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경의 요약 안유섭 목사 (아르케아카데미 원장) Ⅰ. 서 론 가. 외경의 뜻과 범위 외경을 영어로 아포크리파 ( Apocrypha ) 라고 하는데 이말은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감추어진 일군의 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외경은 BC 2세기부터 AD 1세기까지 사이에 쓰여진 열네권 혹은 열 다섯권의 특별한 책들을 정경과 대비하여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외경의 정의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었고 현재에도 로마 카톨릭과 정통 프로테스탄트 간에 서로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상태로 남아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외경은 여러 가지 장르를 포함하고 있는데, 역사적 장르에 속한 것으로 제일 에스드라, 마카베오 상.하가 있으며 도덕 소설적 장르로는 토비트, 유딧, 수산나, 벨과 뱀 등이 있고, 지혜서와 집회서와 같이 다분히 교훈적이고 설교적인 것도 있고 므낫세의 기도는 수준 높은 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제이 에스드라 는 성격상 묵시 문학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것들이 왜 정경과 구분되어 외경으로 불리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아야 하겠지만, 정경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예언자들이나 선지자들에 의해 영감받고 쓰여졌다는 사실에 논란이 거의 없고 현재의 유대인들에 의해서도 그대로 자신들의 경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외경은 항상 그 진위성과 영감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받아 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 히브리어 정경의 성장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정경과 그 내용에 있어서는 같으나 분류 방식과 배열은 다르다. 히브리어 정경은 율법서와 예언서 그리고 문학서로 구성되어 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모든 본문이 동시에 경전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모세 오경이라고 일컫는 율법서는 BC 5 세기 경 귀환 시대에 에스라 주도 하에서 제일 먼저 정경이 되었고, 둘째 부분인 예언서는 BC 3 세기 말에서 2 세기 초 경 시몬이라는 대제사장 때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본다. 마지막 문학서 또는 성문서라고 불리는 것들은 AD 90년 얌미야의 유대교 총회에서 비로소 정경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에도 몇몇 책들은 랍비들 간에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의심받아 격론의 대상이 된 것들도 있었다. 따라서 오늘의 구약성경이 처음부터 변함없는 경전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온 것은 아니었으며 오랜 세월동안 읽혀지면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 책들이 경전으로 남게된 것이다. 구약성경이 쓰여져 오는 동안 경건한 유대인들에 의해 또다른 많은 책들이 쓰여졌음은 자명하다. 그것들 중 상당수는 많은 독자를 가지고 오래동안 읽혀져왔고 그런 가운데 계속 복사되어져서 명맥을 이어져온 것같다. 더욱이 그런 책들이 일반 대중언어인 아람어나 헬라어로까지 번역되면서 마침내 구약성서 정경의 헬라어역인 70 인역과 함께 보급되기에 이르자 외경도 정경과 함께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신약성경에도 외경의 내용들을 인용한 흔적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튼 어떤 책이 정경이되고 어떤 책을 정경에서 제외하였는지의 기준을 정확히 알아내기는 어렵겠지만 후대 랍비들의 연구에 의하면 영감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감이 작용한 기간은 모세 시대부터 알렉산더 대왕 시대까지로 보았다. Ⅱ. 외경의 내용 요약 B. 메츠거의 「 외경이란 무엇인가 」와 방경혁 譯의 「 외경 」은 외경들의 제목과 순서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에 제목과 순서는 B. 메츠거의 배열을 따르기로 한다. 1. 제일 에스드라 제일 에스드라는 제이 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와 함께 특이하게 개신교에서 성경에 삽입되어 정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던 외경이다. 이 책은 구약의 에스라 뿐만 아니라 역대하, 느헤미야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정경과의 병행 구절도 가장 많이 발견되어 진다. 그러나 이 책은 구약성서의 기록과는 다른 각도에서 기술되어지고 있다. 내용은 요시아왕의 유월절 행사로부터 시작해서 역대하 35 ∼ 36 장의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이야기와 정경 에스라 전체, 느헤미야 8 장에 나오는 에스라의 율법강독 이야기 까지에 걸쳐서 전개되다가 갑자기 도중에 결말을 매듭짖지 않고 끝내고 있는 점 또한 특이하다. 요시아가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한다음 후임의 여호아하스는 애굽왕 느고에게 폐위당하고 여호야김이 새로운 왕이 되지만 곧 바벨론의 느부가넷살에게 사로잡혀 가고 여호야긴을 거쳐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왕이된다. 시드기야는 결국 유다를 멸망시키게 하는 역할을 하고 비참하게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드디어 포로 생활 70년 만에 바사왕 고레스의 조서가 내려 많은 유대인들이 귀국하게 되고 또 그들의 숙원이었던 성전 건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아닥사스사왕 때 공사가 중단되어 다리오왕에 이르게 된다. 