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과학에 주눅들게 하는 갈릴레오 재판의 실체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과학 사이에서 어디에 권위를 두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말씀 대신 과학의 설명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 받는 특이한 느낌이 하나있는데, 이분들은 자신이 과학이 얘기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이런분들의 경우 과학이 주장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분별할 기준도 없으며 이를 분별하기 위해서 어떤 증거를 알아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해도 하지 못하는 것을 왜 신뢰할까요? 제가 개인적으로 받은 느낌은 이 분들에게는 과학에 대한 경외, 즉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과학을 경외하는 기독교인들

그 경외의 원천은 어디일까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논문들, 나날이 발전하는 테크놀로지, 어떠한 근거도 없어 보이는 신학자들에 비해 훨씬 더 논리적으로 들리는 증거들, 그리고 실제 과학과 종교가 대립 했을때 처참하게 패배한 사례, 즉 갈릴레오와 천주교의 논쟁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무신론자건 유신 진화론자건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제시하기 전에 창조론자들을 공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천동설 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천동설을 주장한 천주교가 패배했고, 과학적으로 지동설이 맞으니까, 성경을 통해 과학을 얘기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트라우마처럼 작용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속 과학에 주눅들고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정작 알아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로 갈릴레오와 천주교의 논쟁은 과학과 종교의 대결이었을까요?

저는 누군가가 저에게 ‘갈릴레오’와 ‘천동설’로 공격과 조롱을 시작하면 바로 되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이 질문 하나로 공격을 멈춥니다.

“중세 시대에 주류 과학은 지동설을 지지했습니까?”

이는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이 ‘과학 vs 종교’가 아님을 입증시키기에 충분한 질문입니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주류 과학은 천동설을 지지했습니다. 지금 주류 과학은 빅뱅 이론을 지지하지만, 제가 빅뱅 이론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중세시대에 지동설은 과학이 아니였습니다.

실제로 15~16세기에 지동설을 지지했다고 알려진 과학자는 100여년 전에 있었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3명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천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의 과학자가 주장했던 천동설이 아닌 단 3명이 주장했던 지동설을 과학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이는 단지 역사 학자들이 잘못 갖다 붙인 프레임에 속아 넘어 가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은 과학의 승리가 아닙니다. 단지 당대의 주류 과학이 관찰의 부재로 인해 틀린 것이고 비주류 과학이 기존의 관념을 깬 해석을 통해 실제 과학적 사실을 알아냈던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이 종교계 혹은 기독교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 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훌륭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갈릴레오’가 법정에서 한 유명한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남긴 더 중요한 말을 모릅니다. 많은 유신 진화론자들이나 오랜 지구론자들이 이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물론 그들은 ‘갈릴레오’의 의미를 왜곡해서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사용하는 것일 뿐 입니다.

갈릴레오는 성경 무오를 주장합니다.

……성경과 자연은 다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다. 전자는 성령이 말씀하신 것이며 후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장 잘 준수해서 집행한 것이다. 또한 이들을 일반 백성들에게 잘 이해시키기 위해 성경은 절대적 진리와는 다르게 보이는 것(말의 의미에 대하여)을 많이 얘기하고 있는 반면, 자연은 냉혹하고 불변하며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감추어진 이유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자연이 그에게 주어진 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 눈앞에 놓여진 물리적 결과나 또는 필요한 논증의 결론은 그 어떤 이유로도, 말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성경의 구절 때문에 의심해서는 안된다…… 두 개의 진리는 결코 서로 모순될 수 없다……1 

즉 갈릴레오 역시 성경을 진리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지동설과 성경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해석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종교의 패배라고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마치 장로교와 감리교가 교리 싸움을 했다가 장로교가 패배했기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패배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 입니다.

그렇다면 갈릴레오 논쟁은 왜 벌어졌던 것일까요? 정말로 교황은 천동설이 성경이 얘기하는 바라는 확신을 가졌던 것일까요? 모든 인간사가 그렇지만, 이는 과학 때문에 그런 것도 성경 때문에 그런것도 아니며, 권력에 밉보인 사람에 대한 핍박에 불과한 것 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사실 교황청에 지동설을 설명한 것은 갈릴레오가 처음이 아니였습니다. 100년전 처음 지동설을 얘기했던 코페르니쿠스 역시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 지동설에 대해 설명했고, 교황청에서 이를 문제 삼거나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동설이 정말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위배하고 신성 모독적인 이론이었다면 갈릴레오에게 가해졌던 모든 핍박은 사실 코페르니쿠스의 것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황이 바뀌고 성경의 해석이 달라져서 갈릴레오가 핍박을 받았던 것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오가 처음 교황청에 지동설에 대한 내용을 보냈을 때, 교황청은 이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카톨릭도 성경이 반드시 천동설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 받던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추기경은 ‘갈릴레오’의 이론이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다며 칭찬했고,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나아가서 나는 만약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따라서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참된 증거가 있다면, 그러한 과학적 증명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을 설명할 때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우리는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런 증명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데, 이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증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

즉 다시 얘기하면, 교황청은 증거에 열려 있었으며, 자신들의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갈릴레오는 교황청과 외롭고 긴 싸움을 했어야 했나요?

갈릴레오 재판의 진짜 이유

갈릴레오는 마페오 바르베리니(Maffeo Barberini)와 가까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역시 갈릴레오의 연구 결과를 존중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갈릴레오와 이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자신의 의견도 개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이후 교황 우르바노 8세 가 됩니다.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1632년 갈릴레오가 ‘두개의 주요한 세상 체계에 관한 대화론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mes) 라는 책을 씁니다.

이 책은 가상 토론의 형식으로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해 쓴 책인데, 이책에서 갈릴레오는 Simplicio라는 천동설을 논증하는 캐릭터를 등장시킵니다. 갈릴레오가 Simplicio를 약간 바보같은 캐릭터로 그렸는데, 우르바노 8세는 이 책에서 Simplicio가 주장하는 논거들이 실제로는 자신이 예전에 갈릴레오에게 내놓았던 의견임을 깨닫고 친한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한 것 같은 또 조롱당한 것 같은 분노를 느낍니다.

이것이 우리가 과학 vs 종교라고 알고 있는 갈릴레오 재판의 실체 입니다.

이 사건이 정말로 과학 vs 종교의 문제 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실제로는 과학 vs 과학의 문제이며, 종교인과 종교인 사이의 논쟁이고,

정말 그 밑바탕에는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과 그 절대 권력을 조롱한 다른 사람의 감정 싸움일 뿐 입니다.

그 과정에서 교황청은 스스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경 구절을 사용했을 뿐 입니다.

이를 내세워 과학이 주장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무엇이던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언어 도단이며,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도 쓸때 없는 기우입니다.

지동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계가 없지만 유신 진화론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맞는것 혹은 그 반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지구가 태양을 돌던 태양이 지구를 돌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벨라르미노 추기경이 얘기했듯 천동설을 지지하는 듯한 구절들이 사실은 우리의 잘못된 해석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가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단지 지구에 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얘기를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다른 해석은 논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왜곡 시킵니다. 원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떤지에 대한 왜곡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11장에 있는 사실들은 역사적인 사실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영상번역과 글을 통해 계속 다룰 부분이지만, 지금 이론 물리학계의 이슈는 지금 우리가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는가? 3 입니다. 이 세상이 너무도 정교한 수학적 바탕 안에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컴퓨터 오락이나 애니메이션처럼 우리가 누군가의 프로그램 안에 사는게 아닌지를 진지하게 알아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창조주를 부정한 결과는 공상 과학에서나 나올법한 황당한 상상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진화론이나 과학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론들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들 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무지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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