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참석하지 말고 예배의 도구가 되라

요즘 목사들은 설교 시에 예배에 성공하라 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면 청중들은 모두 입을 크게 벌려 “아멘”이라고 화답한다. 곧 이어 설교자는 예배에 성공하면 얻게 되는 천국의 자격과 이 땅에서 얻게 될 풍성한 축복을 주절주절 내뱉는다. 그 설교를 듣는 이들은 마음속으로 엄청난 축복이 흠뻑 쏟아지는 상상을 하며 흡족해한다. 그리고 예배 가 끝나고 나오는 자리에서 인사를 건네는 설교자에게 은혜 많이 받았다면 덕담을 건 넨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아마 자신이 예배에 성공했다고 여기는가보다.

“예배에 성공을 해야 한다고?” 어느 날 필 자는 그 말을 문득 떠올라서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도대체, 예배에 성공한다는 뜻이 뭐지?” 아마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여 하나님을 기뻐하게 한다면 소원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설교자는 만나는 교인들마다 교회 에서 요구하는 모든 예배의식에 열심히 참 석하라는 투의 말을 즐겨 하는 것일 게다. 말하자면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곧 세상에서 성공하는 등식 이라는 게 요지인 셈이다.


그러나 예배라 는 말과 성공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예배는 지극히 두려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 분을 높여드리는 영적인 분야 의 말인데 반해서, 성공이라는 말은 자신 이 세상에서 원하는 욕구가 채워지는 아주 세속적인 말이다. 마치 말의 몸뚱이에 돼지머리를 가진 짐승이나, 개의 몸에 뱀 꼬리가 달린 동물을 생 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 게 이렇게 경건한 단어가 아주 세속적인 용어와 결합되었을까?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는 교인들의 마음을 읽은 목회자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 추어 만들어 놓은 연출에 불과하다. 이렇 듯 세상의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뜻을 추 구해야 하는 교회조차도 세상의 욕망을 바 라고 세속적인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 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에 들어가,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인가를 다 시 한 번 생각해보자. 예배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를 번역한 말인데, 말 그대로 ‘경배하다, 찬양 하다’라는 뜻이다. 예배의식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행위로 바꾸어 의식화 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정확한 뜻은 예배의식(worship service) 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 이 곧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우리네 말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도 무리가 아니지만 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행 위를 잣대로 재는 분이 아니다.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게 아니라 그런 행위 를 하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날 교회예배에 참석하여 좌석을 메우고 있으면 예배를 잘 드린 다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리고 주일성수를 했다고 여기며 흡족해 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남은 시간에 TV를 보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지낸다. 그리 고는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예배의식 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하실 리 가 없다.

문제는 예배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과 이 땅 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조건이지만 우리네 교회 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인들이 예배의식에 참여했는지의 여부와 헌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예배의식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면 오후에 전 화를 걸어 심방을 다니느라고 바쁘다. 또 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교인들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직분자의 명단에서 누락을 시킨다. 이처럼 예배의식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과 우리네 교회 지도자들의 시각이 격차가 크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 2:1)

성경에서 밝히신 하나님의 뜻은 교회에서 정규적으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참여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의 도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의식에 의무적으로 무덤덤하게 참석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신의 예배의식의 찬양시간에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찬양을 부르고 있는가? 대표기도시간에 자신이 기도하는 것처럼 간절히 받아들이며 아멘하고 있는가? 설교시간에 선포되는 성경말씀을 자신에 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기쁘게 헌금을 드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 찬양하는 순서에 무덤덤하게 따라 부르며, 대표기도시간에 남이 기도하는 것을 그저 듣고 있으며, 설교시간에 딴 생각을 하거나 졸고 있으며, 헌금 시간이면 의무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드리고 있다면 당신은 예배를 드리는게 아니라 구경꾼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당신이 지금까지 드려왔던 수많은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은 이유이다. “아니? 상달이 안 되었다고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지요?” 하며 불쾌한 표 정으로 필자에게 되물을 것이다. 지금껏 당신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와 열매가 당신에게 풍성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에 힘이 없고, 신앙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며, 기도의 응답이 없고,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확고부동한 증거이다.

아니라고? 교회의 예배시간에 즐겁게 찬송을 따라 부르며, 대표기도시간에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며, 설교 시간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으며, 아 까운 마음 없이 헌금을 드리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잣대는 예배시간만으 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정한 예배시간에 찾아 오셔서 청중들이 부르는 찬양을 기뻐하고 계시며, 기도를 듣고 계시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 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시다. 당신이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구경꾼이 아니라 예배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확신 한다면 삶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콩이 가득 들어있는 자루는 어디를 찌르든지 콩이 쏟아지고 쌀자루에는 쌀이 쏟아진다. 당신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의 도구로 살아가고 있다면 예배시간뿐 아니라 일상 의 삶에서도 예배의 도구로 살아가야 한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의 말씀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예배의식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여 경배 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도 기뻐하시지 만, 그 보다는 모든 삶에서 전심으로 드리는 예 배를 받고 싶어한다. 말하자면 당신의 자녀가 예배시간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예배의 도구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였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나 나타나지 않았다면 천국도 장담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제정한 예배의식에 참 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며 살아가는 예배의 도구가 되 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그런 예배에 전혀 관심이 없을지라도 당신만은 그런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면 당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 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녀만이 천국의 자격이 있으며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 아갈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마음을 돌이켜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예배의 도구로 살아가는 것을 결심해야 한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이 당신의 인생에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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