이때 이 책에 의하면 왕 앞에서 세 호위병의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토론이 있게되고 그중에서 진리가 가장 강하다는 것을 웅변한 스룹바벨의 말이 왕과 무리들을 감동케하여 승리자가 됨으로서 그의 소원대로 성전을 다시 재건토록 허락받게 된다. 드디어 다리오왕 6 년에 성전이 재건되고 봉헌식을 거행하게 된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나고 동명이인의 아닥사스사왕 7 년에 유명한 에스라가 다른 귀환자들과 함께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호위병의 이야기는 허구적인 소설로 보아지나 대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역사가 요세프스는 그의 역사 기록의 근거로 많이 활용하기도 하였다. 2. 제이 에스드라 제이 에스드라는 신약의 계시록처럼 묵시문학으로 분류되는 책이다. 구성은 대단히 복잡해서 계시와 기도와 역사가 혼합되어 있다. 먼저 에스라의 족보부터 시작해서 에스라가 이스라엘을 탄핵하라는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는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돌이킬 수 없는 범죄로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방을 구원하시겠다는 선포가 나온다. 이 부분은 특히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풍기는 대목이다. 다음은 이 책의 핵심인 7가지의 묵시가 나타나며 묵시문학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첫째 묵시에서 에스라는 자기 백성의 운명을 슬퍼하면서 악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의 충동을 제거해주시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불평하듯 하자 우리엘 천사가 나타나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으며 종말에 모든 것이 완성되는 날 알게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둘째 묵시에서 역시 에스라의 불평이 이어지나 종말에 임박할 징조를 알려주면서 이에 답을 대신해준다. 셋째 의문은 최후의 심판과 의로운 자들과 악한 자들의 운명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는 신학사상 중요한 죽은 자들에 대한 상태와 그들을 위한 어떤 기도도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부분이 로마 카톨릭의 연옥이나 죽은 자를 위한 중보기도의 교리를 무용하게 만들기 때문에 카톨릭은 성서에 외경을 포함하면서도 이부분을 빼고 있다. 네번째 묵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에스라의 감동적 애곡으로 시작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도시 시온성이 나온다. 다섯째는 독수리와 사자가 나오는데 독수리는 로마제국을 상징하고 독수리의 날개는 로마제국의 여러 통치자들이며 사자는 구원의 메시야를 상징한다. 여섯째 묵시는 남자와 온화한 군중 그리고 그의 대적들이 등장하는데 남자는 역시 메시야이며 온화한 군중은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대적들은 앗수르를 포함한 이방 나라들이다. 마지막 일곱번째 묵시는 에스라의 임종과 그의 마지막 할 일로써 영감받은 내용들을 책으로 만들어 보관하도록 지시받는다. 제이 에스라는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중의 하나로 알려져 왔다. 상징이 난해하고 종교적 교리 문제도 상당히 심오하게 다루고있는 책이다. 한편 문학적 표현이 매우 수려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3. 토비트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혀지던 경건 소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토비트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다. 저작 의도는 모험소설의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종교적 및 도덕적 교훈을 주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비하신 섭리 속에서 비록 때로는 의로운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 재난이 임하는 것을 허락하시지만 동시에 그들이 당하는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을 특별히 보호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결국에는 어려움을 이기고 행복을 차지하게 해주신다는 다분히 권선징악적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책 주인공 토비트는 BC 8 세기 경 갈릴리 지방에 살았는데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에서는 백성들이 거의 우상 숭배에 젖어 있었지만 토비트와 그의 가족들은 신앙을 잘 지켰다. 앗수르왕 살만에셀에게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많이 포로로 잡혀갈 때 토비트 가족도 끌려갔다. 토비트는 처음에는 편안하게 지내었으나 산헤립왕이 즉위한 뒤부터 어려운 처지가되었다. 그의 자선행위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욱 박해를 받게되고 나중에는 고난이 더하여 우연히 실명까지 하게된다. 이때 줄거리가 잠깐 바뀌어 메대 지방의 사는 사라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인은 벌써 여섯번째 신방을 차렸으나 그간의 신랑들이 이 여인을 흠모하는 귀신에 의하여 모조리 목숨을 잃고말게된 기구한 여자였다. 