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서론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 세상에 있는 물질들을 얼마나 내가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나 자신과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런 소유물의 관계보다도 그리고 내가 지금 다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 나의 부모와의 관계나 자식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나 혹은 친구와 혹은 직장동료와 이웃과의 그런 관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금 어떻게 되어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 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바른관계 속에 있는가? 나는 하나님과 정당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삐뚤어져있고 어긋나있고 잘못되어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세상을 창조하신 온 우주의 왕이시므로 그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 우주에 사는 동안에 영원토록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모든 행동이 보장되는 것이지만, 비록 우리가 작은 물질적인 소유로 만족해 하고 다른 이웃과의 관계는 좋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있고 만일 그하나님과 원수관계에 있다면은 그 인생은 영원토록 저주가운데 처해있다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지금 범죄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원수된 상태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께 죄를 용서 받을 수 가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이 저주에서부터 벗어날 수 가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여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부부관계도 잘 맺으려고 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을 아내가 잘 맞추어 줘야 관계가 정상적이 되는 것이고, 또 아내가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을 남편이 잘 이루워져야 부부관계가 정상적으로 되는 것이지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거절하게 되면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이에요.

 

부자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그 요구를 자식이 잘 들어주어야만 부모와 자식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또 자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부모가 적절하게 요구를 들어줘야 부모자식관계도 잘 유지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단순히 우리의 죄문제를 용서받는 것 만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놓으시고 우리에게 내가 너희들이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요구기준. 하나님의 요구사항.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 그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가 맞추어 드려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맺어질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게 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은 2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1. 나의 죄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이 죄를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어찌하면 내가 다 이룰수 있을까?

다 순종해서 다 성취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수준까지 내가 될 수가 있을까?

 

하는 이 2가지의 문제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관계에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이신칭의라고 불리는 이와같은 교리는 바로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어떻게 하면 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있을까? 라고 하는 우리의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답변해주신 내용이 바로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이신칭의의 이 복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자 핵심이 되는 것이에요.

복음의 기초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신칭의의 복음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신칭의라고 불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지게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진리를 바르게 알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고 이 진리를 완전히 곡해 하거나 모르거나 절반쯤만 알고있다 그러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 종교개혁자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가 일어서기도 하고 교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그런 중요한 교리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교회가 이 칭의의 복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을때 교회는 이땅가운데 교회답게 찬란하게 설수가 있는 것이고 이 칭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교회는 타락하게 되고 교회는 세속화 되게 되고 교회는 교회답지 못한 그러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던 중요한 진리가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하는 이신칭의의 진리 혹은 복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교부들과 선조들은 이 이신칭의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소교리문답 33번을 보고 함께 보겠습니다.

 

문 33 : 칭의는 무엇입니까?

답 33 : 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로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해 주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 받아 주는 것인데,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계산해 주기 때문이며,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신다는 사실이 무엇인지를 보았는데요, 32번부터 물어볼테니깐 답을 읽어보세요.

 

문 32 :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이세상에서 어떤 유익을 얻습니까?

답 32 :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는 것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이 땅에서 이와 함께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받는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때 단순히 복음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믿음으로 복음을 믿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그랬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까지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효과가 있도록 그렇게 불러내신 사람들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진짜 참 신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이런 특별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데, 하나님 부름을 받으면 어떤 유익이 있느냐 하는 것이에요. 

 

어떤 유익이 있다구요? 이 세상에서 친히 의롭다 하심과 양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그런 복과 성화, 하나님 처럼 점점 거룩하게 되는 이런 복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변화가 있어요. 변화가 있는데 어떤 유익을 받게 되는가 하니깐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의롭다 이렇게 너는 나와 바른관계에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하는 선언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이 되고 점점 예수믿을때처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이런 거룩함의 복을 얻게 된다. 

 

이와 더불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받는 가장 중요한 결과중에 유익중의 하나인 칭의를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 이신칭의는 무엇인가?

 

그러면 33번.

 

문 33번 : 칭의는 무엇입니까?

답 33번 :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유하시고 그 앞에서 우리를 옳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심인데

                우리는 오직 믿음만으로 받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10년을 했건 신학교를 나왔건 아니면 신학교수가 되었던지 간에 제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 우리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 되는 교회가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신자답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칭의가 뭡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글쎄요... 이렇게..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그 핵심 내용을 모른채 그냥 두루뭉실 하게 살기 때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수가 많이 있을 거 같아요. 제생각에..

시도는 다 안해봤죠..

 

이제 몇번해보니깐 그렇다는 것이에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 소요리 문답을 외운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요.

외운사람은 정확하게 핵심을 찔러가지고 화살을 쏠때와 같이 과녁에 적중하는 것 처럼 그렇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수가 되는 칭의의 원리를 정확하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것은 외우라는 것이에요. 

 

안외우면 머릿속에 뱅뱅뱅뱅 돌고 이것이 자기가 분명하게 정리화되지 않는 것이에요.

외우고 있습니까? 요즘..

 

웃는 자매들은 뭡니까? (웃음)

 

다시한번 잘 봅시다. 여기에 핵심사항이 있는 것이에요. 

 

1. 칭의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다. 

칭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라구요? 은혜다.

은혜.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게 칭의에는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에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2. 그다음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여겨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칭의 요소는 2개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과 한가지요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받아준다는 말이 의롭다하신다 하는 뜻이에요.

우리를 의롭게 선포해 주시는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그러니깐, 칭의라고 하는 말은 2가지에요.

그 내용이..

 

첫번째, 절반의 요소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이고, 

다른 절반은 의롭다 칭하여 주시는 것.(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것)

 

이것이 칭의의 2가지 요소에요. 

