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의 일점 일획
(마태5:17-20)
히브리어의 ‘토라’(הרות)는 본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주전 3-2세기 사이에 걸쳐서 완성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 ‘칠십인역’에서는 ‘토라’를 ‘노모스’(νομος)로 번역하였다. 헬라어에서 ‘노모스’는 보통 ‘법(法)’ 내지는 ‘규범’을 뜻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에게 삶의 지침이 되므로 얼마든지 이처럼 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세 오경만 헬라어로 번역된 시기가 주전 3세기 경인 점을 감안해볼 때, 늦어도 헬라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주전 4-1세기를 가리킴) 부터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토라’를 일종의 ‘종교법의 총체(總體)’로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헬라어 낱말은 신약 성경 안으로 들어왔으며, 다시 (이 헬라어의 영향으로) 번역을 거쳐 기독교 세계에서 ‘the Law’, ‘율법’ 등과 같이 헬라어 ‘노모스’와 맥을 같이하는 낱말들로 옷입고, 히브리어의 ‘토라’에 대한 대변자의 자리를 굳히었다. 이러한 번역 과정과 더불어 헬라어 ‘노모스’(νομος)와 및 이와 비슷한 의미 영역을 가진 기독교 세계 언어들의 단어들은 ‘토라’ 또는 더 나아가서 ‘구약 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온듯 하다. 불행한 사실은 이러한 영향력이 긍정적인 면에 있지 아니하고, 대체로 부정적인 면에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주후 1세기에 활동하였던 사도 바울은 아마도 유대인과 및 이방인 가운데 이미 편만했던 ‘토라’에 대한 ‘노모스’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비롯한 서신들에서 ‘노모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같다. 이러한 ‘노모스’적 개념 외에도 예전부터 유대인들은 ‘토라’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토라’는 1) ‘모세 오경’, 2) ‘구약 성경 전체’, 3) ‘구약 성경에 미슈나, 탈무드 등 유대인의 구전 토라를 포함한 것’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마태5:17에서 ‘토라’, 곧 ‘노모스’는 ‘선지자들’(히브리어로 ‘네비임’이라고 함)과 나란히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보통 구약 성경을 삼분하여 가리킬 때 사용하는 ‘토라(저자의 이름을 따라 ‘모세’라고도 함), 네비임, 케투빔(대표적으로 ‘시편’이라고도 함)’ 중 대표적으로 앞의 둘만을 언급하신 것이다. 구약에 대한 이러한 명명(命名)은 신약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7:12; 22:40; 누가16:16, 29, 31; 24:44; 요한1:45; 5:46-47; 6:45; 사도행전10:43; 13:15, 27, 40; 15:15; 24:14; 28:23; 로마서3:21 등 참조).
문맥을 통하여 볼 때, 마태5:18의 ‘노모스’, 곧 ‘토라’는 앞서 17절에서 언급한 구약 성경 전체를 대표하여 거론되었다. 18절의 서두에 나오는 ‘아멘’(개역 성경에 ‘진실로’라고 번역됨)도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준다. 여기서 이 낱말은 히브리어의 그것을 헬라어로 그대로 음역하여 표기한 것인데, 히브리어에서 ‘아멘(ןמא)’은 ‘그것은 사실이다, 그대로 되기를!’ 등의 뜻을 가지면서, 일반적으로 앞에서 한 말에 대하여 동의 내지는 확신을 표시할 때 사용된다 (민수기5:22; 신명기27:15-26; 시편41:13; 72:19; 89:52; 106:48; 예레미야11:5; 28:6; 느헤미야5:6, 13; 마태5:26; 6:2, 5, 16; 10:15, 42; 13:17; 18:18; 23:36; 24:34, 47; 26:13; 로마서1:25; 9:5; 11:36 등 참조).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마태5:18 말씀은 바로 앞의 5:17 말씀을 다시 확인하며 강조하시는 말씀이 되는 셈이다.
