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 강의요약본


 제 1강
Witnesses to the God Who Hears and Sees


John P. Brown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고 보시고 우리의 고통에 편에 서셔서함께 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다른 이방민족의 신들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들의 편에 함께 설 수 없다. 성서에 드러난 하나님의 뚜렷한 특징은 들으시고 보시고 느끼시고 또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동하시고 사람들을 불러 간섭하심을 알리시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도록 하시는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자신이 세상의 고난을 짊어지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그 분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선교란 이런 측면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알리는 부르심이다. 0


우리가 어떤 한 민족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복음을 제시할 때, 이것은 우리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으며 고생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려고 왔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19세기에 들어왔을 때에 여성들에게는 모든 교육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초창기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전략의 하나로 전국의 모든 주요도심에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고오와 농부와 나병환자들과 창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한국의 복음화에 있어서 대단히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기독교가 대처하고 선도했으며 이 중심에는 늘 선교사들의 많은 지원과 선도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선교가 곧 그 백성의 고통과 고난과 아픔을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그리고 그 아픔과 함께 하신는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사역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속에서 성육신적으로 실천적으로 선포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십년 동안을 호주에서 원주민과 호주사람들의 화해(和解)를 위하여 노력해 왔는데, 이것은 호주의 연합교회 총회로부터 위탁을 받아 감당하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원주민들이 복음을 복된 소식으로 받아들이려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먼저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함께 하고 그들의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적으로 개종자들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의 통치를 고려하여 정의를 위해 너와 내가 함께 싸운다는 깊은 연대감으로부터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호주의 역사는 지난 2세기 동안 이주해 온 자들과 원주민들과의 폭력과 부당한 관계로 서로 신뢰를 상실하고 아픔을 갖고있는 상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 째가 바로 토지의 박탈이었다. 처음 유럽의 정착자들이 호주에 들어왔을 때에 그들은 원주민들이 특정지역의 땅과는 관계가 없다고 여기고 그들의 토지를 몰수해 버렸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그들의 땅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들은 땅과 정신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들의 땅을 상실했다는 것은 곧 그들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세기에 걸쳐서 얼마의 교회와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얼마의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분노를 하며 원주민들과 행동을 같이 했다. 다행스럽게도 1975년부터 원주민들의 토지에 관한 권리들이 점차로 정부에 의해 인식되어져서 전통 토지들의 관리와 소유권등이 원주민들에게 되돌려 지고 있다.


그 투쟁에서 일부 교계 지도자들과의 연대는 호주연합교회내에 원주민.섬사람연합교회 형성에 중요한 한 요인이 되었다. 우리가 희망과 치유와 포용의 촛불을 켰을 때, 우리는 더 존중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미래와 인종차별과 소외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헌신하기로 다집하였다. 이 깊은 감동을 주는 행사는 그 자체가 복음의 선언이었던 것일 뿐만 아니라 EH한 그것은 우리 사회 한 복판에서 이러한 아픔이 인정되기 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방식의 복음을 원주민과 비원주민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것이 결코 원주민들의 토지권 반환을 위한 투쟁이나 역사를 진실되게 다시 말하고 역사의 자랑스런 부분 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부분도 인정하고 아이들을 빼앗았던 것에 대한 사과등의 모든 일이 복음의 완전한 선포를 나타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한 민족의 아픔점이나 토쟁과 연결을 갖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길을 닦는데 아주 필수적인 것이다. 이런 것이 없이는 복음은 단순히 또 하나의 철학이나 종교의 수퍼마켓에 나와 있는 또 하나의 종교가 되어 버린다. 이 강의를 통해 가장 중요한 논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대상 민족의 문화적 전통들과 복음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여러분의 관습과 믿음들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가지고 온 복음을 믿으세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화해(和解)의 삶을 통하여 전해지는 것이다. 결국 십자가의 복음이 화해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보냄받은 화해의 사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를 적대시하고 배타적인 예수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2강
성육신적 목회(Incarnational Ministry)


서정운 박사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선교의 기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적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 선교적 목회란 곧 성육신적 목회를 말한다. 어느 목적지로 나아갈 때, 지도가 필요하듯이 교회의 지도는 곧 그리스도이며 그 분이 곧 머리이시다. 역사속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된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에 교회는 충분히 증언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복음의 능력으로 덧입은 교회는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려는 잘못된 유혹에 좁은 길로서의 그리스도의 초청에 바르게 순종하지 못해왔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교구중심의 목회를 지향한다. 이것은 곧 교회와 주민생활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일생이 교회와 교회생활중심적이다. 교회가 사제나 감독의 지배하에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따른다.


결국 이러한 교회는 생동감이 없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바른 사명의식을 고취시키지 못하고 사회의 비판을 받은 역리적 기능의 모습을 띄게된다. 이같이 기독교 왕국이 재현되고 있는 동안에 목회는 계속적으로 기구화되고, 태도화되고, 세속화되어왔다. 또 하나의 특징을 들 수 있는데 관리위주의 목회를 말한다. 교인을 관리하고 재산과 제도와 시설을 관리하는데 역점을 둔다. 대단히 피동적인 목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기서 성육신적 목회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고쟈 하는 것이다. 그것은 첫 번 째로 교회자체보다 선교, 즉 구원을 핵심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선교위주의 목회를 말한다. 둘째로 그리스도론과 더불어 성령론이 강조되는 목회이다. 오랫동안 신학이 기독론 중심으로 발전해오면서 성령에 대해 다분히 등한시 해왔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순절이 성탄절과 부활절과 고난절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교회는 오순절을 기점으로 하여 탄생했고 오순절 강림한 성령의 주도로 교회를 통한 복음은 세계속으로 누룩과 같이 확장되어 왔다.


성육신적 목회를 생각해보면서 일상적 목회에 어떤 면을 고려해야 할 지를 성찰해보고쟈 한다. 우선 예배의 모습이다. 예배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에게 깊은 존재론적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다가오는 은혜의 두드림앞에 겸손하게 결단적으로 응답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삶의 현장에서까지의 응답으로 이어진다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응답적 삶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과 지속적인 상기(想起)가 끊임없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고수해왔던 예배형식에 대해 완고하고 폐쇄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 현대의 문화적 감각을 수용하면서 보다 열린 자세로 은혜와 진리에 대한 응답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도전이 있어야 한다.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예배자 자신의 삶 전부를 원하신다. 개신교역사는 한 마디로 설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선포이다. 그러나 현대의 설교자는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고민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고민으로 말미암아 설교의 현장에서 강단의 권위는 점차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피상적인 언어의 사용과 현학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자세, 신학의 결핍으로 야기되는 깊이없는 말씀이해,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구적 설교자의 자세로 말미암아 말씀의 기근이 처처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대의 교회는 전도의 열정을 잃어버렸다. 뜨거운 전도의 열기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선조들의 이러한 뜨거운 전도의 열기를 잘 이어받지 못하고 많은 교회들이 순수하고도 뜨거운 전도의 열정(熱情)을 잃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철저한 제자를 길러내는 일에 더욱 열의를 보이고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열기도 회복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현대인들은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의 무릎이 없다. 공동체속에 기도의 뜨거움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합심하여 기도하고 손을 잡고 기도하고 공동체속에 부어주신 기도의 제목을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밑거름은 다름아닌 기도의 열기였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성의 회복이 시급하다. 교회는 빵을 함께 나누는 자들의 모임이다. 배고픔속에 있는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눈물이 있는 진정성만 회복되어 나아간다면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회복되어져 나갈 것이다.



제3강
중국에서의 기독교


G. Thompson Brown


언제 기독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갔을까?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200년도 넘게 번창하다가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왜 기독교가 중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독교가 중국에서 외국인들의 교회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기독교는 많은 애국지사들의 마음속에 아편무역과 식민세력과 연계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것은 커다란 비극이었고 중국에서의 기독교 선교의 평판에 이후 100년 동안 악영향을 미쳤다. 되풀이되는 주제에 다시 주목해 보아야 한다. 즉 기독교 선교의 이국적인 모습은 중국에서의 기독교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국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동안 선교사들은 중국 전 지역에 걸쳐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학교, 교회, 병원, 고아원, 신학교등을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전족이나 조혼, 문맹퇴치, 여권신장과 같은 개혁을 선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0명도 넘는 선교사들과 동수의 선교사 자녀들이 중국에서 뼈를 묻었다.