 

죄용서와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여 주시는 것.(우리를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것, 인정해주시는 것)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받아줄수 있는가 하니깐 이는 뭐 때문이죠?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계산해 주기 때문이며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그렇게 받아주시는가 하면은 그 근거가 무엇인가 하니깐 그리스도의 의를 어떻게 한다구요? 우리의 의로 계산해 준다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통장에다가 집어넣어 주심으로서 그래서 우리의 통장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를 가지고 있게 됨으로써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받아 줄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하니깐 그 근거가 출처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의로 넘겨주시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전가해 주기 때문에 계산해 주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데 이와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어떻게 받는 것인가?

 

3. 칭의는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오직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노력으로 행동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여기에 칭의 교리에.. 이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이것에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소교리 문답의 특징은 다 말하기보다도 아주 엑기스를 핵심을 말하는 것이니깐,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면 이 칭의속에 들어있는 교리내용정도는 알아야 복음을 바르게 안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도 칭의의 진리속에 있는 내용을 바르게 전해야 복음을 바르게 전했다고 말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한번 이제 안봐도 대충 칭의 내용이 뭐가 된지 아시겠죠? 

 

 

- 칭의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입니다.

칭의의 요소는 뭐가 있다구요?

 

2. 우리가 죄용서 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것이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의를 받으시는 가 하니깐 누구의 의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줌으로 그렇게 인정해 주시고 계산해 주기 때문인데 

 

이와같은 그리스도의 의는 오직 무엇으로 받는 다?

 

3. 오직 믿음으로 만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답변할 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암기가 잘 안되는 이유는 이 내용을 모르면 무슨말인지를 모르니깐 암기가 힘들지만 이렇게 소교리문답을 설교하는 이유는 왜그런가 하면 이 설교를 다 듣고서 내용을 이해한다음에는 이해한 것으로 그치면 안되고 그것을 정확하게 뭐해야 되겠죠? 암기를 해둬야 그내용을 내가 완전히 숙달하고 내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을 가서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런말 묻지 않고, 칭의가 뭡니까? (웃음)

 

뭐어떻게 지내는지 다 안봐도 알아요. 제가 뭐 도사라서가 아니라 사는게 거기서 거기죠. 거기서 거기지 뭐 벗어날게 뭐있겠어요. 신문에 나오는 얘기도 거기에 다있겠지. 무슨 뭐 특별한게 있겠어요? 개인차가 도토리 키재기처럼 있겠죠. 제 관심은 물론 그런것도 있어요. 도토리 키재기이긴 하더라도 관심이 있지만 제 관심은 더 중요한 것에 있어요. 

 

지난주에 월급좀 더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그것도 관심이 있긴 없지만, 칭의가 뭔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게 더 중요한 관심이니깐, 제가 심방가게되면 그런거 물어볼거에요. (웃음) 심방오기를 즐겨하지 마시고, 준비를 해서 오면 목사님이 이런거 물어본다. 성화가 뭡니까? 영화가 뭡니까? (웃음) 그러니깐 준비를 철저히 하고 그렇게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이 칭의의 교리를 분명히 아는 것은 복음의 진수를 아는 것이에요.

 

- 이신칭의의 재발견 : 루터

 

그래서 제가 좀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교회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확고하게 발견을 하고 또 자기의 삶속에 크게 체험한 분들이 있다면 다 참그리스도인이겠지만 그중에 크기면에서 볼때 마틴 루터라고 하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믿음의 선배가 이 이신칭의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자기가 깨달았고, 그래서 사실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에요. 

 

중세시대에 교회가 이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너무나 몰랐기 때문에 교회가 엄청나게 세속화 되었고, 교회가 아닌 것처럼 그게 교회인지 아닌지 그걸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부패에 빠지게된 요인중에 하나는 다른 것도 많죠 많지만은 가장 결정적인 문제 이 칭의의 교리를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는 다는 교리를 모르거나 거의 사장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루터가 이거를 깨닫고 난 다음에 보석을 발견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천국문이 확 열려서 내가 그 낙원에 들어간 것 같은 그런 엄청난 루터 개인의 혁명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났어요. 이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그래서 이 진리를 외치다 보니깐, 이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개신교가 된 것이에요.

 

그러므로 사실 이 종교개혁시대때는 이걸 복음의 진수라고 불렀어요. 이신칭의 진리를 복음의 진수라고 불렀고, 그런면에서 카톨릭은 이 복음을 무시하거나 왜곡 시켰기 때문에 진정한 복음주의가 아니었고, 참 개신교 만이 진정한 복음 주의 였어요. 그래서 복음주의라는 말이 처음 출발된 것은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달은 것을 복음의 핵심을 깨달은 사람들이기때문에 복음주의라고 그런 것이에요.

 

오늘날 이 복음주의라는 말을 가지고 있지만은 이신칭의의 진리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지 않거나 아니면 왜곡되게 잘못되게 가르치면 그건 복음주의가 아니에요.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이와같은 종교개혁자가 개신교가 아니에요. 

 

그분들은 아직도 카톨릭 적인 생각에 물들어 있거나 아니면 불신자처럼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루터가 이것을 깨달았는가..

 

루터가 22살때까지 다 카톨릭 교회 안에서 자란 것이에요. 그냥 태어나면서 부터 다 자신의 이름이 다 교회의 호적부에 올라가기 때문에 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그런 수준에서 어릴때 자란 것이에요. 그러다가 한 22살때쯤 친구하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게 되고 벼락이 쳤는데 같이 가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즉사했어요.

