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신학 서론


Ⅰ. 들어가는 말 / 조직신학의 필요성

 

조직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며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앙인들은 "복음주의"를 내세우며 또는 "성경중심주의"를 내세우며 조직신학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이유는 조직신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필요한 "이성적 요소"와 "철학적 사고"를 신앙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속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되기보다는 개인의 주관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치우친 신앙"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한 "치우친 신앙"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기독교의 진리를 체계화시켜 교리를 만들고 그 교리를 변호할 목적을 가지고 등장한 학문이 바로 조직신학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은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조직신학이 필요한 이유를 한번 살펴보기로 할까요?

 

첫째, 조직신학은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오늘날 어떤 신앙인들은 "이상하고 마술같은 신앙"을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나가는 두 사람이 대화하다가 A라는 사람이 "지난 밤에 회사일로 인해 밤을 세웠더니 참으로 피곤하군요"하고 말하니 그 말을 듣던 B라는 사람이 "그러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세요. 기도하면 피로가 싹 가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때 피상적으로 보면 B라는 사람의 신앙이 대단히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B라는 사람이 가진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기도를 무슨 소원이든지 이루게 하는 "마술 지팡이"쯤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잘못된 신앙행위를 인식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행위를 육성하기 위해 조직신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조직신학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연출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조직신학은 각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역할만을 해서는 안됩니다. 조직신학이 각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도구로 전락될 때 그것은 "치우친 신앙생활"을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이제까지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이 때때로 여러 신앙인들의 배척을 받은 이유는 바로 조직신학이 "기독교의 교리"를 수호하는 넓은 차원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는 좁은 차원에만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장로교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 목이 굳어져 누가 부르면 목만 돌아가지 않고 몸도 돌아가게 되며, 주일 성경공부가 오히려 예배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 침례교에서 오랫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 머리가 두 배로 커지게 되고, 자세히 살필 겨를도 없이 무조건 손을 내밀어 안수하기를 좋아하는 오순절교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 손이 두 배로 커지게 된다는 농담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조직신학은 자기 교파의 교리를 수호하려는 목적이 있기도 하지만 타 교파의 교리도 인지하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의 기본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타 교파의 교리도 수용하려는 목적을 가짐으로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조직신학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파괴하거나 슬며시 왜곡하는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는 어떤 파도 아닌 예수파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입장에서 다 "예수파"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각 교파가 기본진리의 토대 속에서 나름대로 세운 조직신학적 체계를 우습게 여기는 언행은 삼가해야 할 언행입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언행은 가장 신앙적인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에게 영적 교만이 가득찬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예로 역사상 이단으로 단정되었던 몬타누스주의와 재침례파 등이 그러한 주장을 했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몇몇 의심 가는 그룹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며 자기 그룹만이 최고의 신앙을 가진 것처럼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신학은 입술로만 "예수파"임을 주장한다고 하여 그 밖의 모든 이상한 주장조차 진리로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즉 어떤 단체가 입술로 "예수파"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도 내적으로 성경이 밝히고 있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어긋난 주장을 한다면 조직신학은 그러한 주장이 오류임을 밝혀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은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넷째, 조직신학은 넓은 범위로 말하면 기독교계 내에서 그리고 좁은 범위로 말하면 교단 내에서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 공동체에 10개의 그룹이 있다고 가정을 합시다. 그 중에 한 그룹이 자기의 주관적인 계시에 의해서 "92년 10월 28일 휴거설"을 주장한다면 나머지 그룹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을지라도 그 공동체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자체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얼마지 않아 곧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 온전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조직신학은 필요한 것입니다.

 

