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견인 교리 

 

견인교리(Final Perseverance)라고 하는 것은 캘빈의 예정론적인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의 구원은 도중에서 취소되지 않고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취소가 되는가?

이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는 누가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인지에 대한 범위적인 개념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즉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범위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교회를 다니면 구원을 받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하등의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여 모두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 어느 특정한 교회를 다니는 사람, 혹은 어느 특정한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은 것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간혹 정통교단에서도 비록 극소수이지만 독단적인 교리주의자들이 있어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사이비집단과 명백한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회만이 구원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같은 이단들은 자신들만이 144,000명이고, 자신들의 교회에 생명록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원파의 경우를 보면, 자신들의 교리를 깨달은 자를 거듭난 자라고 간주하며, 자신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단정을 하며,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구원파의 주장은 곧 주관적인 구원의 단정으로서, 자신들만이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는 주장으로서, 다른 이단교회의 배타적인 주장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3) 기독교인은 구원을 받은 것인가?

기독교인(크리스쳔)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도 사실 막연합니다.

첫째 이단 교회 교인도 기독교인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또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범위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거듭난 기독교인"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승우목사라고 하는 목사는 “크리스쳔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책을 써서 문제가 되었는데 나중에는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책도 썼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극단적인 주장으로서 알미니안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명백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은 것인가?


(5)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인가?

물론 예정론적인 개념으로는 예수를 믿기 전부터 구원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권인 선택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적 관점을 떠나, 객관적인 개념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구원의 취소가 되느냐는 논점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의 관점을 (4)번 혹은 (5)번의 시점으로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느냐 두가지로 묶느냐는 문제가 사실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여 주여 이름만 부른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라는 성경구절과 연결시키는데 이것은 악의적이며 고의적인 왜곡일 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당연히 진정으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단순히 이름만 부르는 거짓이나 형식으로 믿는 것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일부 목사들이 믿음만으로는 부족하여 행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데, 만약 예수를 믿음이 구원에서 부족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이유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일일히 성경적인 근거를 올릴 필요도 없겠지만, 예수를 믿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은 수많은 성경의 기록과 부딪히게 됩니다.

행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믿음이 구원에 부족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인 오류가 됩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으로서 그 열매는 중요합니다.


또한 성경은 부분적으로 행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조건으로서 강조되어진 것입니다.

만일 인간의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구원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에 의한 것이 되며,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과 동일하게 보아도 됩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다는 것은 곧 성령의 인치심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엡1:11-14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인치심”이라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이며 또한 “보증”이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보증을 약속받은 성도가 구원이 취소된다면, 하나님이 거짓약속을 하였거나,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는 뜻이 되므로 오류가 됩니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성경구절은 예상보다 많습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요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6:38-40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성경은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몇몇 구절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음 구절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사람의 의도적인 거부에 대한 성경구절입니다


사30: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말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신30:19-20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삿10:14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 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으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수24:15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또한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의 부름심을 거절할 수 있는 성경구절 외에, 어느 성경구절은 미혹과 배교, 실족과 믿음을 버림으로서 구원이 취소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벧후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딤전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딤전5:15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느니라.


마18:7 눅17:1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 하노라.


마24:24. 막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막13:22)


딤전4:21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였으니...


살후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딤전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즉 알미니안으로 불리는 교회는 조건적인 견인론 (Conditional Perseverance)을 주장합니다.

견인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이 취소되는 극소수의 경우, “실족, 배교, 미혹”등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혹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믿음을 굳게 하여야 한다는 인간적인 측면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개혁주의에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구원으로 견인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즉 형식적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가진 교인을 하나님의 구원예정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반드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타락하고 범죄하여 굳이 멸망에 이르려는 사람은 그가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견인교리는 구원파와 전혀 다릅니다. 개혁주의에서 구원이 취소가 되지 않는 경우는 자기 자신 스스로의 구원 단정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성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견인의 개념 :

이 교리의 의미는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 교리는 모든 예배 참석자나 교회 회중들이 그들의 신앙 안에서 끝까지 견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는 공적으로 신앙고백 하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안정하게 된다는 것이나 우리에게 참 신자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결코 신앙에서 떠나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교리는 성경이 분명하게 언약을 깨뜨리는 사람이 있다고 증거하기 때문에 구속사 가운데 드러난 은혜 언약 속으로 결합된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된다는 개념도 아니다.”(<개혁주의 구원론>, 안토니오 후크마, 기독교문서선교회, 386쪽)


“성도의 견인의 교리의 요지는 하나님이 중생시키시고 은혜의 상태로 유효적으로 부르신 자들은 그 상태로부터 전적으로 또한 궁극적으로 떨어질 수 없으며 다만 분명히 그 상태에서 끝까지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이다.”(<조직신학 하권>, 루이스 벌콥, 기독교문사, 312쪽)



웨슬레안도 행위나 의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웨슬레안은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와 보증 사역을 강조하며, 단 믿음을 인간적인 책임으로 강조할 뿐입니다. 개혁주의에서도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종교개혁자들도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함께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구원의 취소가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없다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한 사람이라면 그 구원이 절대로 취소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견인교리와 조건적 견인교리의 결과는 상반되거나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실족과 배교와 미혹의 경우는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 겉으로는 구원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결론적으로 문제는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그 구원이 취소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 있는지, 그것을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의심도 없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결국 실족하고 미혹 당하였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를 구원하기로 작정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구원 작정 안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인정하여야만 하며..... 그러나 구원 안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는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성경이 여러 곳에서 경고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처음 믿음을 지키며,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아야만 하며, 실족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극단적인 사고를 피해야만 합니다.

구원파와 같이 자기가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임의로 단정하며, 그러한 스스로의 구원단정에 의하여 어떤 행위를 하여도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도덕폐기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변승우목사와 같이,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도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펠라기우스와 같은 인간의 의지나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서, 행위론자 혹은 은혜폐기론적인 주장이며, 비성경적인 잘못된 주장이 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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