 

여러분, 인생에 결정적인 이 전환은 뭔가 죽음을 맞닥드려봐야 하는 것이에요. 그냥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겠지 그게 아니라 그게 누굴통하든 자기부모님이 돌아가시던 아니면 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가시던 아니면 자기가 죽을뻔했던지 간에 아니면 휴가철에 물에 빠지던지 간에 거의 죽었다 살아났던 경험이 잇다던지 하여튼 죽음을 맞닥드려봐야 사람이 진지해지고 진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가 하는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루터가 22살때 이 죽음의 문제에 맞닥드리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깐 내가 과연 구원받았을까? 내가 이번에 하나님 만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어찌하여야 하나님 앞에서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신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이 구원의 문제가 절박하게 다가온 것이에요. 

 

우리나라에 유명한 그 신학교가 있는데 장신이라는 신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오랫동안  교수하시던 분이 뭐 늘 교수시니깐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고 하셨겠죠. 그런데 그분이 정말 진정하게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본것은 말년에 은퇴하시고 병이 들었을때 거의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때 그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니깐 정말 내가 믿고 있는 진리가 바른 것일까? 내가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진지한 물음을 하기 시작했다고 얘기 하시더라구요.

 

여러분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시면서 그러한 질문을 던져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대로 죽으면 지금 내 상태는 하나님께 죄인이고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으니깐 나는 이대로 죽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떨어지고 말거다. 내가 만약 이상태에서 구원받았음을 내가 확신있게 확실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나님 만났을때 나는 어찌 할까? 라고 하는 정말 진지하고 심각한 물음을 던져본적이 있는 사람이어야 오늘 제가 설교하는 이 이신칭의 진리는 거기에 한줄기의 빛처럼 어두움 가운데 탈출하는 깊은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그와같은 해방의 마음 자유의 복음이 될 터인데 한번도 그런 물음이 던져 본적이 없으면은 내가 이대로 살다가 지옥에 떨어지는게 아닌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가지고 영원한 심판가운데 떨어지는 거 아닌가? 내가 어찌 하여야 내가 하나님 앞에서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인가? 내가 당장 죽어도 나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있는 자신이 있을까? 라고 하는 이런 진지한 물음이 생긴사람에게만 이신칭의 복음은 그의 귀에 아름답고 청아한 복된 소리 복음으로 들릴 수가 있는데 루터가 바로 이 22살때 경험을 통해서 그러한 체험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루터는 그래서 자기가 하던 법률 공부를 때려 치우고 이제 내가 법률 공부해가지고 돈많이 벌어서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엇어요. 이제 그래서 루터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요. 이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자신의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건너무 중요한 것이니깐, 자기의 영혼이 달린 문제니깐 자기가 변호사되는 문제는 법관이 되는 문제는 이땅에 사는 동안 농부하는 것보다야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문제지만 내가 구원받을 수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자기의 영혼문제니깐 이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겠죠. 

 

그래서 수도원으로 뛰쳐들어갔어요. 그런 문제 의식을 안가진 사람들이야 수도원에 들어왓다고 해도 수도원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 생활이 다를게 있겠어요? 다른 거야 머리깍은 거하고 옷 껌껌한거 입고 댕기는 거 하고 뭐 맨날돌아댕기지 않고 가서 풀뽑는거 뭐 이런거 차이는 잇겠지만 이런 심각한 자기의 구원의 문제에 관해 고민이 없는 수도사가 세상에 있는 수도사 아닌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러니깐 루터가 들어갔던 수도원도 이런 고민이 없는 수도사들이 많았겠죠. 근데 루터는 달랐어요. 지금 수도원에 들어온 자체가 자기 구원문제로 들어온 것이에요. 그래서 얼마나 진지했겠어요.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수준에 도달해보기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봤어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고 하면 내가 금식을 통해서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더라면 죽기 직전까지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을때까지 금식을 해보고 내가 이 고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그와같은 기초가 된다고 하면 루터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엄청나게 이 고행의 길을 선행의 길을 다해봐도 만족이 없어요. 이렇게 금식을 많이 하고 선행을 많이 하고 고행해봐도 이것이 하나님과 나를 바르게 관계를 맺어주었다고 하는 확신은 안서는 것이에요. 그래서 카톨릭 교회가 가르쳐준 다른 방법을 쓰기 시작했어요. 

 

자기가 죄를 고백하는 것이에요. 신부에게 가서. 가서 자기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것이에요. 루터가 신부를 찾아가서 고백하고 고백하고 고백하니깐, 고해성사 듣는 신부가 미쳐 죽을려고 하는 거에요. 그만해라 지겹다. 지겨워 죽겠다. 이렇게 할 정도로 고해받는 신부가 지쳐 나가 떨어질 정도로 고백하고 고백하고 고백하고 해봐도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에요.

 

그러던 차에 루터는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선배 신앙인의 책을 읽게 되었고 점점점점 이 인간의 행위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로마서 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신학교수로서 연구를 하다가 어느날 새로운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되요.

 

그게 바로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을 깊이 깨닫게 되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칭의 복음을 이신칭의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이 구절을 미워했어요. 왜그런가 하니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니깐 미워했어요. 루터는 하나님의 의 의를 하나님의 공의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추상같은 공의, 에누리없는 완벽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그러한 공의로 생각하니깐, 복음은 그런게 나타났다니깐 안그래도 자기가 해봤는데 아무리 하나님 마음에 들려고 해봤는데 안되는데 복음에는 뭐라고 말하는가 하니깐 자기가 이해할때 그렇게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는 그런 의가 나타나있다니깐 기절 초풍한 것이에요. 복음이란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구나.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 자신의 이런 공의로운 성품으로만 이해하고 나니깐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복음에 나타나있다니깐 루터로서는 도무지 자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에요.

