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미란이, 고마운 아버지

은퇴 선언한 장미란
마음의 짐 던 아버지

 

장미란(왼쪽)-장호철 부녀가 고양 장미란체육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바벨을 사이에 놓고 손을 맞잡으며 밝게 웃고 있다.

 

[고양=김민규 기자]

“은퇴해도 장미란답게 살 거예요.”(장미란)

 “잘난 우리 딸, 결혼 먼저 해야지.”(아버지 장호철씨)

 세계 최고의 역사(力士) 장미란(30)이 있기까지 부친 장호철(60)씨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로부터 고집과 열정을 물려받은 딸은 묵묵히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버지가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본지는 지난해 12월 말 고양 장미란체육관에서 부녀를 만났다. 장미란은 은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새해를 맞아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을 결심했고, 10일 은퇴 기자회견을 연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장미란·이하 란)“지난해 정말 시원섭섭했다. 런던 올림픽 때 (4위에 그친) 아쉬움이 남아 더 뛰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장호철·이하 부)“미란이가 10월 전국체전이 끝나고 고심을 했다. 얼마 전 결심을 했다. 스스로 결정한 만큼 존중하기로 했다.”

 -향후 계획은.

 (란)“지금은 학교(용인대 박사과정)를 다니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있다. 지난해 2월 설립한 재단 일에도 집중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장미란답게 살겠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30대가 되고 싶다.”

 (부)“운동은 할 만큼 했으니 결혼해야 하지 않겠나. 좋은 사람 만나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 걸 보는 게 부모로서 가장 뿌듯한 일 아니겠는가.”

 (란)“교수까지 하고 결혼하려면 마흔 정도 될 것 같은데….”

 (부)“잘난 딸인데 빨리 결혼 해야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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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형은.

 (란)“주변에서 먹는 거 예쁘게 봐주는 사람이면 다 된다고 하더라. 일단 나보다 체격이 좋았으면 좋겠다.”

 (부)“인간 됨됨이가 돼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사람, 건강한 사람이면 좋겠다.”

 -지난해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란)“스포츠를 통해 꿈나무들과 소외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아빠의 조언 덕분에 재단을 만들 수 있었다.”

 (부)“2년 전부터 나와 미란이 모두 재단을 생각했다. 비인기 종목에 이런 재단을 만들면 후배 양성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튼튼하게 운영해서 비인기 종목에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런던 올림픽을 마치면서 ‘손키스 세리머니’를 한 것이 화제가 됐다.

 (란)“즉흥적으로 나온 거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사람이 많더라. 솔직한 뜻이 잘 전달됐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아쉬워 시원섭섭했던 올림픽이었다.”

 (부)“마지막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큰 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는 딸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을 하는데 아버지의 도움이 얼마나 컸나.

 (란)“경기할 때마다 찾아와 응원해 주셨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하는 게 좋아서 아빠의 그런 모습이 예전엔 싫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아빠의 그런 고집스러운 모습 때문에 내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딴 메달 색깔 변하지 말라고 투명 매니큐어까지 발라가며 관리해 주셨다.”

 (부)“내가 경기장 가는 걸 미란이가 싫어했다. 그래도 계속 간 이유는 미란이가 그만큼 운동을 잘해서였다. 미란이가 선수 시작할 때부터 캠코더로 경기하는 모습을 일일이 촬영했다.”

 (란)“지금 그 영상을 보라 하면 못 본다. 부끄럽다. 그런데 집에만 가면 아빠가 계속 틀어놓으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끈다.(웃음)”

 -평소에는 어떤 딸, 어떤 아버지인가.

 (부)“복덩어리다.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하는 데 도와주지 않았느냐. 어디서든 미란이 아빠라고 하면 좋게 봐준다. 이런 게 효녀 아닌가.”

 (란)“100점짜리 아빠다. 어렸을 때부터 잘 먹도록 해주셨다. 많이 먹지 못하면 잔부상도 많다. 중학생 때 부모님이 3년간 곰탕집을 하셨는데, 가장 좋은 국물을 먹여주셨다.”

 -딸이 역도 를 하며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부)“남들은 멋도 내고 가고 싶은 여행도 가더라. 미란이가 벌써 서른이다. 처음 역도를 권유한 게 나지만 무거운 기구를 10년 넘게 들고 싸우는 모습을 보니 이젠 마음이 안 좋다. 청춘은 다 가고. 안타깝다.(웃음)”

 (란)“내가 좋아서 했던 거다. 역도를 하고자 했으면 이렇게 가 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남들이 못하는 걸 하는 게 오히려 더 좋다. 그래서 (역도를 권유한) 아빠한테 감사하다.”

 -새해를 맞아 덕담 한마디씩 부탁한다.

 (란)“오래오래 한결같은 아빠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건강하셔야 해요.”

 (부)“이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게 네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2013.01.09
고양=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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