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 예배자의 현실은 어떠한가?

  

1) 복 받기 위해서 예배드리러 온다.

2) 위로를 받기 위해서 온다.

3) 예배보다는 맡은 직분과 봉사를 위해서 온다. 

4) 주일날이니까 감동과 감격이 없이 습관적으로 온다.

5) 주일날 예배 안 드리면 벌 받을까봐서 온다.

6) 말씀에 은혜 받기 위해서 온다.

당신에 어디에 속하는가?

  

2. 그러면 예배드리는 참된 목적이 무엇일까?

  

▸일반적인 정답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답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예배가 되려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먼저 요한복음 4:24절 말씀을 보자.

  

[요 4:24-요 4:24]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서 보아야할 것은 “예배 할지니라”이다. 

“지니라”는 헬라어로 “데이”이고 영어로 “must"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must"는 가장 강한 명령어이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예배자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드려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자이다.

여기서 ‘영’은 성령과 함께 한다. 

‘진리’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에서 진리와 같은 말이다.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를 보아야한다.

  

오늘날 성령의 은사와 능력과 신비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성령의 본질을 놓치고 말았다.

성령님께서 진심으로 하고자하는 것이 있다.

  

[요 16:8-요 16:14]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의 간절한 소망은 진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진리의 장소는 ‘십자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고 했다.

먼저 성령님은 우리 속에 오셔서 십자가로 인도하시면서 

1)죄를 책망하신다.

2)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도하신다. 

3)또한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을 심판하신다.

이것이 성령님의 본질적인 사역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배시간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자는 육이 죽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하고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가 된다.

  

▶어떻게 하면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예배 시간에 예배를 방해하는 육을 죽여야 한다.

예배 시간에 비진리의 생각을 죽여야 한다.

그러면 무엇으로 육과 비진리를 죽여야할까?

선포되어지는 말씀으로 죽어야한다.

  

자 이제 해답이 나온다.

설교 말씀으로 성도들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죽여야한다.

성도들 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을 죽여서 진리를 집어 넣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설교자의 설교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설교하는 강단은 그냥 세상의 강단과 다르다.

설교하는 강단은 ‘심판대’이다.

말씀으로 심판하는 곳이 설교강단이다.

이것을 성도들이 알아야한다.

  

설교강단이 단순히 예배자의 혼과 육을 만족시키는 강단이 된다면 이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된다. 

설교강단은 

죄를 심판하는 곳이요, 

죄를 심판해서 성도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도하는 곳이요 

마귀를 심판하는 곳이다.

  

설교 강단에서 성도들은 성도들에게 역사하는 마귀와 죄를 심판 받아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을 듣지 않고 칭찬과 상을 받기 위해서 서게 된다.

  

[고후 5:10-고후 5:10]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설교는 강단에서 성도들을 심판하는 장소이다.

성도들은 예배시간에 심판 받으러 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심판 받으러 오는 것인가?

성도들 속에 역사하는 마귀의 속성을 심판 받으러 오는 것이다.

말씀의 법으로 성도들 속에 있는 죄악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성도들 속에 있는 옛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다.

성도들 속에 있는 자아와 탐심을 심판하는 것이다.

성도들 속에 있는 자기의 의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도들이 알고 예배를 드린다면 엄청난 예배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증거 하는 주의 종들이 이것을 알고 강단에 선다면 참된 설교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강단에 책망과 회개가 사라지고 자존심 건드리는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성도들의 자아를 더욱더 보호해주고 옷 입혀주고 세워주고 높여 준다.

자아의 중심에는 마귀가 왕으로 앉아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대적이요 가장 큰 우상은 내 안에 있는 ‘자칭 하나님 자아’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자아와 탐심을 죽이려고 오셨는데 오히려 성도들에게 자아실현, 자아만족으로 인도하지 않는가?

심히 염려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두려운 말씀이 있다.

  

[약 3:1-약 3:1]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예배자가 주일날 말씀으로 심판받으러 오는 것이 정상이다.

예배는 말씀을 통해서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나는 것’이 예배이다.

이렇게 예배드릴 때에 어느 날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만’ 계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배는 말씀을 통해서 예배시간에 육이 죽고 영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예배는 말씀으로 마귀의 형상을 죽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는 첫 사람 아담이 죽고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면 모두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충만해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다.

모든 성도가 내가 죽고 내가 그리스도 화 되면 그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예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5대 제사를 알게 되면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레위기의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

5대 제사의 특징은 다 죽이고 찢고 자르고 불로 태우는 것이다.

이것을 화제라고 한다. 불로 태운다는 것이다.

소제는 완전히 보리와 밀을 짓이기고 짓이겨서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옛 자아를 완전히 갈고 갈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흠향하셨다고 했다.

바로 죄가 타는 냄새를 하나님은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레 1:9-레 1:9]

(9)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예배 시간에 죄가 타는 냄새가 넘쳐나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이다.

만약에 예배시간에 죄가 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는가?

성도들의 눈치를 보고 설교를 한다면 죄를 지적할 수 있겠는가?

  

로마서12장 1절 말씀을 보자 

  

[롬 12:1-롬 12:1]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거룩한 살아 있는 제물이라고 했다.

거룩한 제물이 되려면 내 안에 죄가 다 타야한다.

죄가 타지 않는 예배자는 예배자가 아니요, 죄가 타지 않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한 날, 복된 날이라고 했다

  

[출 20:11-출 20:11]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했다

언제 안식일인가?

내 안에 죄가 없을 때에는 참 안식일이다.

참됨 안식일은 말씀을 통하여 내 안에 마귀와 죄를 죽이면 죽일수록 참된 안식이 온다.

내 안에 죄가 있으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

안식일이 안식일 되게 하려면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죄악을 없애야 마음이 참된 안식을 누린다.

이것이 오늘날 주일의 참된 의미이다.

그래서 이날이 복 된 날이다.

복은 사탄과 죄를 없애는 것이 복이다.

그래서 사탄마귀가 없고 죄가 없는 천국이 복락원인 것이다.

  

예배자는 왜 주일날 심판받으러 와야하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죄악들을 심판받아서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충만하시기 바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