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니스타' 대원군, 칼집에서 칼 빼다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그는 뻔질나게 옷을 갈아입었다. 눈부신 예복과 당당한 관복, 그리고 깔끔한 평상복 두어 벌…. 매무새는 지금껏 남은 그림들에 고스란하다. 몸에 딱 맞는 의관(衣冠)이 하나같이 귀티 난다. '구한말의 패셔니스타'로 불러도 손색없을 그가 누군가 하니,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1820~1898)이다.
이 그림에서 입은 옷은 깃과 도련에 검은 천을 댄 연초록빛 학창의(鶴氅衣)다. 사대부나 학자가 한가로이 걸치는 평복인데, 술이 달린 띠가 드리워져 맵시가 여간 아니다. 모자도 이채롭다. 세로로 골이 지고 가운데가 높다. 와룡선생 제갈량이 즐겨 써서 이름이 '와룡관(臥龍冠)'이다. 그 안쪽을 보면, 세심한 묘사에 입이 딱 벌어진다. 와룡관 속에 탕건, 탕건 속에 망건, 망건 위에 상투가 죄다 비친다.
- '이하응 초상' - 이한철·유숙 그림, 비단에 채색, 133.7×67.7㎝, 1869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형식도 새롭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유례가 드물게 장식품이 가득하다. 키 높은 탁자에 놓인 기물은 서첩, 청화백자, 도장, 탁상시계, 벼루, 단주(短珠), 타구, 안경 등이다. 협탁에 향로와 향꽂이, 발치에 팔을 괴는 장침이 있다. 다들 초상화의 주인공이 아끼던 물건이다. 초상화는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였던 이한철과 유숙이 함께 그렸다. 늘 눈이 희번덕거렸다는 대원군의 서슬은 어디서 찾느냐고? 탁자에 세워둔 칼! 칼집에서 칼을 뺐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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