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의미


 
하나님의 이름 - hwhy

하나님(myhla: 엘로힘)

여호와(hwhy)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la)이나 엘로하(Hwla)나 엘로힘(myhla)으로 쓰인다. 형태로 보면 엘(la)이나 엘로하(Hwla)는 단수형태이고 엘로힘(myhla)은 복수형태이다. 복수형태인 엘로힘(myhla)이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엘로힘은 그 형태대로 복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고 단수명사로 쓰일 때도 있다. 유일신 하나님을 나타낼 때는 단수명사로 쓰이고 이방신들을 나타낼 때는 복수로 쓰인다. 이 단어가 복수로 쓰이느냐 단수로 쓰이느냐 하는 것은 그 문장의 문법구조나 문맥에 따라 판단된다. 예를 들면 처음에(창세기) 1장 1절에서는 엘로힘이 주어로서 나타나는데 바라(ar"B')동사가 단수이므로 이 엘로힘은 단수명사 하나님으로 판정된다.
#r ~yIm;V'h; tae ~yhil{a/ ar"B' tyviarEB.  처음에 1:1
쯔레아하 엩뵈 임마샤하 엩 힘로엘 라바 트쉬레베


그러나 말씀들 13:3에서는 엘로힘을 꾸미는 형용사와 종속절에서 쓰인 인칭대명사가 모두 복수이므로 여기서는 ‘신들’로 번역된다

^yl,ae rB,DI-rv,a] tpeAMh;w> tAah' ab'W  말씀들 13:3
카레엘 벨디 르쉐아 트페모하뵈 옽하 바우
~dEb.['n"w> ~T'[.d:y>-al{ rv,a] ~yrIxea] ~yhil{a/ yrEx]a; hk'l.nE rmoale
                  뎀브아나뵈 탐다예-로 르쉐아 림헤아 힘로엘 레하아 카넬 르모에레

여호와(hwhy)의 발음

이와 같이 엘로힘은 하나님이나 신들을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하나님의 개인이름인 고유명사이다. 여호와는 히브리어 자음 네 개(hwhy: 요드 헤 바브 헤)로 구성되어 있서 사자어(四字語: tetragrammaton)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 이름은 사람의 부정한 입술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한번도 유대인들의 입에서 발음되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다. 유대인들은 이 단어가 히브리어성경에 등장하면 읽을 때 ‘아도나이(yynda)’ 혹은 ‘하쉠(~vh 그 이름)’이라고 읽는다. 때로는 엘로힘이라고 읽는데 이는 이 사자성어가 ‘아도나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할 때는 hwIhy/ yn"doa] 처럼 ‘아도나이 엘로힘’이라고 읽어라 고 마소라는 사자어의 모음을 다른 것으로 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글성경이 여호와라고 읽는 이유는 이 단어에 붙여진 hw"hy> 모음 때문이다. 이 모음은 이 이름을 발음하는 본래 모음이 아니라 아도나이(yn"doa]])에 붙여진 모음을 마소라 학자들이 그대로 hwhy에 붙인 것이다. 그래서 마소라 학자들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이 모음을 보고 ‘아도나이’로 읽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에 붙여진 대리모음을 가지고 16세기 때 라틴어로 그대로 발음을 표기한 사람이 있어서 이 여호와란 발음이 나오게 되었다. 결국 이 여호와란 이름은 유대인들에게서 나온 발음이 아니라 이방 기독교인이 만든 발음인데 Jehovah란 영어단어를 번역한 단어이다. 이 단어의 번역도 정확하게 하였다면 ‘예호봐’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후에 이 발음이 정확한 발음이 아니고 ‘야훼’라는 발음이 더 원음에 가깝다는 학설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가 추론일 뿐이다. 확실한 발음은 여전히 모른다는 것이 정확한 결론이다.

여호와(hwhy)의 의미

여호와의 정확한 발음을 모르는 것처럼 여호와의 의미도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 이름이 햐야(hyh) 동사와 관련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이름들(출애굽기) 3:14에서 모쉐가 여호와 하나님께 이름을 묻는다. “이제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당신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나를 보내셨다고 말을 할 때 그들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내게 말하면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쉐에게 대답하신다.

hy
           예흐에 르쉐아 예흐에 쉐모-엘 힘로엘 르메요봐
~k,ylea] ynIx;l'v. hy
켐레알 니하라쉘 예흐에 엘라스이 네브리 르마토 코 르메요봐

(이름들 3:14)  하나님께서 모쉐에게 말씀하셨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에흐예가 너희들에게 나를 보내셨다.”

