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다가가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영은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과 성령님을 통한 능력이 소생한다.

예배의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교회 전체 구성원의 50% 이상이 주일에 단 한번 1시간 정도의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에 더해 젊은 청년과 학생, 주일학교 어린이를 포함한 다음세대의 예배 출석률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예배가 그들에게는 더이상 매력적인 시간이 아닌 것이다.

나는 한국 교회의 예배가 ‘예배’의 본래 모습을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한국 교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배를 갱신하고 변화시킬 방법들을 찾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구체적인 예배의 강화를 제고해야한다.

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예배회복과 갱신에 대한 다음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예배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예배의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성경적인 예배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 중심의 예배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교회 예배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설교 중심적 예배에 대해 김세광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말씀 중심의 예배라는 개신교회의 공통의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설교에 의해 성패가 좌우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설교 시간이 예배의 클라이맥스일 뿐 아니라,

모든 예배 순서가 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는 현상 때문이다.”

예배는 설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라는 말은 더욱이 성경적이 아니다.

예배에서의 설교 중심주의 지향은 초대 교회 예배의 2중 구조인 설교와 성찬과 초기 기독교 교회의 4중 구조인 모임, 말씀, 성찬, 파송 즉 예배의 중요한

다른 요소들을 급격히 약화시켜버렸다. 초대 교회 예배의 역동성과 기쁨, 소망 등이 예배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즉, 초대 교회의 예배는 성찬의 예배 예식과 더불어 역동성 있는 ‘축제’가 중요한 요소인데, 지금은 의식만 남아있고, 감사와 축제의 기쁨은 사라져 성찬식이 의례적인 행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출애굽기 24:1-8에는 예배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구조가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전하며 언약을 맺는 장면은 성경 최초의 예배 모티브라 할 수 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모습은 몇 가지 구조와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만남과 대화, 말씀과 파송이다.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박사는 예배의 구조를 신약교회의 ‘말씀’과 ‘성찬’의 2중적 구조에서 4세기 초대교회부터 4중적 구조 즉 ‘만남’, ‘말씀’, ‘성만찬’, ‘파송’으로 보았다. 그는 이 네 가지 예배의 요소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예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말씀 예전에만 치우치는 대다수의 현재 우리의 예배는 성경적이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예배의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균형 잡히지 못한 불완전한 예배의 형식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예배의 성경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가 늘 드리는 예배이지만 우리는 예배에 대해 잘 알지 못함을 인정해야한다.

왜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가 정말 성경적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무엇인지 등 너무 많은 예배의 질문들이 우리 앞에 있다. 예배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제대로 알고 예배를 드려야한다. 예배를 잘 모르고 예배드린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예배의 초점이 분명해질 때 우리는 예배에서 보다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마차가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넘어 하나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시고 싫어하시는지, 나아가 왜 우리가 그분을 경배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질 수밖에 없으며 깊은 교제와 사랑이 자연스럽게 넘쳐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원천인 예배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뛰어 넘는 위대한 사랑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사람의 존재목적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우리의 목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중요하다. A. W. 토저(Aiden Wilson Tozer)는 그의 책 “이것이 예배이다(Worship: The Missing Jewel)”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와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인간의 존재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계속 역설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 태어났고 예배를 위해 거듭났다. 우리가 창조되고 또한 재창조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다. 예배를 위해 최초의 시작이 있었고 또한 예배를 위해 ‘중생’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교회의 존재 목적도 예배이다. 우리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 예배는 교회의 이차적 목적이 아니며 교회의 액세서리도 아니다. 예배가 교회의 일차적 목적이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이차, 삼차 또는 사차 목적이다.”

예배가 중요하다고 인식될수록 우리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

교회의 본질이자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출발점인 예배에 대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이 땅에서의 우리의 분명한 존재가치를 알 수 있으며 이는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의 요체가 된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배의 요소들에 대한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찬양의 본질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최근 20여년 사이 서구의 많은 교회들은 찬양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예배 인도자와 사역자, 예배 팀들을 훈련해왔으며, 예배에서 설교와 함께 유기적인 예배의 좋은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그로 인해 예배는 더욱 풍부해지고 깊이 있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면서 예배가 더욱 역동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교회의 대다수는 예배에서의 찬양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주일 예배(Corporate Worship)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살아계심을 찬양하는 수직적인(Vertical) 찬양이,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기도회 등에는 개인적인 고백과 간증 등의 공동체적 교제의 찬양인 수평적(Horizontal) 찬양이 적용되어야함에도 이러한 성경적이고 기초적인 찬양의 개념조차 미약하다. 이 같은 찬양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부족은 하나님께 집중되지 못하는 예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예배에서의 말씀 위에 찬양과 성찬의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성경적인 예배의 회복이 예배 갱신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지금 겪고 있는 한국 교회의 위기는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 모든 예배의 준비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는 ‘목숨 건 헌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예배자들,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 만남을 통해 강력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회의 지도자와 담임목사는 무한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예배의 전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모든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예배를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며, 깊은 은혜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예배의 무한 책임선언이 있는지 묻고 싶다.

 

미국 LA에 위치한 월드미션대학교(World Mission University) 예배학 석사과정(M. A. in Worship Studies)의 학과장이자 교수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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