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 즉 하나님께 돌려지는 여러 가지 성품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문]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진실하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이시다.              

 

영이심

우선,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요 4:24), 또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도 말씀하셨다(눅 24:39). 영은 물질적 실체를 가지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이시다(딤전 6:16).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물질적 형상으로 만들려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에 대한 우리의 예배도 영적이어야 한다.             

 

무한, 영원, 불변하심

하나님께서는 또한 무한하시다. 그는 어느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시고 동시에 어느 곳에나 계시다. 시편 145:3, "하나님의 광대하심[크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예레미야 23:24,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성경에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마 6:9)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사 66:1)라는 말씀은 하늘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한 처소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상 하늘의 하늘이라도 무한하신 하나님을 다 모시지 못한다(왕상 8:27).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마음에도 계셔서 그것을 감찰하시고 지옥에도 계셔서 그들을 심판하시지만, 죄악과 혼합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영원하시다. 시편 90:2,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 후까지 계신다. 사실,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속하며 하나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그것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실 수 있는 초시간적 존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불변하시다. 시편 102:27, "주는 여상(如常, 동일)하시고." 말라기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느니라." 그의 존재와 속성들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의 뜻과 의지에 있어서도, 그는 불변하시다. 성경에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오지만(출 32:14; 욘 3:10 등), 그것은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 즉 하나님께서 사람과 같은 모양과 같은 성정을 가진 자처럼 표현하는 비유적 표현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혜와 능력이 크심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극히 지혜로우시다. 욥기 37:16, "지혜가 온전하신 자."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는 종말을 처음부터 아시는 자이시다(사 46:10).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고 완전하시다. 그는 전지(全知)하시다.

그는 또한 지극히 능력이 많으시다. 창세기 17:1, "전능하신 하나님(엘 솨닷이)." 창세기 18: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반대되는 일들은 하실 수 없다. 예를 들어, 그는 자기를 부정하실 수 없고,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죄를 지으실 수 없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시고 진실하심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극히 거룩하시다. 출애굽기 15:11,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신 자가 누구니이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가 모든 피조물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또한 모든 도덕적 불결로부터도 떠나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지극히 의로우시다. 신명기 32:4,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의(義)란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가리킨다. 그 도덕적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또한 그의 도덕적 완전성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고, 그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악인들에 대해 진노하시며 벌하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형벌적 공의'라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적 공의에 대해 분명히 가르친다. 로마서 2:5,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나훔 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이 속성을 부인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극히 선하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은혜, 긍휼, 인자(仁慈), 사랑 등으로도 표현된다. 출애굽기 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요한일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절정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대속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극히 진실하시다. 시편 86:15, "주는 . . .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진실은 이름과 실질, 속과 겉, 말과 행위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7. 하나님의 삼위일체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란, 하나님께서 그 본체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구별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진리다. 이 진리는 매우 신비하지만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 된다.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자는 신앙 사상에 큰 결함을 가지게 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알지 못하며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이다. 
              

하나님의 유일성

우리는 여러 신(多神)이나 세 신(三神)을 믿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문] 한 분 이상의 하나님들이 계신가? [답] 오직 한 분 유일하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계시다. 출애굽기 20:3,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이사야 44:24,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성자와 성령의 참된 신성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성령께서도 참 하나님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문] 하나님께는 몇 인격들이 계신가? [답] 하나님께는 세 인격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계시는데, 이 셋은 본체에 있어서 동일하시며,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성자(聖子)의 참된 신성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그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증거된다. 이사야 9: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 . .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요한복음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한일서 5:20,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골로새서 2:9, "그[예수]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 . .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한계시록 5:13,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성부(聖父)만 하나님이시며 예수는 하나님이 되실 수 없고 단순히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높임을 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초대 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오늘날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유니테리안 교회, 여호와의 증인, 자유주의 신학 등). 그러나 성자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성령(聖靈)의 참된 신성

성령께서도 참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사실도 그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밝히 증거된다. 성령을 속인 것은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행 5:3-4). 고린도전서 2:1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마태복음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성령의 신성은 또한 그의 인격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인격적 명칭과 인격적 특성들을 가지신다. 요한복음 15:26,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중성명사인 성령에게 남성 지시대명사가 사용되었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삼위의 상호 관계

어떤 이들은 삼위[세 인격]의 구별을 부정하면서 한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부(聖父)로, 어떤 때는 성자(聖子)로, 어떤 때는 성령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비성경적인 생각이다. 성경은 서로 구별되신 삼위께서 존재하심을 밝히 증거한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도 삼위가 동시에 나타나심으로 이 사실을 증거하셨다(마 3:16-17).

