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운동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기독교는 수난과 고나, 박해가 상징이었다. 예수님의 시대나 사도들의 시대, 그리고 속사도나 교부들 시대까지는 기독교의 역사는 박해와 수난과 피의 역사였다. 정도의 차이지 기독교가 처음 복음이 전파될 때는 한 민족의 민족적인 정서와 그 민족의 관습과 풍속, 그리고 그들의 종교와 신념, 시대 정신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과 박해를 받고 수많은 고난과 유배, 처형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핍박들 속에서 복음이 증거되고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고 교회가 설립되어 성장을 하게 되었다.

로마시대는 큰 제국의 권세와 영광 그리고 힘 만큼이나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핍박 그리고 로마의 10대 황제에 의한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가 압사하고 멸절할 수도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에 저항하여 기도하고, 믿음이 더욱 단련되고, 또한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순교함으로 오히려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 가고 또한 복음의 원색적인 내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교회는 순교의 씨앗이라고 말한 터툴리안의 말처럼 박해 속에서 순교를 통해서 기독교는 가장 기독교 다울 수 있었고 능력이 있게 드러 났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로 공인되고 로마종교가 됨으로 로마의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었고 많은 상류층 인사들이 교회에 편입되고, 또한 기독교의 공인으로 인해서 사회적 진출을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는 하나의 거쳐가는 관문이었고, 또한 기독교인이 됨으로 로마의 국교를 믿는다는 명분까지 합세되어 기독교는 신앙의 참과 거짓을 구별할 시간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럼으로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위선적인 신앙이다. 형식은 갖추되 아직 신앙이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본질적인 복음과 그 색깔들이 뚜렷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모호성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의 핍박 만큼이나 또다른 교회의 시련을 가져오게 된다. 그것은 교회의 세속화라는 괴물이다.

박해가 근절되어 기독교는 더이상 고난과 핍박이 없는 종교가 되었고, 그것만이 아니라 기독교가 오히려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세속화화로 이어져 갔다. 시련 속에 성장하던 교회가 이제는 풍요 속에 시달리고 이제 박해를 견디고 신앙을 고백하는 시대는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전의 재림 신앙은 현실적인 신앙으로 서서히 대체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콘스탄틴과 리키니우스가 발표한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서 로마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관용이 결국은 로마와 로마사회와 로마의 풍습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관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불만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느껴서 시작된 것이 수도원 운동이다. 수도원 운동은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 금욕 생활을 통해서 독신생활과 금욕, 금식등 금욕생활을 대한 동경과 이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수도원은 애굽의 안토니에게서 시작하였다. 그는 애굽의 코바에서 태어나서 가난한 자들에게 소유를 나누어 주고 출가한다. 그는 금욕 생활을 통해서 수많은 사단의 시험을 이겼다고 한다. 역사책들을 보면 그는 아리우스 파와 싸우고 있는 아다나시우스를 위로하고, 그는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은사를 자랑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안토니의 영성에 관해서 일화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님 지도자인 리디무스를 만나서 "파리도 갖고 있는 육신의 눈을 가지지 못한 것을 괴로워 말고 신령한 것을 소유한 것을 기뻐할 것과 천사도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빛을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콘스탄틴 황제에게도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와 땅 위의 권세를 자랑치 말고 미래의 심판을 기억하고 그리스도가 유일한 왕임을 알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참회록에도 안토니의 전기가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안토니는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성의 소유자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파코미우스는 안토니의 수도원을 좀더 발전시켜서 수도원과 사회를 연결하고, 수도원과 교회를 연결했다 그리고 니케아 회의가 있을 즈음에 그는 타배네 섬에 수도원을 세우고 다른 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공동 생활의 규칙과 예배와 작업, 기도에 힘쓰고 제복도 제정해서 입게 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기둥위에서 고행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목에 쇠사슬을 감고 짐승 가죽을 입고 기둥 위에서 생활하고 은둔 생활을 했다. 박해와 풍요 사이에서 그는 제 3의 길을 선택하고, 또한 이 세상에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길을 버리고 그는 초인적 금욕주의자로, 고행주의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삶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영혼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서방에서는 베네딕트가 수도원을 개혁한 사람이었다. 로마로 유학을 갔다가 로마의 타락상을 보고 실망해서 수비아코 산중 동굴 속에 들어가 3년간 고행과 영성에 주력했다. 그는 제자들과 많은 수도원을 세우고, 땅을 가꾸고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도왔으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규칙을 잘 지키는 수도원을 만들었다. 그의 수도원은 민주적인 규칙과 제도적인 체계를 갖추고 이전에 수도원 운동가들이 가졌던 금욕주의나 극단적 금욕주의를 벗어나 수도원의 체계와 조직, 그리고 제도들을 통해서 수도원을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이 베네딕트 수도원을 통해서 수도원 운동이 개인이 구원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봉사, 교육, 선교등 수도원의 사회적 비중이 커 갔다. 이것은 수도원 운동이 한발 더 진일보한 것이다. 그래서 폐쇄성이나 고립주의, 금욕주의등 이 세상과의 괴리에서 이제 이 세상의 사회에 영향력이 있도록 수도원 운동의 방향을 바로 잡아 나갔다.

수도원 운동은 거룩과 성결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서는 이상적인 것이었지만 또한 사회 속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사명에는 부족함을 보였고, 또한 금욕적인 생활이 마치 복음인 것인냥 강조된 것은 부정적인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 속에서 타락한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또한 개인의 구원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지금도 이런 수도원등을 모방하여 많은 수도원이나 기도원 운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입각한 복음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사회 속에서 기독인의 역할과 사명들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가지 않을려는 것은 본받을 만한 것이 되고 또한 그것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좋은 본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운동이 발흥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이것은 매우 좋은 취지이지만 또한 이것은 심각한 문제들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교회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 그리고 실질적인 나눔과 교제가 충만하다면 또 다른 그 무엇을 통해서 대안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하고 영혼의 만족과 성결을 위한 것이었다. 교회의 세속화는 분명히 경계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과 역할이 분명이 주어져 있고, 교회를 떠나서 또 하나의 독립적인 것을 형성하는 것은 교회의 역사에거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수도원 운동이 모체가 되어서 현대에 있어서도 영성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진정한 영성을 성경을 알아가고, 그것을 신앙과 삶의 근간으로 삼고 이 세상의 영적이지 못한 현실을 돌파해 나가고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참다운 영성이다. 말씀을 믿지 못하는 교만과 무지가 이런 잘못된 영성으로 나가고, 본질을 잊어버리고 방향을 잃어버린 영성 운동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말씀 신앙이 바르게 정립되고 그것인 삶으로 이어지고, 교회가 또한 말씀이 주축이 되어서 교회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영성 운동은 지금보다는 많이 바르게 정착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교회사를 설교하거나 글을 쓸 때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함부로 칼질을 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찬성하는 것도 아닌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향한 인물들이 과소평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분명 말씀에 근거해서 바른 분별력과 안목을 가지고 교회사나 인물을 접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고 신앙의 유익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에 지금의 시대 보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문제나 말씀을 문제, 그리고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들은 절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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