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 사천(144,000)은 이런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접하는 이들 가운데 잘못 알고 편협적인 해석을 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특히 신천지가 자기들 속에 들어오게 되면 144,000명(?)에 합류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런 해석들이 신천지만이 아니라 그런 아류의 사이비와 이단 집단에서 자기들만의 특권인양 주장하며 앞세워왔다.

 

우선 144,000이란 표시가 원어에서 숫자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단어로 되어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

숫자가 아니라 단어로 되어 있는데 그 단어를 숫자화하게 되니까 144,000이라고 번역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사용하던 숫자의 개념으로 최고의 무제한을 표시한 숫자가 바로 144,000로 표시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는 시온 산으로 지구상의 특별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성이기 때문에 죄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산으로 접근하면 죽게 되는 산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존재들이 그 산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함께 설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만 되어서 시온 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영적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산이다.

많은 교인들이 세상에 있지만 그들이 영적 싸움을 싸워보지도 않고

예수와 함께 승리했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거짓이며 사기다.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서 반드시 이긴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산이다.

 

십사만사천이라고 만 했지 십사만 사천 “명”이란 표시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한된 십사만사천이 아니라 12에 12를 곱한 수에 1,000을 붙인 144천이라는 뜻이다.

마치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한정 판매하듯 명수로 제한하여 떠드는 놈들이 있는데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요한계시록을 함부로 매도하는 이들을 주의 경계해야 한다.

 

144,000에 속해 있는 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은 계시록 14장1-5절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는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겉으로 적힌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진 머릿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의 블랙박스로 거기에 다 집합이 되어 있다.

 

내 안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횟수도 의미하며 말씀을 이루어진 것도 의미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 봉사한 횟수도 의미할 수 있다.

 

마치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제한시켜 지칭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주님을 향해 찬양한 횟수도 의미한다면 얼마나 많은 찬양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숫자를 세면서 승리하거나 순종하거나 그리고 봉사하거나 찬양하는 짓을 하지 마라.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천 번을 외우면 병이 낫거나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무속적인 신앙에서 탈피해야 한다.

땅에 숫자 개념과 하늘에 숫자 개념은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동고동락하고 있다면 십사만 사천에 해당된다.



두 번째 계 14:3과 같이 새 노래가 있는 존재가 십사만 사천이 될 수 있다.

새 노래는 새롭게 작사, 작곡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님과 함께 연합된 자로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깨달은 존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어야 한다.

 

새 노래를 가진 자는 주님과 함께 영적 승리를 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개가를 의미한다.

속에는 원망과 좌절, 한탄이 가득한 데 조동아리로만 노래하는 이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찬양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언제나 영혼 속에 구원의 기쁨의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로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다.(계 14:4)

세상과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구분이 되어 타협하지 않는 그리스의 신부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인도하는 곳에 모여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하는 곳이라면 순순히 따라가는 무리를 의미한다.  



네 번째로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14:5)

어린 양이신 주와 하나님을 빙자하여 헛소리 할 수 없다.

그런데 자신만이 이긴 자처럼, 특별한 혜택을 받은 자처럼 자신만의 논리에 따르면

십사만 사천 명(?)의 무리에 들어올 수 있다는 식으로 강요와 함께 술수를 쓰고 있다.  


마치 자신만의 독설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아니면

거기만 144,000명(?)이 있는 것처럼 영적 사기를 치고 현혹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장사하고 있는 가짜들이 얼마나 판을 치고 있는지

과거 요한계시록을 만 번 이상을 읽었다고 하는 분도

몇 년 몇 월 며칠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헛소리한 적이 있다. 


심지어 국내외에서도 유명한 목사도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주님이 오신다고 했으며

그 유명한 빌리 그래함 목사도 똑같이 재림 연월일을 발표한 바가 있다.

해괴망측한 발언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결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의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채 이해했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심을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 산에 선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히 12장)

십사만 사천 중에 내가 몇 번째일까? 거기에 현혹되지 말고 이마에 새긴

주님의 이름의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음과 주님과 함께 싸워서 이긴 기쁨의 새 노래,

세상과 짝하지 않고 순결한 신부로서 주님께서 가자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빙자하여 거짓을 말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복음,

정금 같은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는 입술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라.

흠이 없다는 뜻은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올바르게 연합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연합되어 거룩하게 된 것처럼

그 분과 올바르게 연결되어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는 차원이 바로 흠이 없다는 귀중한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정신을 갖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바로 십사만 사천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무제한적인 숫자의 의미와 함께 내 안에 이루어져야 하는 존재가 바로 십사만 사천이다.



고 이준호목사(창골산 봉서방 카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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