마태5:18의 ‘일점일획’은 헬라어의 ιωτα εν η μια κεραια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를 번역한 것이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하나의 이오타 또는 한 획’이 된다. ‘이오타’(ι)는 헬라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로서, 히브리어 알파벳의 열 번 째 글자인 ‘유드(י)’를 대변하는 것이다. 사실상 ‘유드(י)’는 히브리어 알파벳중 가장 작은 글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단지 정방형의 아람어 글자일 때만이 사실이며,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방형의 아람어 알파벳에서는 ‘달렡(ד)’과 ‘레쉬(ר)’, ‘베이트(ב)’와 ‘카프(כ)’ 등 사용되는 획의 근소한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달라지는 글자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주후 1세기에 유대인 중에는 정방형의 아람어 글자체가 이미 고대 히브리어 글자체를 물리치고 히브리어 표기를 위한 문자 언어로서의 자리를 굳게 차지하였슴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고대 사본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많은 이들이 구약 성경, 더 나아가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축자 영감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마태5:18의 말씀을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고 그것의 완전성을 변호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성경 기록의 문맥에 나타난 본래 의도를 무시하고 무조건 아전인수격인 해석을 추구함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특정한 교리적 주장을 옹호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낱낱이’ (일점일획까지라도) 예수님 자신을 통해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마태5:17-20의 말씀은 소위 ‘율법과 은혜’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의 권위 및 성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기록된 모든 예언을 이루시고자 오셨다. 다시 말해서 그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예언)의 ‘결정체(結晶體)’가 되신다. 마태5:17-20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 이미 율법을 다 이루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유추 해석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노모스’적 개념에 빠진 이들의 과오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가르침’(=토라)을 이제까지 ‘율법’(=노모스)적으로만 좁게 이해하였던 주후 1세기의 유대인들과 더 나아가서는 금세기의 한국 교회에게 ‘토라’ 본래의 뜻을 밝혀주는 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왜 토라(Torah)인가?
1. 토라
많은 사람들에게 ‘토라’ 라는 단어는 굉장히 어색한 말이다.
모세오경, 율법책 정도로 생각하고 흥미 없는 책으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토라는 친근한 책이 아니고, 친근한 말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왜 토라인가’에 대한 깊은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토라를 알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
2. 예수 표준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느냐를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토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셨는지, 예수님에게 토라는 무엇이었는지, 예수님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Ex. 만약 예수님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시고 토라를 설명하셨다면, 우리도 그것에 대해서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겠니?
― 산상수훈에서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은 토라였다: 8복 → 너희는 세상의 빛 → 토라를 말씀하심.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토라와 연결 지어 설명하신다.
폐하다 = 없애다 = 무시하다: 우리는 토라가 뭔지도 몰랐고 무시했다. ↔ 완전하게 하신다 = 성취: 예수님은 토라를 성취하러 오셨다. 토라는 그냥 무시해도 되거나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목표여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취 목표였기 때문이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예수님은 토라의 기록에 관하여 일점 일획, 디테일한 애착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이 극진한 애착을 가지셨기 때문에, 나도 그러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3. 토라는 무엇인가?
1) 토라는 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 토라 자체가 법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토라는 하나님의 진리의 길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이 그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토라의 해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동안 헛된 일 한 거네?’ 라는 좌절을 쉽게 주지 않도록,
그것이 wasting time이 아니라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2) 토라는 유대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잃어버린 주님의 사람들을 찾을 때,
그러므로 유대인과 같은 영의 유대인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3) 토라는 생명을 가진 자가 성장하게 하는 진정한 영적 음식이다. 토라가 없이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4) 성장한 자들이 의의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는 믿기만 함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의는 성장을 전제로 한다.
토라를 완전하게 하는 것, 성취는 성장한 자들이 영의 지식을 알 수 있도록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삶으로 이루어진다.