문화혁명 기간동안 중국에 있던 모든 교회들은 폐쇄되거나 창고로 바뀌거나 파괴되었다. 그 10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공적인 예수그리스도의 예배는 없었다. 중국선교는 완전히 끝났는가? 그리고 나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난다. 어떤 이는 이것을 기적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1979년 상하이에서 모엔이라는 교회가 문을 열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교회가 열리자 그 교회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나씩 교회는 문을 열었고 새 교회가 매주 10개 정도의 비율로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에는 중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따라잡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 매우 신중하게 줄잡은 어림 수치들이 있는데, 천오백만에서 이천 만명의 그리스도인, 13,000개의 조직화된 교회들이 예배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몇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선교사들이 세웠던 든든한 기초(基礎). 사람들은 1949년 이전에 선교사역이 왕성히 일어났던 곳이 오늘날에도 왕성하다고 한다.
②중국정부의 정책의 변화. 그들은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현대산업국가를 이룩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개방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에는 교회도 포함되어 있다.
③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패(失敗). 이것은 진공상태를 만들어 사람들은 상실감 허덕임에 고 통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무언가 믿지 않으면 않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공동체들의 우정 어린 돌봄이 그들에게 어필하게 되었다.
④많은 새신자들이 신유은사에 의한 체험에 의해 회심하게 된다. 그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이 기 도의 결과로서 치료를 받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국교회의 특징들은 무엇일까?


①중국의 교회는 중국적인 교회였다. 중국의 교회는 철저히 중국적인 교회가 되야 함을 줄기차 게 주장해 왔다.
②중국교회는 삼자교회라고 부른다. 중국교회는 한국선교사들이 사용하였던 네비우스선교정책의 모토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경영과 구성을 위해 외부로부터 보조를 원하거나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밖의 교회들과 중국교회가 함께 하는 교육 사업이나 의료, 복지 사업들은 함께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③중국교회는 자신을 초교파교회라고 부른다. 현장의 교회들은 운영방식이나 예배의 방식에 있 어서 엄청난 자유를 누린다. 예를들어 세례나 침례가 다 인정되어

   신자들이 원하는 데로 받는다.
④중국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교회다. 크리스쳔이 됨으로 오는 惠澤은 아무 것도 없다.
⑤중국교회는 신학과 예배에 있어서 보수적인 교회다.
⑥중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하나는 등록된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교회다. 정 부는 등록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등록하려면 정규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와 평신도든 목사든지 간에 리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박해의 시절들을 기 억하며 정부를 의심하고 있다.




제4강
두 교수님과의 대담회


(Samuel H.Moffett & Scott W. Sunquist)


이번 강의는 마펫목사님과 스코트 선큇 교수님과의 자유로운 대담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마펫목사님은 살아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증인이며 한국교회 형성의 산파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런 분들의 모습과 대담을 경청할 수 있는 기회만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가슴벅찬 일인지 모른다. 먼저 마펫목사님의 어린시절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 함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어린시절의 평양에서의 이야기는 단 한번도 북한 땅을 밟아보지 못한 전후시대의 우리들에게는 적잖이 동화와 같은 이야기로 들려왔다. 진정 그 땅이 그랬었단 말인가? 그는 아버지 마포삼열 목사님과 같이 선교에 헌신하여 마침내 1947년에 중국선교를 위해 이방 땅으로 가게된다. 공산주의의 팽배와 많은 사상의 혼란이 난무하던 복잡한 시기에 그는 성실하게 선교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그는 일제시대 많은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신자들의 뜨거운 신앙열기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묘사해 주셨다. 그가 증인이어서 그런가? 그의 증언에는 힘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고 공감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스코트 목사님의 사역에 관한 일화와 선교적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있었다. 그는 싱가폴에서 수년동안 선교사로서 봉직하게 되는데, 싱가폴에서의 선교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특별히 한 질문자가 기독교와 사회발전에 대해서 말하면서 기독교 복음이 늦게 들어간 일본이나 싱가폴이 일찍부터 기독교가 들어간 남미의 콜롬비아아 같은 나라들에 대해 어떤 차이가 있는 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많은 질문들이 오고가면서 그렇게 대담회는 이어졌다. 위험한 지역에서의 선교, 예를들어 지금 전쟁의 포화가 있는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지역에서는 선교사가 어떻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것은 참으로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들이리라. 무엇보다도 서구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치닷는 요사이같은 때에는 모슬렘권에서 사역을 하는 서구 선교사들의 안전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가 없다. 실제로 현재 아프카니스탄에서도 기독교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억류되어 있는 서구선교사들이 있잖은가?


마삼락 목사님은 연희전문학교의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1907년 평양에서 있었던 대부흥운동의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이야기 해 주셨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 부흥운동이 어느 한 선교사의 주도 하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 없이 많은 동역자들과 그들의 안타까운 심정의 눈물어린 중보기도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설명한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攝理)요 은혜요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이 감사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미국 북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 캐나다 장로교회 호주장로교회등 4개의 장로교단이 들어와서 선교사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초기 한국선교에 있어서 급속도로 선교와 전도의 열정이 확산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임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 초기선교정책에 있어서 자립을 강조한 네비우스정책등도 한국선교의 뜨거운 불길에 귀한 일익을 감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선교사로서 우리는 깊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부와 사전 준비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하고 선결해야 할 필수적 과제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저마다 장기선교사로 지원해서 진정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들의 자녀들까지 이국 땅에 묻으며 그들의 일생을 헌신하며 제물로 그들의 삶을 드렸다. 진정 그들의 삶을 드린 헌신적인 땀과 눈물과 수고가 있었기에 한국의 교회는 통전적 선교를 통하여 교육, 여성문제, 병원, 고아원, 사회복지 시설, 문맹퇴치등을 통해 문화와 경제발전의 도약까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기독교는 실로 이 땅으 어두움을 밝혀주는 진리의 횃불이었다. 이사야 58장의 말씀과 같이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과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같을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가 이 땅에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이것이 복음의 권세이다. 이 땅의 축복은 바로 21세기 이 복음의 권세를 힘입어 온 세계와 열방에 이 복음을 전할 특별한 사명의 촛대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가슴벅찬 일인가?


이제 일세기 전에 이 흑암의 땅에 그들의 뼈를 묻기로 결단하고 작정하고 이 땅을 복음을 들고 찾아온 선교사들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야 하고 결단해야 하고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마땅히 회개해야 할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부르심을 축복이다. 이 부르심은 또 영원하지 않다. 사명에로의 부르심. 선교에로의 부르심, 복음전파에로의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기억하며 다시한번 이 땅의 교회위에 선교와 사명의 일깨움이 충만하기를 기도해본다. 사명을 잃어버린 요나와 같이 깊은 사망의 잠을 자고 있는 이 시대를 복음과 함께 고난받겠다는 심정으로 깨워나가며 겸손하게 복음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할 때이다.



제 5강
Spiritual Life of the Missionary : Putting on the Death of Jesus


S. W. Sunquist


지난 3년 동안 내겐 순례자의 길을 걷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동안, 아시아 기독교사전을 썼다. 한국 교회사에 감동을 받았으나, 확실한 정의가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인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끝내는 것이다. 이럴 때, 너무 분주하지 말고, 떨어져서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선교사의 영적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보다는 일 때문에 선교할 때가 있다. 우리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향하기 보다 자기 욕심에 끌릴 때가 많았다. 우리 자신의 선교가 아닌 하나님의 선교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계시고,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간단치 않다.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 많다. 예를 들면, 한국 초기 선교사. H. 알렌 선교사가 중국에 있다가 한국에 온 것은 음식 맛이 좋아서였다. 그 시기는 아주 적기였다. 민비 아프고, 그 집안이 어려울 때였다. 알렌은 위에서부터 복음 전할 것을 생각했다. 중국, 일본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그 방법을 따랐다. 3년 후 알렌이 뉴욕에 편지를 썼다. "임금님이 자기에게 300만 불을 보내 주면 금광 하게 하겠다. 빨리 워싱턴 가서 부자를 만나 돈을 가지고 와라." 만약 선교회가 그 말대로 한다면 왕은 부자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는 어려울 것이다. 선교사들이 생각해야할 것은 '내가 지금 뭐 하러 왔지?'하는 것이다.


고후 3-5장. 고전은 세속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편지이다. 고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의 어려움을 기록했다. 고후 3장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기록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보고 나서 그 영광을 다시 세상에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편지가 된다. 우리끼리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른 것은 우리가 새로운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영광의 사역(3장)
선교사는 영광의 사업하는 사업가다. 우린 하나님의 영광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것이다. 선교사라면 일 처리할 생각말고, 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자. 하나님의 영광은 나를 통해 세상에 바쳐지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마지막 때도 영광의 형체로 변화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압도당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거룩함을 입는다.