 

근데 계속성경을 연구하다가 이상하게 생각된 것이 아무도 그러면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놓고 볼때 의인이라고 평가될 사람은 아무도 자기 생각에는 없는 것 같은데 가만히 성경을 연구해보니깐 이상한 구절에 이르게 된 것이에요. 

 

다시 한번 봅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 있다고 성경은 얘기하는 것이에요. 루터가 생각하기에는 자기도 해봤는데 도저히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준에 이르는 그 의인이 되는 기준을 아무리 그동안에 고행과 선행과 했는데 하면 할 수록 도저히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칠수가 없어서 하면 할 수록 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뜻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매일 십계명을 읽는데 십계명의 중요한 내용이 2개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냥 사랑이 아니고 뭐죠? 너희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이웃사랑하는 것도 네 이웃을 그냥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고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깐 이것을 안지켜본 사람들은 이게 아주 좋은 줄 알아요. 

 

콧노래를 부르면서 십계명너무나 좋은 거야. 십계명이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말하는 것이니깐 이보다 더 좋은게 어디있겠어. 하면서 사랑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했는데 너무 좋은 거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사랑하라 하셨으니깐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셔. 이렇게 철없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어느날 이것을 한번 실천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되 네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실천하려다 보니깐 당장 주일날 예배가 11시인데 이 어저게 수련회 갔다고 해서 피곤해서 늦잠자서 또 예배시간에도 늦을 정도의 이것밖에 안되는 구나.. 가슴을 치면서 '주여. 제가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 받은 만큼 하나님께 드리는 이 시간을 더 철저하게 구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나이다. 그렇지만 하나님 삼세번만 봐주십시요.' 하고 그다음 주일에 또 하려고 했는데 또 이상한 일이 생겨서 또 안되고 또 안되고 해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잘 안되는 것이에요.

 

또 이제 이웃사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데 나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면 실천하려고 하면 할 수록 점점 내가 그렇게는 못살겠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이걸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냥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사랑하라고 했어. 하나님 좋으신 분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전혀 그렇게 해볼 생각도 안했고, 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에요.

 

만일 이 십계명에 나오는 이 율법의 내용을 실천해본 사람이라면 이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물구나무서고 에베레스트 산에 100번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에요. 

 

온몸을 꽁꽁 묶고 태평양을 열번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인데 안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무서운지를 모르는 거라 말이죠. 

 

루터는 해봤어요. 전심을 다해서 한 것이에요. 그냥 죽기 일보직전까지 노력을 해본 것이에요. 그런데 안됬다는 것을 알았는데 어찌하여 이성경은 의인이 있다고 말하는 가. 하나님께서 사람들가운데 우리 인생가운데  의인이 있다고 말하는가. 의인이라고 그렇게 인정해주시는가 라고 하는데 앞뒤로 도배되어있는 단어가 뭐에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길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노력과 열심과 선행이 아니라 무슨 길이 하나있었어요? 믿음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란걸 알게 되었고, 더 생각을 해본 결과 여기에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에게 발견한 예수그리스도가 만들어놓은 그 의를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되고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자.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 자신의 추상같은 의가 아니라 누구에게 준 의? 의인이라고 하나님께서 부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주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자신이 의를 주신 그 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에요. 그의는 누구의 의에요? 아까봤던 그리스도의 의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그 의를 가진 사람은 바로 의인이 되는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서 바로 우리가 의인되는 것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에요.

 

이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무거운 짐덩어리가 떨어지고 자기는 이제 낙원에 들어간거 같은 그와같은 변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은 이신칭의 복음을 잘 깨닫는 사람이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에요. 불교자로서 거의 뭐 자기가 좀 어떻게 하면 의롭게 될까를 하면서 일년에 한두번씩 3천배를 하고 일년 300일 기도는 기본적으로 해보고 저 티벳 불교승려들처럼 그 자기들의 수도소굴까지 기어서 그렇게 가볼려고도 하고 또 이슬람교 교인들처럼 일주일에 40일은 비록 낮시간이긴하지만 금식도 해보고 하루 다섯번씩 기도해보고, 이렇게 하다가 뭔가 이게좀 이상한데 이게 될까..

 

이렇게 의문이 든 사람이 어느날 복음을 듣고서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면 우리노력으로 안되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그 선물이 예수그리스도에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한테 준 그 선물로 내가 구원되는 것이지. 내노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때에 그 해방감이라는 것은 엄청나겠죠. 

 

루터는 그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이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신칭의의 핵심진리 : 죄용서.

 

그러면 이 이신칭의 진리의 가장 핵심이 2개라고 그랬어요.

 

하나는 죄용서 받는 것이고, 

하나는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인데,

 

죄용서를 받아야 할 필요는 너무 잘 아시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을때 아담이라고 하는 우리인류의 대표를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류를 대표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하니깐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겠고, 이 자유의지를 주겠는데 너가 가지고 있는 이 귀중한 자유를 가지고 나의 이법을 잘 순종하면은 내가 너에게 영생이라고 하는 선물을 주겠거니와 만일 니가 나의 법을 어기고 불순종하면은 너는 죽음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는 하나님과 아담사이에 계약이 체결되게 되는 것이에요.