해석과 적용의 두 단계는 토라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4. 토라와 경고 (주님을 열심히 따라온 자들에 대해서)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 도무지 알지 못한다 = 법이 없다는 것 = 토라가 없다는 것 / 토라 없이는 주님이 알지 못함.
5. 토라와 지상명령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토라를 모르고서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인정받는 유일한 이유는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토라에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6. 토라 연구
1) 토라 연구의 네 단계
(1) 페샤트: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
(2) 레메즈: 비유, 은유, symbol 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
(3) 데라쉬: 랍비들의 해석 방법. 목사들의 해석과 같은 것.
(4) 쏘드: 영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 궁극적으로 쏘드의 차원에서 영의 비밀을 나누어주기 위해 토라를 연구해야 함.
2)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비밀은 주어지는 자가 있다(비밀주의, 차별주의).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선택된 사람들, 귀 있는 자들이 듣게 되어 있다.
― 옛 것과 새 것을 임의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천국의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
3) 영의 토라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죄와 사망의 토라에 있던 우리를 생명과 성령의 토라가 바꾸고, 그 생명들을 살린다.
고세중 목사
<<요약>>
1. 토라
친숙한 단어가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 모세 요경
예수 표준(Jesus Standard)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라!
2. 예수님과 토라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산상수훈(토라): 8복 =>빛 =>토라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토라와 연관시켜 이야기 함.
예수님의 태도: 폐하는 것(무시, 무지) <->완전케(성취)
<<최종적인 성취 목표>>
(마 5: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일점일획 요드, 바브 =>특별한 태도
나에게 토라는 무엇인가?
3. 토라는 무엇인가?(기능)
1) 토라는 법이 아니다.(창세기는 이야기이지 법이 없다)
하나님의 진리의 길
진리의 길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2) 토라는 유대인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
추수 : 영혼 구원
3)토라 -> 생명을 가진 자 -> 성장제
토라 없이 영적 성장은 없다.
토라가 단단한 음식 =>영적 열매
(마 5: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의에 대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크다 : 가돌 = 셩장했다.
4) 너희 의 => 더 낫다 => 성취
(마 5: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의를 모른다.
4. 토라와 경고
열매와 나무를 근거로
60세 이상의 사람들이 전혀 변화될 것 같지 않지만 완전 변화된다.
(마 7: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후라이 판에 오래 낀 때는 복음주의 신앙이다.
토라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제자는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해야 한다.
(마 7: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은사주의적 복음주의
능력 나타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한다.
(마 7: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법이 없는 자) -인정받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
토라가 없는
5. 토라와 지상 명령
(마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토라)
(눅 24: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토라에 기록된 모든 것이 성취되어져야 한다.
예수님을 통해 성경이 이루어졌다.
토라 => 신학체계에는 이런 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6. 토라 연구
1) 토라 연구의 4단계
처음에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페샤트: 이야기/역사 =>성경통독
-테메즈: 비유/은유/symbol
-데라쉬: 랍비들의 해석
-쏘드: 영의 세계 비밀
2)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 <=비유
비밀의 언어를 모르면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다.
(마 13: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씨 뿌리는 비유
비밀을 통해서 갈라놓는 작업
주어진 자: 비밀주의 = 차별주의
토라는 비밀 창고
주님께 차별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서
(마 13:52)"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의 서기관
옛 것과 새것
보물 창고에서 임의로 꺼내오고 가져와야 한다.
3)영의 토라
(롬 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Why Torah?
세상의 적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왜 토라인가?"를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추수할 일꾼
(마 9: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머리에 대하여 의를 인정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추수하는 것 => 비전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가 무엇인지 알려 줘야 한다.
"예수님이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때, 어떠하겠니?"
상관없는 것 - 심한 욕 - "나 둬~!!"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면 따라온다.
마음을 얻으면 귀를 얻는다.
관계 - 이웃 섬기는
길을 알려주는 것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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