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의 정의

 

성경신학이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The Self-Revelation of God)의 과정을 취급하는 주경신학의 한 분야로서 신적 활동으로서의 계시를 취급한다.

성경신학은 주해와 조직신학의 중간에 위치하나 성경자료를 조직하는 원칙에 있어서 논리적인 것보다는 역사적인 것을 더 중시하는 주경신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즉 성경신학이란 성경을 체계화시킨 학문으로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발전과정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조직적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성경신학의 특징은 역사적이며, 신적인 것을 기초로 하는데 신성을 취급하며, 구속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 지식을 성경에서 취하는 것이다.

 

롬 10: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2. 성경신학의 역사

 

1) 중세시대(=A.D. 6C- 15C)의 성경연구는 로마카톨릭 교회의 전통과 교리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서 시행(=암흑시대)되었기 때문에 성경 자체를 위한 독자적인 연구는 아주 빈약했다. 이런 가운데 종교개혁자들(=A.D. 15C- 16C)이 등장했고, 이들은 성경은 풍유적(allegorical)으로가 아니라 여자적(literal)으로, 특별히 문법적(grammatical)으로 해석이 되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그런데 종교개혁시대의 정통교리(=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강조는 성경의 무비판적인 수용이라는 경향을 낳게 되었고, 성경연구의 진전이나 발전에 대한 노력이 소홀하게 되었다. 성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려는 노력이 다소 완화되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성경을 문학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일게 되었다. 이로써 교회나 신학적 관습에서 떠나서 성경 자체를 객관적인 역사적 산물로 보려는 합리주의적 사고가 팽배하게 되었다.

 

3) 계몽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성경을 고대의 다른 문학 작품의 차원에서 인간 역사의 기록물로 보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종교역사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즉 성경은 고대 종교적 기록물들의 편집으로서 고대 셈족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연구는 셈 족의 종교사를 다루는 것이 되었고, 이로 인해 성경의 영감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4) 이런 경향 가운데서도 개혁주의 신학자 코케이우스(J. Cocceius 1603-1669)는 성경을 계약< Covenant : 행위 계약(Act-Covenant)과 은혜 계약(Grace-Covenant)>으로 보았다. 즉 행위계약은 범죄 이전의 언약, 은혜계약은 범죄 이후의 언약으로 분류한 것이다. 또한 벵겔(J. A. Bengel)은 성경주해를 많이 했는데 그는 계시와 계시의 진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성경신학은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반면에 교의신학은 상당히 체계화되어서 내려왔다. 물론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성경신학의 중요한 요소들을 말하기는 했지만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5) 요한 필립 가블러(Johann Philipp Gabler)

이런 점에서는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요한 필립 가블러(1753-1862)가,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 볼 때, 성경신학을 학문화시킨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가블러는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성경신학의 개념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교의학과 구분된 성경신학이라는 과목을 이론적으로 주창한 첫 학자라고 볼 수 있다(성경신학과 교의 신학의 정확한 차이. 1787). 그는 성경신학은 엄격히 역사적이며 교의신학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성경신학은 이스라엘의 종교사상을 추적해서 성경 저자들이 종교적인 제 문제들에 대해서 품었던 사상을 역사적으로 밝히는 작업이며 임무”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후 가블러의 추종자들은 성경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성경 안에 있는 종교적 사상, 인간 이성의 법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개혁주의가 표방하는 성경 영감설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연구였다.

 

6) 게오르크 로렌츠 바우어(Georg Lorenz Bauer)

바우어(1755-1806)는 1789년 가블러가 몸담고 있던 알트도르프 대학의 근동어학 교수로 취임한다. 대체로 동료 가블러의 영향을 입어 성경신학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바우어가 쓴 것으로 간주하나, 가블러와 만나기에 앞서 성경신학에 관한 자신의 주요 생각을 이미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 전체를 늘 염두에 둔 바우어는 구약신학(1796)에 이어서 1800-1802년에 신약신학을 집필하였다. 이 작품은 신약신학의 분야가 구약신학에서 분리되는 최초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바우어는 신약의 빛을 구약에 투영시키려는 옛 방법론을 거부하는 가운데,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여 다루는 것이 불가피함을 역설하였다. 사고의 발전을 중시하면서 역사 비평적이고 비교 종교학적인 접근을 선호한 것이다.