다섯째, 조직신학은 아름다운 신앙심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역사상 수많은 이단이 명멸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단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지만 어떤 이단은 꽤 오래도록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에도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몰몬교 등은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단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단들은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체계화된 조직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조직신학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체계화시키지 아니하면 그 아름다움은 지속되고 발전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형제회(Brethren Church)"라는 교단이 있습니다. 그들의 경건생활과 신앙적 태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교단은 오늘날 가장 급속도로 쇠퇴하는 교단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 하면 이들은 "신앙심과 그 신앙의 열매만 아름다우면 되지 조직신학은 무슨 필요가 있는냐? 그것은 진리를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다"고 하며 조직신학을 우습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킬 체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캘빈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서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캘빈은 개혁을 부르짖는 형제 자매들이 잔인한 박해를 받는 것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을 외치며 군중을 자기편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박해받는 형제 자매들을 변호하기 위해 바젤시에서 조용히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붓을 놓았을 때는 기독교 사상 가장 유명한 "기독교 강요"라는 책이 태어났습니다. 1536년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캘빈의 나이 겨우 26세였습니다. 칼빈이 26세에 저술한 이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 문헌 중 가장 귀중하고 영원히 남아야 할 책으로 지적이며 영적인 깊이와 능력을 소유한 천재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 강요"가 나오자 세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즉시 복음주의 신앙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최상위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혁파 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기독교 강요"가 개혁주의 교리를 변호하는 조직신학 책으로 개혁파 장로교회가 이 책을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장로교는 오늘날까지 기독교계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은 이처럼 아름다운 진리와 신앙심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조직신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서 자체를 연구하는 "주석신학자"들은 "조직신학자"의 연구를 신앙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조직신학자"들은 "주석신학자"들의 연구를 편협된 자기 중심주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원래는 학문적으로 주석신학은 조직신학의 한 부분에 속해 있었는데 18세기 중엽 조직신학에서 주석신학이 분리되면서 서로의 학문이 경쟁관계에 서게 되었고 그래서 조직신학자들은 "주석신학은 기초가 없다"고 주석신학을 헐뜯고 주석신학자들은 "조직신학은 내용이 없다"고 조직신학을 헐뜯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참으로 불행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석신학과 조직신학은 동등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주석신학은 성서 자체를 상세히 해석하는 것이고 조직신학은 성서로부터 취한 진리를 통해 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이 주석신학보다 성서를 덜 이야기한다고 해서 조직신학이 주석신학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조직신학과 주석신학은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주석신학이 조직신학을 멸시할 때 이상한 논리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시편 14편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이 구절의 처음과 끝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없다"라는 구절만 인용한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해석이 가능해져 버립니다. 성경을 이런 방식으로 마음대로 주석해서는 안됩니다. 앞에서 소개한 예는 극단적인 예이지만 역사상 많은 이단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성경의 일부분의 구절을 자기의 주장에 맞는 대로 해석하였습니다.

 

반대로 조직신학이 주석신학을 멸시할 때도 이상한 논리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조직신학과 주석신학은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Ⅱ. 조직신학의 구성

Ⅰ. 서론(Prologue)

 

1. 기독교 인식론(The Theory of Knowledge)

2. 종 교 ( Religion )

3. 계 시( Revelation )

4. 성 경

 

 

Ⅱ 신 론

 

1. 하나님의 본질

2. 하나님의 이름

3. 하나님의 속성

4. 삼위 일체(trinity)

5. 하나님의 계획

6. 하나님의 창조

7. 하나님의 섭리

 

 

Ⅲ 인간론

 

1. 인간의 기원

2. 인간의 본질적 구조

3. 인간 영혼의 기원

4. 영혼과 관련된 용어들

5.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6. 행위 언약 속에 있는 인간

7. 죄의 상태하에 있는 인간

8. 형벌과 징계

9. 하나님의 율법

10. 은혜 언약 속에 있는 인간

 

Ⅳ 기독론

 

1. 그리스도의 이름

2. 그리스도의 본성

3. 그리스도의 비하(卑下) 신분

4. 그리스도의 승귀(昇貴) 신분

5. 그리스도의 직임

6.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Ⅴ 구원론

 

1. 성령과 구원론

2. 구원의 순서

3. 그리스도와의 연합

4. 소 명

5. 중 생

6. 회심(회개와 신앙)

7. 칭 의

8. 양 자

9. 성 화

10. 성도의 견인(堅忍)

11. 영 화

 

 

Ⅵ. 교회론

 

1. 교회의 개념

2. 교회의 정치

3. 교회의 권세

4. 은혜의 수단

 

 

Ⅶ 종말론

 

1. 개인적 종말론

2. 그리스도의 재림

3. 천년왕국

4. 부 활

5. 최후의 심판

6. 최후의 상태

 

 

즉 조직신학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성경 구절에 대한 자세한 연구도 없이 성경의 한 두 구절을 이용해서 교리화시켜서는 안됩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성경에서 마태복음 27정 5절의 "유다가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누가복음 10장 37절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또한 요한복음 13장 27절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조합시키면 "너는 가서 자살하되 되도록이면 빨리 자살하라"는 교리가 되어버립니다.

