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속성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은 성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성경은 기록 혹은 저장(貯藏)이라는 관계가 있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이 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만큼 취사선택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경에 기록되었고 성경에만 기록되었다. 성경과 같은 성격의 또 다른 책은 세상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유일한 저장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며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성경은 동일시된다.


성경의 필요성

성경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진술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의 교회에 그의 뜻을 선언하시기를 기뻐하셨고, 그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육신의 부패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한 뜻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하여, 그 동일한 진리를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위의 진술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계시를 더 잘 보존하시고 전파하시기 위해 필요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물론 성경이 없었더라도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사람의 기억력과 구전(口傳)을 통해 어느 정도 보존되고 전파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인간의 연약과 실수로 그리고 사탄의 방해로 많이 손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성경책에 명확히 기록됨으로써 그것은 더 잘 보존되고 더 잘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율법들을 책에 기록하였다(출 24:4; 신 31:24). 또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들을 책에 기록하였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특별계시들을 책에 기록되게 하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 성경은 또한 인간의 육신의 부패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한 뜻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견고하게 설립하고 위로하기 위해 필요했다. 우리는 육신의 부패성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에는 사탄의 활동과 세상의 악한 일들이 많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기록하신 명확한 말씀이 없었더라면 구원받은 자들은 더욱 빈번히 흔들리고 낙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계시의 말씀들을 기록해주심으로 우리는 그것을 통해 더욱 견고히 서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누가는 자기가 기록한 복음서의 목적을, '데오빌로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표현하였다(눅 1:1-4). 사도 바울은 성경이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실을 말하기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했다(롬 15:4).


성경의 명료성

성경은 내용이 명료한 책이다. 성경의 명료성(明瞭性)이란,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이해할 만하게 명료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목적은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참지식을 줌으로써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이며 구원을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성경이 결코 어려운 책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진술한다.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자체에 있어서 똑같이 명백한 것은 아니고 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명한 것도 아니지만, 구원을 위해 알고 믿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경의 이곳 혹은 저곳에 분명히 제시되고 드러나 있어서, 유식한 자들뿐 아니라 무식한 자들도 일반적 수단을 적절히 사용함으로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성경은 두 가지 점에서 명료하다.

첫째로, 성경은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에 있어서 명료하다.

사도 요한은 그가 요한복음을 쓴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한다(요 20:31). 사도 바울도,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증거한다(딤후 3:15). 사실, 성경은 구원 진리의 기초가 되는 진리 전반에 있어서 명료하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말하기를,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고 한다(시 19:7).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합 2:2). 예레미야 선지자는 장차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하나님을 알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31:34).

둘째로,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는 생활 교훈에 있어서 명료하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증거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다(시 119:105). 불분명한 교훈은 결코 빛이 될 수 없다.

또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말했다(딤후 3:16, 17).


성경 번역의 필요성

원어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며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일진대, 성경은 마땅히 모든 나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옛 하나님의 백성의 모국어이었던 히브리어로 된 구약과, 기록 당시 여러 나라들에게 매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헬라어로 된 신약은 직접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므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종교상 모든 논쟁들에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그 성경들에 호소한다.


러나 그 성경들을 읽을 권리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들을 읽고 연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원어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성경들은 그것들이 들어가는 모든 나라의 통속적(通俗的, vulgar)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사람 속에 풍성히 거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방식으로 그를 예배하고 인내와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경 번역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로, 축자(逐字, 글자) 영감의 진리에 맞게, 성경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직역(直譯, 문자적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의역(意譯) 혹은 '의미적 번역'은 바람직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둘째로, 신약 헬라어(ՊՏՉՍԾ 코이네)가 통속적, 대중적 언어이었듯이, 성경은 쉬운 대중적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고려하여 성경은 가능한 한 품위있는 말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 나라에서는 신약의 전통사본(비잔틴 다수사본)의 본문을 따르고 기존의 개역성경의 본문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새 번역 성경이 필요하다.



성경 해석의 원리

성경은 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만일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지 않는다면, 성경의 목적이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며 성도들은 성경책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의 기갈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해석에는 몇 가지의 건전한 원리들이 있다.

첫째로, 성경은 문법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문법적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단어들의 뜻과 어순과 문맥 등이다. 문법적 해석은 많은 경우 문자적 해석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상식적인 해석이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학자들에게 주신 책이 아니고 일반 성도들에게 주신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대부분 단순한 문법적 해석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잘 드러낸다. 그러므로 비록 성경에 상징적, 시적 표현들이 있지만, 성경의 모든 부분을 영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 역사상 초대 교회의 오리겐 이후 이런 해석 방식이 항상 있어 왔고 오늘날도 적지 않지만, 그것은 성경의 순수한 뜻을 혼란시키고 성경의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해석들만을 남긴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해석을 삼가야 한다.