 

 근데 아담이 자기 뒤에 태어나게될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잘 순종하였으면 의로움을 얻어서 영생을 누리게 됬을 텐데 우리의 대표가 그만 실패했어요. 우리대표가 졌어요.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어김으로서 죽음에 처하게 된 것이에요. 죄인이 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아까 읽었던 성경에 의하면 한사람의 불순종 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됨과 같이 그 뜻이에요. 여기에 한사람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그 아담. 그 한사람 아담이 우리를 대표해서 불순종함으로서 아담이 대표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담이 실패한 것 때문에 불순종한 것 때문에 전부다 죄인이 되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아담이 대표로 지었던 그 죄의 형벌인 죽음 하나님의 저주라고 하는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는 그 죄의 벌을 물려받은 것이에요.

 

마치 아버지가 죽을 때 빚을 지고 죽어가지고 자식에게 빚이 전달 되는 것처럼 그렇게 아담 우리대표 우리 아버지가 지었던 그 죄는 우리를 대표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의 아들로 태어나는 순간에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 그 죄책을 우리가 물려 받은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물려받은 죄라고 불르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아담이 죄 지은 다음과 같은 그와 같은 죄인으로 하나님앞에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지금 있는 것이에요.

 

거기다가 우리스스로도 많은 죄를 지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먼저는 우리의 이 죄가 용서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길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죄용서의 문제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결이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이 죄문제를 해결 하셨는가 하면 은혜롭게도 범죄한 아담에게 사실은 한가지 표적을 보여주셨어요. 아담이 자기죄를 깨닫고 그다음에 자기가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가지고 그 가죽옷을 입혀준 사건을 통해서 앞으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셨는가 하니깐 아담이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아담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누군가가 아담에게 옷을 해입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서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었어요. 

 

그이후에 노아가 드린 제사 아브라함이 드린 제사 모세시대에 성전에서 드려진 모든 제물들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하면 사실은 바로 죄지은 사람이 원래 죽으면 되는 것인데 그 죄지은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나려면, 누군가 대신해서 죄인죽을 그 죄인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대신 죽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제사제도를 통해서 수천년동안 가르쳐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짐승과 같이 십자가에서 달리신 것은 바로 아담이 지었던 그 죄값을 대신 값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은 그 죄값을 대신 값아 주심으로서 우리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이 법을 어겼어요. 그래서 다른집에 피해를 입혀서 경찰서를 끌려 갔어요. 그래서 꼼짝없이 경찰서 유치장에 같혀 있어요. 그런데 이 벌금이 100만원이 나왔어요. 근데 유치장에 같혀있는 그친구는 한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100만원을 지불을 해야 유치장에서 석방이 될 터인데 한푼도 가진 것이 없으니 풀려날 길은 없는 것이에요. 그냥 자기가 그냥 유치장에 같힐 수 밖에 없는 그와같은 상황 비록 자기가 곤경에 처했으나 자기 힘으로는 자기가 돈이 없으니깐 자기가 벌금을 지불하면 되는데 그 돈이 없으니깐 자기가 유치장을 나올 수 없을때 ' 너 누구 자식이야? 우리 아버지 누구누구인데요. 이름이 뭐야? 전화번호가 뭐야?' 해서 경찰관이 전화를 걸어서 '당신 아들이 지금 기물파손으로 지금 100만원 벌금을 받고 유치장에 같혀있다고' 

아버지가 그놈 말이죠. 그래도 쌉니다. 이렇게 하면은 아버지가 아니겠죠. 아버지가 아닐것이에요. 원수지(웃음) 그놈의 원수 제 앞에 안나타나는게 좋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니깐 비록 그자식이 잘못한 것을 알지만 그자식을 구출하기 위해서 헐레벌떡 통장에서 돈빼서 경찰서에 와서 그 벌금을 대신 자식을 대신해서 지불을 하고 그 자식을 끄집어내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길은 우리스스로 죄를 값을 만한 힘이 없어요. 우리스스로 이 죄값을 지불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만일 우리가 죄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그러면 우리 힘으로 빠져 나올길이 있겠는데 우리가 하나님앞에 저주 받아서 영원한 지옥의 형벌 가운데 있는 우리가 어떻게 무슨수로 무슨 힘으로 이 죄에서 빠져나올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신 방법은 누군가 대신 값아 주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복음인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우리가 받아야 될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은 그 죄값을 누가 지불하느냐? 자신이 지불 하는 것이에요. 영원히 지옥에서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토록 자기가 자기 죄값을 자기가 지불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니깐, 예수님이 나 대신에 예수님이 나를 대표해서 나대신에 내가 받아야될 지옥의 모든 저주를 대신 다 값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사함 받을 수있는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용서 받게 된 것이에요.

 

누구때문에?

예수님이 나대신 십자가에서 내 죄값을 지불해 주신 것 때문에

 

 

- 이신칭의의 핵심진리 : 의롭다 하심.

 

나머지 칭의의 하나는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하나님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인데 의롭다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가 뭘해야되죠? 100% 완벽하게 하나님의 법을 말씀을 순종해야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그래야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어서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도 되고 하나님 백성도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죄인된 우리가 죄도 다 잡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완벽한 의를 다 이룰수 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역시 우리가 의롭다 할 수 있는 이 근거도 오늘 성경말씀과 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 

 

무슨뜻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대신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모든 법과 의를 다 지키고 순종함으로서 예수님께서 획득하신 의 그리스도의 의를 누구에게 주심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입게 되는 것이죠. 