토비트와 사라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나님께 자신들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동시에 기도하는 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주시기 위해 라파엘천사를 보내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토비트는 그의 아들 토비아를 사라와 결혼시킬 수 있게 되며 또 시력을 회복하게 되어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4. 유 딧 유대인의 전쟁 무용담의 하나인 유딧서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원수들에 대하여 반항심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준수하도록 가르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애국심과 신앙심은 서로 분이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율법을 잘 지키면 축복을 받고 율법을 어기면 원수에게 핍박을 받게된다는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유딧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여인일 뿐 아니라 국가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지혜와 용기로 국난 극복에 앞장설 줄 아는 여걸이다. 유딧서는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앗수르가 유대를 침략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유딧이 앗수르의 손아귀에서 자기 마을을 구해내는 내용이다. 이 책은 역사가 뒤죽박죽인 것이 흠인데, 앗수르와 메대의 싸움에서 앗수르 편을 들지 않았던 유대를 공격하기 위해 느부가넷살왕은 홀로페르네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유대 정벌을 시작한다. 이때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앗수르인들은 베툴리아를 포위하였다. 식량과 용수 부족으로 곤경 중에서 유딧이 계략을 써서 적장을 유인하여 목을 베어 죽이고 결국 마을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다. 이것 역시 문학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는 있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외경에 남게 된 것이다. 4. 에 스 델 외경 에스델은 정경 에스더의 나머지 장들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에스더의 속편으로 읽으려면 문맥이 잘 연결되지 않고 차라리 에스더 중간 중간에 부분적으로 보충해서 읽는 편이 낫다. 에스더 본문에 순서대로 첨가 시키면 우선 모르드개가 내시들의 음모를 발각해서 아하수에로왕을 구하는 장면이 부연 설명되어 있다. 이전에 모르드개는 꿈을 꾸는데 나중에 이 꿈에 나오는 두 마리의 용이 자신과 하만이었음을 알게 된다. 다음은 하만의 흉계로 유대인 학살의 조서가 내려갈 때 그 내용이 나온다. 다음은 자기 백성을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모르드개와 에스델의 기도가 나온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는 장면을 보다 실감나게 그리는 내용이 첨가되었다. 다음으로는 유대인 말살 조서를 취소하고 유대인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왕의 유대인 복권령이 나오는데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문체로 되어 있다. 마지막 첨가는 모르드개가 꾼 꿈의 해석인데 먼저 언급한 바와 같다. 에스델이 구태여 정경 에스더를 보충 확대한 의도에 대해서는 정경 애스더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종교적인 요소가 희박한 점을 보완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에스더는 외형적으로는 비록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도 내용면에서는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잘 반영된 신앙서임이 틀림없다. 6. 지 혜 서 지헤서는 솔로몬의 지혜서라고도 불리는데 희랍 철학에 능통한 어떤 정통파 유대인이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지헤서는 매우 신학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특히 지혜를 의인화하면서도 다분히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이해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지헤를 주의 영, 주의 섭리, 능력과 동질로 보고 지혜의 속성으로 지성, 거룩, 자비, 전지, 전능 등을 말하고 있다. 지혜는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존재로 여겼다. 지혜서를 쓴 의도는 좌절과 박해로 절망 가운데 있는 실향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열성과 율법에 대한 열심을 회복하고 믿음과 행실을 격려하며 견고하게 하는 교훈을 주고자 함이다. 게다가 이방인들에 대한 가르침도 포함하고 있는데 유대교의 진리를 증거하며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이세상의 악에 대한 견해와 악인들의 말로가 어떠함과 의인들이 당하는 고난의 문제는 영생의 축복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의 시련으로 설명하고 있다. 계속해서 의인의 요절이 악인의 장수보다 낫다는 것은 심판의 날에 비로소 의인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는 것을 보고 악인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지혜를 사모하는 자만이 영생을 얻게됨을 설파하면서 한편으로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몇가지 덕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지헤서는 전.후반부의 문체와 형식이 다른데 후반부가 다소 수준이 낮은 편이다. 