에흐예는 하야 동사의 일인칭 남성 단수 잌톨 형이다. 그러므로 번역하면 ‘–있을 것이다’ 또는 ‘–있다’로 번역할 수 있다. 영어의 be 동사의 뜻은 ‘–이다’의 뜻이 있지만 히브리어에는 ‘–이다’의 뜻을 가진 동사는 통상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나는 모쉐다’ 할 때에 ‘아니 모쉐(hvm yna)’로 문장을 이룬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의 뜻은 ‘내가 있을 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또는 ‘내가 있는 곳에 내가 있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뒷 문장에 쓰인 ‘에흐예’는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란 이름의 축약형 인 것 같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쯔라임(이집트)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그곳에 함께 계셔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그 이름이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에흐예의 뜻은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란 하나님의 별명과도 속성을 같이 한다. 여호와의 이름인 사자어(요드 헤 봐브 헤)는 하야 동사의 삼인칭 남성단수 익톨 형이다. 사자어 중 세 번째 자음 봐브가 하야 동사의 자음 요드와 틀리지만 봐브와 요드는 비슷한 형태의 자음으로서 교환가능하며 또 하야 동사의 옛날 형태는 요드 대신에 봐브였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자어는 이흐예 아쉐르 이흐예(‘그가 임하실 곳에 그가 임하실 것이다’ 또는 ‘그가 임하시는 곳에 그가 임하신다’)의 축약형으로 볼 수 있다. 일인칭과 삼인칭의 차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름들 3:14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말씀하실 때에는 일인칭(에흐예)을 사용하였고 이제 다른 사람이 여호와를 부를 때에는 삼인칭(이흐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이름을 야훼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은 하야 동사의 사역형으로 이 이름을 이해한 것이다. 만일 사역형이라면 그 뜻이 ‘그가 있게 할 것이다’는 뜻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의 특성을 생각할 때 사역형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다른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실 필요는 없는 분이시므로 기본형으로 보는 것이 더 하나님의 성격에 잘 맞다.

사자어(hwhy)의 번역

사자어를 적절하게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스라엘에서 번역할 때에 누군가 이 단어를 ‘주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였던 적이 있다. 유대인들이 아도나이(yn"doa]])로 읽으니까 그것에 맞추어 아도나이의 뜻인 주님으로 번역하라는 것이다. 표준새번역이 이렇게 번역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아도나이란 단어의 뜻이지 사자어의 뜻이 아니다. 또 아도나이란 단어가 사자어와 병행하여서 나란히 등장하는 때에 번역이 곤란해진다. 이런 경우가 구약에서 305번 나타나는데 표준새번역은 이런 때에 사자어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였다. 아도나이와 같이 나란히 등장할 때에는 사자어를 엘로힘이라고 읽으니까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자어를 때로는 ‘주님’으로 때로는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사자어란 단어에 주님이나 하나님이란 뜻은 없다. 사자어는 고유명사로서 그 발음대로 적는 것이 바른 번역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발음을 몰라서 번역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또 사자어를 유대인들이 읽지는 못하였지만 기록은 하였다. 그러므로 번역은 기록하는 것이니까 사자어에 상응하는 어떤 단어를 정하여 기록해 주는 것이 공정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야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야훼도 사실상 정확한 발음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학자들의 추측은 언젠가는 또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정확한 발음을 모르는 한에 있어서는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여호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실용적인 면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발음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은 여러가지로 위험하고 교회 건덕 상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직역구약성경은 기존 번역 그대로 ‘여호와’로 음역하였다.

신약에서 여호와가 사라졌다

바이블 웤스에 따르면 여호와란 단어가 구약 성경에 6828번 등장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왜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란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더 이상 계실 필요가 없는 것일까? 여호와께서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께 정녕 내어주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구약에 그렇게 등장하였던 여호와의 기억도 다 사라져야 했을까?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져버린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다음 호에는 이 주제를 가지고 한번 살펴보자.



여호와가 사라진 신약성경

여호와(hwhy)란 단어는 구약성경에 6828번 나타난다. 이 숫자는 하나님(엘로힘)이란 보통명사가 구약성경에 2600번 정도 나타나는데 비해 훨씬 많은 숫자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hwhy)가 영어 신약성경이나 우리말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리를 예수님에게 내어주셨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영원불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 사라졌을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언급은 되어야 할 텐데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어찌된 일일까?

이 문제가 만일 신약성경 번역자의 잘못으로 이런 결과가 생겼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책이 하나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지 못하고 모두 다른 이름으로 썼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어쩌면 신약의 내용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일 수 있으며 나아가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신론과 기독론에 있어서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킨 내용일 수도 있다.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할 단어가 ‘주님’으로 번역되어서 그 주님이란 단어가 예수님으로 인식되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가 칠십인역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가?

먼저 이 문제를 위하여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가 칠십인역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여기서 사용하는 본문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바이블웤스의 BHS Hebrew Old Testament (4th Ed.)이고 헬라어 성경은 Bible Works Greeks LXX/BNT이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의 번역이며 히브리어 신약성경은 Salkinson-Ginsburg Hebrew NT이다.

