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경해석의 원리

 
성경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로 다를 수가 있는데 어떻게 당신의 해석을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본의에 따른 객관적인 성경해석의 원리)?



  Ⅰ. 도입


  성경은 인간 저자의 저술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啓示書)1이다. 이는 성령님께서 다양한 계층의 인간 저자들을 택하셔서 저들의 인격을 전인적으로 영감하시는 가운데(유기적 영감론)2), 창세 전에 수립하셨던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과 계획(엡1:4-6)을 세상 가운데 기록된 말씀으로 밝히 드러내 보이신 사건을 가리킨다. 이런 사실을 신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베드로 또한 그의 서신서에서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고 밝히 증거한다. 영감 된 계시서로서의 성경과 인간 저술의 본질적인 차별성이 이런 사실에 기인한다.


  이런 이유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원저자 되신 성령님의 조명(내적 증거)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이다(고전2:4). 환언하면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3). 이는 사실상 성경의 원저자가 성령하나님이신 사실로 인해 성경 66권이 상호 유기적인 연관성(organic relevance)을 갖고 있음을 함의한다. 결국 신구약 계시역사의 점진적 진행으로 인해 구약계시는 신약의 복음의 빛 속에서 그 모형과 예표적 성격이 실체로 밝히 드러나게 되는 반면(patent), 신약의 복음적 계시는 구약계시 속에 한시적으로 감추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latent).


  이렇게 신구약간의 계시적 상호 관계성이 다양한 원리와 원칙으로 서로 간 깊이 연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 현장에서는 이런 원리와 다양성이 무시되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말씀을 맡은 자들이 성령의 조명, 곧 내적 인도와 도우심을 구하면서 기도하며 묵상하고 정리해서 설교한다고 해도, 여전히 성경의 동일 본문이나 동일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해석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Ⅱ. 전개


  1. 다양한 해석의 실례    

 

  ①문자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 : 성경의 주어진 본문을 문맥이나 문법상의 고려 없이 단순히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식(계13:18의 666숫자. 14:1의 144000의 숫자, 21:20의 온갖 보석으로 꾸며진 하늘 예루살렘 성, 1:7의 구름타고 오실 예수님, 요14:1-3의 처소, 렘31:31-34의 새 언약의 내용을 역사적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심에 적용 등등) 

  ②우화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 : 일명 영해(靈解)라고도 한다. 영적인 의미를 부각시켜 임의대로 해석하는 방식(눅10:30-37의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 강도 만난 자는 죄인들, 사마인은 예수님, 주막은 교회, 주막 주인은 성령님, 다시 와서 부족한 비용을 갚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한다는 등등)

  ③자의적 해석(self-will interpretation) : 사사로운 유익과 목적을 위해 주어진 본문을 성경의 본의와는 무관하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욥8:7을 사업성공의 방편으로, 삼하7:29을 가문의 번영을 위한 증거 본문으로 )


  ④문맥적 해석(contextual interpretation) : 주어진 본문의 전후좌우를 살피는 가운데 문법적-역사적-신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해석 방법(고후9:6은 헌금액수와 축복의 비례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 연보의 성격을 언급하는 내용).


  ⑤구속사적 해석(interpretation of redemptive history) : 세상역사의 본질이 구속사라는 성경의 자증적(自證的) 진술(눅2:1-7)4)에 근거해 성경계시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요5:39)와 하나님 나라 사상(마4:17, 막1:15)에 맞춰서(요5:39) 기독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방식(창3:15의 여자의 후손, 갈4:4). 이 과정에서 구속사 진행의 점진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형과 실체와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 해석의 중요 관건으로 작용한다. 



  2. 말씀과 신앙과의 관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는 성경의 진술을 통해, 신학은 신앙의 울타리요 믿음을 생성시키는 근간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바른 신학을 통한 말씀의 바른 해석은 바른 신앙의 척도로 기능하게 된다는 신학적 명제를 도출하게 된다. 이처럼 바른 해석의 문제는 바른 신앙관 형성의 관건으로 기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호와중심의 기독교 신앙관의 정체성이 자의적(恣意的) 숭배신앙이 아닌 철저히 계시의존(啓示依存)적인 신앙5)으로 표출되어야 하는 원리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작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고전10:31)이라는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급속도로 퇴색돼 가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단지 종교적 문화활동으로 전락돼 버린 나머지 인간의 현세적 성공과 유익을 위해 한낱 수단과 방편으로 평가절?돼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여호와중심의 신앙관이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본의가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바르게 회복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될 것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은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해 가능하게 될 것인가.



  3. 바른 성경해석의 길라잡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6)께서는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중세 천년의 영적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 카톨릭에 의해 왜곡 변질되었던 성경의 제반 진리들을 새롭게 재정립해 주셨다. 그것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좀 더 구체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①하나님의 절대주권적 관점으로 해석한다7).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와 영광 중심과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람이 비록 창조의 면류관8)이라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종속적 존재9)로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추구와 영광구현이 인간의 존재의미요 존재목적인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②성경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한다10). 이는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역동적인 계시의 다양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시키는 한편, 하나님 나라라는 구속사의 최종 목표에 유기적으로 연결시킴으로서 종말론적인 완성(통일성)을 지향케 한다(창3:15의 여자의 후손은 갈4:4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최종 성취를 본다).


  ③신구약을 총체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으로 상호관계 속에서 해석한다11). 이는 구약계시를 ‘약속’의 관점에서 신약계시를 ‘성취’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약속에 담긴 계시의 성격은 모형적이고 예표적인 성격을 띠게 되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실체 속에서 마침내 성취에 이르게 된다(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 안에서, 속죄제사는 십자가의 구속사건을 통해서). 따라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구약의 약속의 말씀 속에서 인용하고, 천상적이고 영적인 부분은 신약의 말씀과 사건 속에서 인용해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신구약을 독립된 별개의 계시처럼 차별적으로 인용하고 적용하는 것은 성경의 본의와 무관한 자의적 해석과 편의적 적용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한다 하겠다.


  ④전후좌우의 문맥을 살펴서 종합적으로 해석한다12). 적어도 하나의 사상과 주제를 설명하고 있는 한 단락 내지는 그 이상의 내용을 포괄해서 하나님의 본의를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⑤불명료한 주제와 내용은 보다 명료한 동질의 주제와 내용에 근거해서 해석한다(신약은 불신자와의 결혼에 대해 문자적으로 침묵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7:14)는 말씀은 결혼은 물론 불신자와의 동업 등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있는 일과 관련해서는 관계하지 말 것을 분명히 제한하고 있음을 본다) 



  Ⅲ. 결론


  이 시대에 세계 도처에 만연돼 있는 인본주의의 팽배는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얼마든지 하나님을 수종자로 삼는 패역이 도처에 난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본말이 전도된 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추구와 영광구현을 목적삼아 신앙해야 할 인생들이 타락한 죄성의 권세에 사로잡혀 종노릇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을 도구삼는 데서 비롯된 기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인본주의가 만연되게 될 때, 신앙의 정체성은 자연히 자의적 숭배신앙13)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말씀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관점 또한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가리킴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이런 영적 암매와 위기의 상황에서 신앙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은 말씀의 본의, 곧 성경에 대한 해석이 하나님의 심정으로 밝히 해명되고 회복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위에서 지적한 바른 해석의 방도는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시행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바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최선의 척도로 기능할 수 있으며 동시에 바른 성경적 신앙관을 재정립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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