 

조직신학이 꼭 필요한 것이지만 항상 주석신학과 긴밀한 협조관계에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조직신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Ⅲ. 조직신학 서론 요약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은 바로 기독교 복음을 좀 더 자세하게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신앙생활과 신학(조직신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성서의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신앙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회목사와 신학(조직신학)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신학이 없는 설교, 교육, 상담, 교회행정 등 모두가 조직적이고 체계가 없으면,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그래서 본 연구소는 앞으로 연속해서 질서 있고,체계적으로 신앙정립에 도움을 주고자 조직신학 서론부터 강의하고자한다.

조직신학의 분야들:

 

1. 서론은 기독교 교리의 기초가 되는 성경에 관하여 논하는 것이다. 신학의 개념, 성격, 역사, 방법, 계시 및 성경의 영감 등의 영역을 다루게 된다.

2. 신론은 하나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 속성(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 예컨대 성성(聖性) 같은 것을 말함.), 삼위일체론, 작정과 예정, 창조 및 섭리 등을 포함한다.

3. 인간론 또는 인죄론은 인간에 관하여 특히 인간의 죄성을 논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기원, 인성의 구성요소, 하나님의 형상, 죄의 기원, 죄의 본질, 죄의 전가(轉嫁), 원죄와자범죄, 죄의 형벌 및 구속언약 등이 포함된다.

4.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생애, 부활, 승천, 및 그리스도의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 등을 논한다.

5.구원론은 하나님의 선택, 소명, 중생, 회개와 믿음, 칭의, 성화 및 영화 등이 이에 포함된다.

6. 교회론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 관하여 논한다. 교회의 본질, 속성, 교회의 권세 와 임무, 교회의 조직, 말씀 및 성례 등을 논한다.

7. 종말론은 2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개인 종말론이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 불멸, 사후의 상태를 논하고, 둘째는 우주적 종말론인데, 그리스도의 재림, 중간상태, 죽은 자의 부활, 천년왕국, 마지막 심판 및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논한다.

 

이상이 조직신학이 다루는 연구의 영역인 것이다. 이 <조직신학 서론>의 개설의 목적은 일반 평신도를 위해서 개설되는 것이기에 평이하게 서술코자한다. 또한 일반 불신자에 대해서도 기독교의 교리기본 영역이 어떠한지를 쉽게 설명코자 함이다. 제2강의는 <신학>이란 그 뜻이 무엇이며, 신학의 연구 분야들을 강의코자한다.(제1강의 끝.)

   

 

Ⅳ. 조직신학 서론 (장로교 근본원리)

 

Ⅰ. 칼빈의 5대교리

종교개혁자로 너무도 유명한 존 칼빈의 5대교리는 신본주의를 신봉하는 장로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서, 이제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인본주의와 교리를 상대 비교하여 자세히 정리하여 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부분타락과 완전타락

 

1. 부분타락

 

인본주의(자유주의)자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할 때에 영적 도움을 받지 못할 정도로 완전타락을 한 것이 아니고, 부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의 양심과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운명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이 회개하고 믿게 할 수는 있으나 인간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간 각자는 자유의지를 갖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즉 죄인이 하나님과 협력하여 중생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망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완전타락(전적타락)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도록 주어진 일반은총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간에게 양심마저도 없다면 동물과 마찬가지인 존재가 될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양심대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므로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롬 2:14-15,20)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 2:17절에서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로마서 3:10절에서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나. 조건부 선택과 무조건 선택

 

1. 조건부 선택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택하여 구원하는 것은 그 부르심에 응하리라는 예견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신앙을 선택하고 이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초로 하여 선택하게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 무조건 선택

 

에베소서 1:4-5절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는 예정섭리에는 이미 창세 전에 결정되는 작정과 전적인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은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딤후 1:9), 인간의 어떠한 선한 행위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딤후 1:9, 행 13:48)

 

만약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이나 의지에 의하여 좌우된다면 이미 전능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지신 전능자이시며, 인간의 모든 의지는 그분께 종속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 일반적 속죄와 제한 속죄

 

1. 일반적 속죄(만인구원)