 

마치 이런것과 똑같아요. 여러분이 이번에 선교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정말 한번 다른 나라에 인도네시아나 인도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요. 학생이라서.. 그간 아르바이트해서 벌어놓은 돈이 없어서 이 짧은 시간에 벌수도 없고 가고는 싶은데 발만 동동 구르고 가지를 못해요. 그럴때 원래 다른 나라 가려고하면 비행기 값이 100만원 있어야 되는데 100만원이 없으니깐 갈 수가 없어요. 그럴때 누군가가 아 그렇게 선교여행 가고 싶냐 그러면 내가 한번 그렇게 힘을 써보마 해서 대신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그렇게 그사람에게 주면은 그사람이 그 티켓을 가지고 대한항공을 탈때에 그 승무원이 '이상하네, 당신이 산거 아니잖아.. ' 그럴땐 뭐라고 말해야 되겠어요?  ' 내가 사나 다른 사람이 사나 내가 지금 비행기 타는데 필요한 이값은 다 지불했는데 무슨소리에요.' 이렇게 당당하게 있으면서 그 비행기 티켓을 제시하고 들어갈 수 있겠죠.

 

우리가 영생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인 이 의를 가져야 우리가 영생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의를 이룰수가 없죠. 우리 해봤죠. 해봤는데 도무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하나님 원하시는 만큼 이룰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어느날 오셔서 우리의 대표로 우리의 대신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 백성될 수 있는 천국들어갈 수 있는 모든 의를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그 의를 예수믿는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가 그 그리스도의 의를 넘겨받아서 그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서 그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가 대신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딱 보실때에 뭘 가지고 왔어요? 

천국 입장권인 영생을 얻을수 있는 자격조건인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는 그 모든 완전한 티켓이요. 자격조건 기준인 의를 가지고 왔습니까? 안가져왔습니까? 가져왔죠. 

 

누가 만든거죠? 비록 예수님이 만드신 거긴 하지만 그 예수님이 주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가지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은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있는 그사람을 향해서 그래 너는 의롭다 너는 의인이구나 이렇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게 진리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의 옷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때는 반드시 의의 옷을 입고 들어가는 것이에요. 여러분 마치 우리가 결혼식을 하는데 그날 신부가 신부복을 도둑 맞았어요.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핫팬츠밖에없어요. 근데 오늘 결혼식이니깐 핫팬티라도 해가지고 그렇게 걸치고 간다고 그러면 정말 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부끄러워서 못가겠죠.

 

천국에도 입고들어가야될 옷이 있는 것이에요. 아무옷이나 입고는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에도 찬치를 벌였을때 왕이 잔치를 벌였는데 그 왕의 잔치에 들어올사람들은 이런이런 복장을 입고 와라 지정을 해줬어요. 그런데 건방지게 그 복장을 안입고 온사람이 발견되가지고 왕이 어떻게 했다고 그랬어요? 쫓아냈다. 

 

그 잔치는 천국잔치를 가리키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천국에 가려면 부끄러운 더러운 이 옷, 우리가 거짓말 하고 사기치고 하나님 사랑하지 않고 했던 이런 더러운 옷을 가지고는 그 거룩한 사람들만 다닐수 있는 거기 악한 것 없는 거기 거룩한 것 밖에 없는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흰옷이라고 표현되었어요. 깨끗한 그 흰옷만 입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의의옷을 어떻게 우리가 흰옷을 장만할 수가 있는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순종해주셨던 그 의를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의의옷이 되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은 예수님이 나자신의 옷이 되어서 마치 풍덩하고 내가 예수님 속에 빠져서 예수님은 나의 의의 옷이 되어서 내가 예수님의 의의옷을 입고 하나님앞에 서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해주신다 하는 것이 바로 칭의 교리에요. 

 

그러니 칭의 교리의 핵심은 우리의 죄사함도 누구때문에 예수님때문에, 우리의 의를 이루어 영생을 얻어 천국들어가는 것도 누구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둘다 예수님의 순종하심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대신 이루신 의의 공로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죄도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도 얻게 된다. 

 

이런 말이니깐 그래서 칭의교리가 복음의 진수이고, 복음의 기초라는 것이에요. 

 

만일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칭의의 칭의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스스로는 기독교인이라고는 할 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으로보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에요. 만일 어느특정 교회가 자기들은 교회라는 간판은 달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방금 전한 이 칭의의 진리를 분명하게 선포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간판이 무슨무슨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보시기에는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이에요. 

 

교회는 바로 이 칭의의 복음 우리의 죄의 용서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에 죽으신것 때문에 용서를 받는 것이고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대신에 우리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의를 다 이루셔서 나에게 주셨다고 하는 이 진리를 믿지 않고 선포하지 않는 다면 그는 바로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은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아니다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대신에 죽고 우리대신 사신 이것을 우리는 사실은 그러니깐 이게 뭐에요? 내가 한일이 아니니깐 누가 한일이죠? 예수님이 한일이니깐 다 하나님의 은혜라 부르는 것이에요.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그렇게 해달라고 하지않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가지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하고 우리를 대신해서 살게하시고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깐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우리가 받는 것은 어떻게 받는가? 뭘 통과한거 같죠? 믿음으로 받는다. 

 

 

- 믿음으로 받는 칭의.