바우어는 신구약성경과 관련된 발전의 시각을 강조함으로써, 구약과 신약 사이에 놓인 연속성과 동시에 불연속성의 문제점을 성경신학의 역사상 최초로 명백히 드러낸 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우어의 공헌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구약과 신약을 포괄하는 성경신학적 해석학을 나름대로 정립한 점에 있으며, 신구약 안에 담긴 내적 구조의 연결을 밝히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바우어가 이성주의에 근거한 역사비평적인 방법론을 철저히 적용한 것은 그의 위대성과 아울러 그의 한계를 보여준다.

 

7) 역사적인 과정을 살펴보았듯이 성경신학은 자유주의(계몽주의, 합리주의) 신학자들로 인해 개설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신학은 성경관에 문제가 있다. 개혁주의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성경신학이 진전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종교철학 체계에 의해 성경을 보게 되는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독일 튀빙겐 학파, 즉 종교철학 체계를 근간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그룹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성경연구에 대한 반작용이 즉시 나타났다. 1829-35년 어간에 헹스텐베르크(Hengstenberg)가 바우어를 위시한 학자들이 성경신학의 정신에서 일탈된 것을 지적했다. 헬버크(Helberg), 슐츠(Schultz), 데이비드슨(Davidson)이 구약성경신학에 관한 책을 많이 썼다. 특별히 헹스텐베르크는 구약의 기독론, 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썼다.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다루어서 자유주의 학자들의 편향된, 인간 이성 중심, 종교철학 체계 중심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8) 게르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42-1949)

이런 가운데 1895년 5월8일 게르할더스 보스(G. Vos)가 프린스톤 신학교에 성경신학 교수로 취임했을 때 특강에서 그는“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신학이라고 했으며, 여기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가장 핵심적 부분인 것으로 말했다. 보스는 성경신학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자아) 계시(The Self-Revelation of God)의 과정을 다루는 분야”로 정의했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계시라는 골격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개혁주의 진영에서 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가블러가 교의신학과 구분되는 성경신학을 말했지만 이는 자유주의 진영의 생각이었으며, 보스로 인해서 교의학과 구분되는 성경신학을 비로소 정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① 하나님의 자기계시

보스는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자아계시라고 하면서 삼등분해서 설명을 했다.

구약: 말씀계시(Word- Revelation)

신약의 복음서 : 행동계시(Act-Revelation)

신약의 서신서 : 설명계시(Interpretative Revelation)

 

② 말씀계시는 예언적이고 예비적인 것이다.

구약의 반복되는 예비적이고 예언적인 말씀 계시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매 행동화되었다.

 

③ 그 증거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행동으로, 생활로써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나타내주셨다. 이것이 행동계시이다. 이 행동계시는 구속적인 계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포인트는 아들을 중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현장에 오셔서 행동으로, 사역으로써 보이신 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실제를 보이신 것이다. 행동계시의 핵심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속사역이 핵심이다. 행동계시의 주요 예는 복음서이다. 복음서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땅에서 행하신 것을 보이신 것이다.

 

④ 설명계시는 사도들이 말로 전했고, 그것이 나중에 글로 기록된 것이다. 주로 신약의 기록 형태로 남긴 계시는 설명적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인물, 계속 대를 이어 갈 수 없는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행동계시에 대한 것을 설명적으로 풀어서 기록한 것이 서신서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행동계시의 차원에서 기록된 십자가의 죽으심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죽으신 것으로, 혹은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 죽으신 것으로, 당시의 빌라도 총독의 정치적인 그릇된 선고에 의해서, 혹은 로마 군인의 잔인한 창에 찔려 죽으신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리스도의 성취를 보여주는 사건들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계시를 언약과 성취에 의한 구속사적 사건으로 해석하여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설명 형식으로 주신 계시가 바로 신약의 서신서들이다.