1. 칠십인역은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를 ‘큐리오스’로 번역하곤 하였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헬라어성경은 여호와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세기 2장 8절에서는 여호와(hw"hy>)를 큐리오스(ku,rioj)로 번역하였다.
(예)
hm'd"a]h'-!mi rp'[' ~d"a'h'-ta, ~yhil{a/ hw"hy> rc,yYIw:  WTT Genesis 2:7
hY"x; vp,nw: ~yYIx; tm;v.nI wyP'a;B. xP;YIw:

(처음에 2:7)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흙으로 그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다. 그러자 그 사람은 생명체가 되었다.

BGT Genesis 2:7 kai. e;plasen o` qeo.j to.n a;nqrwpon cou/n avpo. th/j gh/j kai. evnefu,shsen eivj to. pro,swpon auvtou/ pnoh.n zwh/j kai. evge,neto o` a;nqrwpoj eivj yuch.n zw/san

~v' ~f,Y"w: ~d<[eB.-!G: hw?hy> [J;YIw:  WTT Genesis 2:8
rc'y" rv,a] ~d"a'h'-ta,

(처음에 2:8)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쪽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그가 지으신 그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BGT Genesis 2:8 kai. evfu,teusen ku,rioj o` qeo.j para,deison evn Edem kata. avnatola.j kai. e;qeto evkei/ to.n a;nqrwpon o]n e;plasen

2. 칠십인역은 아도나이(yn"doa])를 큐리오스(ku,rioj)로 번역하였다. 아도나이(yn"doa])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자를 직접 보고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예)
yn"doa] an"-la; ~h,lea] jAl rm,aYOw:  WTT Genesis 19:18

(처음에 19:18) 롵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내 주시여.”

BGT Genesis 19:18 ei=pen de. Lwt pro.j auvtou,j de,omai ku,rie


3. 칠십인역은 아돈(!IwOda])도 큐리오스(ku,rioj)로 번역하였다. 아돈(!IwOda])은 종이 주인을 부를 때 또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를 때 자신을 낮춰서 부르는 호칭이다. 찬양들 110:1은 여호와와 아돈이 같이 나오는 경우이다. 칠십인역은 구별하지 않고 둘 다 큐리오스로 번역하였다.

(예)

rbe[o #r
!DEr>Y:B; ~k,ynEp.li

(예호슈아 3: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들 앞에서 야르덴을 건너가니


ynIymiyli bve ynIdoal; hw"hy> ~aun> rAmz>mi dwId"l.  WTT Psalm 110:1
^yl,g>r:l. ~doh] ^yb,y>ao tyvia'-d[;

(찬양들 110:1) 다뷛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신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에 둘때까지 내 오른 편에 앉아 있어라.

BGT Psalm 109:1 tw/| Dauid yalmo,j ei=pen o` ku,rioj tw/| kuri,w| mou ka,qou evk dexiw/n mou e[wj a'n qw/ tou.j evcqrou,j sou u`popo,dion tw/n podw/n sou

BGT Joshua 3:11 ivdou. h` kibwto.j diaqh,khj kuri,ou pa,shj th/j gh/j diabai,nei to.n Iorda,nhn

WnkeAtB. hT'a; ~yhil{a/ ayfin> ynIdoa] Wn[em'v.  WTT Genesis 23:6
Arb.qi-ta, WNM,mi vyai ^t,me-ta, rboq. WnyrEb'q. rx;b.miB.
^t,me rboQ.mi ^M.mi hl,k.yI-al{

(처음에 23:6) “내 주시여, 우리말을 들으십시오. 당신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무덤들 중 가장 좋은 곳에 당신의 시신을 묻으십시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그의 무덤에 당신의 시신을 묻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BGT Genesis 23:6 mh, ku,rie a;kouson de. h`mw/n basileu.j para. qeou/ ei= su. evn h`mi/n evn toi/j evklektoi/j mnhmei,oij h`mw/n qa,yon to.n nekro,n sou ouvdei.j ga.r h`mw/n to. mnhmei/on auvtou/ kwlu,sei avpo. sou/ tou/ qa,yai to.n nekro,n sou evkei/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나 ‘아도나이’나 ‘아돈’은 칠십인역에서 ‘큐리오스’란 단어로 번역되었다.