둘째로, 성경은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 아마 절반 이상은 역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특별계시들을 어떤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주셨다. 그러므로 역사 지식은 성경 해석에 많은 도움이 된다. 따라서 성경 해석자는 성경 역사와 더불어 동시대의 세속 역사에 대해서도 알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런 역사 지식이 많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대체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뜻을 파악하기에 어렵지 않다고 본다.

셋째로, 성경은 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참된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시므로, 성경 어느 곳의 좀 불분명한 의미는 성경 다른 곳의 보다 분명한 의미에 의해 해석될 수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은 바르게 진술하기를, "성경 해석의 정확 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의미가 여럿이 아니고 단 하나인 어떤 성구의 참되고 완전한 뜻에 관해 문제가 일어날 때에는 보다 더 명백하게 말하는 다른 곳들에 의해 그 뜻을 찾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성경의 각 부분은 성경 전체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구약은 신약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점진성과 신약 계시의 최종성을 인정하면서, 구약은 신약에 비추어 그리고 신약 계시 안에서, 신약 계시를 넘어서지 말고 해석되어야 한다. 또 신약은 구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약 계시는 구약 역사의 터 위에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체 내용은 천지 창조와 인류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택과 거역 및 멸망과 회복이라는 성경 역사의 전체적 맥락에서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더욱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복음은 구약 율법을 통해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이 증거됨으로써 밝히 제시된다. 그러므로 성경 진리를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돈한 바른 신학에 의해 성경이 해석될 때, 성경 모든 부분의 뜻은 밝아지고 탈선된 해석은 방지될 것이다.


성경의 충족성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충족히 전달하는 책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 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 . . .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그 방식들은 지금은 중지되었다. . . .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사람의 구원과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관한 하나님의 모든 뜻이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거나 혹은 건전하고 필연적인 논리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 그 하나님의 뜻에 어느 때든지 성령의 새로운 계시들이나 사람들의 전통들에 의해 아무것도 첨가될 수 없다.

구약은 모세 때로부터 그 충족성을 스스로 증거해왔다. 모세는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했다(신 4:2). 율법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그것의 불충족성을 의미할 것이다. 구약의 핵심은 율법이며, 선지서와 성문서는 율법에 무엇을 첨가한 것이라기보다 율법을 설명하고 확증하고 적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라고 증거하였다(시 19:7). 또 이사야 선지자도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모세의 율법]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이는 그들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라"(원문 직역)고 증거하였다(사 8:20). 예수께서도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구약의 충족성을 증거하시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눅 16:31).

신약도 구약의 진리와 다른 무엇이 첨가되었다기보다는 구약에 예언되고 증거된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고 해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관한 일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들과 시편'에 예언되어 있음을 증거하셨다(눅 24:27, 44; 요 5:39). 성경의 중심 인물과 대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의 창설자들인 사도들은 구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최종적, 절정적 특별계시이시다. 히브리서 1:1, 2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도들을 통하여 밝히 계시되고 해설되고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단언하였고(갈 1:8-9) 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굳게 서서 우리의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들[전해 들은 내용들]을 지키라"고 말했다(살후 2:15). 주께서는 종말 예언까지 충족히 주셨다. 그러므로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엄숙히 경고한다.

이제 사도들을 통해 기록된 신약은 충족한 계시로서 더 이상 무엇이 첨가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알리기를 원하시는 그의 모든 뜻을 다 성경에 기록하셨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신약으로 완성되고 종결되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가 일시적일 것을 말한 후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한다'고 증거하였다(고전 13:8-10).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관한 한, 그 '온전한 것'은 곧 성경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완성된 후 성경 외에 또 다른 특별계시들을 주실 필요가 없으셨다.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깨닫고 믿고 마음에 새기고 바라고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도는 성경으로 만족해야 한다.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도, 성경 교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을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담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이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므로, 우리는 성도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 미니 스커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여자들이 아담한 옷을 입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딤전 2:9), 우리는 미니 스커트가 여성도에게 합당한 복장이 아니라고 추론할 수 있다.



성경의 신적 권위성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진 책이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전적으로 그것의 참저자이신 하나님께 의존하며 그에게로부터 나온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적절히 진술하기를,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믿고 복종해야 하는 바 성경의 권위는 어느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의 저자이시며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1:4).


역사적 권위

성경의 권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첫째는 역사적 권위이다.

그것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진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의 역사적 권위, 곧 그것의 신빙성은 다음과 같이 확증된다.

첫째로,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예수께서는 증거하시기를, "[마귀는] 처음부터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셨다(요 8:44). 영생과 영벌의 엄숙한 구원 진리를 증거함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요구되는 덕은 진실이다. 만일 성경의 증거가 진실하거나 믿을 만하지 않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 아니고 마귀의 책일 것이며, 거룩한 책[聖書]이 아니고 심히 악한 책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마귀의 책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마귀가 마지막 때에 영원히 지옥에 던지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마 25: 41; 계 20:10).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종류의 거짓을 정죄하시며, 거짓 증인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9계명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고 명하셨다(출 20:16). 잠언 6:16-19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 . . 거짓된 혀와 . . .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거짓] 증인과"라고 말했다. 성경 마지막 부분에도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 . .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선언되어 있다(계 21:8).