2. 죽음의 사역(4장)
선교사의 사역은 국과 극이 있다. 4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질그릇 같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그릇이다. 우리를 새로운 질그릇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보배를 담기 위해서이다(4:10).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따르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는 가지고 다닌다. 3년 전 누님을 장례하기 전까지는 이 구절 이해 못했다. 그 때에야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성찬식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나의 죽음을 품고 다니게 되었다. 나는 누나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일해야 하는 지 알게 되었다. 선교의 열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누님의 죽음을 통해, 나 개인 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매일 남을 가르친다. 우리가 예수님의 장례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죽여야 한다(4:11). 우리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과 영광이 나타난다.


아시아가 장손이라는 사람보다 위대한 선교사를 가진 적이 없다. 그는 20세기 초, 18세에, 화학을 미국에서 공부했다. 7년 만에 학사, 석사, 박사를 끝냈다. 어딜 가도 그는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로 약속해서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 갔다. 그 학교는 부흥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고, 회개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교회 가는 길에서 14세 흑인 전도자가 전도하고 있었다. 거기서 감동 받고 진짜 회개했다. 그 날 밤, 밤새 찬양했다. 유니온 교장은 그걸 이해 못하고, 미쳤다고 정신 병원에 보냈다. 이 천재는 정신 병원에 6개월 간 있었다. 그는 이 기간 중에, 성경을 40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 등 다른 주제를 가지고 읽었다. 퇴원해서 다시 중국으로 갔다. 그는 중국 갈 때, 모든 학위를 바다에 전부 버렸다. 박사 학위만은 집에 아버지에게 갖다 주었다. 예수님께 완전히 잡히고 나니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남의 칭찬, 위로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는 순수하게 간략히 복음만을 전했다.


"우리가 복음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함은 내 자신을 죽음에 완전히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선 호주 선교사가 성경 들고 다니면서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내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보냄 받은 대사라는 것이다.(5장)
대사란 내 자신이 아닌 나 보내신 이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빌립보서와 고후 5장은 통한다. 내가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감격 맛보았나?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시도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첫 번 선교사는 예수님의 사랑에 잡힌바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질그릇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담고 전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치유함 받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평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날마다 이 사실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증인들이다. 이 강의를 통하여 나 자신이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현장에 참여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현장이란 바로 내 주변에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또한 나 자신이 그저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살아가서는 안되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질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담아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제 6강
선교의 재고 : 새로운 세기를 위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


Andrew F. Walls


이번 주제는 "선교의 재고: 새로운 세기를 위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앞을 내다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예측하는 것도 필요하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 사람들은 미래가 우리 뒤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등뒤에 숨어 있는 그 무엇과도 같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우리가 걸어왔던 과거의 길들로서, 가장 최근에 지나온 역사가 바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고 보다 오래된 것들은 저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지난 2000년간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와 장신대가 창립된 이후의 100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의 교회와 세상은 김종섭과 방기창이 사뮤엘 마펫 박사와 함께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 모였던 그 때와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첫째 :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진보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진퇴를 반복한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서 다양한 사람들의 충성심을 얻은 두 개의 위대한 종교를 보게 된다. 한 때에 예멘이라는 나라가 기독교 국가였으며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들이 자유롭게 아라비아 반도를 이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독교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이집트, 시리아, 투니시아, 터키, 이들 모두는 한 때 기독교의 심장부였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합소였고 기독교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순교자들을 양산했던 곳이기도 했던 지역이 이제는 이 모든 지역에서 기독교는 소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역의 교회들이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는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서부 유럽은 기독교의 심장부였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경우에서 한결 같이 한 때에 기독교의 심장부였던 지역들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며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약화되어 버렸다. 계시록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촛대가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심장부에서의 기독교의 약화가 곧 이 세상에서 기독교의 증거가 약화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의 모교회였던 예루살렘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안디옥 교회에 의해 희랍 세계를 향해 시작된 선교 활동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확장되어 나갔던 것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기독교를 전파했다. 곧 중심부에서의 쇠퇴는 주변부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기독교의 발전은 지속적이고 일정한, 그리고 회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진보는 종종 퇴보의 뒤를 따랐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두번째 전제는 기독교는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처음 예수를 따르고 믿던 무리들은 인종적으로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예수가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은 유대인들의 사고의 틀 속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으며 오랫동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는 다른 유대인들도 예수에 대해서 깨닫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들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전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가끔 예수를 이방인들에게 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일단의 신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도피해야만 해서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변했다. 안디옥에서 이들은 그곳에 있는 희랍인 이방 이웃들에게 예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기독교는 헬라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발전하게 되었으며 발전된 문학과 기술을 지녔던 로마 제국의 문명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교회가 쇠퇴하게 되는 때가 다시 이르게 되었다.


이 때에 기독교 신앙이 생존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기독교가 또 다시 문화적인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100년의 역사 동안에도 이런 현상은 반복되었다. 장신대가 처음 창립되었을 때에 기독교는 서양 중심의 종교였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의 80%가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 거주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유럽의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으며 북미 지역은 유럽의 기독교가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에 나타났던 징조들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결코 쇠퇴되고 있지 않다. 그 원인은 지난 10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선교 운동을 통해 복음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문화적 경계선들을 넘어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100년 전 비서양 세계의 기독교 인구는 매우 적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다수가 되었다.기독교는 문화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 전파됨으로 생존한다. 이런 경계를 넘어서는 전파의 과정이 없다면 기독교는 쇠퇴하고 마침내 소멸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맞이할 100년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고 나누기 위해 문화적인 경계들을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독교 역사의 세번째 전제(가정)를 살펴보도록 하자. 곧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문화들을 취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 교회가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있어서 전적으로 유대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초대 교회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철저하게 유대적으로 발전시켰다. 안디옥에 있는 헬라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개종하였을 때에 많은 신자들은 이들이 유대적인 관습을 받아들여 할례를 받고 율법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기 시작했을 때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할례를 받는 것과 율법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헬라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 하에서 헬라인으로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방법을 스스로 발견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헬라적인 특징을 갖는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헬라적인 가족, 사회 및 지적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들을 변화시킬 것이었지만, 그 변화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헬라 사회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했으며 여전히 헬라인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유대인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를 것이었다. 그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대해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각각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서로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세기에는 에베소서가 기록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에베소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다 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정이 없이는 효율적인 선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성경적인 전통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고전적인 문화들과 교류를 하게 됨에 따라 신학적인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전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7강:
세계선교 흐름 속에 나타난 장로교 선교운동
(400년이 지난 미국 개신교 : 장로교 관점에서)


James M. Philips


조만간 미국인들은 1607년에 미주 버지니아 주의 제임스 타운에 처음으로 도착한 앵글로 아메리칸 정착민들의 도착을 기념하는 400주년 축하행사를 가질 것이다. 이 정착민들은 영국 교회의 개신교인들이었다. 그래서 개신교가 400년 동안 미국에 존재하게 되었다. 여기서미국 역사를 4개의 주요한 시기로 나누어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I. 식민지 시기, 1607-1790년대
버지니아 주와 남부 식민지 땅에 있었던 정착민들은 영국 성공회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영국 성공회의 회중들은 그 지역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확고한 주립 교회를 세워나가게 되었다. 식민지에 회중 교회를 세워 다른 전통들이 자신들의 영토를 잠식하지 못하게 금지시켰던 뉴잉글랜드의 깔뱅주의들도 비슷했다. 주목해 볼 다른 점은 뉴 잉글랜드 식민지 개척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첫번째 우선순위로 교회를 설립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시민 정부를 세우고, 그 정부의 목적은 이미 설립된 교회들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혁명의 시기는 뉴잉글랜드의 회중교회 신자들과 중부 식민지에서 주로 독립을 지지했던 장로교인들로부터, 독립지지자와 영국황실 지지자들 사이에서 분열된 남부 식민지에 있던 성공회파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II. 초기 국가 시기, 1790년대-1890년대
헌법과 권리장전은 이와 같이 미국에서 역사학자들이 부르는 소위 "첫번째 종교 국교제 폐지"를 가져왔다. 그 당시에 미국인들은 국가의 생명력 속에 종교적 역할의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를 중요하지 않게 간주하거나 어떤 종교 단체가 국가적으로 "법적인 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은 아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들의 경건에 의해서 미국의 초창기가 구별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780년도에는 미국 인구의 5-10%만이 종교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심지어 미국의 개신교 그룹이 "법적인 제도" 없이도 운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13개 주에서 종교적 생명력과 국가의 원동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였던 서부로의 대 이주를 대비하도록 "문화적인 제도"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III. 현대 국가 시기, 1890년대 -1960년대
남북전쟁 이후에 미국의 산업화는 이전에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다. 한 세기 전에 영국에서 있었던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일어났으며, 당시 매우 농업주의적인 국가에서 19세기 초기와 같은 속도로 성장하였다. 교회도 성장에 대한 새로운 잠재력을 주기 위해 법인체로 재정비되어야 할 시점이었다. 수많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미국에 유입된 이민자들에 의해서 채워졌다. 이런 많은 이민자들은 로마 천주교와 유대교와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서 미국 사회에 우세하였던 개신교에 도전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세속화는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초창기에 세워졌던 대학들 대부분이 신앙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그 후 설립된 주립 대학 제도는 세속주의를 토대로 조직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후, 전 미국에 걸쳐서 애국적이고 종교적인 열정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1950년대에 교회의 교인 출석이 새롭게 높아졌고, 이러한 흐름은 전후 세대에 지속되었습니다.