위의 예들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있어서 히브리어성경의 여호와나 아도나이나 아돈은 칠십인역에서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되지 않고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왜 칠십인역이 이 단어들을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하지 않고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모두 번역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히브리어 세 단어의 뜻이 각각 다른데도 불구하고 칠십인역은 큐리오스란 한 단어로 모두 다 번역하였다. 따라서 칠십인역에 있어서 ‘큐리오스’란 단어의 뜻은 ‘여호와’와 ‘아도나이’와 ‘아도니’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그 문맥에 따라서 큐리오스의 뜻이 분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큐리오스란 단어는 어떻게 번역되었는가? 그러나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

신약에 있어서 큐리오스란 단어는 717번 등장한다. 영어성경과 우리말성경은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님 또는 주(Lord)’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칠십인역의 ‘큐리오스’란 단어가 여러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처럼 신약에 쓰여진 큐리오스도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단어인 ‘큐리오스’는 기계적으로 주님이라고 번역되어서는 안되고 그 문맥에 따라서 ‘여호와’ 혹은 ‘주님’ 혹은 ‘주인’ 혹은 ‘어르신’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큐리오스가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

BGT Matthew 22:44 ei=pen ku,rioj tw/| kuri,w| mou\ ka,qou evk dexiw/n mou( e[wj a'n qw/ tou.j evcqrou,j sou u`poka,tw tw/n podw/n souE

(마태 22:44)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등상 아래 둘 때까지 내 오른 편에 앉아있어라.

tyvia'-d[; ynIymiyli bve ynIdoal; hA'hy> ~aun>  HNT Matthew 22:44
^yl,g>r:l. ~doh] ^yb,y>ao

마태복음 22장 44절은 시편 110편의 구약인용구절인데 개역판 한글 시편 110편에서는 분명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나 개역판 한글 마태복음에서는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라고 번역하였다. 이런 경우에는 구약의 본문 그대로 ‘여호와께서’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BGT Matthew 1:20 tau/ta de. auvtou/ evnqumhqe,ntoj ivdou. a;ggeloj kuri,ou katV o;nar evfa,nh auvtw/| le,gwn\ VIwsh.f ui`o.j Daui,d( mh. fobhqh/|j paralabei/n Mari,an th.n gunai/ka, sou\ to. ga.r evn auvth/| gennhqe.n evk pneu,mato,j evstin a`gi,ouA

(마태 1:20) 그가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꿈에서 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다뷛의 아들 요셒아, 네 아내 미르얌을 취하는 것을 두려워 마라. 참으로 그 아이는 그녀 안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a;l.m; hNEhiw> tazOK' ABli-la, rBed:m. WNd

ar"yTi-la; dwID"-!B, @s,Ay rmoale ~Alx]B; wyl'ae ha'r>nI hA'hy>
x:Wrme rc;An HB'r>qiB. dl,Ymi-ta, ^yl,ae tx;Q;mi
vd
요셒이 예수님의 탄생을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계시 받는 장면이다. 개역한글에서는 ‘주'의 사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지 성자 예수님을 가리키는지 상당히 모호하다. 사건상황으로 볼 때 ‘주의 사자’보다는 ‘여호와의 사자’가 더 정확하고 분명한 표현이다. 이렇게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가 마태복음에서만 16군데 정도 발견된다 (마태 1:20, 22, 24; 2:13, 15, 16; 3:3; 4:7, 10; 5:33; 21:9, 42; 22:37; 23:39; 27:10; 28:2).

2 큐리오스가 ‘주인’으로 번역되는 경우

BGT Matthew 18:25 mh. e;contoj de. auvtou/ avpodou/nai evke,leusen auvto.n o` ku,rioj praqh/nai kai. th.n gunai/ka kai. ta. te,kna kai. pa,nta o[sa e;cei( kai. avpodoqh/naiA

(마태 18:25) 그러나 그 종은 갚을 것이 없으므로, 그 주인이 그 종에게 명령하기를 그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하였다.

yKi wyn"doa] wyl'[' wc;y>w: ~Lev;l. Ady"b. hy"h' al{w>  HNT Matthew 18:25
~Lev;y> ~Lev;w> Al-rv,a]-lk'w> wyn"b'W ATv.aiw> aWh rkeM'yI

이 구절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중 일부다. 여기서의 큐리오스는 종과 주인 중에서 주인(아돈)을 뜻한다.

물론 이외에 큐리오스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일 때가 마태복음에서 28번 있다(마태 7:21f; 8:2, 6, 8, 21, 25; 9:28, 14:28; 30; 15:22, 25, 27; 16:22; 17:4, 15; 18:21; 20:30f, 33; 21:3, 9, 43ff; 25:11, 44; 26:22).

신약전체에 큐리오스가 717번 나타나는데 이중에 얼마나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할까? 헬라어 신약성경을 헬라어 단어 그 자체만을 놓고 기계적으로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히브리어성경을 통하여 그 단어의 뜻을 충분히 알고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히브리어성경과의 연속성을 생각한다면 신약성경에서 갑자기 ‘여호와’란 단어가 사라진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더욱이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모두 다 유대인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호와란 단어가 신약시대에 와서 그들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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