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왕', 서울대 음대생 된 사연

"공장 취업하라"는 부모 설득,
한 달 15만원이 공부 밑천… 피아노 있는 교회 가서 연습,
유명 성악가들의 공연 실황 유튜브에서 찾아 듣고 또 들어,

"인자 성악 관두고, 일을 하믄 안 되겠나. 내 공장 함 알아볼 테니까, 돈 버는 게 안 낫나?"

박태수(19)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꿈을 포기할 뻔했다.
검은 연미복을 입고 관객들이 꽉 들어찬 공연장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를 꿈꾸던 그에게 어머니는 공장 일을 권했다.
아버지는 다니던 섬유 공장에서 해고됐고, 1000만원 카드빚을 갚지 못해 가족들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 저는 성악 할 거예요.
제가 세계적인 성악가가 돼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로부터 1년여 후 박군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14일 오후 서울대 음대 실습실에서 만난 신입생 박군은 노래 연습 중이었다.
키 178㎝, 몸무게 100㎏의 거구에서 풍부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힘든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쾌활했고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박군은 "어머니께서 '서울대는 공부 잘하는 애들만 가는 곳이라는데 네가 입학한 게 진짜냐'며 믿지 못했다"며
 "이제는 '서울대 아들 둔 엄마'로 마을에서 유명인이 되셨다"고 했다.

농촌지역인 경북 경산시 자인면 출신인 박군은 '씨름 신동'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박군은 14살 때 경산시 대표로 경북도 대회에 나가 씨름왕 자리에 올랐다.
그런 박군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건 교회 성가대 지휘자 김종원씨였다.

 

교회 마당에서 들려오는 박군의 우렁찬 소리를 듣고
"저런 덩치로 성악 하면 딱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박군에게 노래를 한번 불러보게 했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로 노래를 따라 하는 박군에게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았다.
그는 박군에게 성악 공부를 권했고 박군은 흔쾌히 응했다.

 

그때부터 김종원씨는 박군에게 멘토(인생 길잡이)가 돼 주었다.
"선생님이 무료 레슨을 해주고 악보와 교재도 선물해 주셨어요.
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되면 그때 갚으라고 하셨죠."

14일 오후 서울대 음대 강의실에서 박태수(가운데)군과 2012학번 서울대 음대 동기생들이 피아노를 둘러싸고 포즈를 취했다. 박군은“노래할 땐 우울하고 슬픈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행복감만 남는다”고 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하지만 음악의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우선 학교와 씨름 선생님은 박군의 음악공부에 반대했다.
"촉망받는 씨름 유망주를 꼬드겨 성악을 시킨다니,
아이의 장래를 망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돈도 많이 들었다.
그나마 2007년 삼성꿈장학재단 장학생에 선발돼 매달 15만~20만원을 받았다.
그게 박군이 가진 공부 밑천의 전부였다.
음대 준비를 하면서 그는 음악 사(私)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피아노가 없어 집앞 교회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오페라·독창회 공연은 비싼 입장료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신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성악가들의 공연 실황을 듣고 또 들었다.

성악 공부 1년 만인 2008년 5월 그는 '경산문화원 전국학생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탔고,
6월에는 '엄정행 전국성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남들은 비싼 레슨을 받고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서울대 성악과에 그는 불굴의 의지와 멘토의 도움,
그리고 기업의 기부(장학금) 덕분에 단번에 합격했다.
"주변에 경제적인 이유로 음악을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지만 노래는 제 삶의 전부예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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