 

인본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세계)을 위하여 죽었으며, 오로지 그러한 사실을 믿고 복음을 받아 들이기로 선택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대속이 효과를 보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 제한 속죄

 

다른 말로 특별 속죄라고도 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오직 택함을 입은 자녀의 죄만을 제한하여 대속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4-15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라는 말씀에서 오직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로마서 8:33절에서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와 로마서 8:30절에서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에서, 미리 예정하신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을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송사를 할 수 없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라.가항력 은총과 불가항력 은총

 

1. 가항력 은총(거절)

 

인본주의자들은 성령이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할 수 있는 일은 하시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저항할 수가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죄인이 믿을 때까지 중생시킬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은사는 인간이 저버릴 수도, 외곡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2. 불가항력 은총

 

이를 효과적인 부름이라고도 부르는 데, 디모데후서 1: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와 디도서 3: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를 부르사 구원하심은 우리의 행위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의 섭리만이 요구되어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부르셔서 구원하심에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도 필요치 아니하며, 오직 그분의 전능하심만이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마. 구원의 불확실성과 구원의 견인

 

1. 구원의 불확실성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연결되어 일치될 때에라야만이 인간의 구원이 성립된다는 신인공동사역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혹 구원받은 사람도 신앙을 잃고 타락하면 구원에서 탈락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구원을 의심하게 되어 불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의 견인(확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의 확신의 근거를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변치않는 약속에 그 굳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6:17-18절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너무도 확실한 말씀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21-22절에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라는 말씀과 같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성도의 보증과 인이 되어 주심으로, 이러한 약속들을 굳게 확립시켜 주시며 하나님의 틀림없는 보호를 입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Ⅴ. 조직신학 서론의 내용

 

Ⅰ서론(Introduction, Prologue)

 

조직신학에서 서론은 조직신학의 연구방법과 원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바른 신학을 하는데 먼저 요구되는 문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정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규정한 기독교 인식론과 연구의 대상인 동시에 도구가 되는 종교, 계시, 성경에 대한 올바른 객관적 정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 후에 전개되는 모든 신학은 기초를 상실한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1. 기독교 인식론(The theory of Knowledge)

 

1)인식의 원천적 근거~하나님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 근본적인 지식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고전 8:6) 특히 조직신학의 모든 내용, 즉 하나님과 하나님과 관련을 갖는 피조물에 대한 지식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2)인식의 외적 근거~계시

일반 학문적인 진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학문적 방법으로 탐구하여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된 지식이나 구원의 지식은 성경에 보존되어 있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통하여서만 인간에게 전달된다.(요5:39) 따라서 조직신학은 성경을 가장 근본적인 인식의 근거로 삼는다.

 

3)인식의 내적 근거~신앙과 이성

일반 학문은 이성을 지식을 얻는 절대적인 매개로 생각하나, 신학은 신앙을 기독교적 진리 인식의 보다 중요한 도구로 간주한다.(갈3:5) 성경은 이성적 활동을 거부하지는 않으나 구원적 진리의 이성적 접근은 성령의 조명에 의한 신앙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2. 종교(Religion)

 

1)종교의 보편성

시,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종교가 참되냐 거짓되냐는 문제만이 제기될 뿐이다. 이러한 종교의 보편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귀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전3:11)

 

2)종교의 본질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는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숭배 행위” 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종교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 그리고 사랑과 신뢰의 감정”으로 파악한다.(신10:12,13) 한편 구약이 이와 같이 율법에 대한 인간의 경외를 중시한데 반하여 신약성경은 “복음에 대한 인간의 신앙과 경건한 마음”을 종교로 규정한다.(요6:29)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종교는 하나님과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영적 관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인간이 행하는 예배와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3)종교의 자리

혹자는 종교의 지식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그 자리를 인간의 “지성”에 두거나, 혹은 종교적인 느낌을 중시하여 “감정”에 종교의 자리를 두고자 한다. 이러한 편협한 주장에 반하여 성경은 인간의 일상생활, 사상, 감정, 의지의 중심이 되는 총체적 “마음(heart)”에 종교가 자리 잡는다고 주장한다.(시51:10)

 

4)종교의 기원

예배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를 성경이 증거하고 있으며, 예배의 시행자가 되는 인간에게 예배의 의지를 주신 것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예배의 대상과 시행 방법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보여졌다는 점에서 참 종교의 기원은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신4:13)

 

3. 계시(Revelation)

 

1)계시의 개념

유한한 인간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충분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만으로 접근하면 언제까지나 하나님은 불가해한 분으로 머무실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스스로에 대한 지식을 모두는 아니나 인간의 구원에는 필요한 만큼 충분하고 완전하게 전달하시고 이것을 통하여 당신을 예배할 수 있게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계시라 한다.