 

⑤ 계시 과정의 역사적 진전

보스는 이런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계시 과정의 역사적 진전”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아 계시가 점차적으로 밝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의 이 시점은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완전히 펼쳐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반면에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선명하지 못하다. 즉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창세기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원리를 예수께서는, 천국은 마치 씨와 같은데, 이 씨가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이처럼 신약 성경신학의 주제들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3. 성경신학의 모델

 

1) 언약(Covernant)과 성취(Achievement)

언약과 성취는 신구약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모델로서, 고대 교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가장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모델이다. 한마디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이 신약의 그리스도에 와서 성취된 것으로 여기는 해석을 가리킨다. 즉 구약에 담긴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에게서 전적으로 충만해진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신약성경 가운데 나타나는 구약의 직간접 인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어진 해석이다. 종말론적인 차원을 강조하는 가운데, 신약에서 출발하여 구약으로 향하는 시각을 취한다. 이 모델이 안고 있는 약점은, 신약의 성취가 구약의 약속에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예컨대, 예수는 구약적인 메시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 모델을 표방하는 주요 학자들로서 아이히로트, 베스터만, 침멀리 등을 들 수 있다.

 

2) 유형론(Typology, 모형론)

유형론(=모형론)은 언약과 성취의 모델을 근거로 한 가운데 이를 한층 구체화시킨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을 유형론적인 관계 속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구약의 인물, 관례, 사건, 장소, 신앙적 진술 등을 신약에 나오는 것들을 위한 모형과 예시로 파악한다. 이로써 구약성서의 역사는 신약성서를 위한 전 단계의 역사로 파악된다. 신구약성서는 한 분 하나님을 증거하며 또한 그리스도는 구약성서를 넘어서는 분임을 전제한다. 폰 라트와 고펠트가 대표적이다.

구약성경 내에서 유사한 유형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나(=출애굽/ 출바벨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델은 신약에서 출발한 사고를 구약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나타낸다(=아담 – 그리스도 유형론). 이 모델이 안고 있는 약점은, 신구약 사이에 상응하는 개별적인 면을 찾을 수 있으나, 이를 전체 성경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는 데 놓여있다.

 

3) 구속사(History of redemption)

구속사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역사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약의 증언은 하나로 통일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시각에서 볼 때 역사의 통일성을 나타낸다는 입장이다. 이 모델은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증대하는 대망의 역사로 파악한다. 보스는 계시의 역사를 성서에 보도되는 객관적 사건들과 단순히 일치시켰으나, 쿨만은 구속사를 특별한 형태의 역사로 보는 가운데, 일반 역사와 종종 서로 얽혀있기도 하나 대체로 이와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의 특수성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부가시키는 강점을 안고 있는 이 모델은 신약성경 가운데 부분적으로 나타나나(특히, 누가의 작품), 구속사적인 사고 구조를 신구약 전체로 확대시키기는 어렵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4) 계시(Revelation)로서의 역사

구속사 모델을 근거로 발전된 것으로, 전체 역사를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이 모델은 보편사를 성경신학적인 해석학 범주로 이해한다. 모든 신학적 진술은 역사의 틀 내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가운데, 역사는 인간 및 온 피조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시로서 세상 가운데 감추어진 미래를 향해 있으며, 그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 가운에 이미 계시되었다고 본다. 역사의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사고로 특징 지어진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신구약을 포괄하는 역사는 하나로 연결된 하나님의 활동하심 가운데 기초한다는 입장이다. 예수의 부활을 선취된 역사의 종말로 보는 시각을 중시한다. 대표적인 학자로 판넨베르크(Pannenberg)를 들 수 있다. 이 모델의 약점은 역사를 계시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성서적인 계시 이해와 거리가 있다는 데 놓여 있다.