IV. 포스트모던 시기, 1960년대 이후.
1960년대의 혼돈은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금도 남아있다.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인한 혼돈이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서 멋있게 다루어지고, 마틴 루터 킹이 시민운동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였을 때는 분명히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1963)이 있었고, 그 후 루터 킹이 암살(1968)되었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살해되는 사건(1968)이 연달아 일어났다.


베트남 전쟁에 뒤를 이은 염세주의의 결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다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미국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그 용어는 종종 이 시기에 주도되었던 몇 가지 확신들을 언급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숙고할만한 것은 그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의 발전 속에서 개신교 예배자들의 반응도 혼합되었다. 포스트모던의 시각이 전적으로 틀리며 미국은 성경을 기초한 진리가 확정되어야 하며 "기독교적 미국"의 근본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고 믿는 몇몇 사람들도 있다. 이와 반대로, 어떤 개신교인들은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관점에 동의한다. 이런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포스트모던의 관점이 수용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절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서정운 박사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는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1. 민족복음화
먼저 한국교회의 성숙과 부흥과 복음화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초석이 된다. 그러나 교회성장의 둔화, 교인들의 수평이동, 출산율의 저하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민족복음화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바른 선교관의 확립이 시급하다. 우리가 교파나 신학전통보다 성경적인 원리에 입각해야 하는데 성경적인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람과 사람들 및 하나님과 사람들과 피조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다.
② 신학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우선 신학자체가 원래대로 선교적 목표와 의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학의 선교의 산물이다. 신학의 원본인 성경은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는 선교문서이다. 존스톤은 오늘의 세계선교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을 영원한 멸망과 지옥에 대한 신학적 모호성,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비젼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근거의 상실이라고 했는데 한국교회의 신학도 성경 위에 정립해 선교중심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③ 교회다운 교회. 교회다운 교회는 선교적 교회이다. 그리스도인이나 교회의 기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기본적인 과제는 선교하는 것이다. 교리화되고 제도화되고 세속화되어온 교회가 이제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교회가 역사 속에서 기구화된 형태의 제약과 경직성을 벗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교하는 근원적인 원형을 갖추기 위해 사역의 우선순위와 통상적인 교회구조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④ 현장화. 교회가 일정한 현장 속에서 존재하며 선교하기 때문에 현장을 이해하고 현장에 맞도록 선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이란 시간과 공간으로 짜여진 현실을 뜻한다. 교회법, 제도, 의식, 조직 등에 있어서 전통과 관행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형식주의에서 자유하여 고치고 새롭게 하고 변화시켜 교회가 부흥하고 선교가 활력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⑤ 기독교문화의 창달. 교회가 세속문화에 대한 바른 대안의 제시보다는 오히려 세상풍속에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이 세대를 본받아가는 경향이 있다. 교회가 능동적으로 성경적인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임으로 새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가는 길이다.


2. 북한의 복음화
북한선교는 독특한 점이 있다. 현지에 있는 교회지도자들과 교회를 거점으로 선교할 수 있는 다른 공산권과는 달리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월남한 북한에 대한 선교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1) 통일운동 : 통일에 대해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2) 통전적 선교 : 직접적으로 전도가 어려운 상태에서는 구제와 개발과 친교 차원의 사역을 계속해야 한다.
3) 평화롭게 하나되는 기도운동 : 기도는 운동이다. 개인과 역사를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운동이다. 마가 다락방의 기도모임에서 공회가 시작되고 선교운동이 퍼져나간 후 모든 형태의 선교운동은 기도운동과 직결되어 있다. 통일과 북한동포와 복음화를 위한 기도운동이 보다 구체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아나야 한다.
4) 닫힌 문 안에서 :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증인이기 때문에 닫히 북한 선교의 문 안으로 이런 저런 일로 출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선교의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 사역자들의 활성화와 중국 조선족교회의 협력이 중요하다. 베어낸 바 된 나무의 그루터기나 잔가지처럼 남은 북한의 교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의 일을 계속하신다.


3. 흩어져 있는 동포들의 복음화
세계에 흩어져 있는 700만명 가량의 교포들과 한인들의 복음화를 민족복음화의 범주로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의 복음화는 우리와 아주 다른 민족선교보다 언어나 습관이나 정 때문에 더욱 용이한 편이다. 이들에 대한 선교는 민족복음화의 차원과 더불어 세계선교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다. 그곳에서 현지선교를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화, 언어, 생활구조 등에서 적응이 쉬우며 일상적으로 현지인에게 선교할 수 있다.


4. 세계복음화
60억 정도로 추산되는 세계인구 가운데 약 33% 정도를 신자로 보는데 67% 정도의 불신자들에 대한 선교는 전략적으로 볼 때 ①전도하기가 미전도지역보다 더 어렵게 된 서구세계에서의 교회의 부활 ②회교, 불교, 힌두교권 등으로 된 타종교권 ③밀림과 산 속에 소외되어 있는 오지 인구 ④많은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대도시들 ⑤청소년들 ⑥소외된 가난한 사람들 ⑦구 공산권 지역 등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1) 통전적 사역 : 선교의 중심이 전도이지만 우리의 은사와 능력과 기회에 맞추어 선교는 다양한 형태로 행해져야 한다. 다른 사람과 교파와 단체를 복음적 또는 비복음적으로 속단하고 분쟁하기보다는 전도, 사회봉사 및 환경보전 등을 협동적으로 상호 보완하는 신학적 이해와 선교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2) 선교적 교회의 개척과 부흥: 모든 족속의 신앙 순종과 그리스도의 주권확립을 위한 선교는 그 지역의 교회가 기본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예배와 성경 읽기와 기도와 섬김과 전도에 힘쓰며 그들의 사회변화를 담당하는 현지인들의 자립교회의 개척과 성장과 성숙은 세계선교운동의 기초작업이다.
3) 지도자(사역자) 육성: 현지 교회지도자 육성은 교회개척과 함께 선교운동의 기본원리이다. 한국선교사들이 여러 지역에서 신학교를 세워서 교육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지도자 양성이 핵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현상은 적지 않은 경우에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거의 일률적으로 행해지는 재정지원이다.
4) 집중력과 통제력과 협력: 선교역사상 한국교회는 가장 많은 선교사들이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족속들에게 선교하고 있다. 문제는 집중력의 결여이다. 각기 장기적이고 신중한 검토없는 사역, 중복, 경쟁 등으로 인력과 자원의 과용과 손실이 많다. 둘째로 집중력있는 선교를 위해 통제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사역과 선교사간에 문제가 생기고 지역에 따라 선교가 부실하게 되는데는 통제력의 결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셋째로 선교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5) 선교사다운 선교사: 선교의 여건보다 선교사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의 여건이 험난했지만 위대한 선교를 했던 것은 그들이 충직한 헌신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성육신하신 내용과 이유와 방식으로 살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원 박사의 민족복음화와 서계선교에 대한 논찬


김명혁 박사
서정운 박사의 글은 현장에서 가슴으로 쓴 글이며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쓴 글이다. 서정운 박사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가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이 둘은 동일한 일이며 불가분리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올바로 지적한다. 바른 선교관이란 하나님과 사람들, 사람과 사람들 및 하나님과 사람들과 피조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올바로 지적한다. 특히 사회적 책임과 함께 피조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현대선교의 중요한 과제라고 올바로 지적한다. 그리고 신학이 원래대로 선교적 목표와 의도를 회복해야 하며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지도급 인사를 자처하며 자리를 탐하여 온 교회를 근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안타깝게 지적한다.


 

8강


개종이냐 전환이냐: 신약성서의 복음과 문화
Andrew Walls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역설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성육신은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인간은 항상 문화 특성이 있다.