 

2)계시의 구별

하나님의 계시는 그 방법에 있어서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 그리고 그 내용과 목적에 있어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자연계시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과, 자연 현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초자연계시는 자연 현상을 넘어선 즉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적 출현이나 자연질서를 일시적으로 극복한 이적을 통하여 계시가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에 관하여는 더 상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3)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

하나님께서 당신과 더불어 교통하기를 원하시는 인간에게 자연법칙, 인간의 정신, 역사 등 일반적인 방편을 통하여 스스로를 계시하는 것이다.(시19:1, 2:, 롬1:20)

 

(1)일반계시의 불충족성

펠라기우스파, 자연신론자, 합리주의자 등은 일반계시가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인간의 영적 갈증을 해소시키며 나아가 구원을 얻게 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죄의 영향력은 일반계시의 방편인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훼손시켜 하나님의 자연을 통한 계시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롬8:22)

②인간은 타락하여 자연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올바로 수용할 인간 자체의 능력을 상실하였다.(엡4:18)

③일반계시는 자연 현상과 인간 역사 뒤에 숨은 하나님과 영적 세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므로 인간에게 영원한 세계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주기에는 불충분하다

④일반계시는 과학 탐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종교적인 진리를 제공하는 데는 지극히 미흡하다. 즉 일반계시를 통하여는 구원의 길은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 따라서 일반계시에 기초한 그 어떤 종교체제나 철학도 구원을 이루게 해줄 수 없다.(요14:6)

 

(2)일반계시의 의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일반계시가 질적으로 저하되고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으나 하나님이 본래 타락 이전에 인간에게 주신 원시계시이며, 오늘날에도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결코 낮게 평가될 수 없다. 일반계시의 가치를 세분하면 아래와 같다.

 

①미약하나마 창조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드러낸다.(롬1:19~20)

②인간은 타고난 본성으로 율법이 명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다.(롬2:14)

③일반계시는 하나님을 찾고 갈구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행17:27~28)

④자연 속에 나타난 계시를 통하여 성경의 진리성이 더욱 확고히 드러난다.

⑤불신자로 하여금 성경의 진리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고 또 성도와 불신자간의 공동영역으로서 전도를 위한 접촉점이 될 수 있다.

⑥인간의 양심에 작용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케 한다.

 

4)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

구원 진리에 관한 일반계시의 미흡함을 완전히 보완하기 위하여 일반 자연질서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계시하신 것이 특별계시이다. 한편 특별계시를 하나님의 영감으로 훼손됨이나 오류 없이 문서화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하나님은 구속사의 전개와 함께 타락 직후부터 시작하여 성경의 완성 때까지 여러 방법으로 특별계시를 주셨는바 성경은 그 중 완전히 구비된 특별계시에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내용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으로서 특별계시의 방법의 한 종류가 아니라 특별계시의 결정적, 종합적 방법이다. 또한 성경은 인간에 의한 하나님의 직접적 특별계시의 간접적 기록이 아니라 기록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직접적 간섭 즉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다. 즉 성경이란 용어는 특별계시 사건인 동시에 방법이며 그 내용을 총칭하고 있는바 3가지 관점을 정확히 구분 종합하여 그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1)특별계시의 필요성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게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타락 이후부터 특별계시가 요청되었다. 이렇게 볼 때 특별계시가 필요하게 된 동기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또 특별계시가 수행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특별계시의 구체적인 기능들이다.

 

①일반계시의 모호한 점을 해석하거나 인간의 잘못된 견해를 정정한다.

②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솜씨에 의미를 부여한다.

③인간 구원을 위한 구원 진리를 밝힌다.

④인간의 영적 상태를 변화시켜 하나님과 더불어 긴밀한 친교를 갖게 한다.

