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20절-24절에「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http://cafe.daum.net/ilmak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4절의 말씀이다.

 

보통 우리는 예배 행위에 대해서 말할 때, '예배(를) 드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간혹 누군가가 '예배한다'라고 말하면 거룩한 예배를 어떻게 '한다'라고 표현하느냐며 질책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는 분명히 '예배한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물론 표준새번역 등에서는 '예배를 드린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공 예배 때에 한국교회가 주로 사용하는 개역성경에서는 '한다'라고 되어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는 말은 내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배를 '예배한다'라고 하지 아니하고, '예배 드린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두 가지 정도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예배보러 간다'고 하던 때도 있었다. 내것을 준다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첫째로, '예배하러 간다'라고 말하면 불경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한다'라는 말이 높임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른에게 무엇을 줄 때 우리는 '준다'하지 않고, '드린다'는 높임말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예배'도 높으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설교에서 '예배 보러 간다'라는 말을 비판하면서

경건하게 '예배 드린다'라는 말을 사용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둘째로, '제사(를) 드린다(혹은 지낸다)'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한국 전통에 의해서 예배도 일종의 '제사'로 인식하여 '드린다'라는 말을 사용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모두가 '목적어'를 상실한 것이라 생각된다. 구약의 제사는 드린다고 해야한다. 생명을 대신하는 제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의 예배는 제사와 다르다. 예수님이 생명을 대신하여 제물 되셔서 제물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배는 무엇이냐? 예배는 대신 제물되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드린다'라는 말은 분명 높임말이 맞지만...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주는(혹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린다'라고 하면, '예배행위' 자체가 예배의 목적어가 된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예배'를 인간 보기에도 화려하고, 멋있고, 격렬하고, 찐(?)하게 해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아 주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찬양대의 찬송가가 얼마나 화음이 잘 맞는지,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재미있는지가 은혜로운 예배의 관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 맞다면 하나님만 찬양해야 한다. 찬송이 사람과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보혈의 찬송(계시록 15장 3절 어린양의 피의 찬송)을 하여야하며 하나님만을 위한 찬송이 되야 하고, 찬양대가 박수를 받는다든지 목회자가 주체가 되어서 박수를 받는다면 예배가 아니고 친교의 목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냐? 아니면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자기도취에 빠지는 예배냐? 깊이 생각을 해야한다.

 

그러나, 분명 '예배'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예배한다'라는 말은 어떨까? 성경에 기록된 '예배한다'의 표현은 '예배를 한다'의 의미가 아니다. '예배한다'는 동사로 되어있고, 그 전에 '주님을' 혹은 '하나님을' 등의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즉, 예배는 동적인 행위이며, 이 행위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 하심'과 '성실하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의 겉모양을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예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그 목적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예배를 드린다'라는 말은 높임말을 쓴 좋은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란 목적어를 상실한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예배 한다'라고 말해야 옳다. '주님을 예배한다'라고 말하면, 성가대의 찬양이나 목사님의 설교가 예배의 관건이 아니고, 예배하는 개인 개인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예배의 외모의 화려함과 거룩함만을 따져서는 안된다. 예배의 목적인 '하나님'을 되찾아야 한다.

 

♣ 제사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사 드린다'라고 하면 주로 조상신에게 祭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 제사의 경우 조상의 위대함이나 성실함이 제사의 이유라기 보다는 조상에 대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예이다. 그리고 대개 제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보다는 얼마나 크고 좋게 제사를 차리느냐에 따라 조상신을 감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적인 전통의 영향으로 마음보다는 밖으로 보여 지는 것을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는 정성껏 준비해서 풍성하게 차려내는 것에 의미가 있는 만큼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예배는 감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제사와 경우가 다르다. 예배를 잘(?) 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미 복 주심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지, 정성껏 예배를 잘 준비해 선물꾸러미를 들고 계신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복 받기 위해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복 주심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내가 가진 것을 드린다고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질 않는다. 주심을 감사해야 한다. 생명 주시고, 지옥 갈 인생을 택하여 천국가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 이방신의 제사는 '내가 무엇을 얼마를 드렸으니 또는 하였으니 이것을 해 달라' 하는 목적이 있다. 행위 제사를 중하게 여겨서 날짜를 계산하고,한달, 40일, 백일 정성등 목적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동남아나 인도 등에는 신과 합일을 하는 행동이 요가이며, 예배가 곧 신과 섹스를 하는 것으로 표현하여 그들의 사원에는 온갖 남녀 교합장면들이 부조로 달려있다.

 

♡결론적으로,

예배는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혜와 사랑에 감동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하는 행위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사 내가 그안에, 그가 내안에 있는 자가 해야하는 감사의 제사이다. 그리고 내가 예수안에 있다면 내가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만 보여야 한다. 예수님이 제물이기 때문이다. 예배의 주체는 사람이며,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찬양이다. 그러므로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포장 된 어떤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배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배를 정성껏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예배 할 때, 예배의 목적인 하나님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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