우리는 일반화된 인간을 만나지 않고 항상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속하는 특징을 지닌 인간을 만난다.


그리고 성육신에서 하나님은 일반화된 인간이 되지 않으셨고, 하나님은 이상적 형태의 인간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서에서 만나는 아주 독특한 인격을 취하셨고 1세기 유대 팔레스틴이라는 제약 아래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사셨다. 성육신의 역설은 신적인 아들이라는 한없는 보편성과 더불어 예수라는 완전한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신앙으로 받아들여질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그러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아래에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비성육신적이다; 그리스도는 각개의 새로운 신자 그룹 가운데서 육신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 그룹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사도행전 1-2장의 예루살렘에서 교회의 일원들을 본다. 외인들에게 그들은 그 시기에 존재했던 유대주의의 많은 교파 중에 하나 더 생긴 것으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그들 모두는 출생이나 관습에 있어서 유대적이었다. 그들의 정기적인 모임 장소는 유대인만이 들어올 수 있는 성전이었다. 그들의 제한적인 오순절 경험은 그들을 성전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성전 의식인 기도에 열심이었음을 우리는 듣는다. 그들의 지도자는 예수의 동생이며 율법에 완전한 복종이라는 유대적 의미에서 의로운 의인 야고보로 불리운 야고보였다.


그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았다.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바랐노라"라고 말한 엠마오 도상의 그 제자를 기억해보라. 승천의 산에서 그들은 말한다. 주여, 이때에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돌려주기를 원하나이까?(행1:6).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운명과 동떨어진 예수의 일 즉 구원을 상상할 수 없다; 유대적 어법상 구원은 나라의 구원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구원이 무엇인지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 구원의 시기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라 단순히 말하신다.


이 첫 신자들의 독특한 특성은 무엇인가? 아마도 외인이-예루살렘에 관심이 있는 페르시아인이나 이집트 방문자가 있다고 하자- 인지했을 첫 번째 것은 그들의 생활 양식이었다. 그들은 과부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 특수한 규정을 만들어 그들의 재산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서로의 집에서 같이 식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독특한 가르침은 최근의 선지자 교사인 나사렛 예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유대인의 신성한 책에 언급된 인물 즉 마지막 심판을 위해 나타날 메시야, 기름부음 받은 국가적 구원자, 인자와 그 백성을 위한 희생제물이 될 고난의 종과 동일시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가 로마인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 것에 동의했다; 이 신자의 공동체는 그가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그들이 예수는 메시야 였다고 선언했을 때 새로운 종교의 옷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종교에 새로운 안목과 확신을 단순히 얻은 것이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경의가 덜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율법의 가장 작은 부분도 그에 의해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가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들은 성전에 대한 경의가 덜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가 성전을 깨끗이 하고 그곳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 희생제사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끝나지 않았었다; 그들은 희생제사들을 자신의 빛 속에서 고난 받는 종의 더 나은 드림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가 말했던 칭호인 메시야 칭호 아래서 예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했다.


예수의 초기 공동체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은 완전히 유대적이었다. 그들은 예수상은 유대적 용어로 완전히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대표했던 유대 공동체의 일상적인 삶은 아니었다; 그들은 변형된 유대인의 삶을 대표했다. 그들은 새 시대를 선포하고 결단을 요청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이 악에서 돌이키기를 촉구했으며 정치적으로 회복되며 도덕적으로 새로워진 나라에 대한 메시야의 통치를 갈망해왔다. 하나님의 개인적 통치인 하나님의 나라는 놓여진 율법이므로 선지자들 중에 가장 마지막이며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은 급격한 변화-회개, 마음의 변화-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세례 의식으로 상징화했다. 그가 세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원했던 갈릴리 사람들을 위한 정결의식으로 사용되었었다. 하나님이 가져오는 혁명은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의 세례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유대인이 세례를 받아들일 때, 그는 도덕적으로 외지 이교도인 이방인과 똑같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초기 교회는 우리가 사도행전 1-2장에서 보는 흥분의 시기에 살았던 예루살렘이다. 메시야 시대가 도래했었다. 예수의 메시야직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함으로서 도덕적 갱신의 필요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메시야 시대에 속한 추진력있는 활동인 성령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재산의 공유, 음식의 나눔, 과부들을 위한 특별한 돌봄-이것들은 선지자들이 비난했던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사회와는 정반대의 모습들이다-으로 삶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회심한 즉 메시야인 예수께로 돌이킨 유대인의 삶이었다.


그들은 제자를 만들기 위해 온 세계로 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께로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밖의 소수의 사람들은 교회의 전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인 개입에 의해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변경에 있던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인 고넬료,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의 후손인 사마리아인들, 개종자인 이디오피아인


그리고 그 다음에 교회 역사의 전환점들 중의 하나가 일어났다. 그리고 거기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했던 것은 교회 전략의 한 부분도 아니었다. 우리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한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난 사이프러스와 리비아 태생의 몇몇 유대인 신자들이 안디옥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단지 알뿐이다. 그리고 예수에 대하여 그들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던 모든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이교도인 그리스인들에게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큰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하여 모든 선포를 통해 예수가 메시아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교를 말하는 그리스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었는가? 당신은 그 단어를 "크리스토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크리스토스"가 "기름으로 덧입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성서를 일년간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교도 친구가 그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기 원한다 할지라도 구약성서를 일년간 공부해야 할 것이다.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구주였지만 일개 유대인은 아니었다. 사이프러스와 시레네로부터 온 사람들은 대담한 번역을 하였다. 예수를 메시야로 소개하지 않고, 그들은 예수를 주 예수-그 지역의 이교도들이 그들의 예배하는 신에게 주는 칭호인 주-라고 소개했다. 이것은 이교도들이 예수의 궁극적인 의미를 가장 잘 인정하도록 하는 길이었다.
다음에 오는 사건과 함께 연결되어진 그 발전은 기독교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 다른 사건은 사도행전 15장에 묘사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이른바 사도 회의였다. 그 모임에서 사도들과 율법을 경건히 준수하는 예루살렘의 장로들은 인종적으로 유대인이 아닌 예수의 제자들이 할례나 율법을 준수하지 않고도 그 공동체에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동의했다.


이것의 의의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은 항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이방인을 환영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방인들은 계약과 할례의 표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들의 사회를 떠났다. 그 다음에 그들은 이스라엘인으로서 율법의 구속을 받게 되었다. 선지서는 메시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큰 홍수같이 밀려드는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말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산에 오르자"(사2:3)


그래서 예루살렘의 신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들을 때 이것은 이 성서들이 성취된 것으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방인 신자들이 개종자들이 항상 받아왔던 할례를 받는 것과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받아들여야함을 당연시했음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몇몇 이방인 신자들은 이것에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놀라워 할 필요는 역시 없다. 아마도 이들은 수년동안 회당에 참석했었던 사람들이고 이제는 예수의 선포에 응답했었던 사람들 일 것이다. 그들이 생각했을지 모르는 이것은 실수한 시간이 된다.


그들은 그 다음에 그들의 교사들과 가장 나이 많고 예수를 가장 믿는 신자들의 모범을 따르게 되었다.
바울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한 것은 갈라디아서 첫 장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단지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라 꿇어 오르는 분개이다. 바울은 그리스 이교도로 양육 받아온 어떤 사람이 아주 훌륭한 유대인 신자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함을 하나의 선택사양으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개종자가 아닌 전환자들이다.
우리가 이 결정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결정이 다른 방향으로 났다면 그리고 모든 새로운 이방인 신자들이 오래된 유대 신자들과 같이 살도록 요구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로, 그리스인의 사회적 가족적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에 의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서신서들이 가족적, 사회적 삶의 문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의 글이 많아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경우이다; 만약 이교도 친구가 너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네가 그 고기가 이교도 신전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이 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예루살렘의 신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이방인도 그들의 식사에 초대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개종하였다 할지라도 그들은 식사에 초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그들의 제도 속에 반영했을 때 바울은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의 사회적, 가족적 삶 안에서 그리스도적으로 행하고, 그것에 도전하고, 그것과 구별하고, 그것에 변화를 주고, 그 내부로부터 그렇게 행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너의 이교도 친구와 식사하러 가라: 그러나 너의 마음 속에 분명히 하며 네가 그 고기를 먹는 전환자임에 대한 기독교적 근거에 관하여 너의 친구에게 대답을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한다.


