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나타난 축도의 의미
민영진 (대한성서공회 총무/구약학 박사)
- 아론의 축도(민 6:24-26) -
번역의 문제
"아론의 축도"(민 6:24-26) 또는 "제사장의 축도"는 "사도의 축도"(고후 13:13)와 함께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축도이다.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는 사도의 축도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고, 아론의 축도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 아론의 축도라고 하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전하여 일러준 축도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민 6:22-23) 하면서 준 내용이 바로 이 축복이다. 우리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번역으로 읽어 볼 수 있다.
1) {개역} (1961)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개역}의 번역이다. 이 축도를 듣는 지상의 청중은 "이스라엘 자손"(민 6:23) 곧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므로 여기 축도 안에 나오는 "너"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 축도의 발화자(發話者)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민 6:23) 곧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다. 그러므로 이 축도에서 세 번 반복되는 "원하며, 원하며, 원하노라"라고 하는 동사의 주어는 "여호와"가 아니고, 이 축도를 말하는 "제사장"이다. 이 축도의 내용은,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복을 비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고, 그 얼굴을 네게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 주시기를, 축도를 하는 화자가 원한다는 것이다. "원하다"라는 동사는 우리말 번역자가 첨가한 것으로서 이 동사의 주어는 이 축도를 하는 제사장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베풀어주시기를, 축복을 하고 있는 제사장 자신이 "원한다"는 것이다. 이 동사 외에, "복을 주시고(예바레크카)",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이슈므레카)", "백성에게 얼굴을 비추시고(야에르)", "은혜 베푸시고(익후네카)", "얼굴을 어느 쪽을 향하여 드시고(잇사)", "평강 주시고(야셈)", 하는 모든 동사의 주어는 바로 여호와이다. 여호와께서 직접 이런 행동을 하시는 주체이다.
2) {공동번역} (1977)
24.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집단적 단수 "너"를 "너희"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의 이름 네 글자를 그 본래의 발음을 따라 "야훼"로 음역하였다. {개역}이 "얼굴을 네게 비취사"를 {공동번역}은 "웃으시며"라고 번역하였고, {개역}이 "은혜 베푸신다"라고 번역한 것을 "귀엽게 보아주시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개역}이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고 번역한 것을 {공동번역}은 "고이 보시다"로 번역하였다. 이 축도를 하는 제사장의 소원을, "빈다"라는 말을 첨가하여 나타내었다.
3) {표준새번역} (1993)
24. 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며,
25. 주께서 너를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26. 주께서 너를 고이 보시어서, 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표준 새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의 뜻을 옮기려고 하여, 25절의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를 "주께서 너를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로 번역하였고, 26절의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를 "주께서 너를 고이 보시어서"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주께서 이렇게 복을 베풀어주실 것을 축도를 하는 제사장 자신이 하나님께 비는 것이므로 끝에 "빈다"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개역}의 "여호와"가 다 "주"로 바뀐 것은, 하나님의 고유 이름 네 글자를,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독법(讀法)을 따라, 신약시대의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2천 년의 교회 역사의 전통을 따라, "아도나이(主)"라고 읽은 것을 근거로 하여 번역한 결과이다. 이 축도를 하는 제사장의 소원을, "빈다"라는 말을 첨가하여 나타낸 것은 {공동번역}과 같다.
4) 찬송가
주 너를 지키시고 그 얼굴을 네게 돌리시어 참 평강을 참 평강을
그 얼굴을 네게 돌리시어 주의 은혜 주의 은혜 주 은혜 늘 네게 있으라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우리의 {찬송가} 550장에 실린 이 축도가 "여호와"를 사용하지 않고 "주"를 쓴 것은 [표준새번역]과 동일한 전통에서 하나님을 부른 것이다. 그러나 24절의 전반부 "주께서 네게 복을 주시기를" 빈다는 중요한 내용이 삭제되었으며, 25절과 26절이 순서가 바뀌어서, "주께서 네게 얼굴을 돌리시어 참 평강을 주시기를" 빈다는 26절의 내용이 먼저 나오고, "주께서 그 얼굴을 네게 돌리시어 은혜 베푸시기를" 빈다는 25절의 내용이 그 뒤에 나오고 있다. 번역되는 말의 구문 법칙에 따라 절이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음악적인 이유에서나 구문상의 이유에서나 여기에서는 절의 순서가 바뀌어야 할 까닭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얼굴을 돌린다"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쓰고 있는데, 이 말은 대면하기를 꺼리어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말로서 본문의 본래 의미와는 정반대의 뜻을 전할 수도 있어서 번역 대응어 선택도 적절하지 못하다.