삼위의 상호관계에 관해서는,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요한복음 15:26,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들의 영'이라는 명칭은 성령이 아들로부터도 나오심을 보인다.

하나님의 유일성과, 성자와 성령의 참된 신성을 인정하면 삼위일체의 신비를 말한 것이 된다. 우리는 그 세 분이 어떻게 하나가 되시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신비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직접 관계된다. 우주의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은 신비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셨다. 우리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그를 섬기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또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다.


8. 하나님의 예정하심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세상의 모든 일들을 계획하시고 작정하셨으며 특히 구원얻을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예정하셨다. 이것은 놀라운 진리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만세 전에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따라 세상에 되어질 모든 일을 자유롭게 또 불변적으로 작정하셨다. 시편 115: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이사야 46:9-11,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 .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 . . 경영[계획]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다니엘 5:23, "왕[바벨론의 벨사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로마서 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은 제2원인의 자유나 우연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정론은 세상의 숙명론과 다르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열왕기상 22: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아합]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이 일은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잠언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또 하나님의 작정의 진리는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무시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믿어야 하며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을 믿는 동시에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작정과 죄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타락과 죄까지도 작정하셨으나, 죄를 만드신 자는 아니시다. 사람은 자신의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그에게는 불의나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2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엘리의 아들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누가복음 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가룟 유다]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동시에 증거한다.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사람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선택하심과 버려두심(유기, 遺棄)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자신의 전적 긍휼과 은혜로 인류 가운데 어떤 이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 사실,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선택이 사람의 회개나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것은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고 사람의 선택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 6:37, 39, 44, "내게 주신 자." 요한복음 10:26-27, "내 양." 사도행전 13:48,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로마서 9: 16, 18,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에베소서 1:4-6,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의 죄와 멸망 가운데 버려두셨다. 어떤 이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다른 이들을 버려두셨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그러나 버려진 자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멸망을 당하는 것이므로 결코 하나님께 불평을 할 수 없다. 로마서 9:18,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로마서 9:22,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 사무엘상 2:2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엘리의 아들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누가복음 22: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가룟 유다]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베드로전서 2:8,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유다서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무조건적 선택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선택하신 증거는 그가 진실히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고 안전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변덕스런 결심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변적 예정과 선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9. 창조와 섭리

건축물에 비유한다면, 예정은 설계, 창조는 건축, 섭리는 관리이며, 출산에 비유한다면, 예정은 계획, 창조는 출산, 섭리는 양육이다.  

창조

창조는 온 우주와 인류 역사의 시작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창 1: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 사실이며 성도에게 가장 기본적 신앙이다. 우주와 생명체가 우연히 시작되었으며 생명체가 낮고 단순한 것들로부터 높고 복잡한 것들로 점차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소위 진화론은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사상으로서 교회에서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창 1:1).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6일을 문자적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문자적 연대 계산에 의하면, 천지만물이 창조된 '태초'는 주전 약 4115년이다(창 5, 11장; 출 12:40; 왕상 6:1 등을 참조). 창조의 6일을 문자적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데, 그 이유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여섯 번이나 나오는 표현이 일상적인 하루에 가장 적합하며 또 일곱째 날의 복된 성별(창 2:2-3)과 안식일 계명(출 20:11)이 이 견해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우주와 인류의 오랜 연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단지 불확실한 가설들에 근거할 뿐이다. 예를 들어, 방사성 탄소 14 (C-14)에 의한 연대 측정도, 모든 생물체가 수천 년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양의 방사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방사성 양의 줄어드는 속도('반감기'라고 함)도 어느 시대나 똑같다는 가설들에 근거한다. 그러나 누가 지금부터 몇 천 년 전의 세계에 가서 생물체의 방사성 양을 측정하였거나 혹은 측정할 수 있겠는가? 

우주와 인류의 오랜 연대에 대한 견해에 반대하여, 우주와 인류의 짧은 연대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도 많이 제시되고 있다. 과학적 연구 자료들에 의하면, 예들 들어, 지구의 회전속도의 줄어듬, 지구에 떨어지는 우주진의 양, 대기 중의 산소량, 지표 흙의 두께 등은 지구가 약 만년 미만의 나이를 가지고 있음을 증거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萬物)(창 2:1),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행 17:24), 보이는 것 즉 물질계와, 보이지 않는 것 즉 영계(靈界) 곧 천사의 세계를 다 창조하셨다(골 1: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이사야 43:7, 21,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 .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섭리

섭리란,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것을 말한다. 느헤미야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히브리서 1:3,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시편 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시편 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주 예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하나님은 섭리하실 때 주로 자연 법칙을 사용하신다. 이것을 일반 섭리라고 부른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사도행전 27: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뱃사공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음식을 먹어야 배가 부른 법이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책이 완성되기 전, 즉 특별계시들을 직접 주시던 시대에 때때로 이차적 수단들 없이, 그것들을 초월하여, 그것들을 거스려 섭리하셨다. 이것을 특별 섭리 혹은 기적이라고 부른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엘리사는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고(왕하 6:6),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불에 던지웠으나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고 옷빛도 변하지 않았고 불탄 냄새도 없었다(단 3:27). 예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요 2장)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마 14:17-21).