예견할 수 없음으로 인해 개종자의 모델을 버리는 교회의 결정이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단지 그리스도인 됨의 하나의 길 즉 하나의 기독교 삶의 방식이 있어왔다. 이제 새로운, 갓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서 그리스도인 됨의 그리스적 길을 이루어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 사고와 삶의 전환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것은 하나의 길고도 수고스러우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수세기 동안 쌓여진 사고의 구조를 관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들을 제자로 만들라고 부름을 받고, 한 나라를 제자화하는데 여러 세대가 걸린다. 우리가 선교 사역 속으로 들어갈 때 이것이 서서히 그 제도들을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환시키듯이 우리는 우리를 듣는 사람들의 아들과 손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갈라디아서가 쓰여진 이후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왔다. 이들은 가장 좋고 안전한 길은 특히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가능한 한 그들과 같이 되는 것이고, 같은 우선권을 갖고,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율법과 할례를 취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것은 가장 안전한 길이다. 개종자의 길은 안전하다. 개종자는 그들 자신의 사회, 그들 사회의 가입, 그들의 유산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취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나, 위기의 순간에 이전의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전에 이 길을 지나왔다.


전환자의 길은 모다 위험하다. 전환자들은 항구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들의 사고와 교육의 방식, 그들의 읽는 것과 관계를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환시키야 한다. 이것은 전환자들이 기독교인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전에는 경험하지도 못한 새로운 상황에 때로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15장 이후 문화적 다양성이 그리스도 교회에 세워지고 있다. 개종자와 전환자의 차이는 중요하다. 신약성서에서 증명된대로 기독교인의 전환은 낡은 어떤 것을 새로운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채택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개종자 모델로 회귀하는 것이다. 전환은 옛 것에 새 것을 더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환은 방향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유산을 완전히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이며, 그것들을 완전히 그에게 여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을 돌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전환 이전에 그곳에 있던 요소들 중에서 믿음으로 형성된다. 전환은 그리스도가 그가 이전 육신 속에서 걷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신자들 가운데 다시 육신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9강
한국선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미국선교사 관점에서)
G. Thompson Brown


어제의 선교 


"과거의 선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초석을 놓아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선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보낸다(파송)"라는 단어이다. 이는 원래 "미수스"라는 라틴어로 "미션(선교)"와 "미셔너리(선교사)"라는 영어 단어가 파생되어 나왔다. "보냄"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1)누가? (2)누구를? (3)어디로? (4)어떻게? 보내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사가 받기 쉬운 유혹 중 한가지는 교만과 오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어서 모든 일을 겸손으로 해야 한다. 이 좋은 예를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의 역사에서 볼수 있다. 즉 초기 장로교회 선교는 소외된 계층들을 전도하는데 주력, 낮은 곳에서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오늘의 선교


(1)2001년의 지구촌 선교: 기독교인의 인구는 초교파 18억 8천 8백만명으로 전세계의 1/3이다. 또한 바레트에 의하면 작년 한 해에 성경 7천만부와 신약성서 1억 1천만 부수가 출판, 성경의 일부분이 적어도 1,848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평균 16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해마다 순교 당하고 최소 40억의 인구가 비기독교인이다. (2)기독교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변화: 1900년도에 전체 기독교인 인구의 82%가 유럽과 북미 지역에 거주하고, 12%만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거주현상과는 달리 현재 세계 기독교 인구의 60% 이상이 소위 이 선교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3)서구의 세속화 (4) 과거 공산정권들의 복음의 개방 (5) 한국 선교사와 소위 "제3 세계" 국가들에서 온 선교사들 수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6)미국 교회의 과오를 통한 지난 100년간 범했던 똑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소위에큐매니칼한 사역의 중요성과 장기 선교사및 팀들의 요청, 평신도 선교사 훈련과 전 세계 파송이 지적된다.


내일의 선교: 선교사업의 미래는 비록 선교는 동일하겠지만, 미래는 새로운 사고와 아이디어와 계획이 요구될 것이므로, (1)중국의 에이미티 재단과 같은 조직을 통해 외국의 기독교와 교회들이 상호 기독교 교육과 의료 및 사회 사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2)네팔 연합 선교 사역. 즉 80%의 힌두교를 믿는 지역인 히말라야 산맥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18 개국의 39개의 다른 기독교 교단으로 구성된 네팔의 연합 선교 사역(병원 운영과 간호 학교 및 지역 의료 사업=수의사와 삼림 학자와 영양사 및 수자원 개발 기술자 등)과 같은 연합 선교 사역 (3) 순천의 농작물의 실패와 경제 구조의 붕괴로 인해 기근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돕는 선교사역을 하는 "한국의 기독교 친구회"라는 기구 등을 통한 선교활동 (4) 알바니아에서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가져다 준 한국 선교사들은 21세기 선교의 4가지 모델을 갖추고 있다.



한국 선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호주선교사 관점에서)
John P. Brown


세계선교와 전도 위원회 연구 프로젝트


①최근 몇 십년 간 교회차원의 선교를 위한 인적자원과 다른 물적 재원을 공유하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선교와 교회의 연합사업에 가장 잘 이바지했던 조직들은 무엇이었는가? ②오늘날 교회들의 국제선교사역을 형성하는 관계들의 주요 특징들은 무엇인가? ③선교의 국제관계의 영역 속에서 교회가 지금 부담해야 할 사업은 무엇인가? ④다음 십년 간에 걸쳐 세계교회협의회가 이러한 사업들을 하고 있는 교회들을 돕기 위해 무슨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


선교에 대한 에큐메니칼적인 몇 가지 확신


①모든 교회는 복음의 증인으로의 부르심을 받았다. ②복음 증거의 일차적인 책임은 지역교회에 있어 가능한 빨리 이웃에 대한 선교적 책임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③선교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선교로 귀결된다. ④모든 곳이 선교 현장이다. ⑤선교란 전인적인 복음에 대한 증거이다. ⑥장차 복음전도자가 될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처음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전하는 것이 선교이다. ⑦어느 한 교회에 의해서 보내어진 선교사들과 선교 기금은 당사자들의 동등한 결정 과정에 참여에 의해 상호 협의, 수용, 존중하는 식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다. ⑧어떤 동역관계에 있어서 모든 동역자들은 관계성에 의해서 배우고 받아들이고 더욱 풍요로와 질 필요가 있다. ⑨재정이나 신학및 모든 재반사항에 대해 가능한 투명할 필요가 있다. ⑩모든 자원은 하나님의 것이다. ⑪종속성을 띠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⑫선교와 연합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⑬교회는 국제적·초교파적으로 에큐메니칼하게 선교가 행해질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 ⑭선교는 전적인 창조와 관계가 있다. ⑮선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 속에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선교에 있어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의 선교와 교회의 연합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만물을 화평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것이다.


서양 선교기관들의 개혁


①의사결정에 모든 동역자들은 동등한 참여를 할 것 ②모든 동역자들은 선교사역에 있어서 필요와 은사를 공유할 것 ③선교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지역교회에 있다는 것은 긍정하되, 선교를 위해 기증한 것들에 의해 모든 교회가 풍성해지도록 교회에 기회를 제공할 것 ④하나님의 선교와 선교에 대한 교회의 부르심과 선교의 거룩한 성격과 모든 창조질서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전체 인류에 관계된 교회의 선교를 계속적으로 성찰할 것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많은 교회들에 나타난 변화들


① 하나의 선교위원회 모델을 향한 움직임과 해외 선교와 국내 선교를 결합하려는 움직임들. ②지역교회들을 국내외 선교에 참여시키려는 전략들. ③교회가 세계 선교를 수행하도록 네트워크나 기관들이나 실체들이 선교를 하는데 용이하게 돕도록 하는 변화들. ④일을 분산시켜 중간에서(노회와 같은) 정책 입안자들이 선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⑤선교위원회의 구성원들을 국제적이고 초교파적인 회원으로 구성하는 움직임들. ⑥선교 동역자들 사이에서 은사와 필요를 쌍방이 더 많이 공유하는 일. ⑦동역 관계 속에서 무엇이 하늘나라의 진정한 공동 상속자들인가, 그리스도의 한 몸의 회원인가,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라고 하는 실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분명히 하려는 노력들. ⑧관계들에 있어서 더 많은 투명성을 제공해 주는 관행들을 개발하는 것.



한국의 선교와 선교사들
강승삼, KMQ 2001년 가을호 p.59


한국의 선교사역가운데 연구 프로젝트 동안에 우리가 상담했던 이들로부터 부정적으로 혹은 심하게 비판받았던 몇 가지 면들이 있었다.