지혜서의 신학적 교훈은 근본적으로는 구약성서에 근거하고 있으나 당시 유행하던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발견된다. 우주적 로고스 개념과 비슷한 사상도 엿보이며 플라톤 학파의 선재물질, 영지주의의 물질의 악한 본질성, 그리고 영혼의 선재 개념 등이 그러하다. 또 사후관에 있어서도 구약성서는 선인과 악인의 구분없이 죽은자는 일단은 모두 지하의 세계인 스올로 간다음 최후의 심판에 의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고 하고 있는데, 지혜서는 인간이 죽은 다음 바로 심판을 받고 생시의 도덕적 행위의 질에 따라 의인은 주님의 전의 평안한 곳으로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돠고 악인은 고통지옥으로 가서 영벌을 받는다고 하고 있다. 7. 집 회 서 집회서는 일명 '시락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외경 중에서 가장 긴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가장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높이 여김을 받아온 책이다. 이는 저자를 확실히 밝힌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이책의 목적은 지혜의 본질을 밝히고 생활의 모든 영역을 총괄하여 지켜야 할 종교적인 것을 포함하여 사회적 의무를 바르게 제시하는데 있다. 지혜는 이 책에서 아주 넓은 의미로 파악되고 있는데, 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되 다양한 활동들, 기술자의 재능, 사업능력, 영리함, 언행에 대한 조심, 분별력, 슬기로운 처세, 사려 깊음, 학구적 태도, 올바른 생활 등이 다 지혜에 포함된다. 집회서는 처음 고전 히브리어로 쓰여졌지만 후에 그의 손자에 의해 헬라어로 번역되어 많이 보급되게 되었다. 집회서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나중의 고대 라틴역에서 부터인데 집회서란 곧 '교회의 책'이라는 뜻이며 그만큼 교회로부터 중요성과 가치를 일찍부터 인정받았음을 암시해준다. 집회서는 간결한 교훈으로 주로 되어 있으며 문학 형식에 있어서는 잠언서의 영항을 받고 있다. 시적인 표현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집회서에는 내세와 부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저자가 사두개적 경향을 가진 것으로 여기게 한다. 8. 바 룩 외경 가운데 정경의 예언서와 가장 흡사한 책이 바로 바룩서이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비서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가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수드 강변 포로수용소에서 같이 포로로 잡혀온 유대왕 여고니야 즉 여호아김과 다른 유대인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곧이어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 기도가 나오면서 죄의 고백과 과거 민족사에 대한 간략한 회고가 등장한다. 바룩서는 다니엘서와 예레미야 그리고 어떤 부분은 신명기를 인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룩서는 전반부는 산문체로 되어 있고 후반부는 시가체로 되어 있다. 마지막은 이제 곧 흩어졌던 자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회복의 약속이 언급하면서 마치고 있다. 9. 예레미야의 편지 제목과 달리 이책은 편지도 아니고 예레미야가 쓴 것도 아니다. 익명의 저자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한 구절을 본문으로 일종의 설교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고한 종교를 버리고 저급한 신앙생활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면서 특히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해독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우상의 무기력하고 아무 능력 없음을 논리적으로 갈파하고 있다. 후에 기독교가 주위의 이교주의와 부딪혔을 때 이러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용하기도 하였다. 10.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이 책은 '수산나' '벨과 뱀'과 함께 다니엘 추가서로 되어 있는 책이다. 아자리야는 다니엘의 세 친구 중 아벳느고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다니엘 3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느브가넷살 왕이 세워놓은 금신상 앞에 끝까지 경배를 거부하다가 불화덕에 던지움을 당하게 된다. 이때 불속에서 아자리야는 하나님을 찬미하며 자기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고 민족적인 구원을 간구한다. 곧 세사람은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는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이 노래는 시편 136 편에서 교창곡 형식의 찬양을 본따온 것이다. 11. 수 산 나 수산나는 짧으면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악인들의 행위를 물리친 도덕의 승리와 죄 없이 희생 당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벗어나는 극적인 구원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수산나는 바벨론 땅에 사는 유명한 유대인인 요아킴의 아름다운 아내였는데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여자였다. 이때 수산나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하여 음흉한 생각을 품게 되는 두 명의 악한 장로 두사람이 등장한다. 