 

(2)특별계시의 방법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초자연적 방법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그 방법에는 하나님의 현현과 신언, 이적이 있다. 그리고 이 계시를 영구히 보존 전달할 것 즉 특별계시의 총체를 영감으로 보존시킨 특별계시의 종합적 방법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의 이해는 극히 중요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모든 조직신학이 특별한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①신현(Theophany)

하나님은 타락이전 친근한 교제를 나누시던 것을 타락이후 원칙적으로 금지하셨으나 특별계시의 부여와 적용을 위하여 구속사의 장면에 다음 3가지 방법으로 현현하셨다

 

㉠무생물을 통한 임재의 상징을 보임으로서

ⓐ그룹들 사이에서(시80:1 99:1)

ⓑ물, 연기, 구름 사이에서(창15:17 출3:2 시78:14)

ⓒ폭풍 속에서(욥38:1 시18:10~16)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왕상19:12)

 

㉡천사를 통하여.(단8:13 9:11 10:5 슥1:7 6:5 행7:53 갈3:9)

㉢성육신(incarnation)과 교회

하나님의 나타나심, 즉 현현 중에서 제 2위 성자의 출현에 대한 구약의 표현인 여호와의 사자(창16:13 31:11~13 32:28)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의 충만이 체현(embodiment)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오순절 이후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고전3:16 6:19 엡2:21)의 존재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있을 완전한 현현과 임재(계21:2~3)의 현재적 증거이며, 성령은 오늘날 성경에 주어진 특별계시를 우리에게 조명시켜 주는 사역을 행하고 계신다.

 

②신언(Divine Word)

하나님이 특별한 경우에 직접 나타나셔서 음성이나 꿈과 환상 등을 통하여 당신의 의지와 구원 진리의 계시를 전달한 것을 지칭한다.

 

㉠구약시대

ⓐ음성으로(창2:16 출19:9 삼상3:4)

ⓑ제비뽑기, 우림과 둠밈으로(삼상10:21 느11:1 민27:1 신33:8)

ⓒ꿈으로(민12:6 삼상28:6 욜2:28 창40:5 삿7:13)

ⓓ환상으로(단1:17 암7:1~9:15)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자신이 가장 높고 가장 참된, 그리고 완전 유일한 로고스, 즉 말씀으로서 모든 신언의 원천이었다. 또한 그는 당신의 성육신(incarnation) 기간 전체를 통하여 신언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당신이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신언의 참된 의미를 조명 적용해 주시고 계신다.

 

③이적(Divine Work)

 

㉠이적의 의미

이적은 다음 세 요소를 갖출 때에야만 특별계시의 한 방법, 즉 참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즉 일시적 눈가림이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권능”에 의한 것으로서 진정으로 자연질서가 일시적으로 극복되며 인간의 경이의 대상으로 인지될 만한 특별하고 비상한 “기사”이되 그것의 목적이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의 증거인 “표적”이 되기 위한 것일 경우에 국한된다.

 

㉡이적의 작용

이적은 특별계시의 내용으로 주어진 구원 진리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진리 실천의 능력이 있는 창조자의 직접적 선포임을 증거하며 그 권위를 확정해 준다.

㉢결정적 이적

성경 즉 구원 진리의 가장 결정적 이적은 결국 하나님의 본체로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자체이시다. 물론 성육신(incarnation)이라는 이적의 방법을 통한 특별계시의 내용은 예수 및 선지자, 사도들을 통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성육신(incarnation) 자체의 이적성이 그 진정성을 확립해 준다.

 

(3)특별계시의 특징

 

①목적성

특별계시는 단순히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론적 지식의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과 그리스도의 속죄, 그리고 성경의 구원 사역을 그 내용으로 하여 죄인을 변화시키고 종국적으로 구원받게 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 의도적 계시이다.

 

②언행 종합성

특별계시의 방법에 대한 고찰에서 살펴보았듯이 특별계시는 단순히 말씀과 교리로만 구성된 관념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체적 구원행동으로서 실증되며 구약시대의 역사와 제사의식,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부활 승천, 현대에 있어서의 교회와 성도 개인을 통한 성령의 활동으로서 입증되고 살아 있는 구원 진리 체계이다.