 

5) 기독론(Christology) 적인 해석

구약의 본문이 담고 있는 독자적인 케리그마에 대해 묻지 않고, 마치 그 본문 가운데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 선포를 기독론적인 해석을 통하여 밝혀내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 구약과 신약이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신약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봄으로써 신구약을 서로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이미 신약성서 기자들 가운데 찾을 수 있다. 바울은 출 17:1-7에 언급된 반석을 그리스도로 해석하였는가 하면(=고전 10:4), 히브리서 1장은 여러 시편 구절(=시 2:7; 45:6; 97:7; 110:1)을 그리스도와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자로 피셔(Wilhelm Vischer)를 들 수 있는데, 구약성경 가운데 나타난 여러 가지 사고와 이야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럴로(P. Grelot)는 구약성경 가운데 그리스도 자신이 말하며 사역하며 고난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6) 전승사(tradition-historical)적인 해석

이 모델은 구약성경에서 출발한 전승과정(傳承史)이 신약에서 완성된 것으로 여긴다.

즉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의 연결을 전승과정의 연속성 혹은 통일성 가운데 파악한다. 전승과정이란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방향을 제시하며 종국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모델을 대표하는 학자는 튀빙겐 대학의 구약학 교수로 은퇴한 게제(Hartmut Gese)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적인 전승은 전체적인 것으로, 구약이 신약 가운데 또한 신약과 더불어 전체가 된다보아, 단지 하나의, 성경적인 전승형성만이 있으며, 또한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통해 탄생되며, 신약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통일체, 하나의 연속체로 된 전승과정의 마감을 이룬다.

4.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의 구분

 

1) 존 머레이((Murray)는 조직신학을 성경에 나타나 있는 진리의 다양한 사실들을 분류, 조직화, 체계화시켜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성경신학은 교의학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계시의 점진적인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구분했다.

조직신학이 성경에 나타난 중요한 진리의 사실들을 각론적으로 살피는 것이라면, 성경신학은 각론의 내용들을 다 포괄하면서 역사성을 띠고 계시의 점진성을 취급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예리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머레이는, 조직신학도 각론을 다룸에 있어서 성경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말했다.

 

2) 타이틀에 있어서, 신약성경신학이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조직신학 차원인지, 성경신학적인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들이 있다.

거드리(Guthrie,D.)는 그의 책 이름을 신약성경신학이라고 붙였지만, 목차를 볼 때, 10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인간과 세계, 그리스도의 사역, 성경, 그리스도의 생활, 교회론, 미래, 신약의 윤리 등의 주제를 가지고 신약성경신학에서 다루고 있다.

 

3) 리차드슨(A. Richardson)은 신약신학의 서론에서 17개의 주제를 거론했다.

믿음과 들음, 지식과 계시, 하나님의 구원 능력, 하나님의 나라, 성경, 메시야 재해석, 사도 교회의 기독론, 그리스도의 생애, 그리스도의 승천, 승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완전하신 그리스도, 교회의 직분, 신약의 성찬 신학 등이 있다.

 

4) G.E. 래드(Ladd)는 신약 성경신학이라는 타이틀로 여섯 개로 분류하고 있다.

공관복음, 사복음, 초대교회, 바울, 일반 서신, 계시록으로 분류했다.

 

5) 라이리(C.H.Ryrie)는 6-7개로 나눈다.

공관신학, 사도행전의 신학, 야고보 신학, 바울 신학, 히브리 신학, 베드로와 유다 신학, 요한신학으로 분류를 했다.