 

그러면 믿음으로 받는 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제가 지금 물을 마시는 데요.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마셨어요. 저의 마른 목에 도움을 주는 것은 지금 물이거든요. 그러니깐 지금 물은 제게 굉장히 은혜에요. 제 마른 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때문에 제 목이 촉촉해져가지고 편안해 졌어요. 그런데 이 물을 제가 받는데 지금 무엇이 사용됬는가 하니깐 이 컴이라고 하는 도구가 사용이 되었어요. 그런데 컵이 이 컵이 저의 목을 촉촉하게 적셔준것이 아니에요. 저의 목을 촉촉하게 적셔준것은 무엇이죠? 물이에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에 죽으시고 대신에 순종하신 것을 뭐라고 부르죠? 그걸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것이 우리를 살리고 그것이 우리를 죄용서 받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대신에 죽고 우리대신에 사역했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통로가 뭐라고요? 믿음이라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내가 받아들이는 이 그릇과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의롭다함을 받게 된 것은 내가 지금 목이 갈증이 해결된 것은 바로 이컵때문이다. 이 컵이 나를 살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컵이 사용되긴 됬는데 이 컵은 단순한 수단으로 통로로만 쓰인 것이지 이 컵이 원인이 되가지고 이 컵이 기초가 되가지고 나의 목이 촉촉해진 것이 아니라 나의 목을 촉촉하게 적신것은 물이에요. 단지 컵은 이 물을 제게 공급해주는 하나의 통로로 쓰인 것이에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제 물떠준 분이 물만 달랑 공중에 띄워놓고 그리 먹도록 하지 않고 저한테 뭐도 갖다 줬어요? 컵도 갖다 줬기 때문에 

 

사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그리스도라고하는 물도 주고 그리스도를 믿는 그릇이 되는 믿음도 우리에게 주신것. 그래서 성경이 말하기를 에베소서 2장을 한번 볼까요.

 

8절-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처음에 뭐가 있어야 되요?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영어로 하면 by grace  이 원천 기초는 바로 은혜에 의하여. 그러나 그 은혜가 나에게 전달된 통로는 뭐라고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때 영어로 하면, through faith. 

 

은혜에 의하여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실은 이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가 칭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소교리문답에서 배웠던 내용을 다했죠. 

 

 

- 칭의가 뭡니까?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무엇을? 우리의 죄용서와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함 받는 것을 무엇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대신 계산해 주는 것. 대신 전가 시켜주시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무슨 통로를 통해서?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진수가 되는 것입니다. 

 

- 칭의 교리가 우리에게 주는 적용.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칭의의 진리를 아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모든 자신의 힘과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이 다 무용하고 쓸데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혹시 이자리에 계신분중에 제 가 물어봅니다. ' 성도님 성도님도 조만간 죽음을 준비하셔야죠. 기분나쁘시겠지만 그래야죠. 죽음을 준비하셔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이제 죽고 하나님 앞에 서시면은 천국 들어가셔야 되는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이습니까? 

 

성도님이 '목사님! 착하게 살아야죠. 말할 필요없이 목사님 착하게 살아야죠! 옛말도 있지않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받고 나쁘게 살면 화받고 권선징악이라는 말 못들어봤어요. 목사님. 그래서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데는 선은 권하고 악은 징계하는 이유가 착하게 살아야 복받고 착하게 살아야 천국가는 것이고 나쁜짓 많이 하면 지옥가는 거죠 무슨..'

 

'성도님 그러면 천국 들어갈 만큼 착하게 살았습니까?'  ' 글쎄요....죽어봐야 알겠죠.' 그렇게 말하는 분은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모르니깐 아직도 그런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착함의 기준이 내가 생각하는 착함의 기준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요구하느 요구조건이어야지 내가 생각하기에 좀더 나는 뭐 법없이도 살아요. 법없이 살면 법없이도 사는데 맨날 다른사람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래놓고는 뭐 법없이 살기는 법없이 살아요. 단지 살인죄 폭력죄 이런거 좀 안했다 뿐이지 매일 마음속에는 늘 다른 사람 그렇게 욕하고 막때리고 죽이고 싶엇는데도 그냥 법때문에 참고 그랬지. 근데 그게 뭐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한 것 까지도 하나님 죄라고 인정하는데 밖으로 안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봐주실 만한 그런 기준이 아니에요.

 

그래서 혹시 이자리에 계신 분중에 아직도 착하게 살면 천국가는 거죠 뭐. 앞으로 전 착하게 살면 될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방식으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고 영생을 얻을 수가 없음을 쐐기를 박아가지고 그렇게는 못한다 안된다 하는 진리가 바로 이신칭의의 진리라는 것이에요.

 

불가능한 우리의 선행으로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용서함과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진리에요. 

 

그러나 혹시 여러분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확실히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거 아는 사람들 그래 뭔가 사람이 착하게 산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거 같아 내가 해보니깐 할 수록 안되는 것 같아 정말 힘들어 이렇게 안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이신칭의의 진리는 여러분의 귀에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여러분 뜻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다 준비해놨어요. 

 

여호와 이레로 하나님이 여러분이 천국들어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다 준비해놧기 때문에 여러분이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이신칭의의 교리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세요!!.  이 복음을 받아들이세요. 이복음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세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바른관계를 맺어지는 것이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에요. 성경이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만일 이시간에 있는 여러분중에서 이미 이 이신칭의의 진리를 믿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진리를 믿었고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기초는 사실 뭐겠어요? 이진리에요.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로 제공해 주셨다 라고 하는 이 진리. 단순한 이세상에서의 그냥 아팠다가 건강해진 그 정도가 아니고 우리를 저 영원한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영원한 천국으로 이끄는 하늘에 속한 이 신령한 복을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주셨다. 그래서 세상에서 조금 두려움이나 안좋은 일이나 이런게 있어도, 이신칭의의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그런것 때문에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옛날 하박국이 말했듯이 

 

'내가 밭에 나가보니깐 포도밭에 소출도 없고, 논밭에 아무런 열매가 없어요.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외양간에 가고 우리에 가봐도 거기에 소도 송아지도 양들도 없어요. 정말 눈물흘려야 하고 정말 침체에 빠져서 허우적 거려야 마땅할 그때에 하박국은 말하기를 나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인하여 나는 기뻐뛰니라.'