① 필리핀 연합기독교회와 분리해서 근처에 별개의 교회들을 세운 것은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다 주는 문제였기 때문에 선교학적이고 교회학적인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몇몇의 경우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필리핀 연합기독교의 환대를 이용하는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선교사들과 그들을 보낸 단체들 사이에 관계성과 관련하여 출석하는 사람 수를 보고하라는 커다란 압력에 시달려 교회에 끌어들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②러시아와 이전의 소련의 사례연구에서 한국교회협의회는 러시아 정교회의 필요에 대한 반응과 러시아 교회와의 합의에 따라 러시아어로 된 성서와 다른 기독교 서적들을 출판하도록 인쇄기를 기증했기 때문에 특별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은 본래 정교회신도들을 다르게 개심시켜 버리는 행위를 개종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의 선교와 미국 연합감리교의 사역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다. 그들은 또한 한국과 서양의 선교사들이 러시아 문화에 무감각하며 서구의 생활양식이 복음의 일부분인 것처럼 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토론 중에 제기되었던 질문들은 주로 복음과 문화에 관계된 것들이었다. 러시아 정교회와 침례교회 간에 있었던 대화는 러시아 언어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좀더 진지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자신들의 선교사들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다.


③우리는 아직도 호주에 있는 한국계 교회들이 회중들 간에 많은 분열들이 있었음을 안다. 이 분열의 몇 가지 경우는 시드니에서 사역할 교회도 없고 다른 수입원도 없는 목사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의 행동은 한국에서 특정 교단에 속했다가 이민 온 사람들이 그 교단의 교회를 세워 그것의 에토스(특정 집단의 관습)를 공유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일부의 분열은 장로들 사이나 장로와 목사사이의 내부적인 권력다툼 때문에 일어난다. 교회의 갈라짐은 복음에 대한 반증(反證)이다.
[그림] 성 경과 신학과 문화와의 관계 [그림Ⅱ] 성경적 상황화의 관계성



제 11 강


과거의 회심 : 초기 기독교의 복음과 문화
Andrew F. Walls


우리는 복음이 문화적 개척자로서 헬라세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새로운 헬라 크리스챤의 견지들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인간에 대해서 근본적인 구별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중심 국가이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알렌산더 대제는 지중해 해안의 동서쪽 끝에 거대한 헬레니즘 문화를 건설했는데, 그곳에는 두 개의 인간으로 구분되었다. 그리스인과 야만인들이었다.


어떻게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듣고 그것을 심각하게 취할 수 있는가? 많은 그리스인들에게 기독교인은 다른 문화와 경쟁하는 아시아 문화가운데 하나로 보여졌다. 그리스 사람들은 한 동안 이 문화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류 그리스 시민의 외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인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회심의 과정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기독교인이 된 한 사람의 그리스인의 경험을 통해 고찰할 수 있다. 저스틴은 2세기 중엽 로마에서 살았다. 그는 그리스 교육을 받았고, 철학자로서 숭고한 그리스 이상에 자신을 헌신하였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리스의 고대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며, 철학자로서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대한 비전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영혼의 순결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철학자로서 저스틴은 부와 권력을 포기했다.


그러나 저스틴 시대에 철학은 하나의 직업이 되었고, 일이 되었고, 경력이 되었다. 저스틴은 여러 선생들을 거쳤으나 만족감이 없었다. 그는 특별히 당시 선생들이 수업료를 원했던 것에 분개했다. 그는 이것은 진실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들과 논쟁하고 연구하는 것을 계속했다. 하루는 저스틴이 자기가 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한 노인과 논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상적인 철학의 주제들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특히 영혼의 본성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저스틴은 이 토론에서 확신을 얻었는데, 철학학교에서는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비전으로 이끌어 주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구가 소망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노인은 저스틴에게 고대의 기록들이 그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것은 구약 성서, 특히 예언서에 대한 그리스 번역이었다. 노인은 또한 저스틴에게 회심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것들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스틴은 그리스어로 된 예언서를 읽었다. 그 번역들은 저스틴을 복음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곳에는 그가 철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찾던 것들이 있었다. 거기서 저스틴은 하나님의 인식에 대한 인간 존재를 깨닫고, 영혼의 순결을 얻은 한 사람도(바울로 보인다) 보았다. 그곳에는 이전에 그가 찾았던 모든 철학적 진실들이 있었다.


왜 예언서들인가? 왜 그는 바로 신약으로 가지 않았는가? 아마도 신약이 그리스어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스틴은 시간이 더 지나서야 신약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전통적 가치는 고대적인 것이었는데, 지중해 세계에 있는 다른 문헌들 중에 하나로 오래되었거나 더 오래된 것은 유대 사본들이었다. 그래서 저스틴은 이 사본들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읽는데 마음이 끌렸다. 저스틴은 이 자료들을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비판하는데 사용하였다;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 다른 것들에 대한 거부, 그는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키기 위해서 다른 철학자들과 논쟁도 했다. 저스틴 오래된 사본들을 읽는 것을 철학 선생으로서 자신의 정규적인 연구로 삼았다.


저스틴은 때가 되었을 때, 기꺼이 그의 삶을 바친 처음이자 마지막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라면서 습득한 그리스의 지식적인 문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단계로 취했던 그리스의 지식문화가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었다. 그가 자라면서 습득한 지식문화는 포기될 수 없었다. 기독교인이 된 저스틴에게 그리스의 지식과 문화는 무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그의 생각을 형성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의 동료들과 그의 제자들의 생각을 형성하는 방법이었다. 문화는 포기될 수 없고, 그 밖의 무엇인가에 의해 재배치 될 수도 없다. 문화는 그리스도에게로 회심으로 이끈다.
저스틴은 일찍이 한 문화의 회심의 단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그리스 철학자로서 거부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회심)을 통해서 학교와 그리스도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사본들) 다른 자료들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것에 대해서 재고해야했지만, 결과는 충분하였고, 그에게 자유로움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저스틴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보는 것을 통해서 그리스인의 회심에 대한 두 개의 결과를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우리의 주요한 교리들-삼위일체, 성육신-의 진술에 대한 빚을 졌다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신학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한 그리스 사고의 회심에 의해서 영원히 부유하게 되었다. 둘째는, 그리스 사고의 회심이 그리스의 지적인 문화를 보존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한 동안 철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대신에 직업과 경력을 추구하여 붕괴되었을 때, 오히려 지식적 활동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인이 된다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리스적인 것을 보호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복음은 문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생각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세계적인 고대 문화들과 직면하였을 때, 저스틴의 경험을 생각하자. 기독교인이 다양한 문화의 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저스틴의 경험을 생각하자. 현재 세계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아메리카인들 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저스틴과 그가 한 일을 생각나게 한다. 신학에 있어서 가장 창조적인 시대는 기독교 신앙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고대 문화들이 상호작용하는 때였다.
더 많은 저스틴을 위해 기도하자. 나는 많은 나라와 문화 안에서 더 많은 저스틴들이 당신의 사역을 통해서 일어나길 기도한다.



제 12 강좌
패널토의 - 한국 장로교 선교의 과제와 전망


패널 1 -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 방향
이광순 박사 (장신대 세계선교대학원장)


1. 비선교적 도전과 방향 설정의 중요성
한국 교회가 확고한 선교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교회다움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그것을 견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도 세상과는 성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성스러움을 허물어뜨리고 교회를 세상의 속된 것으로 채우는 것인 세속주의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손상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 교회가 확고한 선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방해하는 비선교적 도전의 다른 하나는 혼합주의이다. 선교는 복음을 현지의 문화라는 토양에 심는 것과 같다. 선교지의 문화적 바탕을 지나치게 고려하다보면 복음의 진수와 내용을 변형시켜서 형식인 문화에 적합하게 맞추는 사례들이 일어날 수 있다. 복음과 문화가 혼합되어서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 역시 한국 교회가 21세기의 선교 방향을 설정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는 배타성과 특수성을 표방하는 동시에 구원이 온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열려 있다는 보편성을 가지는 종교이다. 그런데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이른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로서 기독교를 상대화시켜서 여러 종교들 중의 하나로 격하시켰다. 이에 의하면 기독교는 순교를 각오하면서까지 굳이 선교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기독교 선교의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단호한 대처 없이는 선교 방향 역시 설정할 수 없다.


2. 북한 선교
북한 선교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론이 모색되어 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접근이 부족함을 느낀다.


