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Jerusalem)의 역사



  유대 언덕 위에 높이 서 있는 예루살렘은 3000년 전 다윗 왕국의 수도로 정해졌다.

물질적으로 축복 받은 도시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종교의 중심지가 되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어왔다.

이를 합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25억 이상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성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희망이 담긴 도시이며,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담긴 도시이며,

이슬람교인들에게는 예언자 마호멧이 승천한 곳으로 믿어지는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도시를 뜻하는 “이르”와 평화를 뜻하는 “샬롬”에서 온 합성어로서 “평화의 도시”, “평화의 터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뜻과는 달리 예루살렘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50번 이상 포위당했고, 36번 정복 당했으며, 10번 파괴되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고 처음 언급된 것은 여호수아(10:1)이며,

그 밖에 아리엘(사 29:1), 오홀리바(겔 23:4), 하나님의 성(사 60:14), 살렘(시 76:2), 모리아(창 22:2),

여부스(수 18:28), 시온(왕하 19:21), 다윗 성(삼하 5:7), 거룩한 성(느 11:1, 마 4:5) 등으로 불렸다.



  1. 다윗 왕 이전의 예루살렘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처음 언급된 것은 아브라함 시대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대접한 것에서 나온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왔다고 했는데, 역대하(3:1)에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곳을 가리켜 “모리아 산”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이 예비한 산양을 번제로 드리고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이름 붙였다. 주전 1000년 경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그 곳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고 했다(삼하 5:7).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겨 놓음으로써 예루살렘은 명실공이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2. 솔로몬 때의 예루살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지역을 넓게 확장하고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였다. 뿐만 아니라 궁전과 다른 건축물을 세워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했다. 그래서 강대국들의 사신들이 왕래하면서 국제적 도시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갈라졌고, 주전 586년 시드기야 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3.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명에 따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이들은 곧 성전과 성벽 재건에 착수하여 많은 방해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완성한다(느3장). 주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주전 168년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벽을 파괴했다. 주전 167 ~ 63년 사이에는 유대인들이 독립을 누렸지만 주전 63년에 로마가 점령하였다. 주전 37년 로마에 의해 유대 왕으로 임명받은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솔로몬 때보다 더 웅장하게 성전을 짓고 아름답게 꾸몄으며 성벽을 수축했다. 헤롯 말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


  4. 로마 통치하의 예루살렘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주후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바르코크바 혁명을 진압할 때 다시 파괴되었으며, 유대인은 추방되었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유대인은 사형을 당했다. 이때 하드리안은 유대인 말살정책을 실시하여 예루살렘 성전 터에 쥬피터 신전을 세우는가 하면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예수와 관계된 유적을 모두 없애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골고다 언덕을 평탄하게 만들었고 예수님의 무덤도 아주 없애 버렸다. 예루살렘의 명칭 또한 앨리아 카피톨리나로 바꾸고 로마식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주후 326년 기독교로 개종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의 생애와 그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헬레나의 노력에 의해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새로운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 예수님의 무덤교회와 베들레헴 탄생교회가 건축되었다.


  5. 로마 통치 이후의 예루살렘


  그후 약 300년간 비잔틴에 의해 통치되었다가 주후 638년 칼리프 오말의 이슬람 군대에 의해 점령되어 이슬람 지배가 시작되었다. 1099년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어 성지 순례가 재개되었고 이슬람이 재침할 때까지 100년간 유지되었다. 1538년 오토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 약 400년간 지배되었다. 이때 슐레이만 대제가 현재의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다.


  그러던 것이 1917년 영국이 터키로부터 탈취하여 영국의 보호하에 들어갔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이 일어났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분할되어 있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요르단 수중에 있던 예루살렘의 구 도시지역을 차지함으로써 예루살렘이 다시 통합되어 이스라엘이 관장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6일 전쟁으로 구 예루살렘을 요르단으로부터 합병한 이스라엘은 모든 건축물에 옅은 베이지 색의 돌을 사용하라는 이색적인 건축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석양녘의 예루살렘은 태양 빛을 받아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환상적인 모습이 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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