간 여행이란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선상에서 조명되는 카이로스(Kairos)의 개념을 가져야만 역사 탐방의 가치를 체험하는 소통(The Communication)을 나눌 수 있다.

 

항상 은혜의 방편으로 쓰여진 말씀(Scripture)이 전제되고 성서시대 배경의 현장인 지리적 개념과 역사적 정황들을 참고하는 입체적인 성서 조명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탐방한다면 풍성한 구속사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자세 아래에서 우리는 신앙의 가치관이 정립된 감동(Inspiration)을 받고 돌아올 수 있다.

 

성경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저자가 동일한 재능과 지성과 직업을 가진 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된 책이 아니다. 1600여 년이 넘는 기간동안 수많은 영감을 받은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놀라운 계시(A Shockong Revelation)의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시대 역사 탐방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위대한 말씀이 되는가를 다시 확증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즉 목적(Text)이 은혜의 방편인 말씀의 확증이며 수단은 역사 탐방이라고 전제한다면(Context) 의미있고 보람있는 탐방이 될 것이다.

 

이제 성경시대의 역사 탐방이 유익이 되기 위하여 몇가지 자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신앙적, 신학적 사상이 일치하는 일행들과 탐방을 떠나야 한다.

필자는 개혁주의 신학을 전재로 연구한 바탕 위에 성경시대 지역을 탐방한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 목회 일선의 강단과 현장을 풍성하게 목양한다는 열정을 더욱 가치 있게 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탐방프로그램이라는 여행(action plan)을 한다. 이런 점에서 탐방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학문적(신학) 작업을 더욱 알차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앙적, 신학적 사상이 일치하는 일행들과 탐방을 떠나야 한다.

 

둘째,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고 확증하고자 하는 약속하신 깊으신 뜻은 제한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고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더욱 심도 있게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연구하면서 목양의 현장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설교자료 빈곤이라는 갈증을 해소하는 무한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목회 현장은 성도들을 양육하는 말씀의 꼴이 항상 신선하고 풍성해야 한다. 필자는 목회한 지 33년이 지났고 때로는 신학교 교수로, 목회의 현장에서는 목회자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양떼들을 보살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풍성함과 진리에 대한 즐거움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음은 성서지역 역사 탐방을 통하여 채워졌기 때문이다.

 

셋째, 역사탐방은 목회의 빈곤함을 채워주는 대안이다. 필자는 목회의 보람과 즐거움도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이겨내기 힘든 시절도 있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엄동설한에 홀로 남아 서 있기도 힘든 고난의 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목회를 그만두고 싶은 큰 시련의 고비를 통과할 때 제일 먼저 필자에게 함께하여 위로해 주신 분은 성서시대 역사탐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나의 주님이셨다. 그리고 학문적인 열정과 더불어 학위를 취득한 이후 더 많은 학문적 탐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신학대학원 은사님들과 사랑하는 가족들, 제자들, 그리고 성도들이 있다.

 

이처럼 성서시대 역사탐방은 필자에게 진리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러 일으켰으며 목회뿐 아니라 학문적 탐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 출애굽의 역사가 살아 있는 이집트 지역으로 본격적인 역사탐방을 함께 떠나보기로 하자.

 

(옮겨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