두 명의 장로는 또한 재판관이기도 했는데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수산나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부정한 여인으로 모함하여 결국 사형까지 선고하게 된다. 억울한 수산나는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리고 응답으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나타나서 수산나의 누명을 벗겨주고 두 명의 악한 장로들을 오히려 사형에 처함으로써 이야기를 맺게 된다. 12. 벨과 뱀 벨과 뱀은 인류 최초의 탐정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책이다. 이 짧막한 이야기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탐정소설에 나옴직한 방법으로 폭로하여 이방신 제사장들의 제사의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기 위해 쓴 것같다. 벨이란 마르둑이라고도 불리는 바벨론 만신전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의 이름인데 바벨론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바벨론 제국내에서는 누구든지 벨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되었는데 다니엘은 완명을 어기고 벨을 경배하지 않았다. 왕의 노여움을 사게되었으나 오히려 벨이 아무 능력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는 일개 물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오히려 벨 신상을 부수어 버리게끔 만든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용으로 숭배받는 한 마리의 뱀을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무용담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다니엘은 벡성들의 미움을 사서 사자굴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생환하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13. 므낫세의 기도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작은 기도서인데 드물게 보는 뛰어난 고전이다. 매우 아름다운 예배의식에 알맞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깊고도 순수한 종교적인 감흥을 발산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는 아무리 하나님의 법을 많이 어겼다하더라도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해 히스기야 왕의 아들로서 악한 일을 많이 했던 므낫세 왕을 본보기로 들어서 기도문을 만들은 것같다. 므낫세는 먼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죄를 고백한 다음 하나님의 용서를 빈다. 이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은혜의 간구와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4. 마카베오 상 마카베오 상.하 권은 유대인의 독립과 종교적 자유의 용맹스러운 방어자였던 유다 마카베오의 영웅적인 공적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BC 2 세기의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항거한 실제 역사였기 때문에 역사서로 분류되어 진다. 알렉산더로부터 시작된 헬라의 정복 역사는 그후 그의 왕국이 분열된 뒤에도 계속되어 셀류코스 제국으로 이어진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셀류코스 왕인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에게 헬라문화의 모방과 함께 이교도의 풍습까지 강요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유대 지도자 마따디아는 유다 마카베오를 포한한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투쟁을 시작한다. 그들은 안티쿠오스의 병사들을 무찌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유다 마카베오의 영도력으로 승리를 쟁취하여 마침내 그들의 숙원이던 성전을 봉헌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이제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게 된다. 15. 마카베오 하 마카베오 하권은 하시딤 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셀류코스 왕조가 실시하려 했던 유대의 이교화 정책에 끝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정신적으로 그들을 이겨내는 눈물겨운 이야기의 책이다. 이 책의 의도는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성전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처음에 마카베오의 이전의 역사와 유대인의 항거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기술하면서 시작한다. 다음에 당시에 부패한 유대 지도자들간에 자행되었던 요직의 뇌물거래 사건 등 그리고 셀류코스 정권과 손잡은 배신자들의 이야기가 우울하게 이어진다. 세속화된 사제들의 묵인하에 저질러진 숱한 신성모독 행위로 인해 예루살렘에 무서운 재난이 떨어진다. 배교한 대제사장 야손은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고자 예루살렘을 점령한 셀류코스 제국의 안티오쿠스 왕의 군사들을 공격하다가 실패하고 도망치게 된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저보다 훨씬 악랄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4 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또 4 만명 이상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배교한 대제사장 미넬라오스의 도움으로 약탈자들은 성전을 모독하고 막대한 전리품을 가지고 간다. 