하나님의 섭리는 일차적으로 사람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세계 전체에도 그러하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며 또한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마침내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의 구원을 포함하는 세계적 계획이다(롬 11장).

하나님의 섭리는 궁극적으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창조된 만물과 섭리의 전 과정은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로마서 11:36,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0.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주된 사역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불러 거듭나게 하시고 날마다 더욱 거룩하여지게 하시는 구원 사역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여러 은사들을 주셔서 하나님과 이웃 사람들을 섬기게 하셨다. 성령의 은사들 중에는 자연적 은사들도 있지만(롬 12:6-8) 초자연적 은사들도 있었다(고전 12:4-11). 하나님께서 사도 시대에 주셨던 초자연적 은사들 중에는 예언, 방언, 병 고침 등의 은사들이 있었다. 사도 시대에 주셨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오늘날도 교회 안에 있는가? 오순절파 교회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셨던 목적

우선, 사도 시대에 주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들을 전달하고 그것들을 확증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성경에 확실하게 증거된 바이다. 마가복음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히브리서 2:3-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곧 성령의 은사들]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모든 참음으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행전 2:43과 5:12은 사도 시대에 특히 사도들을 통해 기적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증거한다. 이것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들의 전달자이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 시대와 함께 거두어졌음

그런데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 시대가 끝났을 때 거두어졌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도 시대와 함께 거두어졌다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것은 교회가 경험한 바이었다. 

주후 4세기의 유명한 교부(敎父)이었던 크리소스톰은 "방언은 이미 그쳤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후 5세기 초의 경건한 지도자 어거스틴은 그의 요한일서 설교에서 "방언은 유대 기독교인에게 주신 초기 표적이었고 이전 시대에 이미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초대 교회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했던 워필드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들의 교회의 특징이었고 오직 사도 시대에 속했다. . . .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자들은 은사들이 사도 시대와 함께 중지되었음을 매우 명백하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도 시대와 함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독특한 목적과 일시적, 초보적 성격 때문이었다고 이해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인 하나님의 특별 계시들의 전달과 확증은 신약성경의 기록으로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 책을 쓰면서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계 22:18). 

또 사도 바울은 예언이나 방언이 어느 날 폐지되리라는 것과 그것들이 부분적인 것들에 관계되며 어린아이 때의 것들이요 거울로 보듯이 희미한 것들이라고 증거하였다(고전 13:8-11). 즉 사도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일시적이고 초보적인 성격을 가진 것들임을 증거한 것이다. 

오늘날의 은사운동에 대한 평가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계속 혹은 회복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다시 주기 시작하셨다면 감사하다. 아무도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이 신약 27권의 기록으로 완성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옛날 방식으로 말씀하실 것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며, 성도는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또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사도 시대의 것들과 같은 은사들을 주신다는 증거가 과연 있는가? 오늘날 방언들은 성경의 모범대로 외국어의 특징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또 오늘날 병 고침들도 성경의 모범대로 각종 질병들을 완전히 치료하는 것 같지 않다. 특별한 경우 기도의 응답으로 병이 낫는 것과 병 고침의 은사는 다르다고 본다.

더욱이, 오늘날의 은사운동은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또 천주교회도 포용하는 잘못된 교회연합운동에 관계되어 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이런 운동이 과연 성령의 일이겠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강조점의 전환이다. 성경적 기독교는 초자연적, 기적적 은사를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바른 지식과 거룩하고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인격과 삶을 강조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다. 더욱이, 성경은 말세에 거짓 기적들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고(마 24:24; 살후 2:9-12), 주께서는, 기적을 행할지라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마지막 날 버리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마 7:22-23). 또 사도 바울은 사랑이 없는 방언과 예언과 능력은 아무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다고 증거하였다(고전 13:1-7). 

우리는 말씀과 기도, 회개와 순종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삶을 살아야 하지만 은사운동이 그 해답이 아니다.

은사운동은 교회의 영적 부흥의 표가 아니고 성도들이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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