성서 안에서의 맥락
"여호와는 자기의 백성을 지키시는 분"(24절)이라는 생각이 집약적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시작되는 시편 121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사람을 향해 비추신다고 하는 것(25a절)은 사람을 향해 만족해하시는 모습으로 보시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거나 외면하시는 것은 진노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평강을 주신다는 생각(26절) 역시 성서의 여러 곳에 나타난다. 아론의 축도의 축복 내용은 여기 민수기 6장에서만 나타나는 생각이 아니다. 구약 성서의 여러 곳, 특히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편에 보편적으로 나와 있는 생각이다.
활용의 문제
{개역}의 것이든 {표준새번역}의 것이든, 이것을 그대로 우리말 예배에서 목사가 축도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말이 가지는 특별한 존대법 때문이다. 목사가 청중을 향하여 "너" 혹은 "너희"라고 할 수 없고, 역시 청중을 향하여 "원하노라" 혹은 "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본래 우리의 존대법과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번역이 지닌 문제이다. 실제로 교회의 예배에서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문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개역}과 같은 것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치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로 향하여 드시어서 평강 주시기를 원합니다.
{표준새번역}의 번역 본문을 축도에서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며,
주께서 여러분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께서 여러분을 고이 보시어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청중을 일컫는 말로서는 "여러분"을 "성도 여러분에게"로 고치거나 같은 의미를 지닌 여러 가지 표현들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곧바로 이 기도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음역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밑줄은 억양 표시이고, 사선(斜線)은 띄어 읽기이다. 겹 사선(//)에서는 잠시 쉰다.
예바레크카 아도나이/ 브이슈므레카//
야에르 아도나이/ 파나브 엘레카/ 빅후네카//
잇사 아도나이/ 파나브 엘레카/ 브야셈 르카 샬롬//
찬송가에서 사용할 경우, 루킨(P. C. Lukin)의 곡에 이 축도의 본문을 그대로 붙여서 부른다면, 주어진 곡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볼 수도 있다.
주 네게 복 주시고, 널 지켜 주시기를 바라며,
그 얼굴로 널 대하사, 은혜 베푸시기를 바라며,
너를 고이 보시어서, 평화 주시길 바라노라.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예배에서의 사용되어 온 역사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축도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것이고, 민수기 6장 24-26절의 제사장의 축도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제사장의 축도가 일반 신도들에게 알려진 것은 {찬송가}(1983) 550장과 같은 {찬송가}의 머리말 뒷면에 예배 후 묵상이라고 하여 민수기 6장 26절이 고린도후서 13장 13절과 함께 소개된 것이 그 처음인 것 같다. 이 축도가 찬송가에 이처럼 소개가 되어 있었어도 그것이 바로 제사장의 축도였음을 아는 일반 신도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예배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근거한 사도의 축도와 함께 민수기 6장 24-26절에 근거한 아론의 축도를 함께 사용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16세기 유럽 교회의 예배 순서를 보면, 예배는 일반적으로 "아론의 축도" 곧 제사장의 축도로 끝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537년 스트라스부르크의 독일 예배의식과 1540년 스트라스부르크의 프랑스 예배 의식, 그리고 1542년 제네바 예배의식이 상세한 점에서는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지만, 예배가 모두 "아론의 강복선언"(민 6:24-26)으로 끝나는 것은 삼자가 동일하다. 존 낙스의 제네바 예식서에 나타난 성만찬 예전의 순서를 보면, 축복 기도는 아론의 축복기도나 사도의 축복기도가 번갈아 가면서 사용되었던 흔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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