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恐怖), 어떻게 다스릴까?


전요섭 교수 (성결대 기독교상담학 , 한국복음주의기독교상담학 회장)


'공포(恐怖)'라는 용어는 한자의 뜻을 보면 '두려울 공(恐)'에 '떨 포(怖)'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두려워 떤다는 뜻이다. 즉 공포란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서 꺼리거나 무섭게 생각하여 떠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이를 phobia(포비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포보스-공포, 놀람, 두려움)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그것은 전쟁 때, 적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 기괴하고 요사스럽게 채색하여 만든 가면이나 장신구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가리켰던 말이다. 고대 사람들은 아마도 외형적인 어떤 기괴한 모습이 적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헬라어의 동사형은(포베오)인데 그 뜻은 '두려워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존경하다'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이에(유라베이아)라는 단어가 두려움이라는 의미로 드물게 사용되는데 그 뜻은 '신중' '경외' '주의' '조심' '경건'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리킨다. 또 다른 용어로 (데이리아)가 있는데 이는 '겁' '두려움' '비겁' '소심'을 의미인데 좋은 의미로는 사용된 바가 없다. 이런 것을 모두 합쳐 신약성경에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158회 사용되고 있다.

공포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는 (야레: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가 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약 330회 언급되었다. 명사로서는 (이르아)가 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신 2:25), 사물에 대한 두려움(사 7:25), 상황에 대한 공포심(욘 1:10), 하나님에 대한 경외(욘 1:12) 등을 의미하는 말로 구약에 45회 언급되었다. 또한 는 탁월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용어로 구약에 12회 언급되었다. 이렇듯 신구약 성경에 공포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 것은 인간의 심리 가운데 공포가 자주 나타나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성경에 나타난 공포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면 유익된 공포와 해로운 공포가 있음을 뚜렷히 발견하게 된다. 유익된 공포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성경에서 두려움이란 용어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대표적으로 욥기 37절 22∼24절에 "하나님께서는 두려움 위엄으로 옷 입으셨으니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도다.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를 경외하는도다."는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상대적으로 위축시키는 장엄한 모든 것은 두려움을 야기시킨다. 그래서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장엄한 것에 대해서 복수(plural)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인간이 황량하고 광대한 자연 경관이나 우주 공간을 바라볼 때, 또는 끝없는 대양을 횡단할 때,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하물며 이 모든 것들에 비하여 무한히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이러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과 동의어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범죄를 금할 수 있게 되며 그를 섬기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 대한 복을 성경은 매우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잠 10:27)' '생명 획득 및 연장(잠 9:10; 시 110:10)' '지식 획득(잠 1:7)' '지혜 획득(잠 15:33)' '악에서 떠남(잠 16:6)'.... 등의 유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해로운 공포심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타락과 죄로 인하여 겪는 공포이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한다(잠 10:24)."고 기록하고 있다. 이 공포는 인간을 나약하고 무질서, 부도덕하게 하며 파멸시키는 등 인간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초래시키므로 인간의 적(enemy)으로 인식된다. 공포심은 일반적으로 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잠 28:1)."는 기록은 죄로 인한 공포심의 발로이다. 성경의 무수한 기록들이 이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이 범죄하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때, 그는 대단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말하며 두려워했다(창 4:14). 마찬가지로 헤롯왕은 세례요한을 참소한 후에 죄책감으로 인한 공포심에 시달린 바 있었다(마 14:1).