셋째로, 예수께서는 친히 구약의 사건들을 언급하심으로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진실하고 믿을 만함을 증거하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대해 언급하셨고(눅 17:26-29), 모세 때에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린 떡인 만나에 대해 말씀하셨고(요 6:32), 엘리야와 엘리사 때의 일들을 증거하셨고(눅 4:25- 27),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사실을 증거하셨다(마 12: 39, 40).

넷째로, 성경의 인간 저자들, 특히 신약의 저자들은 '증인들'로 불리웠다.

요한복음 21:24,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사도들은 자신들을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자처하였다(행 10:39). 성경에는 '증인,' '증거,' '증거하다'는 단어가 200회 이상 나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이 증거한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마침내 스데반이나 야고보처럼 순교의 피로 그 증거를 확증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순교적 증언은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힘있는 증거이다.


규범적 권위

성경 권위의 다른 한 측면은 규범적 권위이다. 이것은 역사적 권위보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측면이다. 성경의 규범적 권위란, 성경이 우리의 믿음과 생활에 대해 규범이 됨을 의미한다. 물론, 성경의 규범적 권위가 성경의 모든 내용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역사적 내용들의 경우, 규범적 권위는 그 내용들에 담긴 진리에만 적용될 수 있다. 또 구약의 율법의 경우, 도덕법은 그 성격상 영속적이지만,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으로 신약 아래서는 폐지되었고 재판법도 오늘날 세속 국가들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성경에 대한 건전한 해석과 적용의 필요성이 있다.

성경의 규범적 권위는 모든 참된 교회들의 기본적, 공통적 신앙이다. 종교개혁의 세 전통인 루터교회와 영국교회와 개혁교회는 성경의 신적인 권위 즉 성경이 유일한 최고의 그리고 최종의 권위를 가진다고 믿는다. 루터교회의 일치신조는 "모든 교의들과 모든 박사들이 평가되고 판단되어야 할 유일한 규칙과 규범은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인 글들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영국교회의 39개 신조도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읽을 수 있고 그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무에게도 그것을 신앙의 조항으로 믿도록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고 진술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2도 진술하기를, "성경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명칭 아래 현재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 . . 이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음과 생활의 규칙이다"고 하였다.

성경의 규범적 권위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경자체이다. 이것을 '성경의 자증(自證, autopistos)'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가 교회나 전통 등의 외적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증거가 하나님 자신에 의해 가장 잘 제시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증거는 성경 자체에 의해 가장 잘 제시되는 것이다.

성경의 규범적 권위에 대한 성경 자체의 증거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에서 열거한 대로,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다.

첫째로, 성경의 내용은 천적(天的)이다.

성경은 단순히 땅의 일들이나 사람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주로 하나님의 특별계시들, 곧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기적을 행하신 일들에 관하여

증거하고 기록한다.

둘째로, 성경의 교훈은 효력이 있다.

성경의 교리적, 윤리적 교훈들은 죄인들을 구원하고 성도들을 새롭게 하는데 효력이 있고 적응성이 있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룩한 삶을 산다.

셋째로, 성경의 문체는 장엄하다.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 등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한다. 그 누구도 감히 이런 표현으로 인간의 사상을 전달할 수 없으며, 만일 누가 거짓으로 그런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 될 것이다.

넷째로, 성경의 교훈들은 서로 일치한다.

성경은, 1500여년 간 30여 명의 인간 저자들에 의해 저술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일치된 교훈을 증거한다.

다섯째로, 성경 전체의 가장 고상한 목표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떤 사건들을 사실 그대로 증거하고 사람을 미화(美化)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경은, 경건한 왕 다윗의 악하고 부끄러운 간음과 살인의 죄를 그대로 기록하였고(삼하 11장), 주의 귀한 종 바울이 주를 알기 전에 행했던 교회 핍박의 일을 세 번이나 자세히 기록하였다. 성경은 인간을 높이는 인간적인 책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거룩한 책이다.

여섯째로, 성경은 사람들의 구원의 유일한 길을 충족하게 증거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에 대하여 명확하고 풍성하게 증거하고 있다. 세상에 성경 외에 참구원의 길을 증거하는 책은 없다. 죄인들은 이 책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넉넉히 발견할 수 있다.

일곱째로, 성경은 그 외에도 많은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완전하다. 성경은 윤리적으로 탁월하다. 또 성경은 기적들과 예언들의 성취를 통해 그 신적 권위를 스스로 증거한다. 성경은 율법, 역사, 예언, 시, 교리, 윤리, 종말 예언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완전하여 교리나 윤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계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증거를 통해 올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시고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실 때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증거하였고(고전 2:12)


요한도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라고 했다(요일 2:2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은 적절히 진술하기를,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 마음 속에 그 말씀으로 그리고 그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면적 활동으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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