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한국서 사는 서양인 "한국 문제점은…"

연세대 설립자의 증손자 피터 언더우드 ‘한국사랑’
“우수한 한국 교육, 다름 인정 않는 획일성도 키워”

 

‘한국에 뿌리를 둔 서양인’. 피터 언더우드(57·한국명 원한석·사진)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그는 생후 3개월 때 한국에 온 뒤로 57년 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지냈다. 본인뿐 아니라 증조부 때부터 4대째 서울 연희동 부근에서 살아왔다. 증조부는 개신교 선교사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다. 경영 컨설턴트로 외국계 기업의 한국 투자를 돕는 그가 한국 사회와 경제에 대한 단상을 담은 책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냈다. 책은 한국경제의 중심을 이뤄온 권위주의, 재벌중심의 경제, 연고주의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담았다.

 15일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내가 사랑하는 한국이란 나라를 위해 조금이라도 내가 아는 것들을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매번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이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 현실로 만드는 나라’로 소개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은 열심히 일하는 돌격정신이 필요했지만, 이제 우리가 다른 나라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입장인 만큼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한국인 특유의 창조성을 산업적 창조성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언더우드는 “역설적이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인정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이 획일성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워크 하드(work hard)의 시대였다면 앞으론 워크 스마트(work smart)가 필요하다”며 “열 시간 공부할 게 아니라 서너 시간만 공부하고 놀면서 다른 생각을 할 줄 아는 문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획일화된 교육 탓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도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인연을 버리라”고 했다. “또래 집단에 생각의 틀을 맞추려는 강박이 다양성을 해치기 때문”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재벌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재벌을 삼국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왕조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언더우드는 “창업자 만큼 2세, 3세가 똑똑하리란 보장이 어디 있나. 오너가 없는 회사를 너무 두려워 말라”고 말했다. 대안으로 주주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극대화 된 형태의 ‘주주자본주의’를 꼽았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선진국을 베끼고 싶어하는 심리는 여전하지만, 정작 다른 이의 의견은 깎아 내리기 바쁘다는 지적이다.

 한국전 때 UN군 수석통역장교로도 활동했던 아버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2세(한국명 원일한)의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가 어느 회의에서 표결 끝에 자신이 포함된 쪽이 진 적이 있었는데, 회의가 끝나자 표결에 진 사람들이 와서는 ‘어떻게 결과를 뒤집을까요?’라고 물어 이를 나무라신 일을 평생 얘기하셨다”고 했다. 이어 “내 책을 두고 ‘양놈이 한 얘기’라고 무조건 폄훼하는 건 이해할 수 없지만, 책 내용 중 ‘여기는 객관적으로 이래서 틀리다’는 의견 개진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이라는 게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부담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이제 한국과는 떼놓고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가족들 모두 생각한다”며 “우리 가문과 함께 꾸준히 성장한 한국에 뿌리를 내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웃었다.

[중앙일보]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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