공포는 공포를 낳고 온갖 공포의 환상에 사로잡혀 인식을 왜곡시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밤에 폭풍이 이는 바다 위로 오셨을 때, 예수님을 일컬어 '유령'이라고 생각하여 "무서워하여 소리질렀다(마 14:26)."고 기록하고 있다. 공포는 사람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마비시키며(마 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 결국 한 개인의 인격을 파괴한다. 또한 공포는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사람들을 선발하면서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돌아가라"고 말하였다(삿 7:3). 이러한 기록은 신명기 20장 8절에서도 발견된다.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공포와 유사 용어인 불안은 공포처럼 두려움을 느낀다는 면에서는 같으나 불안(anxiety)은 외적인 세계의 위협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생기는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정서적 경험을 말한다. 그러나 공포(phobia)는 외적인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정서적 경험을 말하는 것으로서 어떤 특정 대상에 투사되는 두려움이다. 따라서 불안과 공포의 구분 기준 가운데에 대표적인 것은 불안은 불안을 느끼는 가시적인 대상이 없는데 비해 공포는 공포를 느끼는 가시적인 대상이 있다는 점이다. 공포는 견디기 힘든 심리적인 고통으로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포에 노출되면 아주 나약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은 특별한 원인으로 인해서도 발생되지만 이유 없이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소 또는 고층공포(acrophobia), 넓은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광장공포(agoraphobia, 미국의 경우, 전체 성인의 경우 2.7%∼5.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5.9% 정도), 좁은 장소나 갇혀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으로 폐소공포(claustrophobia), 어두운 장소에 대한 두려움으로 암흑공포(nyctophobia), 그리고 죽음공포(thanatophobia), 시체공포(necrophobia), 대인공포(anthropophobia, 또는 정면공포, 사회공포), 동물공포(zoophobia: 개 공포, 고양이 공포, 뱀 공포, 쥐 공포 등), 항공공포(aerophobia), 공황공포(panic disorder), 혈액공포(hematophobia), 독처공포(kenophobia), 건강공포(hypochondriasis, 건강염려증), 불결공포(mysophobia) 이외에도 고통공포, 물 공포 등 약 250여 가지나 되는 공포증이 있다고 하지만 공포라는 용어 앞에 붙을 수 있는 서술적 용어와 그 대상은 250여 가지 뿐만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은 종이에 대한 공포가 없지만 어떤 사람은 종이에 대하여 어떤 이유에서 공포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종이공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포라는 사고의 구조를 갖게 되면 어떤 것에나 공포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그 종류는 사실 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게 되면 교감신경계의 활동 증가로 이유도 없이 호흡이 곤란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긴장하게 되는데 심해지면, 떨리고, 가슴에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이나 통증까지 느끼게 되며, 땀이 나고, 현기증이 생기고, 기절할 것만 같고, 뱃 속이 거북하고, 몸이 저리고, 차갑거나 달아오르는 것 같고, 미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미칠 것만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 공포에 노출되면 또 다른 심리적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의심, 교만이나 거만, 열등감, 우유부단, 미신을 따르거나 우상숭배, 비겁함, 의기소침, 염려 등 공포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서적인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포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성경에 나타난 공포심을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불순종(창 3:10), 심판의 압박(히 11:7), 박해(요 20:19), 자연적인 사건(행 27:17, 29), 의심(행 9:26), 불확실(고후 11:3), 마지막 사건(눅 21:16), 죽음(히 12:15), 전쟁(겔 21:12)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은 공포심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이보다 훨씬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창 15:1)." 또한 이사야에게도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 43:1, 5)."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힘이 되시며 방패가 되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약속을 믿을 때에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거나 극복할 수 있다(시 91:4-6).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고 계획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신뢰할 때, 공포심을 이길 수 있다.

요한일서 4장 17∼18절에서는 사랑과 공포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사랑과 공포는 서로 반대되는데 사랑은 '자기를 주는 것(self-giving)'이며 공포는 '자기를 보호하는 것(self-protecting)'이므로 이 둘은 서로 역비례 한다. 두려움이 커지면 사랑은 작아지고, 사랑이 커지면 두려움은 줄어들게 된다.

공포가 엄습해 올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공포를 너무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두려움도 그것에 너무 몰입하고 반복하여 생각하면 공포는 점점 커져서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비록 죄를 범했을 때는 공포심이 발생하지만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죄성의 유전은 두려움에 노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은 죄를 회개하여 사함받는 데에 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죄가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진정으로 회개할 때 공포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 Duncan Bucanan(던컨 부캐넌)은 공포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주님께서는 그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그분이 그 상황을 다스리고 계심을 기대할 수 있고 또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포는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일 수도 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풍랑 이는 바다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었던 제자들에 관한 기록이다(막 4:35-41). 예수께서는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다.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있었던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해결책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두려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사랑은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바로 사랑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일 4:18)." 즉 사랑이 그 해결책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랑은 두 가지 측면, 즉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의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대인관계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보호의 벽을 쌓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빼앗기거나, 잃어버리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은 모두 자기 방어의 아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포심에 떨면 계속 더 큰 공포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이런 공포가 자신에게 엄습해 올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공포를 극복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를 물리쳐야 한다. "하나님! 제가 공포에 휩싸이기를 원하시지 않으시지요? 제가 공포에 떨지 않고 늘 담대하게 되기를 주님은 원하시지요?" 주님의 뜻을 물으면서 늘 공포를 극복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야 한다.

아울러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는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을 공포에 떨게 하는 악한 생각(evil Spirit)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실제적인 것이어서 마귀를 대적할 때에 공포의 마음이 물러가게 될 것이다. "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영!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용기와 담력을 가질 권세가 있다. 이것을 앗아가는 영! 나를 공포에 빠뜨리려는 너의 궤계에 나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쫓겨날지어다!" 이와 같이 마음에 공포를 느낄 때마다 외치고 선포하고 대적하면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이러한 논박과 대적이야말로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성경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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