3. 한국 디아스포라 선교 채널을 통한 세계 선교
전 세계 160개국에 650만명의 한국인이 흩어져 살고 있다.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 즉 이민 교회나 교포 교회들이 선교 기지로서 현지인들과 여타의 미전도 지역에까지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를 선교의 채널로 삼아서 세계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를 채널로 삼고 협력한다면,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타문화권에까지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디아스포라 한국인 2세와 3세들을 선교 일군으로 양성한다면 세계 선교를 주도해나는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4. 인터넷 선교의 활성화
인터넷 선교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전 세계,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인터넷이 주는 여러 가지 이점도 있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처럼, 인터넷도 설치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인터넷이 주는 여러 가지 단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패널 2 - 세계선교에 있어서 교단(통합) 선교의 의의와 기여 : 교단 선교정책의 전제들
안교성 목사 (총회 세계선교부 총무)


1. 세계선교의 선교적 현황과 추세
첫째, 선교회 주도 선교에서 교회 협력 선교로 전환하고 있다.
둘째, 목회자 위주의 선교에서 평신도 선교로 전환하고 있다.
셋째, 제1세계 위주의 선교에서 2/3세계 선교로 전환하고 있다.
넷째, 단독 사역에서 협력 사역으로 전환하고 있다.
다섯째, 선교사 상(image)의 변화이다. 능력 있고 유능한 선교사(an able and powerful missionary)의 상으로부터

상대방의 능력을 끌어내고 배양해 주는 상(an enabler and empowerer)으로 전환하고 있다.
여섯째, 선교의 초점의 변화이다. 선교부의 확장이 아니라, 현지교회의 능력과 현지 지도자의 지도력 배양이 주관심이 되었다.


2. 통합신학과 가교선교 - 가교적 역할로서의 통합 교단선교의 독특성과 미래
분열과 갈등이 난무하는 선교 현장에서 본 교단이 우선 본 교단 선교사간에 연합의 모범을 보이고, 나아가 타 선교사와, 또한 현지교회와의 사이에 적극적인 가교 역할을 한다면 본 교단의 선교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하겠다.
최근 들어, 고무적인 것은 한국 교회 전반에 걸쳐 선교 연합에 관하여 관심이 높아지고, 또한 구체적으로 뭔가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 교단 선교사들이 가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한국 교회는 그동안 국내적으로, 그리고 선교지에서 분열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세계선교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패널 3 - 한국장로교회의 선교협력
서성민 박사 (인도네시아 선교사)


선교협력 증진을 위한 제안 - 현재의 선교의 틀을 선교협력의 틀로 새롭게 짜야 한다.
먼저 선교사를 파송하기전에 현지 교단이나 선교회와 한국의 교단이나 선교회가 협력관계를 맺고 선교협약을 한 후 현지교회의 필요를 따라 선교지를 결정하고 선교사를 선정하여 훈련하고 파송한 후 철저히 현지교회와의 협력 아래 선교를 수행해 나아가야 한다.


선교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확장시키기 위해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선교의 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WCC, WARC, CCA 등에 가입되어 있는 교단이나, 복음주의협의회 등에 가입되어 있는 교단들은 전세계에 수없이 많은 회원교단들과 동역할 수 있는 엄청난 선교협력의 장, 협력의 자원을 갖고 있다.


이제는 개별적인 선교를 지양하고 현지선교회 중심의 팀사역을 하도록 선교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효과적인 팀사역은 선교지의 인적자원을 효율성 있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며, 선교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케 하여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사의 안식년 기간에도 사역이 지속될 수 있으며 여러 선교사가 협력하므로 선교사끼리 서로 격려가 되고 효율적인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패널 3 - 한국장로교회의 협력선교를 위한 제안
이홍정 박사 (총회기획국장)


1. 상황 속에 있는 선교 - 시대의 징표 읽기
복음이 성육신을 전제로 하듯이 선교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선교는 복음과 상황의 상관성의 빛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는 일로 시작한다. 선교는 각 지역의 상황과 함께 모든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으며, 교회는 지역적 상황뿐만 아니라 세계적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교회는 자신이 행하는 증거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이 시대가 제시하는 도전에 대해 공동의 증언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2. 개종주의의 극복과 공동의 증언
개종권유와 공동의 증언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하며 다음과 같은 행위는 중지되어야한다.
1) 다른 교회의 교리, 신조 및 행위들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의 노력 없이 비난하고 풍자하는 행위
2) 자신의 교회와 신앙고백만이 '참'교회요, '참'믿음이며,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교회의 세례를 무효화하고 사람들에게 재세례를 받도록 권유하는 행위
3) 다른 교회의 가정된 약점과 문제를 비교하여 자신의 교회가 도덕적 영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주장하는 행위나 다른 교회 내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자신의 교회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해 악용하는 행위
4) 교회를 옮기도록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도적 지원이나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인종적 압력 또는 역사적 상처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교회로 모으는 행위
5) 교육이나 기독교교리에 대한 훈련부족을 악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바꾸도록 회유하는 행위나 물리적 폭력 혹은 영적 도덕적 심리적 압박을 악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옮기게 하는 행위, 예를 들면, 다른 교회를 소외키고 비방하거나 오명을 씌우는 수단을 동원하는 미디어 기술의 활용과 계속적 방문을 통한 공세, 물리적 영적 협박, 특정교회에 의해 제공되는 구원에 이르는 '우월한' 길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행위 등
6) 사람들의 고독, 질병, 환난 또는 오해를 악용하여 자신의 교회로 개종시키고자 하는 행위 등
개종권유는 진정한 기독교증언의 왜곡이며 반증언이다. 개종권유는 교회들 사이에 긴장과 추문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행하는 증언을 왜곡시키고 불안정하게 만들며 적대적 관계를 조장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회의 삶과 증언을 경험한 결과 개종권유에 대한 압박이나 인위적 조작 없이 자발적 결정에 의해 참되고 진정한 확신을 토대로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이 교회를 바꾸는 원인이 그 교회 자체가 지닌 문제에 기인하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고 평가해야한다.


3. 한국장로교회의 협력선교를 위한 제안들
한국장로교회는 일치를 이루는 선교를 위하여 선교에 있어서 상호 나눔의 원칙, 다중적 협력을 통한 긍정적 관계확산의 원칙, 각 상황 속에서 이미 진행 중인 기존교회들의 선교에 대한 존중의 원칙, 문화적 배경들이 서로 다른 교회들을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개방성의 원칙 등을 구체적인 실천원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패널 4 - 현장경험을 통한 실천적 방향 및 전략 1
김영자 선교사 (인도)


1. 후원 교회와의 관계(기도와 후원)
후원교회들은 선교사를 파송하고는 결과를 속히 보려는 생각을 버리고, 사랑으로 기다리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겠다. 선교사를 파송한 후 진심으로 기도하여 영육간에 좋은 것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후원하는 교회들이 다 되길 간절히 바란다.


2. 선교사의 안식문제와 퇴임 문제
또한 세월이 흘러 선교사가 퇴직을 할 때가 가까워지면 총회에서나 후원 교회에서 본 선교사의 후임이나 다른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후임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한 텀(3-5년)정도는 후임 선교사가 배울 수 있도록 선임 선교사와 함께 있어야 할 줄로 안다.


3. 지역연구원의 필요성
지역별 전문 행정 선교사가 필요하다. 교단 차원에서나 교회 차원에서나 특정 문화권이나 나라를 연구하여 현장 선교사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전문 행정 선교사가 필요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행정 전문 선교사는 그 나라의 사정을 파악하여 비자 문제나 현지 교회와의 협력 관계, 그리고 선교지의 필요들을 연구하여 선교사들과 의논하여 프로젝트도 함께 연구하여 중복됨이 없고 효과적인 Idea Bank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패널 4 - 현장 경험을 통한 실천적 방향 및 전략 2
김상길 선교사 (카작흐스탄)


재고(再考)되어야 할 텀 제도


장기 선교사가 선교지로 떠날 때 대부분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떠나는 것 보다 사역을 마칠 때까지 선교사로 남을 것을 생각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후원이 텀제도가 되어 있다면 선교사는 이것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선교사 가운데 후원교회가 3년을 한 텀으로 생각하고 후원을 하다가 3년이 지나 한 텀이 끝났다고 하고 후원을 중단한 것이다. 백방으로 주 후원교회를 알아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3년의 수고를 뒤로하고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 후원교회도 남는 것이 없고 선교사도 마음에 상처로만 남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가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선교를 마치 개척교회를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텀이나 두 텀을 후원을 했으니 이제 자립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자립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는 현지로부터 사례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이 선교의 원칙이라 본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선교지에 세워지는 교회를 마치 국내의 개척교회처럼 생각을 하기에 후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기독교 이야기 > 선교.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학교 교재   (0) 2018.02.13
복음을 깨닫기 위한 7개의 원리  (0) 2018.02.11
선교가기까지 12단계  (0) 2017.11.10
선 교 론  (0) 2017.10.26
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가?   (0) 2017.10.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