이때 경건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찍질하시려는 것이라고 하면서 신앙과 도덕을 회복할 것을 호소한다. 이책에는 심금을 울리는 몇몇의 유명한 순교 장면이 나오는데 제일 유명한 것은 일곱명의 아들과 함께 비인간적으로 흉폭하게 살해 당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역사적 가치로만 볼 때는 마카베오 하는 마카베오 상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마카베오 하야말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시대가 막을 열기 이전의 유대교 발전사 연구에 서광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마카베오 하에서 저자의 의도는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거나 부각시켜야할 필요가 있는 사건들을 간추려서 정리하고 미화시켜서 당대에 같은 뜻을 가진 유대인들이 지킨 신앙과 체험을 확고하게 해주는데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책에는 뚜렷한 바리새적인 관점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작은 일까지도 미리 정해 놓으셨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의 존엄성을 기적적으로 지켜내었다고 하는 확신속에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이책에는 섭리와 응보의 교리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서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관점을 잘 알게 해준다.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모든 자들은 전부 말로가 비참하게 끝난다.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몸의 부활에 대한 확고하고도 단호한 견해이다. 의로운 사람은 사후에 영원히 살게되고 악인에게는 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앙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처음으로 무로부터의 창조 교의가 명백히 선포되어지고 있다. 「외경」및 「외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운점 1. 외경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했을 때는 외경이라는 것은 그 내용이 성경과 완전히 배치되므로 신앙에 전혀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오히려 읽으면 방해가 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외경을 읽고 또 외경의 안내서인 「외경이란 무엇인가」를 읽고나서 그 생각이 전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카톨릭에서처럼 외경에 성경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외경을 읽음으로써 성경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2. 외경이 오늘날처럼 기독교인 일반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 된 것이 종교개혁을 전후해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과 이전에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제반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사실을 깨달았다. 3. 외경을 읽는 것이 유익하되 외경에 대한 태도는 영적 분별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성경은 절대무오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불변의 진리 그자체 이지만 외경은 상당 부분 저자의 역사적 허구와 과장된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것은 안되고 단지 종교적 및 도덕적 통찰력을 섭취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4. 외경은 또한 성경에 단절된 이스라엘 역사의 한 부분을 이어주는 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외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의 유대인들의 생활과 사상에 관한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정치적, 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배경에 대하여 보다 깊은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배웠다. 5. 외경은 성경을 토대로 그 폭을 넓혀가는 확장팩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성경이 기본이라면 외경은 그의 응용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의 무분별한 응용은 위험한 신앙을 나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배우게 되었다. 외경 역시 경건한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 의해서 쓰여진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으나 지나친 열정이 과장과 허구를 조성하게 되어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이 왜곡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 없는 인간의 의도는 그것이 아무리 선하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드러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출처: 아르케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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