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도 실린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풀무원농장 설립자 원경선 원장
전쟁고아 등 위한 공동체 마련… 더불어 사는 삶 실천
국내 첫 유기농업 단체도 결성… 장남 원혜영 의원, 풀무원 창업

 

풀무원농장 설립자 원경선(100) 원장이 1월 8일 오전 1시 49분 경기도 부천 순천향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라 불리며, 초·중학교 교과서에도 업적이 실린 인물이다. 풀무원 창업주 원혜영 국회의원(민주통합당)의 부친이기도 하다.

고인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별세하면서 16세부터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의 삶에 6·25는 큰 전환점이었다. 전쟁 통에 집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 "모두 같이 살아야지. 배고픈 사람들과 고아들, 그리고 자식을 잃은 가엾은 노인들과 함께…."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그는 행동으로도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했다.

평생 동안 땅을 갈고 밭을 일구며 이웃 사랑과 자연보호를 몸소 실천한 원경선 원장이 농기구를 메고 걸어가고 있다. 황헌만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풀무원 제공

 

 

유기농 채소밭 흙고랑 속에서 환히 웃고 있는 원경선 원장.

10년 전 충북 괴산의 풀무원 농장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기력이 쇠해진 3년 전까지 손수 농사를 지었다.  

[중앙포토]

 

 

나이 마흔이던 1955년 부천에 땅 1만 평을 개간해 '풀무원농장'을 설립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해 공동체를 운영했다. '풀무'는 대장장이가 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는 데 이용하는 기구. 사람도 풀무질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붙인 농장 이름이다. 농장은 그 뒤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인생 두 번째 전환점은 1975년 환갑을 넘긴 나이에 찾아왔다. 일본에서 '농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던 고타니 준이치가 쓴 유기농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이 발단이었다. 고타니씨를 한국에 초청한 원 원장은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비는 의미에서 간곡히 부탁합니다. 비료와 농약으로 키운 농산물은 모든 생명을 죽입니다. 제발 그런 농사를 하지 마십시오."

크게 공감한 원 원장은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생명 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 단체를 결성했다.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 '정농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유기농은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구 자란 풀은 손으로 뽑아내야 했고, 벌레도 극성이었다. 그때마다 직접 풀을 베고 거름을 만들어 뿌리며 장애물을 극복했다. 3년이 지나자 병들었던 땅이 되살아나고, 조금씩 수확량도 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환경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유기농 실천운동에 대한 강연을 했다. 그 직후 경실련 산하기구로 시작한 환경개발센터('환경정의'의 전신)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2004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새로 일군 풀무원농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장 인근에 평화원 공동체를 세워 평생의 꿈인 공동체 운동을 지속했다. 유기농을 통해 환경보호와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녹색인상(1992), 유엔글로벌 500(1995), 국민훈장 동백장(1997), 인촌상(1998) 등을 수상했다. 2009년 10월 기아대책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고인은 "전 세계 63억 인구 중 10억명이 굶고 2초에 한 명이 죽어가고 있다"며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없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자"고 말했다.

장남인 원혜영 의원은 이런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1981년 풀무원을 창업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연간 매출 1조5000억원이 넘는 대표적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남승우 사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풀무원 측은 "고인이 평생 실천해온 이웃 사랑과 생명 존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북 괴산 풀무원 연수원인 '로하스 아카데미' 안에 원경선 원장 기념관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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