 

③역사의 점진성

특별계시의 내용은 타락직후의 원시복음에서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기까지 인간 역사의 전개에 따라 점차적으로 계시되었다. 즉 하나님은 구약시대로부터 신현, 신언, 이적의 방법을 통해 부단히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는데 그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시 최고도에 달했으며, 이어 성령 대강림, 사도들의 특수공작으로 계속 진행되다가 마침내 그 특별계시는 성경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최종 충족, 완료되었다.

 

4. 성경

 

1)특별계시와 성경과의 관계

특별계시는 구속사 전개의 각 시점에서 주어진 계시 사건이고 성경은 그것의 문자적 보존이다. 따라서 성경 전체는 특별계시이나 특별계시 전체가 성경은 아닌 것이다.

 

(1)특별계시와 성경의 차이

 

①방법상 차이

특별계시는 외적인 나타남, 내적인 암시, 이적 등을 통한 전달 사건이나 성경은 그 전달 사건의 내용 및 상황에 대한 기록이다.

②시간상 차이

일반적으로 특별계시는 그것의 기록인 성경보다 먼저 주어졌다.

 

③범위적 차이

특별계시의 일부만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요21:25)

 

(2)특별계시와 성경의 같은 점

성경은 특별계시의 종합적 방법으로서 특별계시 내용의 수집이며, 양자 공히 인간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분리될 수 없다.(살전2:13 롬3:2 히4:12 요10:35)

 

2)말씀으로서의 성경

 

(1)말씀의 이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때 그 말은 다음 4가지 뜻을 동시에 가진다.

 

①만물의 기원~계시

성경 말씀은 인간의 뜻이 개입되지 않은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이다.

 

②말씀의 상태~역동적 생명

성경 말씀은 단순한 이론이나 언어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살아 있는 능력이다.

 

③말씀의 목적~구원의 복음

성경 말씀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즉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④말씀의 형식~성문화

물론 말씀의 출처는 오직 하나님 자신으로서 여러 특별계시 사건에서 직접 말씀하셨다. 성경은 그것을 성문화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것은 간접적 계시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경 기록 자체에 영감으로 개입하셔서 성문화된 계시를 직접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단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은 구속사 전체에서 현대적 시점에서는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이나 성경 이전 시대에는 본래의 말씀계시와 그것의 성문화된 계시가 공존하였다. 한편 원 말씀계시와 성경의 관계를 전자는 존재론적 말씀으로 후자는 인식론적 말씀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2)말씀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증거

 

①내적 증거

㉠통일성

성경은 주어진 시간, 공간, 역사적 배경이 다르며 그 인간 저자의 모든 인격이 다르나 그 내용과 목적이 서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원 진리를 조화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유효성

성경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의 말씀이므로 인간의 전인격적 구원에 유효한 적응성을 갖고 있다.

 

㉢절대성

성경은 인생의 지침을 제공하되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의 절대적 근거를 제시하므로 성경 이외의 그 어떤 사상 체계도 이와 같은 기준을 제공하지 못한다.

 

②외적 증거

㉠예언의 증거

성경의 예언은 완전히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어 가고 있다.

 

㉡이적의 증거

일시적 눈가림이나 자연질서에 편승한 인간 이상의 능력발휘가 아니라 창조자의 주권으로 행해진 진정한 자연질서의 일시적 극복인 이적은 성경의 권위를 확증해 준다.

 

㉢역사적 감화력의 증거

성경을 믿고 받아들인 자들의 역사와 이방 사설을 신봉하는 자들의 일반적 문화의 질적 차이는 창조자로서 피조물의 일반적 행복을 기원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감화력으로 깨닫게 해준다.

 

3)성경의 영감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성경을 기록하실 때 인간 기자로 하여금 오류 없이 당신의 뜻을 쓰도록 능력으로 간섭하신 것을 가리킨다.

 

(1)영감에 대한 성경의 언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으므로 비로소 믿음과 행위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딤후3:16), “성령이 가르치신 것”이고(고전2:13),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며(고후13:3), “하나님의 말씀”이다(살전2:13 사30:1 렘36:27 겔21:8 호2:21 암6:8).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출17:14 민33:2 사30:8 렘30:2 겔24:2), 이는 절대 신빙성이 있고 인간의 임의대로 해석할 수 없다.(벧후1:20~21)

 

(2)영감의 성질

극단적인 견해인 기계적 영감설, 동력적 영감설 보다는 유기적 영감설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

 

①기계적 영감설

정신활동이 중단된 성경의 기자가 성령이 불러주시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는 기자들에 따라 독특한 문체, 개인적 경험 등이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인 자료수집이 이루어졌으므로(왕상11:41 14:29 대상29:29 눅1:1~4), 이 주장은 타당치 않다.

