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체험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세 가지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하나님의 여러 가지 존재 방식

 

성경에 의하면 성령 하나님은 세 가지 방식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무소부재 (또는 편재. omini-presence)

 

성령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천지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하나님은 천지 어디에나 계시기에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다. 동시에 성령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거룩하게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교회를 떠나면 마치 성령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천지 어디에나 계시는 성령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주 (內住. indwelling presence).

 

성령의 내주는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 방식이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사람 속에는 성령이 내주하신다(요 14:16-17; 고전 12:3).
성령은 신자의 몸을 성전으로 삼아 내주하신다(고전 3:16; 6:19).
성령만 내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도 내주하신다 (고후 13:5; 빌 2:13).
성령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신자 안에 신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요 14:20; 롬 8:1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성령이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하여, 성경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성령의 내적 증거’(internal testimony of the Holy Spirit)라고 한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사역이다.
성령이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 몸 안에서 이루는 사역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4).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약 4:5).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신자는 말씀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고, 거룩해져 가고(성화), 마침내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된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드럽고 비밀스럽고 은은하게 역사하신다.
당장 뜨겁고 강렬하게 역사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을 도와주신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간다.

 

-임재(臨在. manifest presence)


대부분의 경우 보수주의자들은 성령을 내주하시는 것으로만 이해해 왔다.
그 결과 갑작스럽고 외적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에 대해서는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다. 한편, 많은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 체험
즉 성령 체험이 있어야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성령 체험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극단적으로 잘못 주장한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비록 본인이 성령 체험이 없더라도 분명히 성령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신다.


내주하시는 성령이 비둘기 같은 성령이시라면 임재하시는 성령은 불 같은 성령이시다. 내주하시는 성령이 은밀하게 역사하신다면 임재하시는
성령은 체험적으로 나타나신다. 내주하시는 성령이 성령의 열매와 관계가 있는 성령이라면 현재하는 성령은 성령의 은사나 황홀 체험과 관계가 있다.
한 성령께서 다양한 측면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서신서는 주로 내주하시는 성령을 말하며 구약이나 누가 복음, 사도 행전은 주로 임재하시는 성령을 말한다.
“나타나다”(manifest)의 헬라어 ‘파네로-’는 “숨겨졌던 것을 알게 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특히 숨겨졌거나 보이지 않던 것이 외적으로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성령의 은사가 외적으로 오관을 통해 감지할 수 있게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성령의 나타남(고전 12:7)과 동의어로 사용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나타남(manifestation)은 증거함(demonstration)과 동의어이다.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demonstration)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의 임재는 성령의 내주와는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 방식이며 “모든” 신자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감지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체험이 없거나 체험의 폭이 좁은 사람들은 많은 오해를 한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처럼 나타나시기도 하고(출 3:2),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지만(출 3:2; 수 5:13-15),
많은 경우 지진, 뇌우, 번개, 폭풍과 같은 현상을 통해 나타나시기도 하신다(출 19:9-16; 삿 5:4; 시 114-5-8).

 

특히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불과 구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출 13:21).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 (manifestation of God 즉 theophany)라고 한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에서도 구약에서처럼 하나님의 현현에 불, 천사, 영광의 구름, 및 영광 등이 동반된 기록이 있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전 15:40).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현현이 모두 현시되었으므로 오늘날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현현은 더 이상 없다고 잘못 주장해 왔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현현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나타난 현상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주장이 기사와 이적은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잘못된 기적 종식론과 맞물려서 오늘날 하나님의 현재 체험을 부정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현재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 체험마저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현현 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제한하고 성령의 나타나심 ―특히 이적 행하는 은사나 성령 체험―은 말씀 속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말씀은 성령이 사용하시는 도구인데도 도구 속에 도구를 들어 사용하는 성령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성령의 임재에 대한 오해

 

하나님의 임재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감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통해 신자는 말과 생각으로만 이해하던 하나님을 가까운 연인, 아버지, 친구로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너무나 강하고 실질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체험한 사람은 확실히 안다.
절대자이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속에 들어갈 때 신자들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죄를 회개하며. 동시에 무한하게 자비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속에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함과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자 성령 체험이다.

20세기의 선지자로 불리는 A. W. 토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현재 체험이 없는
높은 학위를 가진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현재를 체험한 ‘선지자’들의 말을 외면하여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현재에 들어가지 못한 때문이며,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현재의 변두리에서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면 오늘날 신자들이 가진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한 체험을 강조하다 보면 말씀보다는 자신의 체험을 내세우기 쉽고 더 신기한 체험을 추구하다 보면
성경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기 쉬우므로 그런 식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극단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씀 만을 강조하면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차가워지고 손발은 마비된 기형신자를 양산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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