 

이게 이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입니다. 좀더 이신칭의의 내용을 진짜 자기것으로 만든 사람이라면 하박국같은 체험을 할 때가 있을 것이에요. 우리에 가봐도 외양간에 가봐도 소가 없는 양이없는 근데 포도나무에 가봐도 소출이 없고 무화과 나무에 가봐도 열매가 없는 그런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에요. 그러나 이신칭의 복음을 정말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그렇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하나님께서 내게 구원을 베푸셨음이라.

 

이렇게 할 수 잇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 고통과 고난을 이기게 하는 것은 당장 그 고통을 이기게 하도록 하나님이 환경을 바꿔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이신칭의의 복음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게 함으로서 앞으로올 고난까지도 앞으로 올 고통까지도 내가 이땅을 떠날때까지 어떤 환경과 상황과 여건이라 할 지라도 다 이길 수 있는 통짜배기 통째로 우리에게  고난을 극복할 힘을 주시는 것이 이신칭의 복음의 진수에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땅에서 힘든일 안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사람들과 똑같이 아프고 힘들고 자식이 속썩이고 똑같이 그런일을 당할 수 있으나 절대 그런것에 포위되지 않는다. 절대 그런것으로 인해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이신칭의 이 놀라운 진리속에 담겨있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지옥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영원한 모든 권세의 복락을 다 이미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이신칭의가 주는 놀라운 우리의 적용이어야 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 이신칭의의 이 진리를 분명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생겨요. 

다 병들어가는 이제 암말기에 걸려서 사실은 모든 의학적인 노력을 다 기울었으나, 이제 한 일주일도 안남았습니다.

라는 그 환자에게 가서 무슨 위로를 줄 수 있겠어요. 그 신자에게 가서 

'성도님 힘내세요. 따라하세요. i can do 나는 낳을 수 있다. ' 

 

그게 그사람에게 무슨 힘이 되겠어요. 이제 정말 일주일 밖에 안남은 그 환경 속에서 

 

'성도님 이제 준비하셔야죠. 어쨋든 우리가 가야될 나라인데 그래도 노력을 다해보지 않았습니까? 다해봤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오라하시니 저도 곧 따라가겠지만은 성도님께서도 준비하셔야 되는데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두실때 당신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목사님 이제 제가 더이상 침상에 있기 싫어요. 제가 사실은 침상에서 낳은다 한들 제가 두다리 걷고 돌아댕길때도 별로 좋은 거 없었어요. 목사님 이제 제 머리를 다했는데 하나님이 저를 데려가시려고 하니깐 저는 지금 당장 부르시면 주님의 품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아니 성도님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확신 할 수 있어요? 죽어봐야 알 수 있는거 아닌거 아니에요? 아니 죽어봐야 아는 건데 성도님 지금 이자리에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으세요?'

 

' 목사님 그런소리 마세요. (웃음)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제가 지옥들어갈 모든 죄의 형벌을 이미 다 값아버리신 것을 목사님 모르세요?'

 

' 아 알죠;;'

 

' 목사님 제가 천국 들어가기에 필요한 영생얻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에 필요한 모든 의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부터 죽으시기까지 33년동안 매해 매월 매주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대신해서 다 이루신 것을 모르세요? 목사님?'

 

'아 잘못했습니다. 알죠. 알죠 그렇습니다. 성도님 당장 하나님이 부르신다 할지라도 성도님의 영혼은 더이상 지옥의 저주가 전개될 수 없을 것이며 천국의 영생 복락이 성도님을 기다리고 계실것이니 저 천사들과 함께 먼저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성도님으로 하여금 이땅의 모든 수고를 마치고 이땅의 모든 눈물을 그치고 이제는 더이상 눈물이 없는 더이상 고통이 없는 더이상 저주가 없는 영생복락으로 성도님을 인도하고 계실 것이니 여기서 제가 성도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힘될 수 있도록 기도해드리고 낙심하지말고  지금까지 가졌던 그 믿음가지고 확고하게 마지막숨이 끈어지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그 믿음을 담대하게 지켜서 영광스럽게 천국문에 입성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눠야 정상적인 목사와 성도의 대화가 아니겠어요?

 

걱정하지마세요. 죽어도 내가 기도해가지고.....

 

여러분 물론 하나님께서 그 성도가 필요해서 다시 살려놔가지고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게끔 그렇게 하신다면 그 기적들이 왜 안일어나겠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간혹 그런사람들에게 어쩌다가 가뭄에 콩나듯이 일으키신 것이지 모든 성도에게 다 그렇게 적용이되서 죽을때마다 살려놓으면 그러면 언제 우리가 죽어요. 

 

그러니깐 이신칭의의 복음이라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데 이신칭의의 교리가 아니면은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겠어요? 이 이신칭의 복음이 아니고 어떻게 우리가 영생에 대한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확실하게 믿어야 내세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신칭의의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모르거나 어설프게 알면 신앙생활이 무척 고단해지고 힘들어지고 자꾸만 착하게 살면되지 성경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그건 딴사람들이 하는 얘기인데,, 성경은 착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착하게 사신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고 하는데 왜 착하게 사신 예수님을 안믿을 생각을 하고 자기가 착하게 살려고 그래가지고 하려고 그러겠어요? 자기 인생이 고달프고 힘든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갈 때 정말 신자와 비신자의 큰 차이는 이렇게 구원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는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 그리고 내 죄사함과 내가 필요한 의로움을 하나님께서 다 선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공해 주셨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믿음 까지도 주셨다. 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이땅에서 어떤 역경과 환란이 오더라도 절망하지 마시고 그리고 우리가 이땅에서 하나님 뜻대로 잘 살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라하신 그날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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