 

②동력적 영감설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에 대하여 영감하셨으나 그것은 심적, 영적 활동에 대한 고무에 불과한 간섭행위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성경 오류발생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특별영감의 영역이 없어지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③유기적 영감설

성경의 기자는 성령의 유기적 영감에 의하여 각 개인의 성격, 교육, 문체( 등의 손상 없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 기록 당시 성령께서는 항상 기자를 감동시켜서 그들의 능력이 죄의 영향에 의해 잘못됨이 없도록, 심지어는 용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자의 개인적 특성과 시대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나 오류에 이르지는 아니 하였다.

 

(3)영감의 범위

사상만 영감되었다는 주장과 언어까지 영감되었다는 주장, 그리고 언어가 영감되었을 때 부분이 영감되었는가, 전체가 영감되었는가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①사상 영감설

사상은 영감되었으나, 언어는 인간 기자의 선택에 따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언어는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므로 사상의 영감만을 독립해서 수용할 수는 없다.

 

②부분 영감설

성경 가운데 어떤 부분(교리적 문서, 도덕적 문서, 신약성경)은 영감된 반면, 다른 부분(역사적, 과학적, 연대적 부분, 구약성경)은 영감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들은 상호간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부분만이 영감되었다는 주장은 성경 영감설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③완전 영감설

성경 전체가 영감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성경 모두가 영감된 것이라는 바울의 주장(딤후3:16)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경 용어, 문체, 표현에 대하여도 영감하셨으므로(축자 영감설), 성경 어느 부분, 어떤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마22:43~45 요10:35 갈3:16)

 

(4)성경의 완전성

성경이 완전하지 않다면 성경에 기초를 둔 기독교는 부실한 집단이 되고 만다.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극복하며 이 교리를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아래 점들을 강조했다.

 

①권위성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적 권위” 가 있다. 이 권위는 교회나 인간이 아니라 성경 자체에 의해 증명된다.(사8:20) 단지 인간은 이 권위를 인정하며 그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해야 할 뿐이다.

 

②필요성

성경은 교회에 유용한 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를 베푸는 방편으로 절대 필요하다.(딤후3:15)

 

③명료성

성경 가운데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진실하게 구원을 갈망하는 자에게 필요한 구원의 지식은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교회나 사람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구원의 도를 알 수 있다.(시19:7)

 

④충족성

카톨릭이 유전을, 재세례파가 내적 조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나, 성경은 그 자체로 개인과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5)성경의 정경성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며 영감에 의해 쓰여진 책인 것은 이미 밝힌바 있으나 그렇다면 그 무엇이 정경성을 가진 진정 믿을 수 있는 성경이냐? 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먼저 성경 66권은 이미 스스로가 정경임을 보여주며 그 자체의 권위로서 이를 증명한다. 이를 교회사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공식 인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①구약 정경

39권으로 구성된 구약이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얌니아 종교회의에서이다.(AD 90년) 공동번역 성서에 수록된 9권의 외경은 벌게이트(Vulgate) 역에서 제롬이 삽입한 것이다.

 

②신약 정경

27권으로 구성된 신약이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카르타고 회의에서이다.(AD 397년) 특히 신약정경의 채택 원리에는 사도성, 영감성, 보편성이 강조되었다.

 

(6)성경 해석의 원리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차적으로 기록한 “원본”과 그 원본을 옮겨 쓴 “사본” 그리고 히브리어, 아람어로 기록된 구약과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을 각 나라 말로 번역한 “역본”이 있다. 현재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본은 박물관에 수만권이 있고, 역본은 수천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성경은 아래의 원칙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①원어에 충실하며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어야 한다.

②당시 역사적인 정황이나 성경의 인간 기자의 개인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③상하, 원근 문맥을 파악하여 단편적인 해석을 피한다.

④ 성경 전체는 통일성을 지니므로 평행구절을 참조하여 전체 내용에 조화를 깨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심오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며 그 뜻을 조명하여 주시기를 요청하는 일이다.(요16:12~15)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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