 

6) 신약성경신학이라는 타이틀 속에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지만, 이것들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을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물론 신약성경신학에서 이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 학자들의 신약성경신학 이후에 개혁주의 입장에 있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7) 로버트슨(Robertson, O. P.)은“계약”이라는 용어로써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로버트슨은 모두 3 개의 장에서 하나님의 계약, 창조의 계약, 구속의 계약을 말하고 있다. 첫째, 둘째는 구약 부분이다. 그리고 구속 계약은 신약 성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상당히 큰 범위에서 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보스는 구약 신학, 신약 신학으로 분류를 해서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주제로 해서 다루고 있다. 래드 또한 영국의 학자들과

구분이 되는 모습으로,“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상당한 무게를 두고 저술을 한 것을 눈여겨 볼 수 있다.

 

5. 개혁주의 신약성경신학

 

개혁주의 신약성경신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약성경신학에 관한 정경적이고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필요로 한다.

특히 신약 27권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전제로 하여, 역사와 신학을 골고루 섭렵하여, 신학적 대안과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신앙적 실천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신약성경신학 연구를 위한 전제를 필요로 한다.

 

1)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

신약의 신학적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성이다.

각각의 텍스트들이 서로 독특한 증언을 하지만, 신약성경은 다양한 텍스트들을 공감하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적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권면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체적으로 그가 선택하시고 가장 사랑하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메시야로 사셨다.

 

2) 믿음의 중요성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존재 안에 영원히 살아있는 그의 약속이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참되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 안에서 회개와 믿음은 함께 보조를 맞춘다.

 

3)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심

성령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임재의 표현이다.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에서부터 함께 일하셨지만, 특히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

별히 신약 성경에서 성령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 성령은 교회의 증언에 권능을 부여한다.

둘째, 성령은 교회를 지도한다.

셋째, 성령은 교회를 가르친다.

넷째, 성령은 인종적 장벽을 해체한다.

다섯째,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성화시킨다.

 

4)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종말론적으로 회복된 그의 백성에게 쏟아 부어주셨고, 신약은 이러한 백성이 지닌 본질을 빈번히 주요 주제로 다룬다.

신약 저자들에게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세 가지 측면이 특히 중요하다.

그것은 ① 회복된 이스라엘로서 교회가 가지는 지위, ② 하나님의 임재의 거처로서의 교회, ③ 진리의 저장고로서의 교회이다.

 

5) 최후의 종말론적 회복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두 가지 함정을 유념해야 한다.

즉 그 날이 분명히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 날이 오는 것에 준비되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즉 그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이 반역의 해로운 영향력은 단지 점점 악화되기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을 통해 그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행동에 대해 최종 결산하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영원한 존재가 아직은 육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언젠가 입게 될 화려한 불멸의 형태와 일관된 방식으로 그들의 몸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 한다.

 

결 론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내일은, 바른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앙을 고백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각각 그리고 함께 자신의 은사와 재능에 따라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그 부르심에 책임 있게 그리고 성실하게 반응하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연합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성경신학은 개혁주의 성경신학으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온 세계 만민을 향하여 진정한 구원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는 신학의 사명과 목표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개혁주의 신약성경신학 연구는 교회의 존재와 성도의 사명을 일깨우고, 세계 선교의 명령과 종말론적 회복에 동참하는 거룩하고 고귀한 사역에 매진하도록 소중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약신학의 정립을 위한 정경적 본문과 역사의 이해는 신학의 발전과 신앙의 재정립을 위한 든든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

 

기독교가 일종의 역사적 신앙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신약성경신학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순수한 문헌 비평의 태도조차도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바뀐다. 축적된 과학적 자료가 인간이 이해한 궁극적인 진리를 재 진술하려는 끊임없는 요구에 대해서 주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위임받은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보면, 신약성경신학은 변화하는 자세와 새로운 지식에 비추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진 믿음을 재 진술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성경신학은 어떤 가설이 참인지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가설이 다른 가설보다 월등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고 겸손한 자세로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며, 성령의 도우심 아래 진리를 탐구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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