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적 행위와 복음적 믿음이 주는 교훈

 

갈라디아서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예슈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율법적 행위와 복음의 믿음

 

안디옥 교회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지역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잇었다 안디옥 교회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곳으로(행 11:26),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했고(행 11:27-30), 최초로 이방선교를 시작했던 교회(행 13:1-3)였다. 게바(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인 야고보와 함께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찿아 왔을 때 때마침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형제들의 눈을 피해 물러감을 바울이 책망하고 있다. 본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하거나 대화하는 조차 꺼렸다.

 

더구나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 까지도 율법적 유대인들의 금기를 의식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바울은 외식(진실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으로 간주하여 교회의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베드로와 바나바를 책망하고 있다.

지금의 이방인들의 교회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은 율법 시대에서 천오백년을 살아온 동안 이방인과 유대인들과의 분리된 삶을 살아온 율법적인 계명과 풍습 안에서 자라온 유대인들에게는 당연히 여길만한 일이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율례는 율법의 율례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이후에 나타난 새 언약의 교회는  율법적인 율례와는 다른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오히려 율법적인 것을 배제하고 믿음의 행함을 지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지적한 대로 베드로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외식적인 행위는 율법으로서는 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의지가 없음을 지적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다

 

성경에서 나타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행함

 

1. 율법의 의 와 믿음의 의

 

율법의 의는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그 근거는 율법언약은 행위언약으로 새 언약이 오기전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계약법인 율법으로 주어졌다(출24장)

출 24장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율법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은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언약으로 백성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모든 말씀을 준행(遵行:행위를 쫒아 행함)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에 그 증거로 짐승을 잡아 피로서 언약을 체결하였는데 피를 증거 삼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이 맺은 쌍무언약에서 어느 한쪽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의 형벌이 내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율법 아래에서는 죄성이 있는 인간에게는 행위로 의를 이루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다

사도행전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예슈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예슈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3:11) (빌3:9)

결론적으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를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것은 사람의 행위를 나타내는 육체로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부패성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미이다.(롬3:9-20)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는 행위에 근거를 두지 않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  새언약의 은혜를 예비하신 이유는 이미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선택으로 주어지는 시험에서 실패한 행위언약에서 비롯 되었다. 최초의 언약인 아담과의 언약은 신학적으로 원시언약이라고 하는데 선악과를 선택하는 행위언약이었다  이미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도 언약의 실패한 경험을 두고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절대적인 측면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롬5장12절)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게 되었고 세상에 죄가 관영하게 되었으므로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는 살수 없는 조건에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무모한 실패의 원인은  영적인 원인도 작용하는데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악한 영의 지배아래 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은 선을 행하려고 하나 죄가 악을 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롬7장14-25)

인간의 어떤 의지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죄를 이길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대로 보면 사람이 율법으로는 의에 이를수 없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명백한 결론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한 답은 로마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첫째는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롬3장19)

 

둘째는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롬7:7)

 

셋째는 죄인에게는 율법의 진노를 내리게 함이다(롬4:15)(갈3:13)

“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

 

넷째 죄 아래에서는 범죄를 더하게 함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롬5:20)

 

다섯째 율법아래에서는 죄가 살아남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롬7:8)

 

여섯째 율법 아래에서는 죄로 인해 우리를 속이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장9-11)

 

일곱째 그리스도 이전에 우리의 몽학선생(초등교사)이 되어 제한적인 가르침을 줌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3:24)

율법은 그리스도의 법이 있기전에 먼저 이 땅에 주어진 것은 율법은 본래 선한 법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이라 볼 수 있다.(롬7:12) 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법에 합당한 하나님의 의를 행위로 지킬수 없는 인간의 죄성 때문이다. 그러나 죄성이 없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만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어 셨다(요 19:30)

율법으로는 인간이 의를 얻을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서 새로운 법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 행위와 상관없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고 구원에 이르게하는 그리스도의 법인 새언약으로 세워진 법이다. 이 새 언약의 구원의 법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복음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주어진 은혜의 법으로 나타났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율법의 역할을 보면서도 나와는 율법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또 이미 지난 과거에 율법의 역할이 필요한 때가 있었으나 그리스도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새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율법은 자신에게는 폐하여 졌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신자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친 탓이다.

심지어는 율법은 우리 이방인들과는 관계가 없고 유대교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구원을 주기 위해 유대인들을 택하여 그들을 통해 보여주기 위한 모델로 삼으신 것인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민이라는 엉뚱한 자긍심으로 이방인인 우리를 아직도 경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 유대인은 다르지만) 그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려는 예슈아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기독교는 그들에게는 이단 종교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다. 율법도 복음도 구원도 은혜도 그리고 성경이 지침하는 모든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율법이 모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율법과는 상관 없고 율법은 이미 그 효력을 폐하였다거나 자신은 구원 받은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체험도 없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라는 표현은 바울이 로마 교인 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로마의 교인들 중에는 이방인도 많았다)만 볼수 없는 것은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율법에 대해 신학자 딘은 “율법은 세력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율법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영적인 세력 즉,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만약 율법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 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데 율법 없이 복음이 올수 없는 것은 율법의 역할로 인해 우리의 죄가 죄로 드러나게 되어 율법의 심판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죽어야 산다” 라는 명언이 있다. 죽음 없는 부활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죽음)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부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

 

2. 율법의 행위와 복음의 믿음의 행함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는 무엇이가? 율법의 행위는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모세오경에서 정해진 법으로 나타나는 모든 행위이며 육체에 관계된 것으로 가시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율법에 근거를 두는 사고의 영역 까지도 포함된다. 율법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리스도 이후에 복음으로 주어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은혜 아래에 있는자라도 다시 율법을 따라 행하려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멀어진다 율법을 준수하려는 자들은 절기와 날을 중시하고 지킨다

골로새서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갈 4장 9-11

“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안식일을 중시여겨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이 오는 것처럼 자신이 믿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것과 율법을 회복 시키려는 자들이(지금도 율법 주의자들이 있다) 있어 모세오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보다 위에 두는 자들이 있다.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아직 율법 아래에 있는 상태로 남아있는데 율법의 영이 역사하면 자신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여기지만 죄가 자신을 속임으로 자신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롬7장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는 계명(율법)을 수단으로 삼아 신자들에게 결과적으로 사망안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죄가 있는 이상 율법이 정하는 최종적인 판결은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은 죄와 상관이 없지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십자가를 못박은 로마 병정은 우리에게는 죄의 모습으로 그리고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우리에게는 율법으로 보면 될 것이다. 죄와 계명(율법)의 합작으로 율법은 사망을 판결하고 죄로 인해 우리는  죽음에 처하는 것이다.(로마서 6장)

 

그리스도의 계명을 순종하는자는(행하는 자는)   자신을 위해 어떤 행위를 가지려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복음의 역사에는 십자가의 형벌이 따른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로마서가 말하는 구원의 복음이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함자는 복음을 부인 할 것이다. 이 영적인 비밀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행위로 나타나는 것니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자신외에는 알지 못한다. 복음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죽음을 통해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은혜의 평강을 누릴수 있다.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 프로그램이므로 복음을 믿고 따르면 영생을 얻는 길이다 이것이 믿음의 의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통한 의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평생을 걸려 의를 얻기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쫒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의는 이삭을 제단에 바치면서 믿음으로 의를 얻었습니다

야고보서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우리는 너무 쉽게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신도들이 듣기 좋아라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이 시험은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남니다.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코 구원은 없습니다.

 은혜로 주어진다고 모든이에게 구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증거되어야 옵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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